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한 어린 시절
러시아의 Andrei Chikatilo는 1936년 10월 16일, 구 소련의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Chikatilo의 어머니는, 그가 어려서말을 배우기 시작할때부터 '네가 태어나기 6년전.. 너의 큰형은 공산혁명당시 반체제 사상가로 몰려공산당원들에게 산체로 잡아먹혔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계속 들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심하게 굶고, 가난하게자라 눈이 안보이기 시작한 Chikatilo는1960년 우연히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을하여 2명의 자식들을 낳게 됩니다.
자신의 출신성분때문에 남보다 2배,3배는 더 열심히 일을하였야만했던 그는,자신의 자식들이 예전의 자신과 똑같이출신성분때문에 앞길이 막히는것을 보고,마음속에 커다란 울분을 쌓기 시작하였다고합니다.
30살이 훨씬 넘은 나이에 군대에서 제대한뒤대학을 다녔던 Chikatilo는, 그 후자신의 광산동네에서 학교선생님으로잠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증오와 복수심으로 시작된 살인
못먹어서 말른 Chikatilo의 몸을본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를 '거위'라부르기 시작하였고,우연히 자신의 선생님이 불순분자가정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안 아이들은,그 사실을 곧바로 학교에 고발하여겨우 직업을 얻었던 Chikatilo를 교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밤마다 자신이 쓰던 군용대검을지니고 거리를 활보하며 증오적인복수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 그는, 범행후 피해자들의 육신을 잘라 집에가지고온뒤, 배고픈 가족들에게'소고기다'라며 먹였다고 합니다.
78년부터 러시아에서는, 계속하여토막이나고, 육신의 단백질 부위가없는시체들이 아침마다 발견이 되기시작하여, 모스코바 전체의 언론들과시민단체등은 그 살인마를 'Citizen X'라 부른뒤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하였다고합니다.
Citizen X가 죽인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53명이 되던 1990년, 이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러시아의 경찰국은, 살인이날때마다 사건현장을 배회하던 Chikatilo를 연행한뒤, 그에게서 충격적인 자백을 듣게됩니다.
1992년, 공개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Chikatilo는, 1994년 2월 16일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53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러시아 최악의 살인마
불운한 어린 시절 러시아의 Andrei Chikatilo는 1936년 10월 16일, 구 소련의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Chikatilo의 어머니는, 그가 어려서말을 배우기 시작할때부터 '네가 태어나기 6년전.. 너의 큰형은 공산혁명당시 반체제 사상가로 몰려공산당원들에게 산체로 잡아먹혔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계속 들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심하게 굶고, 가난하게자라 눈이 안보이기 시작한 Chikatilo는1960년 우연히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을하여 2명의 자식들을 낳게 됩니다.
자신의 출신성분때문에 남보다 2배,3배는 더 열심히 일을하였야만했던 그는,자신의 자식들이 예전의 자신과 똑같이출신성분때문에 앞길이 막히는것을 보고,마음속에 커다란 울분을 쌓기 시작하였다고합니다.
30살이 훨씬 넘은 나이에 군대에서 제대한뒤대학을 다녔던 Chikatilo는, 그 후자신의 광산동네에서 학교선생님으로잠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증오와 복수심으로 시작된 살인
못먹어서 말른 Chikatilo의 몸을본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를 '거위'라부르기 시작하였고,우연히 자신의 선생님이 불순분자가정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안 아이들은,그 사실을 곧바로 학교에 고발하여겨우 직업을 얻었던 Chikatilo를 교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밤마다 자신이 쓰던 군용대검을지니고 거리를 활보하며 증오적인복수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 그는, 범행후 피해자들의 육신을 잘라 집에가지고온뒤, 배고픈 가족들에게'소고기다'라며 먹였다고 합니다.
78년부터 러시아에서는, 계속하여토막이나고, 육신의 단백질 부위가없는시체들이 아침마다 발견이 되기시작하여, 모스코바 전체의 언론들과시민단체등은 그 살인마를 'Citizen X'라 부른뒤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하였다고합니다.
Citizen X가 죽인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53명이 되던 1990년, 이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러시아의 경찰국은, 살인이날때마다 사건현장을 배회하던 Chikatilo를 연행한뒤, 그에게서 충격적인 자백을 듣게됩니다.
1992년, 공개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Chikatilo는, 1994년 2월 16일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