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고왕(太祖高王, 재위698~719)은 발해의 시조이며, 휘는 대조영(大祚榮)이다. 대조영은 대중상의 장자로서 고구려의 마지막 태왕인 보장왕때 고구려의 장수였다. 대조영의 민족에 대해서는대한민국, 북한, 일본의 역사가들은 대개로 고구려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속말말갈족에 가까울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속말말갈족이 민족이 아니라 지역의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땅에는 당제국이 통제하는 안동도호부가 세워지고, 남아있던 고구려 세력도 671년 안시성 함락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제국은 고구려 유민들을 여러 지역으로 끌고 갔는데, 대중상 부자는 영주로 끌려가게 되었다. 한편, 696년 영주에서 당나라에 대한 거란족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생겨난 혼란을 틈타 대중상과 말갈의 족장 걸사비우는 당제국에서의 이탈을 감행했고, 당나라는 대조영에게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許國公)을 봉하고 회유해 당나라의 세력 아래 다시 복속시키고자 했으나 그들은 거부하였다. 당나라는 거란군을 격파한 뒤, 성력연간(聖曆年間, 698∼699)에 추격군을 파견하였다.
당나라에 항복한 거란족 출신의 장군 이해고(李楷固)가 이끄는 당나라 군사가 공격해 오자, 걸사비우의 말갈족 집단이 먼저 교전했으나 대패하였다. 이 때 걸사비우와 대중상이 죽고 대조영은 휘하의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당나라 군사의 예봉을 피해 동으로 달아나면서, 한편으로 흩어진 걸사비우 예하의 말갈족 등을 규합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계속 추격해 오자, 대조영은 지금의 혼하(渾河)와 휘발하(輝發河)의 분수령인 장령자(長嶺子) 부근에 있는 천문령(天門嶺)에서 그들을 맞아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그 뒤 계속 동부 만주 쪽으로 이동해 지금의 지린성(吉林省) 돈화현(敦化縣)인 동모산(東牟山)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 698년에 국호를 진(震),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였다.
박효신 - 애상 (대조영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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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 - 애상 (대조영 OST)
대조영
태조 고왕(太祖高王, 재위698~719)은 발해의 시조이며, 휘는 대조영(大祚榮)이다. 대조영은 대중상의 장자로서 고구려의 마지막 태왕인 보장왕때 고구려의 장수였다. 대조영의 민족에 대해서는대한민국, 북한, 일본의 역사가들은 대개로 고구려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속말말갈족에 가까울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속말말갈족이 민족이 아니라 지역의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땅에는 당제국이 통제하는 안동도호부가 세워지고, 남아있던 고구려 세력도 671년 안시성 함락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제국은 고구려 유민들을 여러 지역으로 끌고 갔는데, 대중상 부자는 영주로 끌려가게 되었다. 한편, 696년 영주에서 당나라에 대한 거란족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생겨난 혼란을 틈타 대중상과 말갈의 족장 걸사비우는 당제국에서의 이탈을 감행했고, 당나라는 대조영에게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許國公)을 봉하고 회유해 당나라의 세력 아래 다시 복속시키고자 했으나 그들은 거부하였다. 당나라는 거란군을 격파한 뒤, 성력연간(聖曆年間, 698∼699)에 추격군을 파견하였다.
당나라에 항복한 거란족 출신의 장군 이해고(李楷固)가 이끄는 당나라 군사가 공격해 오자, 걸사비우의 말갈족 집단이 먼저 교전했으나 대패하였다. 이 때 걸사비우와 대중상이 죽고 대조영은 휘하의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당나라 군사의 예봉을 피해 동으로 달아나면서, 한편으로 흩어진 걸사비우 예하의 말갈족 등을 규합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계속 추격해 오자, 대조영은 지금의 혼하(渾河)와 휘발하(輝發河)의 분수령인 장령자(長嶺子) 부근에 있는 천문령(天門嶺)에서 그들을 맞아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그 뒤 계속 동부 만주 쪽으로 이동해 지금의 지린성(吉林省) 돈화현(敦化縣)인 동모산(東牟山)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 698년에 국호를 진(震),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였다.
713년 대조영은 당제국의 정식 책봉을 받아 국명을 발해로 고치게 된다.
719년 고왕이 죽자, 그의 아들 대무예(大武藝, 무왕)가 왕위를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