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눈이 없는데 귀가 있더라고요

이소영200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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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눈이 없는데 귀가 있더라고요

 

선천성 시각장애, 어린 장애 딸 둘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간 아빠,

대입 실패와 방황, 엄마의 사업실패, 전 가족 자살기도.
는 그 절망의 끝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합창지휘과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은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이소영이 부르는 ‘희망찬가’이다.
부제는‘희망을 치는 절대음감 피아니스트’. 그녀는 한번 들은 곡을 그 자리에서 바로 연주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까지 음으로 느끼는 절대음감(絶對音感)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는 스물여섯, 그녀가 장애와 좌절을 극복하고

희망과 행복을 찾아가는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삶의 궤적을 담고 있다.

결코 순탄하지 않은 삶, 누구나 가기 어려운 길, 그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이다.

그리고 희망을 찾기까지는 힘이 들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선천성백내장, 소안구증, 사시를 가지고 태어난 그녀는 생후 6개월 때 첫전신마취 수술을 받고

두꺼운 안경을 써야 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넘어지는 것은 그래도 나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를 쳐다보다가 “왜 째려보느냐”는 말을 듣고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그녀는 사시라는 걸 몰랐다.
그 이후로 그녀는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했다.

그만큼 세상을 보는 가시거리가 짧아졌다. 그래서 늘 외로웠다.

친구들에 대한 목마름이 가슴 한편에 남았다.

소안구증이라서 사시 교정수술마저 불가능해 평생 사시로 살아야 할 운명이다.

그녀에게는 눈 대신 귀가 있었고, 모든 것을 받아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아빠가 다섯 살 때 사준 피아노였다. 속상하고 화날 때, 힘들고 외로울 때면

더 열심히 건반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피아노 학원을 끊고 ‘음악독립’을 선언했다.

눈이 나빠 진도를 맞출 수 없는 데다 차근차근 순서대로 진도를 나가는 게

체질상 맞지 않았기 때문. 4학년 때부터 홀로 작곡을 시작했다.
그리고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화성학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천예고 작곡과에 입학했다.

음악성만으로 합격한 것이었다.

집안 사정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엄마가 하던 사업이 완전히 망했다.

대학입시에서 실패한 그녀는 패배감에 방황하면서 엄마와 심한 갈등을 겪었다.

지체장애 언니도 봉제공장에 다니기를 힘들어했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일가족 동반자살을 선택했다.
엄마는 장애아 딸 둘을 남겨두고 갈 수가 없다면서 살충제 뚜껑을 열었다.

온 세상이 정지된 느낌.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엄마 안 죽으면 안돼?” 세 여자가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했다. 줄기살기로 공부해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합창지휘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3년 전 마셨던 첫 고배에 대한 멋진 복수였다.

그리고 2006년 성악과로 전과해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수석합격의 기쁨을 누리던 해, 녹내장으로 오른쪽 눈은 실명 판정을 받았다.

왼쪽 눈은 가까이 있는 사물만 구별할 정도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시한폭탄’ 왼쪽 눈의 시력이 차츰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그래요. 눈이 없는데 귀가 있는 것, 그게 제 희망이에요.”라고.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삶을 긍정한다. 자기긍정이다.

또 말한다. “희망은 없어서가 아니라 찾지 않아서 없다”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희망은 기적을 낳는다”고.

그녀는 대외활동에서 피아노 뒤로 치기의 묘기를 선보인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그녀가 개발한 특별 메뉴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갚을 수 있는 축복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는 쉽게 생각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는 우리들에게

스스로를 긍정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속삭인다.

가족이 뭔지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청량음료이기도 하다.


추천평

“역경을 이겨낸 그녀가 자랑스럽다. 희망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찾지 않아서 없다는

그녀의 한마디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 소프라노 신영옥

“많은 사람들이 자진의 불운과 불행을 환경 탓으로 돌린다.

이소영 양의 삶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긍정의 힘을 일깨워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 강남구청장 맹정주

“대학낙방, 가출, 온 가족 자살시도. 그리고 죽을 각오로 다시 공부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수석합격한 이소영은 희망을 치는 피아니스트이다.”
- 조선일보

 

 

작가 소개

저자 | 이 소 영

 

982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에 재학 중이다.

선천성백내장, 소안구증, 사시를 가지고 태어나 생후 6개월부터 3살 때까지

3번의 전신마취 눈 수술을 받았다. 9살 때 마지막 네 번째 수술을 받았다.

가까이 있는 사물만 구분할 수 있는 약시였으나 그나마 오른쪽 눈은 녹내장으로 2005년 실명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대신 어릴 때부터 소리에 민감했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끼고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배웠고 4학년 때는 작곡을 시작했다.

예술성만으로 인천예고 음악과에 진학했다.
원하던 대학에 낙방하고 신학대 교회음악과를 다니다 휴학한 이후 방황했고,

엄마와는 심한 갈등을 겪었다.

아빠의 죽음으로 지체장애를 가진 언니까지 두 장애아 딸을 키워야 했던 엄마가

사업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세 모녀는 동반자살 직전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죽을 수도 있었지만 인생이 아까워 “엄마, 우리 안 죽으면 안 돼”라고 말했고,

이 말에 세 여자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리고 새 출발을 해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합창지휘과 수석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2006년 성악과로 전과했고 각종 사회활동에 나서 트레이드마크인 절대음감과

피아노 뒤로 치기를 선보이고 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찾은 그는 “희망은 없어서가 아니라 찾지 않아서 없다”고 단언한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 용기도 있어야 한다면서 희망은 내 자신 안에 있다고 한다.

 

 

 

목차

 

1.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보다
내 눈은 삶의 시한폭탄
절대음감과 피아노 뒤로 치기
우리 엄마 고경애

2. 나 자신으로 살아남기
눈을 가려도 갑갑하지 않은 아이
소리와 나 사이의 알 수 없는 끈
내 인생을 바꾼 중고 피아노
장애 딸 둘 남기고 하늘나라로 간 아빠
이제부터 선생님은 너 자신이다
어린 가슴에 입은 첫 상처
보이지 않으면 외워라

3. 꿈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마라
꿈속에서 작곡을 하다
최고가 아니면 최선을 다한다
음악성만으로 인천예고에 합격하다
첫 발표회,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네
엄마, 나는 새는 바가지가 아니에요
나는 왕따가 되기 싫더라

4.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대학입시에서 쓴잔을 마시다
적성이 맞지 않아 신학대학을 쉬다
소중한 것들은 가까이 있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그리고 방황
죽을 수도 있었지만 아까웠던 인생
희망은 찾지 않기 때문에 없어 보이는 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수석합격

5.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다
개성이 모이고 부딪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내 생애 가장 슬펐던 날
‘피아노 천재’가 되어 TV에 나오다
신데렐라는 너무 즐거워
잘 가라 내 피아노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대요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나다

6.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기
희망은 기적을 낳는 법이다
"눈이 없는데 귀가 있더라고요"
가장 바쁘고 신났던 겨울방학
예술의 전당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
나는 아직도 꿈꾸는 신데렐라
거저 오는 행복은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족

에필로그 - 산다는 것은 사랑이다
부록 - 같이 부르고 싶은 노래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