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레이디’ 경쟁도 뜨겁다

서정웅200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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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후보의 부인은 ‘제2의 후보’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처럼 부인을 보면 후보를 알 수 있다. 동시에 부인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선거운동원, 정치적 조언자이기도 하다.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퍼스트 레이디’라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며 간접적으로 국정운영에도 참여한다. 예비 대통령 부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이유다.

◆정동영 부인 민혜경씨, ‘현모양처’서 든든한 우군으로

‘퍼스트 레이디’ 경쟁도 뜨겁다‘욱진·현중이 엄마, 정동영 후보의 아내, 가족이 행복한 시대를 살고 싶어하는 개나리 아줌마입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부인 민혜경씨는 미니홈피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예전엔 행사장에서 마이크를 잡아도 ‘누구 안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지만 남편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에는 발벗고 현장을 다니는 ‘활동가’로 변신했다.

정후보를 대신해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방송 출연도 잦아졌다. 특히 신경 쓰는 곳은 불교계와 사회복지시설이다. 하루 3~4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매일 아침 성당을 찾아 새벽기도를 빠뜨리지 않는다. 민씨는 “13대 종손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마이크 잡고 얘기하라고 하면 어색하다”며 “모두들 후보를 위해 애쓰니까 부족한 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현안에는 관여하지 않는 편이지만 지난 4월 정후보가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적 결별 회동을 한 후 ‘대통령과 잘 풀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조언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부부동반 만찬자리에 가던 중 교통체증이 심하자 택배 오토바이를 얻어타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형편이 어려웠던 정후보와 결혼해 피아노 학원을 꾸려가며 시어머니와 시동생 3명을 부양한 면모는 정후보의 슬로건인 ‘가족행복시대’와도 닿아 있다. 선대위에서도 온화한 이미지의 민씨를 선거운동에 적극 활용 중이다.

〈이주영기자〉

◆이명박 부인 김윤옥씨, 쓴소리 내조…‘사모님’ 면모도

‘퍼스트 레이디’ 경쟁도 뜨겁다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60)는 27일 서울 옥수동 재활복지센터에서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고 인근의 금남시장을 찾았다. 한 상인이 이후보가 시장 나왔을 때도 찍었다고 하자 “이번에는 2번이에요”라며 바뀐 기호를 홍보했다.

김씨는 최고의 내조자이자 유일하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정치적 조언자다. 이후보에게 ‘Mrs. 쓴소리’ ‘집안 내 야당’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다. 둥글고 낙천적인 성격은 날카로운 이후보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후보에게 사람들과 악수하면서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버릇을 고치라고 지적하는 등 세세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이후보가 서울시장 시절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소문에 “여기 데려와라. 바쁜데 일 좀 시키게”라고 답한 것은 일례다.

공무원 집안 출신인 김씨는 이후보가 나온 고등학교의 은사 소개로 이후보를 만났다. 김씨의 큰 오빠가 이 은사의 친구였다. 당시 김씨의 부모님은 검사 사위를 선호했지만 큰오빠가 자수성가한 이후보를 강력 지원했다. 이후보가 서른 다섯에 현대건설 사장이 된 탓에 말도 많았다고 한다. 김씨가 딸들을 데리고 시장에 다녀오면 “현대건설 사장이 ‘세컨드’랑 산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사장 부인치고는 너무 젊어 벌어진 해프닝이다.

물론 일찍부터 최고경영자(CEO) 사모님으로 지낸 탓에 서민적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녀 위장전입이나 1000만원이 넘는 고급 핸드백 사건 등이 그것이다.

〈박영환기자〉

◆이회창 부인 한인옥씨, 이번엔 한발 뒤로…산사 기도

‘퍼스트 레이디’ 경쟁도 뜨겁다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69)는 요즘 절에서 산다. 27일엔 화계사 숭산스님 3주기 추모 다례제에 참석했고, 28일엔 경남 남해 보리암과 전남 구례·여수의 사찰을 찾았다. 보리암 큰 스님으로부턴 “민심은 다 돼 있으니 걱정 말고 정성껏 기도나 하시라”는 덕담도 들었다.

주변에선 한씨를 ‘그림자’라고 한다. 대법관(한성수 대법관)의 딸로 경기여고·서울대를 나온 재원이지만 교사자격증까지 포기하고 한 사람의 아내로만 살아온 삶 때문이다. 공직자 남편을 둔 덕분에 30년 넘게 “친구들 만나는 것도 조심했다”고 한다.

