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윤동희200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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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원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라는 영화가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통적인 비수기로 불리는 늦가을, 그것도 10개 안팎의 스크린에서 개봉한 이 아일랜드 인디 영화는 어느덧 관객 15만을 돌파했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출하다. 가난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 남자는 진공청소기를 수리하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체코에서 온 여자는 가정부로 일하고, 틈틈이 거리에서 꽃을 판다. 여기에 ‘음악’이 파고든다. 그런데 이 음악이 예술이다. 멜로디는 귀에 착 감기고, 가사는 가슴을 후빈다. 극장에서 나오는 순간 (좀처럼 찾기 힘든)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거나, 컴퓨터를 켜고 장바구니에 O.S.T를 담을 정도다. 스산한 가을, 자신을 위해, 혹은 마음이 통하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선물로 충분하기 때문이리라.

 

 

<원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그런데 이 영화엔 없는 게 너무 많다. 우선 스타가 없다. 주연을 맡은 ‘글렌 핸사드’와 ‘마르케타 이글로바’라는 배우는 본래 뮤지션이다. 당연히 연기는 생초보. 여기에 비하면 의 캐스팅(휴 그랜트, 드류 베리모어)은 가히 블록버스터급이다. 돈도 없다. 영화에 들인 제작비는 고작 15만 달러(약 1억3천만 원).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세트도 짓지 않고 거리에서 모든 장면을 소화했다. 명색이 뮤지컬 영화인데 같은 화려한 무대도, 춤과 노래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기타 하나, 피아노 한 대,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음악이 전부다. 영상도 소박하다. 단 17일 동안 디지털 캠코더로 찍은 영화 속 장면들은 ‘나도 능히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 줄 정도다. 게다가 멜로 영화를 표방한 이 영화에는 그 흔한 키스신조차 나오지 않는다. 한 마디로 궁핍함이 곳곳에 묻어나온다.

 

 

<원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그런데 이 영화엔 다른 영화에 없는 게 있다. 우선 따뜻함이 묻어나온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비루한 삶을 결코 혐오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족해한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 음악이라는 자기세계를 사랑한다. ‘몰입(flow)’의 기쁨. 또 한 가지. 이들은 서로를 존중한다. 서로를 비교하지 않는다. 같은 조건일지라도 단 한 가지라도 자신만의 비교우위를 내세우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일진대 이들은 진정으로 상대방의 영혼을 보듬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는 이렇게 보는 이의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배려의 미덕.

 


그래서일 것이다. 이들의 가난함 속에 우아함이 깃들어 있는 것은. 배우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음악만 있다면, 영화만 있다면, 그리고 보고픈 사람만 있다면 행복한 게 아니냐고. 영화 속 배우들은 그렇게 ‘소통’하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서 남자는 노래를 부르고 여자는 건반을 두드린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그러나 악보가 한 장 한 장 넘어가면서 두 사람은 ‘화음’을 만들어낸다. 조화(調和). 가난한 뮤지션에게 기꺼이 연주 기회를 허락하는 악기점 주인과 그럴싸한 앨범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거리의 뮤지션들, 그리고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기꺼이 밤을 지새우는 프로듀서까지.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통(通)’하고 있었다.

 

 

 

대안과 독립, 그리고 자유…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원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는 단 한 장면도 무리하지 않는다. 영화는 좀처럼 오버하지 않는다. 얼핏 아둔해 보이는 영화 속 인물들은 결코 젠 체하지 않는다. 무심한 듯 일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잉태하고 있었다. 비어 있음의 참맛. 결핍의 미학. 그런 점에서 소설가 김애란은 이 영화를 정확히 짚고 있었다. “표정에 관한 영화”(씨네21).

 


이 영화가 거둔 시장에서의 성과도 눈여겨 볼만하다. 15만 달러로 만든 이 영화는 100만 달러에 배급사에 팔렸고, 지금까지 1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예술의 힘을 믿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잃지 않는다면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진리를 이 영화는 일깨워준다. 아니, 돈까지 벌었기에 더더욱 이 영화가 소중한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쩐(錢)’의 전쟁의 시대이다. 예술까지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미술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대안공간과 공립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던 이들이 기꺼이 경매회사로 자리를 옮긴다. 잘 나가는 작가들은 작품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한 달에 두 점을 그리며 자족해하던 내가 아는 작가는 일주일에 두 점을 그리느라 헉헉댄다. 넥타이만 매지 않았을 뿐, 사실상 직장인과 다름없는 삶이다. 출판은 또 어떤가. 인쇄소에 몇 번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유행을 따르는 고만고만한 책들이 서점에 깔려 있다. 책을 만드는 나 역시 변명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혁명’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도 용서받을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은 ‘심장은 왼쪽에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정작 이들 중 상당수가 ‘88만 원’을 받고 있지만, 이들의 이데올로기는 오른쪽으로 경도되고 있다. 도덕적 상처가 곪아터지는 데도 대통령을 하겠다는 한 정치인이 저만치 달려가는 모습이 바로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모두다 눈앞의 성공에만 연연한다. 멀리 내다볼 줄 모른다. 진정한 성공은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한다.

 

 

 

부유함과 가난, 물질적 재산과 정신적 재산

 

 

  <원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이 저널이 인쇄소를 거쳐 서점에 깔릴 즈음 나는 서울의 한 구석에서 대학 동창들과 ‘송년회’를 갖고 있을 것이다. 만날 때마다 나를 향해 “밥은 먹고 사느냐”고 묻는 그들,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디자인을 논하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과의 만남은 반가우면서도 어딘지 옹색하다. 이날, 나는 라는 영화와 그 속에 들어 있던 음악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들 중 단 한 명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 그래도 작년부터는 미술에 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투자에 성공해 공기 좋은 곳에 한옥을 구입한 친구가 미술관과 와인 바를 열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올해는 그 친구가 구입한 이런저런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걸까?

 


물론 이런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나 역시 은행구좌의 잔고액수에 민감해 한다. ‘감각과 취향’을 입에 달고 사는지라 마음 속에 찍어둔 자동차의 스타일도 만만치 않다. 다만 그들에 비해 아직도 대안(alternative)과 독립(independent)을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좋은 전시가 있으면 찾아가고, 찜해둔 영화는 보아야 직성이 풀리고, LP나 CD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니면 감동하지 않고, 남들이 한 권쯤 갖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나만의 ‘마이셀러(Myseller)'를 갖는 데서 행복을 느낄 뿐이다. 정신적 재산.

 

이번 송년회에는 내가 만든 몇 권의 책과 몇 장의 CD를 챙겨 가고자 한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이 영화를 만든 ‘존 카니’라는 감독 말이지, 우리랑 동갑(72년생)이래. 가난한 친구지. 그런데 이 친구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어. 세상을 향해 눈치를 보지 않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그래서 자유롭지. 참, 이 친구 여전히 희망을 믿어. 예술이 삶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무모함도 마음에 들어. 왜 우리도 그랬었잖아.

 

 

| 윤동희 _ 미술전문기자, 북노마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