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술을 마시도록 인간은 언제나 그 몸을 내미는 혼이다”라고 아라공은 노래했지만 민주노동당 뮤직비디오 감독 김동현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마시기전에 우리의 몸을 내밀어 술을 홀짝거렸다. 민주노동당 뮤직비디오 “민주노동당만이 할 수 있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첫 만남도 술자리였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자는 기획의 시작도 술자리였으며 기획의 마무리도 술자리였으니,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희석주는 우리의 창조와 발칙함의 혼이었다.
우리끼리 기획하면 뭔가 불안하다는 생각에 선대위 미디어 홍보부에 있는 김문영 동지의 주선으로 중앙당사에서 기획회의를 가졌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전투적인 나와 만만치 않은 우리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기획보다는 전투를 즐겼고, 기획을 건지러 온 동현이는 말할 때 양수기처럼 쉼 없이 쏟아지는 내 침세례에 젖어 자신의 몸을 내밀었던 혼을 저주했다.
결국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 담배피고 술마시고, 농담으로 낄낄거리면서 기획을 마무리했다. 영국은 48년도에 노동당 네이 베번에 의해 무상의료가 도입되자, 미국은 이를 막기위해 식량원조를 끊었고, 덕분에 영국은 전시 때 시작했던 식량배급제를 52년까지 연장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말해주면 동현이는 2차대전 전투신과 오버랩되는 행복한 환자를 그린다. 우리사회는 삶이 온통 지뢰밭, 즉 이혼, 해고, 질병 등에 의한 지뢰가 곳곳에 깔려 있는 곳이라고 말하면 동현이의 머릿속에서는 와이어에 몸을 묶은 배우들이 하늘로 날라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증가율이 1위라고 말해주면 교실에서 책상을 치는 학생들이 그려지고, 대학입시폐지 집회가 있다고 말해주면 가사가 만들어진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김동현은 만능인간이다. 한국의 찰리채플린이요, 케빈코스트너라고 말해주면 동현이는 하회탈 같은 미소로 좋아한다. 특히 케빈 코스트너라는 대목에서. 김동현은 락밴드의 리더싱어다. 작곡가요 작사가요, 실력 있는 드러머고, 에니메이션이 전공인데다, 광고기획을 공부했다. 그것도 전 세계 CF의 절반이 제작된다는 영국에서 7년 동안 공부에다 현업에서 일했고, 심지어 근사한 유학생이랑 장가도 갔다. 집안이 유복해서 형은 서울대 물리학과 박사를 마치고 스웨덴으로 유학을 갔고, 본인은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런데 이 형제들이 영국과 스웨덴의 현실에서 상호상승작용을 통해 모두 빨갱이가 되었다. 스웨덴의 복지체제나 영국의 무상의료시스템이 사회주의 원리의 부분적 실현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두 형제에게 뿌리 내렸고, 보다 행동적인 동현이는 이 땅에 반드시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신념에 차있다. 허접한 사회주의 정당인 영국노동당이 이룩한 성과가 이 정도인데, 제대로 된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하는 사회는 얼마나 아름답겠냐고 동현이는 반문한다. 분단된 나라에서 반평생을 빨갱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동현이 말에 취해 소주를 안주로 마신다.
△ 뮤직비디오 촬영 모습
비정규직 젊은이들, 비정규직이 예정되어 있는 고등학교, 대학생들이 민주노동당에 매력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우리들 술자리의 고민이었다. 우리의 결론은 젊은이들 마음속에 있는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을 새로운 전망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서구복지국가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서구 좌파 정당의 브랜드 파워를 십분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현실과 그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동현이가 리더로 있는 영국의 락밴드를 불러와 촬영을 하자는 것이었다. 간 큰 우리들은 처음에는 영국으로 로케촬영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당의 재정상태를 고려해서 불러오자는 것으로 후퇴했다. 젊은이들의 문화코드를 활용해서 강렬한 메시지를 담자는 것이 우리의 그림이었다.
