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 자기만족, 돈, 성공, 아니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고 한국인 고3이면 반드시 수능을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
그러나 그 수험생을 둘러싼 주변 가족들은 반응도 비슷하다.
흑, 아니면 백이네.
성적이 좋으면 환대,
성적이 나쁘면 냉대.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도 단순하다.
시험을 아주 대박쳐서 집에서 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고3친구들과,
가채점 후 시험 망한 걸 알고 부모님 얼굴보자마자 민망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또다른 고3친구들.
본인은 후자에 속했었다.
난 한국을 뜰 생각까지 했을정도로 성적이 모의고사때보다
형편없이 나왔었고.
당시에 고3 우리반 담임이었던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학교 화장실에서 문걸어잠그고 수도없이 울어봤고,
집 방에서도 문만 잠그면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임무때문에
아버지와 동생을 타국으로 떠나보내고
날 위해 한국에 남은
우리 엄마의 얼굴을 보기가 겁이 났다.
본성적으로는 가슴이 여리고 감성도 풍부하며 가족을 위해서라면 정말 헌신적인 사랑을 제공하시는 멋진 어머니이시지만,
내가 첫딸이었고, 당신께서도 날 뒷바라지 하면서 여러가지 중대한 일들을 신경쓰시면서 상당히 예민해져 계셨던 터였다.
집문만 열면 가슴속을 찢어놓는 엄마의 날카로운 한숨과,
"어휴, 어휴 어~~~~~~~휴!"
"너 어느대학 갈래?그래서야 대학 가겠니?옆집 누구는 하나틀렸댄다. 서울대 가겠네. 누구는...연대..누구는...법대..의대......
외고 괜히보냈어. 일반고가면 고생안해도 될걸 쯔쯔쯧"
라는 다그치는 문장들 속의 각 개별 단어들, 아니 음소들은 강한 전류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귀의 달팽이관의 액체부터 끓기 시작했으니까.
그 후로부터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늘 아파트 단지를 10바퀴 돈 다음에 큰 숨 들이쉬고 집에 갔다.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서 식욕을 잃어본건 아기때 모유수유할때 이후로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일거다..
안다.
그게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되는 첫 단계인 것.
그러나, 제발...시험을 본 친구들 가족분이시라면 결과에 상관없이
아이들을 대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정성을 쏟고 한 건 알겠지만,
사랑하기때문에 정성을 쏟은 거 아닌가. 그 사랑을 더 표현하고 싶다면 시험을 잘 보지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자녀 앞에서 안타까워하는 것보다 그 자녀의 상처난 마음을 어뤄만져주는것이 더 효과적이고 인간적일 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반이라고 하였고,
수능이 한국 사회에 발을 들이게되는 첫 단계라고 앞에서 언급했다.
이러한 첫 단계는 수험생 개인에게 너무나도 중요한데,
이 시기를 제대로 관리해주지 못한다면,
후에 대학에 진학해서도, 구직을 할때도, 예전의 악몽을 떠올리며 더 불안 초조한 가운데 타인과 경쟁을 하고, 그 경쟁심리로 주변인들에 대한 태도가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학업면에서 보여지는 중고생들의 과열된 경쟁, 카스트제도보다도 더한 학벌계급주의, 김포외고에서 최근에 보여줬던 공-사의 음성적인 결탁비리, 특목고 병폐, 그리고 성공해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심리적압박감이 집착증으로 변하는 현상이 이에 해당하는 원인-결과물이 아닐런지.
어디까지나 나의 견해이지만,
한 재수생의 신분이 될 각오를 하고 있는 한 인터넷 뉴스 블로거의 글을 읽으며 그 글쓴이의 불쌍한 모습과, 나의 경험, 그리고 사회의 전반적인 풍조가 오버랩되며 새벽부터 화가 난다.
어째서, 어째서 그래야 하는지...물론 경쟁은 해야하고 시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시험결과에 승복하며 거기서 자기만족을 얻을수 있을 만큼의 상대적인 성과와 개인적인 성공을 이루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보는 주변인들은 제발 지켜봐주기만 하였으면 좋겠다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회 계급 마련의 발판, 수능
나는 한국의 한 대학에 적을 두고 있고,
독일의 어느 지역에서 교환학생신분으로 있는
대한민국인, 아니 세계시민의 구성원이다.
