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하다 #77

김미선200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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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다 #77

수회가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실은 이랬습니다

 

'바쁘니까 나중에 말하자 난 더 할 말도 없지만..'

 

나는 끊어진 전화기를 잠시 들고 있다가

일단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늘 그렇지만 막 통화가 끊어진 뒤의 전화기는 다루기가 조심스럽죠

아직 그녀의 숨이 묻어있는 것 같아서

 

나는 통화 내용과는 상관없이 밝게 웃으며

옆에 있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려 했습니다

 

'오늘은 너무 바쁘다네 시간을 못 내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그런데 전화기 소리를 너무 키워놓았나 봅니다

쳐다보니 친구의 얼굴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

'다 들었구나..' 그래서 난감했지만 티를 내지 않기로 합니다

불안한 관계를 들키고 싶지가 않으니까요

들키면 곧 상담 같은걸 하게 될것이고 그러다보면 나 스스로도

인정해야만 할 거니까

우리가 곧 헤어지거나 아니면 이미 헤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모든 일 사랑에 관해서도 행운을 그르칠 확률보다는

불행을 피하지 못할 확률이 더 크다는걸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당분간 덮어놓을 생각입니다

나는 아주 짧은 시간에 이 모든 생각들을 정리하고

친구를 보고 웃으며 말합니다

 

'요즘 좀 예민해서..'

 

나는 웃는데 친구는 웃지 않습니다

아마 놀랬겠죠?

친구 눈에 비친 그동안의 나는 실제보다 훨씬 행복했을겁니다

나는 그동안 말하고 싶은 부분만 부풀려 말했고

숨기고 싶은 부분은 적당히 숨겼으니까요

거짓말 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그랬으므로..

그녀에게 선물 받은 사소한 것들은 내겐 아주 큰것이었고

그녀에게 받은 상처는 그래도 견딜만 했으니까요

 

나를 무안하게 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다른 것을 보고 있던 친구가

나는 차라리 애처롭게 보입니다

지금 내가 다른 누굴보고 애처롭다고하면 아마그건 웃긴일이 되겠죠

 

'바쁘니까 나중에 말하자 난 더 할말도 없지만..'

 

그 냉정한 말을 두고 강제로 전화가 끊어짐을 당한 주제에

오늘은 술을 마셔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가끔씩 술은 오늘과 내일의 연결고리를 끊어줄때가 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때도 있으니까요

 

덮어놓고 싶다

들키고 싶지 않아

아는척 하고 싶다

버티고 싶다

 

나는 그럴 수 있다

 

 

#사랑을 말하다_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