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절은 조끼 속으로 땀방울 흥건하고…[기름 방제작전 해경 P-89정 탑승 동행기]거센 풍랑 속 뜰채 하나로 기름찌꺼기와 ‘악전고투’바람과 파도가 야속했다. 어민들의 타는 가슴도, 열흘 가까이 기름찌꺼기와 사투를 벌이는 해경 대원들의 갈라진 손등도 아랑곳 없이 찬 겨울 바람과 높은 파도는 그칠줄 모르고 몰아쳤다.
15일 12시 30분, 오도와 보령 앞바다로 기름찌꺼기 방제 작업을 나서는 해경 P-89정(정장 서정률)을 탔다. 50톤급 경비정 P-89정은 원유유출사고가 터진 다음날(첫날은 풍랑주의보로 200톤급 이상 배만 출항이 가능했다)부터 15일 아침까지 사고지점 남쪽에 있는 신진항에서부터 천수만 입구인 오도와 호도 사이에서 방제작업을 하고있다.
파도·바람·기름 덩어리와 열흘째 사투 하얗게 반짝여야 할 뱃머리 주갑판에는 방제복과 고무장갑, 흡착포 등 방제 도구들이 가득 감겨있고, 갑판 곳곳에서는 기름이 묻어났다. 배에 오르자마자 방제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대천항을 출발한 배는 높은 파도와 바람에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선원들은 이 흔들림을 ‘롤링’이라 부르며 익숙한 듯 갑판위를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기름 찌꺼기를 건져올릴 뜰채를 닦아내고, 흡착포를 던지기 좋게 챙겨 갑판에 묶었다.
긴 뜰채로 파도에 움직이는 기름찌꺼기 건지기 쉽지 않아 “뜰채로 건져낸다.” 이번 원유유출사고 이후 가장 많이 쓰이는 말 가운데 하나다. 원유 휘발성분이 날아가고 덩어리 형태가 돼 바다에 떠다니는 기름찌꺼기와 타르 덩어리들은 경비정과 어선이 찾아다니며 뜰채로 건져낸다. 가장 원시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5미터 장대 끝에 30Cm도 채 안 되는 뜰채로 종이조각처럼 떠다니는 기름찌꺼기를 건져내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작업공간은 그야말로 사방에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다. 추위와 바람도 거세다. 우선 기름찌꺼기가 가만있지 않는다. 파도가 치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것을 두발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출렁이는 배 위에서 긴 뜰채를 움직여야 한다.
전역 말년 강진영 수경의 기름 절은 구명조끼는 오랜 기름띠와의 사투를 잘 보여준다. 기름 절은 구명조끼에 구조 위한 손전등까지 고향이 충북 괴산인 정상민 일경은 입대한 지 7개월째다. 갑판원 중에 막내다. 하지만 턱과 코밑에는 수염이 듬성듬성했다. 새내기 전경이 수염을 길러도 되냐고 묻자 다들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모두들 기름과 파도와 바람과 싸우다보니 며칠째 수염을 깎을 겨를조차 없다.
강진영 수경은 내년 2월 2일이면 전역을 하는 말년이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때지만 그가 입은 구명조끼는 기름이 묻고 묻어 원유에 절었다. 빨강색 조끼가 온통 검게 물들었다. 조끼 안에는 밤에 바다에 떨어질 경우 구조신호를 보내기 위한 손전등이 들어 있었다. 다행이 이번 방재작업중에 바다에 빠진 선원은 없었다.
이번 사고가 나고 휴가는 모두 정지됐다. 휴가는 물론 2박3일 출동해 바다에서 보내고 나머지 3박4일을 항구에서 보내는 교대 주기는 진작에 끝났다. P-89정은 8일 출동해서 보급품을 받기 위해 잠시 대천항에 들른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사고해역을 돌며 기름을 걷어냈다. 보급품도 그나마 오가는 다른 배에서 전해 받기 일쑤다. 강 수경은 1월에 있을 말년휴가나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출발하고 30분이 지나자 추위가 옷을 파고 들었다. 바다에서는 바람만 막으면 된다고 했는데, 방제복도 챙겨 입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추운지. 손이 시려 왔다. 점점 꼼짝하기 싫어졌다. 전지훈 순경은 두 개를 입으면 바람이 안들어 온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갑판에 나와있는 대원들은 모두 방제복을 두겹으로 껴입었다.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또 꼈다.
