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 토론 출연을 성원해주신 방문객 여러분께

최재천200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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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분 토론 출연을 성원해주신 방문객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죠?

제 탓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잔뜩 기대했던 여러분께 실망감을 안겨 드린 데 대해

저라도 사과를 해야할 것 같아서요.

 

100분 토론 출연을 성원해주신 방문객 여러분께


저에게는 손석희 교수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도리어 제가 위로해드린답시고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여러분께서 느낀 허탈감만큼이나 손 교수님의 충격도 컸겠지요.


누구나 짐작하다시피 보통 TV토론 시청률은 3% 내외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선거철이 되거나 특정 이슈가 있으면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번 MBC 100분 토론이 엄청난 시청률을 올렸습니다.

최근 이 삼 년 들어 가장 높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도 고마운 심정이었고,

MBC도 대단히 고무돼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100분 토론을 앞둔 반응이 강렬해서

MBC 측도, 함께 준비한 저와 박영선 의원도 재밌는 토론,

비로소 BBK에 대한 진실을 알려드릴 수 있게 됐다는

설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탈해지고 말았죠.


이런저런 감상에 앞서

먼저 지난번 100분 토론

그리고 연이은 KBS 심야토론에 보여주신 정성과 질책에 대해서

이제라도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저로서야 늘 반성과 회한이 많지요.

100분 토론에서는 버릇대로 때론 지나치게 격앙되거나

지나치게 빠르게 말하는 고질을 고치지 못하고

똑같은 병폐를 거듭한 잘못이 있습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정교했어야 했고,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된 말을 했어야만 했죠.

제 개인의 문제를 둘러싼 토론이 아니잖아요?

천성이 조급한 성격이라 말도 빠르고 불안정하고,

거기다 긴장하면 행동까지 빨라지는 못된 버릇이

토론에서 여실히 드러났을 겁니다.


KBS 심야토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야 말로 좀 더 공격적으로 갔어야 하는데

다섯 명 토론이다 보니 불필요한 예의를 지키느라

제 몫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레 짐작으로 제 스스로 시간배분을 해버린 셈이죠.

거기다 저랑 개인적으로 가깝고

후배뻘 되는 두 대변인이 있어 자중해야 했고요.

나경원 대변인이 토론 때마다 반복하는 김대업 변호사라는 말에

흥분되어 그 부분에 대한 진실을 말하느라

토론의 흐름을 놓아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여전히 말은 빨랐고

이십 년간 법률사무에 종사한 버릇을 숨기지 못하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사법개혁에 앞장서 온 저로서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틈만 나면 단순한 일본식 법률용어가 아니라,

한문식 법률용어가 아니라,

단순히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그런 법령 한글화 작업이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는 저입니다만,

저도 모르게 한자와 일본식 어투로 된 법률용어를

틈만 나면 입에 올립니다.

이명박 후보가 아무리 경제를 얘기해도

결국 삽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요?

또 제가 꼭 반박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갑자기 착한 학생처럼

그저 사회자가 정해주는 제 발언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만 했거든요.

물론 억울한 점도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수차례 발언신청을 했는데 배제되다 보니

나중에는 안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토론 끝나면 반응을 물어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기갱생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지요.

두려움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끄럼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의 치부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왜 그렇게 두려운 지 모르겠습니다.

직시에 능하지 못합니다.

예전에 강의할 때도 제 강의를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면

움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작은 아버지)께서

제 강의 테이프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 시골집에 가져다 드렸더니 들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저렇게 내 목소리가 좋지 않구나,

저렇게 말을 못 하나 하면서 꺼 달라고 부탁한 드린 적도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겐 토론 후 모니터하는 일이 중요한 일과임에도

저는 그저 회피합니다.

남들에게 잘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저 같은 초년 정치인에게 격렬한 반응을 보일 리도 없잖아요,

라고 생각하며 넘어갑니다.

그래서 잘했는지도 모르고 못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넘어갑니다.

그러다보니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런 장점이 있고 이런 단점이 있지만

교정되지 않은 채 그냥 흘러가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번 100분 토론 이후 제 홈피나 싸이가 뜨거워졌습니다.

솔직히 고마웠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중압감이 KBS 심야토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혼자 자문해보기도 했습니다.

100분 토론에서의 지나친 공격성에 대한 반작용이

심야토론에서 지나친 방어본능으로 이어졌을 거라는

자평도 가져봅니다.

 

원래 오늘 하기로 한 100분 토론에 대한 기대로

싸이와 홈피 게시판에

여러분의 의견이 모이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단 한 분이라도 의견을 주시거나 격려를 주신다면

참으로 고마운 일일 텐데

수많은 분이 대단히 구체적으로 논리와 전술을 지도해주셔서

더더욱 기뻤습니다.

저도 정치인인지라 열정과 흥이 샘솟았습니다.

‘그래 한번 잘 해보자,’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할 생각으로

아침회의도 거르고 늦잠까지 잤습니다.

