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1988년 군복무한(당시 보병 2사단 81미리 박격포) 시절로 돌아보면 예비사단보병은 최소 3일까지 선임후임,구별고 엄정한 군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힘든 훈련.(천리행군 중대,대대.ATT,연대RCT,TS.유격,각종 사격측정)에 낙오되고 나태해져 각종 사고가 나기 마련이라 항상 긴장하면서 생활하였습니다.당시엔 인내하여 낙오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군생활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이등병은 아침 10키로 알통구보시 맨 선두에 세우고 낙오할듯하면 발길질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더라도 완주시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구타라함은 야삽으로 머리치기,보초근무시 암기사항 교육시키고 얼차려주기.정강이 걷어차인 동기는 정강이가 아예 시커멓게 먹장이 되고. 한 동기는 머리통에 직경5센티정도의 땜빵?이 생겼더군요...매일 점호시간의 얼차려. 점호외 따로 소대별 얼차려..그리고 개별적 얼차려..불침번..외관근무..위병근무등 하루 수면시간 4시간여...
일병 3호봉정도까지 내무반 출입시 무조건 경례와 함께 보고하기..수시로 이등병위생상태 점검하여 바로 위 선임 교육시키기...매일 점호착안의 내용 숙지하여 통일시키기.. (오늘의 점호착안사항은 흰색팬티통일..영어구절암기..방독면수입상태등..)
참고로 저는 일병때 낫으로 병장에 구타당하다가 살짝 비껴맞아 7센티정도만 찢어졌습니다 그 구타의 이유는 진지보수 작업 중 그 문제의 병장이 저보고 (저는 당시 일병) 수통에 물을 떠오라고 지시했었는데..수통에 물을 받아 오던 중 제 바로 위 선임이(그 선임은 상병) 물을 조금 달라하여 드렸습니다. 그 상황에 안줄수 있었겠습니까? 그 광경을 멀리서 유심히 바라보던 그 병장이 저 보고 "왜 내가 물을 떠오라 한건데..재 먼저 왜 주냐? 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낫으로 (날선 방향은 아닌 등 부분) 절 내리찍더군요... 그런데.갑자기 전투모 안에서 뜨금한것이 느껴지더니.. 붉은 피가 손구쳐 전투모안부터 아래까지 흠뻑젖는 것이었습니다..그때 까지 일년여 그 선임에 괴롭힘 당하면서 잘 참았었는데..전 갑자기 이성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라고 되뇌이며 옆에 있던 공병삽에 손을 가져가면서 그래 여기서 너 죽이고 인생끝내자 라고 생각한 순간 그 병장이 내가 피흘리면서 이성을 잃으려하는 모습을 보자. 황급히 절 데리고 교통호 안으로 들어가더니 지금 기억은 아니않지만.뭐라고 말을 하면서 의무병을 데려오더군요....그러나 의무병이 얼마나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그냥 소독과 빨간약,그리고 거즈) 분대장이 부대복귀 행군 중 제 머리의 땜질(흰색거즈)를 보고 김일병 어떻해 된거야?라고 물으시더군요...하지만 전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이미 당시에도 구타금지란 것이 있었고 많은 병사들이 영창을 가고 포승줄에 묶여 헌병대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에..그리고 그 병장이 전역 한달 밖에 안남았었고. 이만한 일로 고자질한다 는 것은 당시엔 말도 안되는 일이었기에 묻어두었지만..분대장은 제가 누구에게 어떻해 당한것인지 짐작하고 분개였습니다. 그 역시 상병시절 그 병장에 심한괴롭힘을 당하였고, 하교대 수료후 일반하사가되어 분대장이되어 그런일은 사라졌지만..
부대복귀후 내무반에서 세면하러가는 그 병장에 다른 소대원들이 있었음에도 큰소리로 너 이병장 그런식으로 하면 죽여버린다라고 그 자리에서 까버리더군요..당시엔 하사와 병장간 사이가 안좋았고, 특히 병들은 병장들만 챙겨주고 하는 그런 식이었기에, 다소 의외였지만 그 병장의 어이없단 반응과 바로 고개숙이던 모습이 생생하군요.
그 병장의 입장에선 하교대입교 직전까지 선임이던 병장들은 이병장님하고 존칭의 예우를 하던 관례상 그 사건은 매우 참혹한것이었고...전역할 때 끈끈한 모포말이 도 안해준 불쌍한 병장이었지만..
전역 후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만일 그때 내가 공병삽으로 그 병장에 위해를 가했다면 나이40의 지금 내모습은 어떠했을까? 구타당하고 구타한거 자랑스런 그런일 절대아닙니다. 당시에도 이미 구타는 사라져가고 있었고, 예비사단 보병 특성상 훈련이 많아 선임후임 가리지 않고 돌아가면서 기관총메고 박격포 메는 전우애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대 괴리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그것은 예전엔 고문관이라서 맞고 그런것은 절대아닙니다..고문관을 둔 선임이 좀 어려운거죠 ^^ 서울대 나오건 고교졸업자이던 어리버리하면 다 고문관인것이죠..내가 아무리 군생활 잘해도 구타당하고 얼차려 받는 것이 군대이며. 후임이 잘하게끔 만들어 주는 자가 진정한 선임이고 군생활 잘하는 것이란점 이해해주십시오. 후임이 못해도 내가 문책당하는 곳이 국군이란 점..다른 군대완 다른점 아니겠습니까? 무사히 전역하는 것과 이탈하여 인생의 낙오자되거나 목숨을 버리는 것은 모포한장 차이도 안됩니다.후배님들.. 분명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처한환경에서 바라보면 다 힘들고 외로운 생활임에는틀림없습니다. 당시 3년이라는 군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2년. 무려 1년이나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군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나 앞으로 하셔야될 많은 후배님들..군대라는 곳은 정말 남자의 마지막 휴식처입니다. 인생에서의 두번째 꿈을 다짐하는 곳입니다. 인생에서 단 한번뿐인 경험에서 멋진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생활을 하는 젊은후배들을 바라보면서
그 당시 구타라함은 야삽으로 머리치기,보초근무시 암기사항 교육시키고 얼차려주기.정강이 걷어차인 동기는 정강이가 아예 시커멓게 먹장이 되고. 한 동기는 머리통에 직경5센티정도의 땜빵?이 생겼더군요...매일 점호시간의 얼차려. 점호외 따로 소대별 얼차려..그리고 개별적 얼차려..불침번..외관근무..위병근무등 하루 수면시간 4시간여...
