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말하다: 결여와 상실의 이야기 ''신입사원''>

최화인200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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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말하다: 결여와 상실의 이야기 '신입사원'>

 

 

<별은 내 가슴에>와 <복수혈전>을 공동집필하면서 

 

동료에서 동반자로 거듭난  이선미, 김기호 부부의

 

합작 드라마중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성공을 거둔

 

'발리에서 생긴 일'이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전작의 무거움을 털어버리고자 만든 '신입사원'은

 

에릭을 성공적인 연기자의 반열에 안착시킨 작품인 동시에

 

만화같은 캐릭터 안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주류와 비주류와

 

같은 무거운 주제의식을 잘 담아낸 역작이다.

 

학력과 배경 모두 지극히 '변두리'적인 강호(에릭)가

 

우연과 전산장치 오작동으로 세계적인 그룹 LK의 만점자로

 

'잘못'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은

 

지극히 만화적이면서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김 커플의 항시적 주제인 계급갈등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봉삼(오지호)은 집나간 엄마와 알콜중독에 폭력가장 아버지

 

밑에서도 주류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LK 장학생에 특채입사에 성공하지만

 

현재적 성공만으로는 자신의 태생적 결여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봉삼의 슬프고도 냉혹한 현실인식은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지원해준

 

이미옥(한가인)을 보잘 것 없다는 이유만으로 과감히 버리고

 

재벌가 첩의 딸인 서현아(이소연)를 선택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봉삼이 그랬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구하기 마련인지라,

 

가난한 빈농의 딸인 고졸출신 비정규직 이미옥이

 

더 이상 LK 엘리트 특채사원 이봉삼에게 맞지 않았던 것처럼

 

성골이 아니더라도 재벌가 귀족인 서현아에게 이봉삼 역시

 

앤조이는 가능할지언정 공인된 '짝'으로는 걸맞지 않았다.

 

서로의 진심이 향하는 상대와

 

서로의 현실이 필요로 하는 상대의 불일치가 빚어낸 비극은

 

전작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는 살인과 자살로 극대화되었지만

 

같은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이 '발리~'와는 달리 

 

더없이 가볍게 희화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감정과 갈망의 불일치따위는

 

애시당초 발생하지 않을 만큼 단순하고 무식한 강호라는

 

캐릭터를 통 세 사람의 갈등구조를 부담없이 오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실에선 결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강호와 강호의 주변인물들의 활약으로

 

일회적이고 비일상적인 방법들을 통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다같이 행복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과 개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주류와 비주류,

 

가진자와 못 가진 자의 계급갈등은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채 드라마는 종영되었다.

 

신입사원 시절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로고만 봐도 가슴이 뛰고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자기계발에 열중했던 문과장은

 

우리사주운동에 열심히 동참했다가 깡통을 찼고

 

그 이유로 이혼당해서 월세 단칸방에서 곤궁히 살다가

 

결국 조직과 회사에 품었던 모든 신념과 이상을 부정한 채

 

드라마 최고 악역이 되어 경쟁사에 회사기밀을 팔아넘긴 뒤 

 

경쟁사의 M&A 대리인이 되어 나타나고,

 

전무의 '딸랑이'로 일관했던 구부장은

 

마지막회 딱 한번 상사다운 모습을 보여준 공으로 

 

1년뒤 이사로 승진해 여유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기존의 모든 관행을 깨는 비일상적인 도전정신으로

 

시청자에게 진정한 '21세기형 인재'상을 제시했던 강호 역시

 

어느새 조직문화와 관행에 찌든 또 다른 '구부장'이 되었고

 

대신 그의 무모할 만큼의 거침없는 도전정신과 패기는

 

새로운'만점짜리' 신입사원에 의해 대체되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을 맺었다.

 

못 가진 자의 결여는 끊임없이 가진 자를 향하게 하고

 

가진 자를 모방하며 무언가를 조금씩 이루어나갈 때  

 

그와 동시에 처음의 패기와 이상과 꿈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이보다 더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신입사원'은 미니시리즈치곤 보기 드물게

 

등장인물 대부분이 해피앤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를 이루는 대부분의 '못 가진 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결여와 상실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바람에

 

오래도록 마음 시린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늘 문득 지나간 옛 드라마가 생각나 몇 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