그저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하게 치뤄지는 국가고시인
수능이 끝났다고 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19세의 수능초짜 혹은,
검정고시 후 10대 어느 시점에서 수능을 치루는 꼬마천재들부터,
하하호호 백발이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해를 거듭해도 수험생의 연령대와 수능을 치는 이유는 늘 다양하다.
인생역전, 자기만족, 돈, 성공, 아니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고 한국인 고3이면 반드시 수능을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
그러나 그 수험생을 둘러싼 주변 가족들은 반응도 비슷하다.
흑, 아니면 백이네.
성적이 좋으면 환대,
성적이 나쁘면 냉대.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도 단순하다.
시험을 아주 대박쳐서 집에서 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고3친구들과,
가채점 후 시험 망한 걸 알고 부모님 얼굴보자마자 민망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또다른 고3친구들.
본인은 후자에 속했었다.
난 한국을 뜰 생각까지 했을정도로 성적이 모의고사때보다
형편없이 나왔었고.
당시에 고3 우리반 담임이었던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학교 화장실에서 문걸어잠그고 수도없이 울어봤고,
집 방에서도 문만 잠그면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임무때문에
아버지와 동생을 타국으로 떠나보내고
날 위해 한국에 남은
우리 엄마의 얼굴을 보기가 겁이 났다.
본성적으로는 가슴이 여리고 감성도 풍부하며 가족을 위해서라면 정말 헌신적인 사랑을 제공하시는 멋진 어머니이시지만,
내가 첫딸이었고, 당신께서도 날 뒷바라지 하면서 여러가지 중대한 일들을 신경쓰시면서 상당히 예민해져 계셨던 터였다.
집문만 열면 가슴속을 찢어놓는 엄마의 날카로운 한숨과,
"어휴, 어휴 어~~~~~~~휴!"
"너 어느대학 갈래?그래서야 대학 가겠니?옆집 누구는 하나틀렸댄다. 서울대 가겠네. 누구는...연대..누구는...법대..의대......
외고 괜히보냈어. 일반고가면 고생안해도 될걸 쯔쯔쯧"
라는 다그치는 문장들 속의 각 개별 단어들, 아니 음소들은 강한 전류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귀의 달팽이관의 액체부터 끓기 시작했으니까.
그 후로부터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늘 아파트 단지를 10바퀴 돈 다음에 큰 숨 들이쉬고 집에 갔다.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서 식욕을 잃어본건 아기때 모유수유할때 이후로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일거다..
안다.
그게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되는 첫 단계인 것.
그러나, 제발...시험을 본 친구들 가족분이시라면 결과에 상관없이
아이들을 대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정성을 쏟고 한 건 알겠지만,
사랑하기때문에 정성을 쏟은 거 아닌가. 그 사랑을 더 표현하고 싶다면 시험을 잘 보지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자녀 앞에서 안타까워하는 것보다 그 자녀의 상처난 마음을 어뤄만져주는것이 더 효과적이고 인간적일 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반이라고 하였고,
수능이 한국 사회에 발을 들이게되는 첫 단계라고 앞에서 언급했다.
이러한 첫 단계는 수험생 개인에게 너무나도 중요한데,
이 시기를 제대로 관리해주지 못한다면,
후에 대학에 진학해서도, 구직을 할때도, 예전의 악몽을 떠올리며 더 불안 초조한 가운데 타인과 경쟁을 하고, 그 경쟁심리로 주변인들에 대한 태도가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학업면에서 보여지는 중고생들의 과열된 경쟁, 카스트제도보다도 더한 학벌계급주의, 김포외고에서 최근에 보여줬던 공-사의 음성적인 결탁비리, 특목고 병폐, 그리고 성공해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심리적압박감이 집착증으로 변하는 현상이 이에 해당하는 원인-결과물이 아닐런지.
어디까지나 나의 견해이지만,
한 재수생의 신분이 될 각오를 하고 있는 한 인터넷 뉴스 블로거의 글을 읽으며 그 글쓴이의 불쌍한 모습과, 나의 경험, 그리고 사회의 전반적인 풍조가 오버랩되며 새벽부터 화가 난다.
어째서, 어째서 그래야 하는지...물론 경쟁은 해야하고 시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시험결과에 승복하며 거기서 자기만족을 얻을수 있을 만큼의 상대적인 성과와 개인적인 성공을 이루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보는 주변인들은 제발 지켜봐주기만 하였으면 좋겠다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