일병 3호봉정도까지 내무반 출입시 무조건 경례와 함께 보고하기..수시로 이등병위생상태 점검하여 바로 위 선임 교육시키기...매일 점호착안의 내용 숙지하여 통일시키기..
(오늘의 점호착안사항은 흰색팬티통일..영어구절암기..방독면수입상태등..)
참고로 저는 일병때 낫으로 병장에 구타당하다가 살짝 비껴맞아 7센티정도만 찢어졌습니다
그 구타의 이유는 진지보수 작업 중 그 문제의 병장이 저보고 (저는 당시 일병) 수통에 물을 떠오라고 지시했었는데..수통에 물을 받아 오던 중 제 바로 위 선임이(그 선임은 상병) 물을 조금 달라하여 드렸습니다. 그 상황에 안줄수 있었겠습니까?
그 광경을 멀리서 유심히 바라보던 그 병장이 저 보고 "왜 내가 물을 떠오라 한건데..재 먼저 왜 주냐? 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낫으로 (날선 방향은 아닌 등 부분) 절 내리찍더군요...
그런데.갑자기 전투모 안에서 뜨금한것이 느껴지더니.. 붉은 피가 손구쳐 전투모안부터 아래까지 흠뻑젖는 것이었습니다..그때 까지 일년여 그 선임에 괴롭힘 당하면서 잘 참았었는데..전 갑자기 이성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라고 되뇌이며 옆에 있던 공병삽에 손을 가져가면서 그래 여기서 너 죽이고 인생끝내자 라고 생각한 순간 그 병장이 내가 피흘리면서 이성을 잃으려하는 모습을 보자.
황급히 절 데리고 교통호 안으로 들어가더니 지금 기억은 아니않지만.뭐라고 말을 하면서 의무병을 데려오더군요....그러나 의무병이 얼마나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그냥 소독과 빨간약,그리고 거즈)
분대장이 부대복귀 행군 중 제 머리의 땜질(흰색거즈)를 보고 김일병 어떻해 된거야?라고 물으시더군요...하지만 전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이미 당시에도 구타금지란 것이 있었고 많은 병사들이 영창을 가고 포승줄에 묶여 헌병대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에..그리고 그 병장이 전역 한달 밖에 안남았었고. 이만한 일로 고자질한다 는 것은 당시엔 말도 안되는 일이었기에 묻어두었지만..분대장은 제가 누구에게 어떻해 당한것인지 짐작하고 분개였습니다. 그 역시 상병시절 그 병장에 심한괴롭힘을 당하였고,
하교대 수료후 일반하사가되어 분대장이되어 그런일은 사라졌지만..
부대복귀후 내무반에서 세면하러가는 그 병장에 다른 소대원들이 있었음에도 큰소리로
너 이병장 그런식으로 하면 죽여버린다라고 그 자리에서 까버리더군요..당시엔 하사와 병장간 사이가 안좋았고, 특히 병들은 병장들만 챙겨주고 하는 그런 식이었기에, 다소 의외였지만 그 병장의 어이없단 반응과 바로 고개숙이던 모습이 생생하군요.
그 병장의 입장에선 하교대입교 직전까지 선임이던 병장들은 이병장님하고 존칭의 예우를 하던 관례상 그 사건은 매우 참혹한것이었고...전역할 때 끈끈한 모포말이 도 안해준 불쌍한 병장이었지만..
전역 후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만일 그때 내가 공병삽으로 그 병장에 위해를 가했다면 나이40의 지금 내모습은 어떠했을까? 구타당하고 구타한거 자랑스런 그런일 절대아닙니다.
당시에도 이미 구타는 사라져가고 있었고, 예비사단 보병 특성상 훈련이 많아 선임후임 가리지 않고 돌아가면서 기관총메고 박격포 메는 전우애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대 괴리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그것은 예전엔 고문관이라서 맞고 그런것은 절대아닙니다..고문관을 둔 선임이 좀 어려운거죠 ^^
서울대 나오건 고교졸업자이던 어리버리하면 다 고문관인것이죠..내가 아무리 군생활 잘해도 구타당하고
얼차려 받는 것이 군대이며. 후임이 잘하게끔 만들어 주는 자가 진정한 선임이고 군생활 잘하는 것이란점 이해해주십시오. 후임이 못해도 내가 문책당하는 곳이 국군이란 점..다른 군대완 다른점 아니겠습니까?
무사히 전역하는 것과 이탈하여 인생의 낙오자되거나 목숨을 버리는 것은
모포한장 차이도 안됩니다.후배님들.. 분명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처한환경에서 바라보면 다 힘들고 외로운 생활임에는틀림없습니다. 당시 3년이라는 군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2년. 무려 1년이나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군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나 앞으로 하셔야될 많은 후배님들..군대라는 곳은 정말 남자의 마지막 휴식처입니다. 인생에서의 두번째 꿈을 다짐하는 곳입니다. 인생에서 단 한번뿐인 경험에서 멋진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