노래와 가사는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다. 녹음 마무리를 위해 녹음실에 도착한 나는 화들짝 놀랐다. 가사에 민주노동당 대신 민노당이라 되어 있었다. 김문영동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말하자, 김문영동지가 점잖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선배, 그건 상의의 문제가 아니고요, 빨리 바꿔요” 할 수 없이 녹음을 마치고 돌아간 가수를 다시 불러 다시 녹음을 해야 했다. 당원여러분 민주노동당은 약어가 없습니다. 그냥 민주노동당일뿐!
촬영이 시작되었다. 너무 급하게 준비된 촬영이라 영국에서 기술진과 밴드멤버들이 온 날부터 고생시작이었다. 공항에 나름대로 큰 승용차를 준비해 갔지만 영국에서 기술진 2명과 멤버 2명, 그리고 나, 동현이까지 6명이 타기에 승용차는 너무 비좁았다. 190은 족히 되는 흑인친구는 통아저씨도 아닌데 본의 아니게 접혔다. 다음날 사회보험에서 봉고차를 빌려주어 알파라는 이름을 가진 흑인 친구는 자기 이름모양으로 접히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팔이 있는 봉고차라 잠시 서있으면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멀쩡한 외국사람들이 나팔차에 타고 있으니, 신기할 수 밖에!
△ 의사 역할로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김광수 당원
첫날은 스튜디오 촬영이었다. 11시까지 오기로 한 엑스트라들은 1시쯤 되어야 도착했다. 파업하고 있던 사회보험 아줌마조합원들이 뭘하는 지 모르고 왔다가 손사래치고 도망갔다. 결국 남은 건 학생들과 집사람과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은 학교마저 빠지고 왔지만 촬영은 안하고 그냥 놀다 갔다. 먼저 랩퍼들과 멤버들이 촬영을 하고, 여러 신을 찍는 장면에 들어갔다. 영국에서 온 기술자들이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가져온 저장장치는 한국에서는 2년전부터 사장된 것이라 결국 신형이 아니라 구형 노트북이 필요했다. 아 IT강국 대한민국이여! 불야불야 수배를 해서 자원봉사 온 서울대 학생당원이 집에 가서 가져오기로 했다. 그런데 이 친구 2시간이 지나서야 도착을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동현이, 하지만 학생의 얼굴을 본 순간 갑자기 낯빛이 환해진다. 나중에 호칭이 인민배우가 된 이 학생은 환자역할, 절망하는 젊은이 역할을 맡게 되는데, 동현이 말로는 편집할 때 사람들이 이런 배우를 어디서 구했냐고 감탄했다 한다. 피골이 상접한 것이 가만 있어도 상실태요, 중환자다.
서양꼬마, 한국꼬마 이렇게 둘이 필요했는데 동현이가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구해왔다. 노랑머리 아이는 아빠가 노르웨이 사람이다. 그런데 외국어는 한마디도 못한다. 한국아이는 외국인학교를 다니는 아이라 영어를 모국어처럼 한다. 헷갈린다. 학생역할을 한 두 여자들은 한 사람은 국내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자주 나온 분이고, 다른 사람은 서울대 여학생이다. 서양분은 캐나다 사람인데, 한국여학생이 키다 더 크다. 무려 175cm. 이것도 헷갈린다.
