여성에 대해 고위직 50프로 할당, 비정규직 여성 비율 25프로로 축소 및 기타 일체의 여심공략차원의 선심성 공약들이 여성지지자 확보를 노리는 정동영 후보의 여성감동 정책의 주요골자이다.
그러면서 정 후보는 "대한민국의 빠른 성작 동력은 여성의 힘과 희생에 있지만, 현실은 누나의, 어머니의 희생을 위로하고 보상하기보다는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21세기는 바야흐로 '여풍당당'의 시대"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선심성 공약(空約)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빠른 성장 동력이 여성의 힘과 희생에 있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급성장은 우수한 인적자원들이 흘린 피땀의 결과였고,여기에는 남녀구분이 없었다.
아들과 남편을 뒷바라지한 어머니와 아내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즉, 대한민국이 빠른 성장 동력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남녀,즉 우리의 아버지인 가장들과 우리의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노력이다.
요컨대,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대한민국의 성장의 동력이었으며,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형태가 아닌 아버지와 어머니의 형태로 헌신했던 것이 단기간 내 이룩한 눈부신 발전의 주요 배경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씨는 모든 사실을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여성의 희생'이라는 표현에 이상한 뉘앙스를 담았다.
정씨는 아버지나 가장에 대한 언급을 고의적으로 빠트림으로써 대한민국의 현재가 마치 어머니들과 누나들을 착취하고 억압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사실을 호도했다.
가장들의 헌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은 착취당하고 억압당한 것이 될 수밖에 없고 정씨의 발언은 정황상 이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동력을 어머니가 아닌 여성에 있다고 사실을 호도함으로써 어머니라는 인간관계 혹은 가족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모든 여성들은 계속 희생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발전을 못한다는 식으로 궤변을 늘어놓았다.
한 마디로 어머니,누나 등의 어떤 인간관계를 구체적인 보상이나 물질적인 위로나 어떤 유형의 반대급부가 반드시 필요한 관계로 설정해서 어머니나 누나와 아내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손해보고 희생당하며 수동적이며 21세기에 적합하지 못한 초라한 여성으로 폄하했다는 데 정씨의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라는 위치가 국가가 나서서 이런 식의 보상과 위로를 해줘야 할 어떤 공적인 지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어머니와 아내와 누나를 마치 국가에서 고용한 피고용인양 착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대한민국의 성장 배경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발적인 헌신은 있었어도 여성이라는 형태의 인간들의 희생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보다 엄밀한 사실이다.
그리고 정씨는 성장동력을 잘못파악했다.
남성 여성 중 여성의 희생이 성장동력이 아니고 아버지와 어머니 등 어떤 인간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헌신이 성장동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사실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사실을 호도함으로써 모든 어머니들과 누나들을 여성이라는 미명하게 근거없는 피해의식을 가진 하나의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냄새나는 표를 얻겠다는 심산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헌신! 어떤 보상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 아니다.!
이 헌신에 위대함이 있고 이 위대함을 통해 그동안 단기간 내에 많은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확고한 보상도 보장되지 않은 채 자식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분투한 아버지와 어머니들만이 바로 이 헌신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어머니의 헌신을 착취적 희생으로 교묘하게 왜곡하며 이를 위로하고 보상하겠다는 차원의 각종 여성 우대정책을 텅텅 빈 약속으로 내걸고 있다.