전 일경은 어머님이 보면 우실지 모른다며 고개를 숙이고… 첫날에는 내복을 안 입었는데 하루에 10시간 갑판에서 지내다 보니 둘째 날부터 모두 내복까지 챙겨입었다고 했다. 전상민 일경은 어머님이 보면 ‘고생한다’고 우실지 모른다며 사진 찍을 때 고개를 숙였고, 전지훈 순경은 여자친구가 “밥은 먹고 하냐”고 물어온 문자메시지에 답장을 보내기 위해 고무장갑과 목장갑을 벗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2m 넘는 파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갑판에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한 시간 가까이 물살을 헤쳐 사고 지역에서 120Km 떨어진 연도 인근에 도착했다. 파도는 2미터 높이로 쳤고, 바다에는 거센 바람으로 곳곳에서 백파가 일었다.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뿐만 아니라 배가 부웅 떴다가 떨어지는 피칭도 이어졌다. 놀이동산에서 타는 바이킹이 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척에 달하는 배들이 녹도, 호도 등 먼 바다에서 방제작업을 벌였다.
TV화면으로 보면 망망대해에 잔잔히 떠있는 것 같은 배들도 그 백파가 이는 출렁거리는 바다에서 바람과 추위와 싸워가며 기름을 걷어냈다. 이날 일기예보는 ‘바다의 물결은 서해 전해상과 동해 먼바다에서 2.0~4.0m로 높게 일겠다’고 했다. 선실에 들르니 바다낚시를 자주 다닌다는 TV카메라맨도 배멀미로 고개를 창에 기대고 있었다.
아침 5시 출동해 7시부터 10시간을 갑판에서 기름과 사투 기름이 번지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연도까지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헌 옷으로 입과 코를 가렸던 민병웅 순경이 얼굴을 보여줬다. 집에서 언제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마침 출동이 끝나고 복귀한 날 사고가 터져서 사고 날짜보다 이틀이 더 길다고 답했다. 결혼한 지 1년 됐다고 해서 애틋한 코멘트라도 받으려고 물으니 “사건 나면 이레 못 들어오는 줄 안다”는 시시한 대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기나긴 출동으로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뜨듯한 구들장에 몸을 지지고 싶다고 했다. 그때 박준수 수경이 갑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 추위, 바람, 엔진소리보다 눈꺼풀의 힘이 더 셌다. 8일부터 그들의 하루는 아침 5시면 출동해서 7시부터 10시간을 갑판에서 기름띠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뜰채로 건진 기름찌꺼기 떨어지지 않아 일일이 씻어내야 배의 엔진소리가 잦아들자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기름찌꺼기들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각자 뜰채와 양동이 흡착포를 챙겼다. 민병웅·전지훈 순경이 뜰채를, 강진영·박준수 수경이 흡착포와 양동이를 챙겼다.
선두에서 민병웅 순경이 기름찌꺼기를 뜨기 위해 뜰채를 내렸다. 그냥 걷어내면 될 줄 알았는데 기름덩어리들이 바람과 파도에 이리저리 움직였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배가 출렁거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로 그때 민 순경은 빠른 손놀림으로 기름덩어리를 걷어냈다.
거센 풍랑 속 뜰채 하나 쥐고 기름찌꺼기와 ‘악전고투’ 뜰채를 양동이 위에 올리자 강진영 수경과 박준수 수경이 기름찌꺼기를 흡착포로 닦아냈다. 끈적끈적한 기름찌꺼기들은 탁탁 털어도 떨어지지 않아 일일이 씻어내야 했다. 어쩌면 ‘뜰채로 건져냈다’다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이들의 힘든 작업과 안타까운 심정을 다 나타내지 못해 미안했다. 민병웅 순경은 “처음에는 떠도 떠도 나타나는 기름덩어리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아무런 느낌도 안 들고 기름을 보면 그냥 떠낸다”고 말했다.
그렇게 1시간여 기름찌꺼기와 싸웠을까. 거센 풍랑 속에 뜰채 하나 쥐고 파도따라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기름찌꺼기와 ‘악전고투’를 하는 사이,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부는데도 방제복 안과 장화 속, 고무장갑과 목장갑을 이중으로 낀 손바닥에 땀이 서렸다.
배 뒤편 펄럭이는 태극기마저 기름찌꺼기로 얼룩져 갑판원 막내인 전상민 일경이 함께 탄 YTN 방송 카메라와 인터뷰를 했다. “파도랑 바람 때문에 힘들지만 열심히 해야죠.” 열흘이 넘는 출동으로 야윈 얼굴에 군기 든 모범답안이지만, 다들 피해 어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정도 추위와 고생은 참을만 하다고 했다.
심한 파도로 TV카메라맨이 넘어질까 봐 보조원이 허리까지 잡아줘야 했지만 P-89정 대원들은 내 집 마당처럼 쉽게 다녔다. 하긴 그들에게 P-89정은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경비를 서고, 방제 작업까지 모든 것을 하는 삶터 그 자체였다. 갑판에서 만난 전 일경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 해경을 지원했다 했다. 이번 방제작업은 그에게 어떤 특별함으로 남을까.