통역을 맡으러온 집사람이 저녁식사로 전 스텝들에게 피자를 돌렸다. 기술진이 두명이라 부부가 통역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둘째날이 되자 통역이 필요 없어 졌다. 조명감독부터 전 스텝진이 나름대로 영어를 익혀 모두가 영어로 말하고 있다. 국적이 모호한 영어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다. 권영길 후보도 영어를 아주 잘해서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둘째날은 모 고교 선생님의 협조를 얻어서 빈교실에서 촬영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교실에 모을 학생들이 부족했다. 스튜디오 촬영에 협조했던 해방연대 학생지부 학생들이 10여명 왔지만 가까이 있는 서울대학생 당원들은 엠티를 갔다고 하고, 막막했다. 할 수 없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놀고 있는 여학생들에게 뛰어가서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을 했다. 한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문자를 돌리니 삽시간에 12명 정도의 학생이 모였다. 짜장면 한 그릇 먹고 모두 6시간이 넘도록 촬영에 임했다. 고마울 따름이다. 그중에 화면에 자주 잡히는 여학생 둘은 표정이 너무 밝아서 스텝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사실 남학생들 중에도 인물이 좋은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그렇게 웃으라고 성화를 해도 카메라만 오면 얼짱 각도로 고개를 돌리고 최민수가 되버린다. 결국 그 친구 얼굴은 한번도 나오질 못했다. 권영길 후보도 짬을 내서 오셨는데, 곡이 너무 빠른 탓에 촬영 때 박자를 못 맞춘다. 그래도 흔쾌히 스텝진의 요구에 웃으며 따라 주셨다. 배웅을 하면서 기세 좋게 한마디 했다. “후보님 선거운동 대충하세요, 우리 비디오로 15% 이상 되게 할 테니” 사람 좋은 권후보 늘 그렇듯이 “어.. 응”
마지막 촬영은 동현이 큰형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촬영을 했다. 이제 기진맥진한 출연진들은 거의 남아 있지를 않아 출연진이 부족했다. 결국 잉여인력인 내가 한국의사로 출연하게 되었다. 외국친구들은 몇 번씩 찍은 신을 나는 단 한 번에 끝냈다. 동현이 왈 “형 연기는 완벽해요” 생 까는데 명수인 이명박을 워낙 자주 봐서 학습효과를 본 모양이다.
대선이 이제 며칠 안 남았다. 많은 당원들이 낮은 지지율에 실망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가치는 지금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절대 그렇다고 생각지 않는다. 96년 12월 26일 안기부법,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맞서 서울구치소에서 단식을 선언하고 얼어붙은 창살에 매달린 손가락이 동상 드는 줄도 모르고 아침부터 핏대를 올렸던 우리들이지만 총파업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발언자마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그것은 감격의 문제가 아니고 새로운 시대의 열림이었고 노동자계급이 갖고 있는 보편성의 역사적 확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자 성과였던 것이다. 이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한국사회의 고통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는 획기적이고 새로운 노동자 정당으로 발전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 노동자 민중이 노동자 후보를 찍도록 하기위해 최선을 다하자!
뮤비 판갈이 기사
민주노동당 뮤직비디오 출연기
김광수 해방연대 기관지위원장
우리끼리 기획하면 뭔가 불안하다는 생각에 선대위 미디어 홍보부에 있는 김문영 동지의 주선으로 중앙당사에서 기획회의를 가졌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전투적인 나와 만만치 않은 우리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기획보다는 전투를 즐겼고, 기획을 건지러 온 동현이는 말할 때 양수기처럼 쉼 없이 쏟아지는 내 침세례에 젖어 자신의 몸을 내밀었던 혼을 저주했다.
결국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 담배피고 술마시고, 농담으로 낄낄거리면서 기획을 마무리했다. 영국은 48년도에 노동당 네이 베번에 의해 무상의료가 도입되자, 미국은 이를 막기위해 식량원조를 끊었고, 덕분에 영국은 전시 때 시작했던 식량배급제를 52년까지 연장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말해주면 동현이는 2차대전 전투신과 오버랩되는 행복한 환자를 그린다. 우리사회는 삶이 온통 지뢰밭, 즉 이혼, 해고, 질병 등에 의한 지뢰가 곳곳에 깔려 있는 곳이라고 말하면 동현이의 머릿속에서는 와이어에 몸을 묶은 배우들이 하늘로 날라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증가율이 1위라고 말해주면 교실에서 책상을 치는 학생들이 그려지고, 대학입시폐지 집회가 있다고 말해주면 가사가 만들어진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김동현은 만능인간이다. 한국의 찰리채플린이요, 케빈코스트너라고 말해주면 동현이는 하회탈 같은 미소로 좋아한다. 특히 케빈 코스트너라는 대목에서. 김동현은 락밴드의 리더싱어다. 작곡가요 작사가요, 실력 있는 드러머고, 에니메이션이 전공인데다, 광고기획을 공부했다. 그것도 전 세계 CF의 절반이 제작된다는 영국에서 7년 동안 공부에다 현업에서 일했고, 심지어 근사한 유학생이랑 장가도 갔다. 집안이 유복해서 형은 서울대 물리학과 박사를 마치고 스웨덴으로 유학을 갔고, 본인은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런데 이 형제들이 영국과 스웨덴의 현실에서 상호상승작용을 통해 모두 빨갱이가 되었다. 스웨덴의 복지체제나 영국의 무상의료시스템이 사회주의 원리의 부분적 실현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두 형제에게 뿌리 내렸고, 보다 행동적인 동현이는 이 땅에 반드시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신념에 차있다. 허접한 사회주의 정당인 영국노동당이 이룩한 성과가 이 정도인데, 제대로 된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하는 사회는 얼마나 아름답겠냐고 동현이는 반문한다. 분단된 나라에서 반평생을 빨갱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동현이 말에 취해 소주를 안주로 마신다.