어떤 확고한 물질적 보상 차원의 제도를 언급함으로써 그 동안 있었떤 어머니들과 누나들의 가족에 대한 자발적 헌신을 마치 착취된 희생인 양 호도 하고 있으며,이렇게 어머니의 헌신을 희생으로 왜곡함으로써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과 가장들을 욕되게 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희생이라는 날조되고 급조된 이미지를 통해 쓸데없는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한편 이를 통해서 여성들을 선동함으로써 냄새나는 표를 끌어모으겠다는 천박한 선동가의 비길 데 없는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정씨같은 선동가들이 있기에 오늘날 여성들은 어머니와 누나라는 어떤 가족 혹은 그 외의 인간적 관계에서 존재 이유를 찾기 보다는 단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측면에서만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찾고 있다.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어머니이고 누구의 동생이고 누구의 아내라는 관계에서 정체성을 찾기보다는 다만 생리하고 출산의 능력이 있다는 데서만(능력은 있지만 출산은 하지 않는다.) 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데서 희미한 정체성을 찾는 인간들이 공유하는 여심을 선동하고 충돌질 하는 이기적인 정치선동가들이 필연적으로 속속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치의 수준이 더 낮아지고 정국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희극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머니와 누나라는 가족관계가 헌신이 아닌 희생이라는 이 초라하고 엉뚱한 관점에 의거한다면 필시 모든 여성들은 억압받고 있는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두고 선동이라고 하지 어떤 것을 선동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리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어머니의 헌신을 여성의 희생으로 호도함으로써 부당한 위로와 보상을 얻게되는 여성들의 능력이 아니다.
과거 어머니들의 헌신을 빙자해서 부당한 보상을 받는 여성들의 능력은 필연적으로 초라할 수밖에 없다.
정씨가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성들이 어머니 누나 동료 등의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는 헌신을 필요로 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 어머니 등의 헌신이야 말로,헌신까지 물질적 보상으로 평가하려는 여성들의 보잘 것 없는 능력보다 백만배 더 소중하고 절실한 것이다.
정동영 후보는 여성들에게 아부하고 여성들을 선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성장배경과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한 어떤 가치를 무시한 것이다.
21세기 여풍당당이라는 말은 찌라시들이나 하는 낚시질이나 선동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필요한 가치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동시에 이런 선동구호나 읊고 있는 후보는 무능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헌신을 여성에 대한 착취로 오도한 정동영 후보...
개인적인 후보지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다음 아고라에 너무하다 싶은 후보의 공약에 대한 반대글이 있길래 퍼왔습니다.
정동영 후보의 여성우대공약을 보았다.
여성에 대해 고위직 50프로 할당, 비정규직 여성 비율 25프로로 축소 및 기타 일체의 여심공략차원의 선심성 공약들이 여성지지자 확보를 노리는 정동영 후보의 여성감동 정책의 주요골자이다.
그러면서 정 후보는 "대한민국의 빠른 성작 동력은 여성의 힘과 희생에 있지만, 현실은 누나의, 어머니의 희생을 위로하고 보상하기보다는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21세기는 바야흐로 '여풍당당'의 시대"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선심성 공약(空約)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빠른 성장 동력이 여성의 힘과 희생에 있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급성장은 우수한 인적자원들이 흘린 피땀의 결과였고,여기에는 남녀구분이 없었다.
아들과 남편을 뒷바라지한 어머니와 아내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즉, 대한민국이 빠른 성장 동력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남녀,즉 우리의 아버지인 가장들과 우리의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노력이다.
요컨대,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대한민국의 성장의 동력이었으며,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형태가 아닌 아버지와 어머니의 형태로 헌신했던 것이 단기간 내 이룩한 눈부신 발전의 주요 배경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씨는 모든 사실을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여성의 희생'이라는 표현에 이상한 뉘앙스를 담았다.
정씨는 아버지나 가장에 대한 언급을 고의적으로 빠트림으로써 대한민국의 현재가 마치 어머니들과 누나들을 착취하고 억압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사실을 호도했다.
가장들의 헌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은 착취당하고 억압당한 것이 될 수밖에 없고 정씨의 발언은 정황상 이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동력을 어머니가 아닌 여성에 있다고 사실을 호도함으로써 어머니라는 인간관계 혹은 가족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모든 여성들은 계속 희생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발전을 못한다는 식으로 궤변을 늘어놓았다.