배 뒤에서 파란 바다와 흰색으로 대조를 이루며 펄럭여야 할 태극기 끝이 기름에 얼룩져 있었다. “기름찌꺼기가 이리저리 움직여 배의 앞, 옆, 뒤에서 작업하다 보면 태극기에도 묻게 된다”는 전지훈 순경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태극기인데…’라는 스쳐가는 생각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태극기도 흡착포처럼 기름을 묻혀가며 방제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12시 30분 대천항을 출발한 배는 오도와 보령 앞바다까지 돌아 4시 15분 돌아왔다. 배에는 기름찌꺼기와 타르 덩어리를 담은 양동이 수십개와 검갈색 기름띠가 묻은 흡착포 더미만 가득했다. 손혁기 (pharos@korea.kr) | 등록일 : 2007.12.16
기름 절은 조끼 속으로 땀방울 흥건하고…
15일 12시 30분, 오도와 보령 앞바다로 기름찌꺼기 방제 작업을 나서는 해경 P-89정(정장 서정률)을 탔다. 50톤급 경비정 P-89정은 원유유출사고가 터진 다음날(첫날은 풍랑주의보로 200톤급 이상 배만 출항이 가능했다)부터 15일 아침까지 사고지점 남쪽에 있는 신진항에서부터 천수만 입구인 오도와 호도 사이에서 방제작업을 하고있다.
파도·바람·기름 덩어리와 열흘째 사투
하얗게 반짝여야 할 뱃머리 주갑판에는 방제복과 고무장갑, 흡착포 등 방제 도구들이 가득 감겨있고, 갑판 곳곳에서는 기름이 묻어났다. 배에 오르자마자 방제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대천항을 출발한 배는 높은 파도와 바람에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선원들은 이 흔들림을 ‘롤링’이라 부르며 익숙한 듯 갑판위를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기름 찌꺼기를 건져올릴 뜰채를 닦아내고, 흡착포를 던지기 좋게 챙겨 갑판에 묶었다.
긴 뜰채로 파도에 움직이는 기름찌꺼기 건지기 쉽지 않아
“뜰채로 건져낸다.” 이번 원유유출사고 이후 가장 많이 쓰이는 말 가운데 하나다. 원유 휘발성분이 날아가고 덩어리 형태가 돼 바다에 떠다니는 기름찌꺼기와 타르 덩어리들은 경비정과 어선이 찾아다니며 뜰채로 건져낸다. 가장 원시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5미터 장대 끝에 30Cm도 채 안 되는 뜰채로 종이조각처럼 떠다니는 기름찌꺼기를 건져내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작업공간은 그야말로 사방에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다. 추위와 바람도 거세다. 우선 기름찌꺼기가 가만있지 않는다. 파도가 치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것을 두발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출렁이는 배 위에서 긴 뜰채를 움직여야 한다.
기름 절은 구명조끼에 구조 위한 손전등까지
고향이 충북 괴산인 정상민 일경은 입대한 지 7개월째다. 갑판원 중에 막내다. 하지만 턱과 코밑에는 수염이 듬성듬성했다. 새내기 전경이 수염을 길러도 되냐고 묻자 다들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모두들 기름과 파도와 바람과 싸우다보니 며칠째 수염을 깎을 겨를조차 없다.
이번 사고가 나고 휴가는 모두 정지됐다. 휴가는 물론 2박3일 출동해 바다에서 보내고 나머지 3박4일을 항구에서 보내는 교대 주기는 진작에 끝났다. P-89정은 8일 출동해서 보급품을 받기 위해 잠시 대천항에 들른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사고해역을 돌며 기름을 걷어냈다. 보급품도 그나마 오가는 다른 배에서 전해 받기 일쑤다. 강 수경은 1월에 있을 말년휴가나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출발하고 30분이 지나자 추위가 옷을 파고 들었다. 바다에서는 바람만 막으면 된다고 했는데, 방제복도 챙겨 입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추운지. 손이 시려 왔다. 점점 꼼짝하기 싫어졌다. 전지훈 순경은 두 개를 입으면 바람이 안들어 온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갑판에 나와있는 대원들은 모두 방제복을 두겹으로 껴입었다.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또 꼈다.
전 일경은 어머님이 보면 우실지 모른다며 고개를 숙이고…
첫날에는 내복을 안 입었는데 하루에 10시간 갑판에서 지내다 보니 둘째 날부터 모두 내복까지 챙겨입었다고 했다. 전상민 일경은 어머님이 보면 ‘고생한다’고 우실지 모른다며 사진 찍을 때 고개를 숙였고, 전지훈 순경은 여자친구가 “밥은 먹고 하냐”고 물어온 문자메시지에 답장을 보내기 위해 고무장갑과 목장갑을 벗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2m 넘는 파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갑판에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한 시간 가까이 물살을 헤쳐 사고 지역에서 120Km 떨어진 연도 인근에 도착했다. 파도는 2미터 높이로 쳤고, 바다에는 거센 바람으로 곳곳에서 백파가 일었다.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뿐만 아니라 배가 부웅 떴다가 떨어지는 피칭도 이어졌다. 놀이동산에서 타는 바이킹이 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척에 달하는 배들이 녹도, 호도 등 먼 바다에서 방제작업을 벌였다.