비정규직 젊은이들, 비정규직이 예정되어 있는 고등학교, 대학생들이 민주노동당에 매력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우리들 술자리의 고민이었다. 우리의 결론은 젊은이들 마음속에 있는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을 새로운 전망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서구복지국가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서구 좌파 정당의 브랜드 파워를 십분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현실과 그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동현이가 리더로 있는 영국의 락밴드를 불러와 촬영을 하자는 것이었다. 간 큰 우리들은 처음에는 영국으로 로케촬영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당의 재정상태를 고려해서 불러오자는 것으로 후퇴했다. 젊은이들의 문화코드를 활용해서 강렬한 메시지를 담자는 것이 우리의 그림이었다.
노래와 가사는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다. 녹음 마무리를 위해 녹음실에 도착한 나는 화들짝 놀랐다. 가사에 민주노동당 대신 민노당이라 되어 있었다. 김문영동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말하자, 김문영동지가 점잖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선배, 그건 상의의 문제가 아니고요, 빨리 바꿔요” 할 수 없이 녹음을 마치고 돌아간 가수를 다시 불러 다시 녹음을 해야 했다. 당원여러분 민주노동당은 약어가 없습니다. 그냥 민주노동당일뿐!
촬영이 시작되었다. 너무 급하게 준비된 촬영이라 영국에서 기술진과 밴드멤버들이 온 날부터 고생시작이었다. 공항에 나름대로 큰 승용차를 준비해 갔지만 영국에서 기술진 2명과 멤버 2명, 그리고 나, 동현이까지 6명이 타기에 승용차는 너무 비좁았다. 190은 족히 되는 흑인친구는 통아저씨도 아닌데 본의 아니게 접혔다. 다음날 사회보험에서 봉고차를 빌려주어 알파라는 이름을 가진 흑인 친구는 자기 이름모양으로 접히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팔이 있는 봉고차라 잠시 서있으면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멀쩡한 외국사람들이 나팔차에 타고 있으니, 신기할 수 밖에!
첫날은 스튜디오 촬영이었다. 11시까지 오기로 한 엑스트라들은 1시쯤 되어야 도착했다. 파업하고 있던 사회보험 아줌마조합원들이 뭘하는 지 모르고 왔다가 손사래치고 도망갔다. 결국 남은 건 학생들과 집사람과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은 학교마저 빠지고 왔지만 촬영은 안하고 그냥 놀다 갔다. 먼저 랩퍼들과 멤버들이 촬영을 하고, 여러 신을 찍는 장면에 들어갔다. 영국에서 온 기술자들이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가져온 저장장치는 한국에서는 2년전부터 사장된 것이라 결국 신형이 아니라 구형 노트북이 필요했다. 아 IT강국 대한민국이여! 불야불야 수배를 해서 자원봉사 온 서울대 학생당원이 집에 가서 가져오기로 했다. 그런데 이 친구 2시간이 지나서야 도착을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동현이, 하지만 학생의 얼굴을 본 순간 갑자기 낯빛이 환해진다. 나중에 호칭이 인민배우가 된 이 학생은 환자역할, 절망하는 젊은이 역할을 맡게 되는데, 동현이 말로는 편집할 때 사람들이 이런 배우를 어디서 구했냐고 감탄했다 한다. 피골이 상접한 것이 가만 있어도 상실태요, 중환자다.