그림자를 벗어난 적도 있다. “처음에 너무 생소하고 적응이 힘들었다”는 고백대로 1997년 대선후보의 아내로서였다. 당시 ‘남편보다 경쟁력 있는 부인’이란 평도 들었다. 하지만 5년 뒤 모든 게 달라졌다. 2002년 10월 “하늘이 두 쪽 나도 대선을 이겨야 한다”는 발언은 권력욕으로 비쳤고, 병풍의혹 등 검증에 시달리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한 여론조사는 ‘남편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것 같은 부인’ 1위로 그를 꼽았다.

다시 5년 후 이후보가 ‘홀로서기’에 나선 요즘 그는 ‘존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주로 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한씨는 1997년 대선때 당 홍보물에 실린 ‘파계승 탈’ 사건으로 불교계가 격노하고, 이후보가 해인사를 찾아 문전박대를 당하자 대신 절을 찾았다가 불교와 연을 맺었다. 이젠 스님들이 한씨에게 전화를 걸어올 정도다.

〈김광호기자〉

◆권영길 부인 강지연씨, 부창부수 열성당원 “난 옆지기”

‘퍼스트 레이디’ 경쟁도 뜨겁다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부인 강지연씨는 당내에서 ‘여사님’보다는 ‘당원’으로 통한다. 누구보다 당의 일에 더 열심히 나서는 민노당 지킴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강씨도 “‘후보 부인’이나 ‘내조자’라는 말보다 함께 하는 동반자라는 의미의 ‘옆지기’라는 말을 선호한다”고 했다. 권후보에게도 ‘남편’이나 ‘아빠’ 대신 ‘우리 후보’라는 호칭을 쓴다.

동방생명 창업주인 강의수씨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이화여고,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부잣집 규수였던 강씨는 권후보를 만나고 나서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이후 강씨는 육아, 아동, 여성 복지 문제 등에선 권후보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운동가가 됐다. 권후보가 지난 18일 대통령 후보 부인 토론회를 제안한 것도 강씨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강씨는 요즘 100만 민중대회에 참여했다 구속된 한 당원의 세탁소 일을 도와주거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나 영세 사업자들과의 간담회에 참여하는 게 주요 일과다. 산후조리원을 방문하거나 여대생과 간담회를 여는 등 여성정책과 관련된 일정도 구상 중이다.

〈이지선기자〉

◆이인제 부인 김은숙씨, 정치참모 자처 ‘나선다’ 눈총도

‘퍼스트 레이디’ 경쟁도 뜨겁다민주당 이인제 후보의 부인 김은숙씨(58)는 내조 차원을 넘어 이후보의 정치적 동지이자 참모 역할을 한다. 경기도지사 시절엔 ‘경기도의 힐러리’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대외 활동에 적극적이다. 이후보가 정치적 결단을 할 때마다 김씨의 조언이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다는 말도 있다. 때문에 “너무 나선다”는 부정적 평가도 나온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논산 중학생연합시화전에서 이후보와 만났다. 이후보는 경복고, 이씨는 대전여고로 각각 진학했지만 편지를 나누며 만남을 지속했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려던 이후보가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도록 조언한 것도 김씨다. 이후보는 징집영장이 나오자 결혼했다.

공주교대 졸업 후 3년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한 뒤엔 이후보 뒷바라지만 했다.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던 이후보는 김씨에게 “당신 없는 삶이란 상상도 할 수 없다”라는 옥중편지를 쓸 정도였다. 결국 이후보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김씨는 “그때 너무 힘들었다. 낮은 곳이 어디인가를 배운 소중한 기회였다”고 술회하곤 한다.

〈이용욱기자〉

◆문국현 부인 박수애, 출마 만류 접고 소리없는 내조

‘퍼스트 레이디’ 경쟁도 뜨겁다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부인 박수애씨는 문후보 출마를 반대했다. 박씨는 “좋은 직장, 보장된 삶을 마다하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하니까 여러 가지가 걱정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8월 문후보와 한밤중 출마를 두고 논의하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내가 나서야 한다”는 말에 결국 설득, 적극적인 내조에 들어갔다.

박씨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공식·비공식 자리에서도 항상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있다. 강단도 있다. 지난 22일 대전 시민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자녀의 위장 취업과 관련, “아빠(문후보)가 우리집 아이들에게 추천서를 써주지도 않았고 아이들이 원서를 쓸 때도 아빠 직업을 회사원이라고 하지 사장이라고 절대 쓰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문후보 출마 이후 처음으로 ‘가사 도우미’를 고용했다고 한다. 자녀들도 도우미의 식사 시간에 맞춰 갈 정도로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재산 관리를 맡았던 박씨는 펀드 매니저의 권고에 따라 혼수 자금 마련을 위해 수억원대의 주식·예금을 자녀 명의로 예치하는 바람에, ‘비정규직 두 딸 수억원대 재산’ 파문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