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적 사랑은 정열이다. 첫 눈에 반한 사랑, 천생연분이라는 믿음으로 상대방에 몰입하는 것이 에로스적 사랑이다. 에로스적 사랑에 빠지면 정서적으로 너무도 강렬한 충격을 받아서 기꺼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눈에 반해 사랑을 하듯이 말이다.
루두스적 사랑은 유희다. 사랑을 즐기기 위해 특정한 상대에게 몰입하지 않는다. 최근 개봉한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주인공들처럼 문어발식 ‘크로스 연애’도 불사한다.
스토르게적 사랑은 우정과 같다. 상대방을 특별히 애타게 그리워하는 감정 없이 애인을 친구처럼 만난다.
에로스와 루두스가 합쳐지면 마니아(Mania)적 사랑이 된다. 혼합사랑은 사랑을 하면 할수록 두 사랑의 요소가 더 극적으로 혼합된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매달리는 한편, 자신의 경험 때문에 상대방도 다른 사람을 찾지 않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결국 마니아적 사랑에 빠지면 소유욕에 불타 상대방에게 의존하면서 질투하고 사랑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상대방을 묶어 놓으려 한다. 바람둥이가 한 사람에게 정착해서 오히려 매달리며 살게 되는 것도 마니아적 사랑의 특성 때문이다.
루두스적 사랑과 스토르게적 사랑이 합쳐지면 프래그마(Pragma)적 사랑이 된다. 프래그마 사랑은 논리적이고 실용적 사랑이다. 그래서 마치 물건을 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하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요건에 맞는 상대방을 고른다. 그렇게 고른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이나 헌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한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연희(엄정화 분)가 조건을 보고 남자를 고르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리저리 잰 뒤에 선택한 상대이니만큼 삶의 안정을 깨뜨린다면 사랑도 깨지기 쉽다. 반대로 상대방과 함께 살더라도 특별히 만족하지도 못한다. 상대방이 출중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요건에 그나마 맞아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조건에 맞는 다른 사람과 맺어졌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살아보면 누구나 다 똑같다’라고 말한다.
에로스와 스토르게적 사랑이 합쳐지면 아가페(Agape)적 사랑이 된다. 아가페적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헌신을 당연한 의무라 여긴다. 아가페적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고난도 두렵지 않다. 마치 순교도 불사하는 신자처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헌신을 한다고 해서 마니아적 사랑처럼 소유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상대방을 자신보다 더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나온다면 기꺼이 물러난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상대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사랑의 의무를 다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에서 십년이 지나도 서로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비슷한 예다.
사랑의 유형 에로스적 사랑은 정열이다. 첫 눈에 반
사랑의 유형
에로스적 사랑은 정열이다. 첫 눈에 반한 사랑, 천생연분이라는 믿음으로 상대방에 몰입하는 것이 에로스적 사랑이다. 에로스적 사랑에 빠지면 정서적으로 너무도 강렬한 충격을 받아서 기꺼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눈에 반해 사랑을 하듯이 말이다.
루두스적 사랑은 유희다. 사랑을 즐기기 위해 특정한 상대에게 몰입하지 않는다. 최근 개봉한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주인공들처럼 문어발식 ‘크로스 연애’도 불사한다.
스토르게적 사랑은 우정과 같다. 상대방을 특별히 애타게 그리워하는 감정 없이 애인을 친구처럼 만난다.
에로스와 루두스가 합쳐지면 마니아(Mania)적 사랑이 된다. 혼합사랑은 사랑을 하면 할수록 두 사랑의 요소가 더 극적으로 혼합된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매달리는 한편, 자신의 경험 때문에 상대방도 다른 사람을 찾지 않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결국 마니아적 사랑에 빠지면 소유욕에 불타 상대방에게 의존하면서 질투하고 사랑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상대방을 묶어 놓으려 한다. 바람둥이가 한 사람에게 정착해서 오히려 매달리며 살게 되는 것도 마니아적 사랑의 특성 때문이다.
루두스적 사랑과 스토르게적 사랑이 합쳐지면 프래그마(Pragma)적 사랑이 된다. 프래그마 사랑은 논리적이고 실용적 사랑이다. 그래서 마치 물건을 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하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요건에 맞는 상대방을 고른다. 그렇게 고른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이나 헌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한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연희(엄정화 분)가 조건을 보고 남자를 고르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리저리 잰 뒤에 선택한 상대이니만큼 삶의 안정을 깨뜨린다면 사랑도 깨지기 쉽다. 반대로 상대방과 함께 살더라도 특별히 만족하지도 못한다. 상대방이 출중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요건에 그나마 맞아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조건에 맞는 다른 사람과 맺어졌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살아보면 누구나 다 똑같다’라고 말한다.
에로스와 스토르게적 사랑이 합쳐지면 아가페(Agape)적 사랑이 된다. 아가페적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헌신을 당연한 의무라 여긴다. 아가페적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고난도 두렵지 않다. 마치 순교도 불사하는 신자처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헌신을 한다고 해서 마니아적 사랑처럼 소유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상대방을 자신보다 더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나온다면 기꺼이 물러난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상대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사랑의 의무를 다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에서 십년이 지나도 서로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비슷한 예다.
-과학동아를 읽고-
나는 아가페 or 에로스 적 사랑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