한 마디로 어머니,누나 등의 어떤 인간관계를 구체적인 보상이나 물질적인 위로나 어떤 유형의 반대급부가 반드시 필요한 관계로 설정해서 어머니나 누나와 아내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손해보고 희생당하며 수동적이며 21세기에 적합하지 못한 초라한 여성으로 폄하했다는 데 정씨의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라는 위치가 국가가 나서서 이런 식의 보상과 위로를 해줘야 할 어떤 공적인 지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어머니와 아내와 누나를 마치 국가에서 고용한 피고용인양 착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대한민국의 성장 배경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발적인 헌신은 있었어도 여성이라는 형태의 인간들의 희생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보다 엄밀한 사실이다.
그리고 정씨는 성장동력을 잘못파악했다.
남성 여성 중 여성의 희생이 성장동력이 아니고 아버지와 어머니 등 어떤 인간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헌신이 성장동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사실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사실을 호도함으로써 모든 어머니들과 누나들을 여성이라는 미명하게 근거없는 피해의식을 가진 하나의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냄새나는 표를 얻겠다는 심산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헌신! 어떤 보상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 아니다.!
이 헌신에 위대함이 있고 이 위대함을 통해 그동안 단기간 내에 많은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확고한 보상도 보장되지 않은 채 자식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분투한 아버지와 어머니들만이 바로 이 헌신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어머니의 헌신을 착취적 희생으로 교묘하게 왜곡하며 이를 위로하고 보상하겠다는 차원의 각종 여성 우대정책을 텅텅 빈 약속으로 내걸고 있다.
어떤 확고한 물질적 보상 차원의 제도를 언급함으로써 그 동안 있었떤 어머니들과 누나들의 가족에 대한 자발적 헌신을 마치 착취된 희생인 양 호도 하고 있으며,이렇게 어머니의 헌신을 희생으로 왜곡함으로써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과 가장들을 욕되게 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희생이라는 날조되고 급조된 이미지를 통해 쓸데없는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한편 이를 통해서 여성들을 선동함으로써 냄새나는 표를 끌어모으겠다는 천박한 선동가의 비길 데 없는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정씨같은 선동가들이 있기에 오늘날 여성들은 어머니와 누나라는 어떤 가족 혹은 그 외의 인간적 관계에서 존재 이유를 찾기 보다는 단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측면에서만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찾고 있다.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어머니이고 누구의 동생이고 누구의 아내라는 관계에서 정체성을 찾기보다는 다만 생리하고 출산의 능력이 있다는 데서만(능력은 있지만 출산은 하지 않는다.) 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데서 희미한 정체성을 찾는 인간들이 공유하는 여심을 선동하고 충돌질 하는 이기적인 정치선동가들이 필연적으로 속속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치의 수준이 더 낮아지고 정국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희극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머니와 누나라는 가족관계가 헌신이 아닌 희생이라는 이 초라하고 엉뚱한 관점에 의거한다면 필시 모든 여성들은 억압받고 있는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두고 선동이라고 하지 어떤 것을 선동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리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어머니의 헌신을 여성의 희생으로 호도함으로써 부당한 위로와 보상을 얻게되는 여성들의 능력이 아니다.
과거 어머니들의 헌신을 빙자해서 부당한 보상을 받는 여성들의 능력은 필연적으로 초라할 수밖에 없다.
정씨가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성들이 어머니 누나 동료 등의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는 헌신을 필요로 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 어머니 등의 헌신이야 말로,헌신까지 물질적 보상으로 평가하려는 여성들의 보잘 것 없는 능력보다 백만배 더 소중하고 절실한 것이다.
정동영 후보는 여성들에게 아부하고 여성들을 선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성장배경과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한 어떤 가치를 무시한 것이다.
21세기 여풍당당이라는 말은 찌라시들이나 하는 낚시질이나 선동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필요한 가치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동시에 이런 선동구호나 읊고 있는 후보는 무능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