의도된 늦잠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늦게 자고 좀 늦게 일어나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야 컨디션이 조정된다고 생각하고

어젯밤에도 좀 늦게 자고 아침에도 7시에야 눈을 떴습니다.

몸이 한결 가벼운 느낌이었고

덩달아 머리도 개운한 느낌이었습니다.

보좌관들을 재촉해서 준비를 시키고

저도 3시부터 TV토론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열심히 읽고 메모하고 있는데 갑자기 취소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허탈했습니다.

 

싸이와 홈피 게시판의 조언들을

모두 출력해서 메모까지 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거기에 적힌 공격과 방어의 방법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었고,

최종 발언까지도 이곳에 있는 메시지를

요약하는 형식으로 준비했었습니다.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공박하기 위해

중학교 2학년 교과서까지 구입해서 체크해뒀고,

1999년에 이 후보가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신문을 복사하기로 하고

국회도서관에 비서관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멋진 토론을 하고 박영선 의원의 남편 되시는

이원조 변호사님과 소주 한 잔 하자고

박영선 의원을 통해 약속까지 해 뒀습니다.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준비해서 여러분께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난 여름 미 국무성 초청 리더십 프로그램에 다녀왔었잖아요?

저 혼자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이번 대선에서도 어차피 TV토론이 많을 거다.

그렇게 되면 저도 나갈 기회가 있을 거라 지레 짐작하고

그 때 필요한 넥타이를 빨간색으로만 여섯 개나 구입해 왔습니다.

최근 삼 주 사이에 불교 TV, SBS, KBS, MBC, 다시 KBS 순으로

토론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모두가 대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구입해 둔 빨간색 넥타이 다섯 개를

순차적으로 사용하고 마지막 하나가 남아있었습니다.

이 넥타이를 오늘 ‘백토’에 쓰려고 아침에 챙겨왔죠.

그런데 그만 ‘헛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100분 토론 출연을 성원해주신 방문객 여러분께

 

세상에나, 100분 토론이 오 년 만에 광고가 다 팔렸답니다.

이걸 ‘완판’이라 부른다네요?

방송국 용어인데요, 광고 완전판매라는 말이랍니다.

얼마나 방송국도 기대가 컸겠습니까.

시청자들께서 그럴 정도로 기대가 컸단 말 아니겠습니까?

시청률은 광고주들이 가장 잘 예측하잖아요.

그 예측대로라면 저도 한껏 제 이미지를 팔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한편으론 시원섭섭한 느낌도 듭니다.

잘하려고 노력은 했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위안이 되기도 하고

갑자기 남아버린 시간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여하튼 그렇습니다.

 

넋두리를 하다 보니 잊어버렸네요.

제가 이 글을 왜 쓰고 있는지를 말이에요.

원래 이 글을 쓰려 했던 의도는

첫째는 이번 토론에 임하는 자세와 논리와 공격, 방어 방법을

가르쳐 주신 여러분에 대한 눈물겨운 고마움 때문입니다.

도대체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는 거고

제가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지도와 격려를 주시는 건지,

놀라운 일이잖아요?

한편으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정치인이 지극히 냉정하고 이기적인 존재입니다만

이런 뜨거운 관심 앞에서 저 또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맙다는 말씀을

어떤 식으로든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머리를 꾸벅 숙입니다.

그리고 결방됐지만

굳이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더 한 애정을 희망합니다.

TV토론은 또 있을 수 있겠죠.

 

둘째는 지난번 토론에 대한 관심에 대해

늦더라도 고맙다는 말씀을 정식으로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민논객들을 비롯해서

에 글을 올리신 수많은 분들,

또 심야토론에 대한 애정 어린 질정과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지요.

아무리 소통이 힘든 현실이지만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정중한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늦은 데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지금의 현실은 결코 녹녹치 않습니다.

선거는 후보와 대변인이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시대가 변해서 후보와 기획통과 TV토론통과 메시지통과 정책통과

대변인 등이 주요한 역할을 분담합니다만,

그래도 대변인이 간판으로서의 성격이 있어

과장되게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제가 대변인을 맡게 됐다고 말씀드렸을 때

딱 한 말씀으로, “실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서운 말씀이죠.

제가 정치평론 식의 말투를 좋아하는데,

아예 말 자체를 줄이고 있습니다.

정확치 않은 사실은 솔직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기고 싶어서입니다.

제대로 하고 싶어서입니다.


선거에서 이긴 대변인이 되고 싶다는 소신과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겁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소에 강조하는 사회경제적 기본권 강화를 위해

정말 노력하고 싶습니다.

정말 일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런 쪽으로 확실하게 정책을 제안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변치 않는 일관성으로 일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제안과 질책과 관심과 지도, 우정은 천둥소리입니다.

잠자고 있는 대지를 일깨우는 천둥소리요, 그

 천둥은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논밭에 비를 알리는 예고편입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살겠습니다.

 

 

2007년 11월 22일

국회의원 최재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