서양꼬마, 한국꼬마 이렇게 둘이 필요했는데 동현이가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구해왔다. 노랑머리 아이는 아빠가 노르웨이 사람이다. 그런데 외국어는 한마디도 못한다. 한국아이는 외국인학교를 다니는 아이라 영어를 모국어처럼 한다. 헷갈린다. 학생역할을 한 두 여자들은 한 사람은 국내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자주 나온 분이고, 다른 사람은 서울대 여학생이다. 서양분은 캐나다 사람인데, 한국여학생이 키다 더 크다. 무려 175cm. 이것도 헷갈린다.
통역을 맡으러온 집사람이 저녁식사로 전 스텝들에게 피자를 돌렸다. 기술진이 두명이라 부부가 통역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둘째날이 되자 통역이 필요 없어 졌다. 조명감독부터 전 스텝진이 나름대로 영어를 익혀 모두가 영어로 말하고 있다. 국적이 모호한 영어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다. 권영길 후보도 영어를 아주 잘해서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둘째날은 모 고교 선생님의 협조를 얻어서 빈교실에서 촬영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교실에 모을 학생들이 부족했다. 스튜디오 촬영에 협조했던 해방연대 학생지부 학생들이 10여명 왔지만 가까이 있는 서울대학생 당원들은 엠티를 갔다고 하고, 막막했다. 할 수 없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놀고 있는 여학생들에게 뛰어가서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을 했다. 한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문자를 돌리니 삽시간에 12명 정도의 학생이 모였다. 짜장면 한 그릇 먹고 모두 6시간이 넘도록 촬영에 임했다. 고마울 따름이다. 그중에 화면에 자주 잡히는 여학생 둘은 표정이 너무 밝아서 스텝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사실 남학생들 중에도 인물이 좋은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그렇게 웃으라고 성화를 해도 카메라만 오면 얼짱 각도로 고개를 돌리고 최민수가 되버린다. 결국 그 친구 얼굴은 한번도 나오질 못했다. 권영길 후보도 짬을 내서 오셨는데, 곡이 너무 빠른 탓에 촬영 때 박자를 못 맞춘다. 그래도 흔쾌히 스텝진의 요구에 웃으며 따라 주셨다. 배웅을 하면서 기세 좋게 한마디 했다. “후보님 선거운동 대충하세요, 우리 비디오로 15% 이상 되게 할 테니” 사람 좋은 권후보 늘 그렇듯이 “어.. 응”
마지막 촬영은 동현이 큰형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촬영을 했다. 이제 기진맥진한 출연진들은 거의 남아 있지를 않아 출연진이 부족했다. 결국 잉여인력인 내가 한국의사로 출연하게 되었다. 외국친구들은 몇 번씩 찍은 신을 나는 단 한 번에 끝냈다. 동현이 왈 “형 연기는 완벽해요” 생 까는데 명수인 이명박을 워낙 자주 봐서 학습효과를 본 모양이다.
대선이 이제 며칠 안 남았다. 많은 당원들이 낮은 지지율에 실망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가치는 지금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절대 그렇다고 생각지 않는다. 96년 12월 26일 안기부법,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맞서 서울구치소에서 단식을 선언하고 얼어붙은 창살에 매달린 손가락이 동상 드는 줄도 모르고 아침부터 핏대를 올렸던 우리들이지만 총파업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발언자마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그것은 감격의 문제가 아니고 새로운 시대의 열림이었고 노동자계급이 갖고 있는 보편성의 역사적 확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자 성과였던 것이다. 이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한국사회의 고통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는 획기적이고 새로운 노동자 정당으로 발전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 노동자 민중이 노동자 후보를 찍도록 하기위해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