TV화면으로 보면 망망대해에 잔잔히 떠있는 것 같은 배들도 그 백파가 이는 출렁거리는 바다에서 바람과 추위와 싸워가며 기름을 걷어냈다. 이날 일기예보는 ‘바다의 물결은 서해 전해상과 동해 먼바다에서 2.0~4.0m로 높게 일겠다’고 했다. 선실에 들르니 바다낚시를 자주 다닌다는 TV카메라맨도 배멀미로 고개를 창에 기대고 있었다.
아침 5시 출동해 7시부터 10시간을 갑판에서 기름과 사투
하지만 기나긴 출동으로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뜨듯한 구들장에 몸을 지지고 싶다고 했다. 그때 박준수 수경이 갑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 추위, 바람, 엔진소리보다 눈꺼풀의 힘이 더 셌다. 8일부터 그들의 하루는 아침 5시면 출동해서 7시부터 10시간을 갑판에서 기름띠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뜰채로 건진 기름찌꺼기 떨어지지 않아 일일이 씻어내야
배의 엔진소리가 잦아들자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기름찌꺼기들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각자 뜰채와 양동이 흡착포를 챙겼다. 민병웅·전지훈 순경이 뜰채를, 강진영·박준수 수경이 흡착포와 양동이를 챙겼다.
선두에서 민병웅 순경이 기름찌꺼기를 뜨기 위해 뜰채를 내렸다. 그냥 걷어내면 될 줄 알았는데 기름덩어리들이 바람과 파도에 이리저리 움직였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배가 출렁거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로 그때 민 순경은 빠른 손놀림으로 기름덩어리를 걷어냈다.
거센 풍랑 속 뜰채 하나 쥐고 기름찌꺼기와 ‘악전고투’
뜰채를 양동이 위에 올리자 강진영 수경과 박준수 수경이 기름찌꺼기를 흡착포로 닦아냈다. 끈적끈적한 기름찌꺼기들은 탁탁 털어도 떨어지지 않아 일일이 씻어내야 했다. 어쩌면 ‘뜰채로 건져냈다’다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이들의 힘든 작업과 안타까운 심정을 다 나타내지 못해 미안했다. 민병웅 순경은 “처음에는 떠도 떠도 나타나는 기름덩어리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아무런 느낌도 안 들고 기름을 보면 그냥 떠낸다”고 말했다.
그렇게 1시간여 기름찌꺼기와 싸웠을까. 거센 풍랑 속에 뜰채 하나 쥐고 파도따라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기름찌꺼기와 ‘악전고투’를 하는 사이,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부는데도 방제복 안과 장화 속, 고무장갑과 목장갑을 이중으로 낀 손바닥에 땀이 서렸다.
배 뒤편 펄럭이는 태극기마저 기름찌꺼기로 얼룩져
갑판원 막내인 전상민 일경이 함께 탄 YTN 방송 카메라와 인터뷰를 했다. “파도랑 바람 때문에 힘들지만 열심히 해야죠.” 열흘이 넘는 출동으로 야윈 얼굴에 군기 든 모범답안이지만, 다들 피해 어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정도 추위와 고생은 참을만 하다고 했다.
심한 파도로 TV카메라맨이 넘어질까 봐 보조원이 허리까지 잡아줘야 했지만 P-89정 대원들은 내 집 마당처럼 쉽게 다녔다. 하긴 그들에게 P-89정은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경비를 서고, 방제 작업까지 모든 것을 하는 삶터 그 자체였다. 갑판에서 만난 전 일경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 해경을 지원했다 했다. 이번 방제작업은 그에게 어떤 특별함으로 남을까.
배 뒤에서 파란 바다와 흰색으로 대조를 이루며 펄럭여야 할 태극기 끝이 기름에 얼룩져 있었다. “기름찌꺼기가 이리저리 움직여 배의 앞, 옆, 뒤에서 작업하다 보면 태극기에도 묻게 된다”는 전지훈 순경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태극기인데…’라는 스쳐가는 생각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태극기도 흡착포처럼 기름을 묻혀가며 방제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12시 30분 대천항을 출발한 배는 오도와 보령 앞바다까지 돌아 4시 15분 돌아왔다. 배에는 기름찌꺼기와 타르 덩어리를 담은 양동이 수십개와 검갈색 기름띠가 묻은 흡착포 더미만 가득했다. 손혁기 (pharos@korea.kr) | 등록일 : 2007.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