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던트에 장식되어 있는 45.52캐럿짜리 '호프 다이아몬드'는 한때 루이 14세가 소유하였으며 공식적으로 '왕관의 푸른 다이아몬드'라고 불렀다. 이 다이아몬드는 소유자가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어느 소유자는 낙마하여 죽었다고 한다. 1830년 은행가 호프가 이를 구입하여 그의 이름을 따르게 되었다. 호프가 사람들은 모두 빈곤으로 사망했으며 그 이후의 소유자인 맥린에게도 유사한 불운이 뒤따랐다. 1947년에 워싱턴의 보석상 윈스턴이 구입하여 10년 정도 소장하다가 1958년 스미소니안 박물관에 기증하여 일반인에게 전시되고 있다.
BLUE HOPE * 블루 호프 (112 캐럿)
주인을 해치는 호프다이아몬드
옛날 인도의 황무지를 경작하던 농부의 호미 끝에 별안간 청색의 투명한 돌이 부닥쳤다. 이 돌은 채광 후 인도를 침입해 들어온 페르시아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것을 빼앗은 총독은 이 청색의 돌을 왕에게 헌납하였다. 그 뒤 그 총독은 도둑들에 의해서 살해되었고 왕도 반란군에 의해서 처형됨으로써 불길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들어와 이 청색의 다이아몬드는 인도에서 프랑스의 보석상인 타베르니에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타베르니에는 파리의 왕실로 들어가 "이것이야말로 제왕을 위한 다이아몬드입니다."는 말과 함께 '태양의 왕'인 루이 14세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팔았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왕은 그에게 남작 지위를 내렸다. 그러나 저주는 계속되었다. 타베르니에는 러시아 여행중 이리에게 잡혀 먹혔고 루이14세는 천연두에 걸려 운명을 달리했다. 이 다이아몬드를 이어받은 루이 16세도 역시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후 이 불길한 청색 다이아몬드의 행방이 묘연해 지자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1830년 한 경매장에 이 보석이 나타났다. 한 눈에 반해버린 은행가 헨리 필립 호프가 9만 달러에 사들여 '호프 다이아몬드'라고 명명했다. 당시 호프가(家)는 대부호로써 영국의 명문이었는데 이 돌을 수중에 넣은 후부터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주인은 경마하다 떨어져 사망했고 부인이 정부와 놀아나는 사이에 1900년 은행도 파산했다. 그 후에 호프다이아몬드는 뉴욕의 거래상, 터키의 외교관, 프랑스의 다이아몬드 전문가 등을 거쳐 워싱턴의 유명인사인 맥린부인이 1911년에 구입하였다. 구입 후에 9살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남편은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렸으며 이혼 후 정신병으로 죽었다. 이 같은 불행한 연속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맥린부인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중 상이 병사의 병원을 위문하면서 남은 여생을 자선활동에 쏟았으며 1947년 생을 마쳤다고 한다. 사망한지 2년 후 해리 윈스턴은 그 호프를 사서 자선 모금 운동에 들어갔고 1958년 10월 10일 그는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이 보석을 기증했다. 어떤 이들은 1958년 미국에서 일어난 재난이 바로 호프 다이아몬드 때문이라고 하여 호프 다이아몬드를 제거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호프는 45.52캐럿이고 자외선을 쪼이면 신비스럽게 청색에서 빨강색으로 변한다.
저주의 다이아몬드
저주의 다이아몬드 '호프 다이아몬드'
루이 14세의 호프 다이아몬드
팬던트에 장식되어 있는 45.52캐럿짜리 '호프 다이아몬드'는 한때 루이 14세가 소유하였으며 공식적으로 '왕관의 푸른 다이아몬드'라고 불렀다. 이 다이아몬드는 소유자가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어느 소유자는 낙마하여 죽었다고 한다. 1830년 은행가 호프가 이를 구입하여 그의 이름을 따르게 되었다. 호프가 사람들은 모두 빈곤으로 사망했으며 그 이후의 소유자인 맥린에게도 유사한 불운이 뒤따랐다. 1947년에 워싱턴의 보석상 윈스턴이 구입하여 10년 정도 소장하다가 1958년 스미소니안 박물관에 기증하여 일반인에게 전시되고 있다.
BLUE HOPE * 블루 호프 (112 캐럿)
주인을 해치는 호프다이아몬드
옛날 인도의 황무지를 경작하던 농부의 호미 끝에 별안간 청색의 투명한 돌이 부닥쳤다. 이 돌은 채광 후 인도를 침입해 들어온 페르시아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것을 빼앗은 총독은 이 청색의 돌을 왕에게 헌납하였다. 그 뒤 그 총독은 도둑들에 의해서 살해되었고 왕도 반란군에 의해서 처형됨으로써 불길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들어와 이 청색의 다이아몬드는 인도에서 프랑스의 보석상인 타베르니에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타베르니에는 파리의 왕실로 들어가 "이것이야말로 제왕을 위한 다이아몬드입니다."는 말과 함께 '태양의 왕'인 루이 14세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팔았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왕은 그에게 남작 지위를 내렸다. 그러나 저주는 계속되었다. 타베르니에는 러시아 여행중 이리에게 잡혀 먹혔고 루이14세는 천연두에 걸려 운명을 달리했다. 이 다이아몬드를 이어받은 루이 16세도 역시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후 이 불길한 청색 다이아몬드의 행방이 묘연해 지자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1830년 한 경매장에 이 보석이 나타났다. 한 눈에 반해버린 은행가 헨리 필립 호프가 9만 달러에 사들여 '호프 다이아몬드'라고 명명했다. 당시 호프가(家)는 대부호로써 영국의 명문이었는데 이 돌을 수중에 넣은 후부터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주인은 경마하다 떨어져 사망했고 부인이 정부와 놀아나는 사이에 1900년 은행도 파산했다. 그 후에 호프다이아몬드는 뉴욕의 거래상, 터키의 외교관, 프랑스의 다이아몬드 전문가 등을 거쳐 워싱턴의 유명인사인 맥린부인이 1911년에 구입하였다. 구입 후에 9살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남편은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렸으며 이혼 후 정신병으로 죽었다. 이 같은 불행한 연속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맥린부인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중 상이 병사의 병원을 위문하면서 남은 여생을 자선활동에 쏟았으며 1947년 생을 마쳤다고 한다. 사망한지 2년 후 해리 윈스턴은 그 호프를 사서 자선 모금 운동에 들어갔고 1958년 10월 10일 그는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이 보석을 기증했다. 어떤 이들은 1958년 미국에서 일어난 재난이 바로 호프 다이아몬드 때문이라고 하여 호프 다이아몬드를 제거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호프는 45.52캐럿이고 자외선을 쪼이면 신비스럽게 청색에서 빨강색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