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데뷔는 기껏 좋게 설명해 봤자 '신선한 충격' 또는 '당돌한 도전'정도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시간이 많이 흘러 난 대학생이 되었고.
음악이란건 예전이나 그때나 나에겐 그저 '세상의 윤활유' 정도의 수준 밖에 안되었다.
한때 동아리 사람들과 밴드를 결성해 보려고 한 적까지 있었으나,
나에겐 그럴만한 음악적 영감도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이란 것이 전혀 없었다.
돈을 들여 음반을 사는 것은 015B해체 이후 중단 되었고,
가끔 치던 기타도 먼지만 쌓였고,
어릴 적 부터 용돈 아끼고 아껴서 모아둔 500장 가까이 되는 악보도
이사가면서 아쉬움 전혀 없이 버렸고, 015B를 제외한 거의 모든 테입과 CD도 어디론가 하나씩 사라졌다.
가끔 듣는 음악이란 카페나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였고
노래방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아니면 구애를 하기위한 수탉의 울음소리 같은 노래들 뿐이었다.
***
그러던 중.
다시 내가 음악을 듣게 된 것은 한 친구 덕이었다.
그 친구는 하루 중 24시간 음악과 함께하는.
그런 친구였다.
전공은 클래식이었고,
학교에서 밴드를 하고,
주말엔 홍대 클럽에서 아예 살았고,
집에는 화려하고 고음질은 아니었지만,
멋진 컴포넌트를 갖고 있었고,
자는 중까지 음악을 틀고 잔다고 했다.
난, 매일 이어폰을 끼고 있는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고,
홍대 클럽에서 노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도 그다지 그 친구를 가까이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20대 초반엔 누구나 다 그렇듯
괜히 방황하고 싶고 괜히 고민이 많고 싶고, 그리고 바쁘고 싶었다.
그때까진 비교적 '낭만적 학자타입'의 분위길 갖고 있던 나는
마치 세상의 모든 고민을 갖고 있는 표정으로 되도 않는 분위기를 잡으려 하곤 했고,
순진했던 그 친구는 내 모습 그대로를 믿었던 것 같다.
-힘들 땐 왜 사람들은 억지로 기분 좋은 노래를 들으면서, 기분 좋아지려고 노력 할까? 난 잘 모르겠어. 차라리 우울할 땐 그 분위기에 녹아 드는 것도 좋을 텐데. 난 잘 안 우울해져서 모르겠지만... 그럴 땐 말이지. 슬픈 노래를 들어. 그럼 꼭 깊고 파란 바다에서 돌고래를 타고 헤엄치는 것 같아.
업타운의 발라드 2곡.
* 96년 그들이 처음 데뷔 했을 때, 나는 고 1이었다.
'다시 만나줘'라는 노래로 데뷔한 그들은
당시 철모르던 우물안의 개구리였던 우리들에게 가장 깊게 심어준 이미지는
'양키' 였다.
전혀 생소한 노래. 그리고 파격적인 가사.
거기에 빠다 섞인 발음.
하지만 사실 가장 우리에게 '비호감'을 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치 어린 시절 할리웃 영화의 뒷.골.목.에나 나올 법한
그들의 거부감이 드는 외모였다.
더구나 그 얼마 되지 않아 핑클, S.E.S 같은 소녀 그룹들이 나오면서 경쟁력이라곤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가창력 뿐이었던 윤미래의 외모는
'놀림감'정도의 수준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는 유교적 관습이 강했고,
또한 그 당시는 한국 음악의 황금기로써,
신승훈 김건모 같은 기라성같은 '국민가수'와
서태지와 아이들, O15B(얘네는 내가 좋아하는 이유로 끼워 넣었다) 등의
'한국화 된 실험적 음악'등이 모든 음악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데뷔는 기껏 좋게 설명해 봤자 '신선한 충격' 또는 '당돌한 도전'정도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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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러 난 대학생이 되었고.
음악이란건 예전이나 그때나 나에겐 그저 '세상의 윤활유' 정도의 수준 밖에 안되었다.
한때 동아리 사람들과 밴드를 결성해 보려고 한 적까지 있었으나,
나에겐 그럴만한 음악적 영감도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이란 것이 전혀 없었다.
돈을 들여 음반을 사는 것은 015B해체 이후 중단 되었고,
가끔 치던 기타도 먼지만 쌓였고,
어릴 적 부터 용돈 아끼고 아껴서 모아둔 500장 가까이 되는 악보도
이사가면서 아쉬움 전혀 없이 버렸고, 015B를 제외한 거의 모든 테입과 CD도 어디론가 하나씩 사라졌다.
가끔 듣는 음악이란 카페나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였고
노래방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아니면 구애를 하기위한 수탉의 울음소리 같은 노래들 뿐이었다.
***
그러던 중.
다시 내가 음악을 듣게 된 것은 한 친구 덕이었다.
그 친구는 하루 중 24시간 음악과 함께하는.
그런 친구였다.
전공은 클래식이었고,
학교에서 밴드를 하고,
주말엔 홍대 클럽에서 아예 살았고,
집에는 화려하고 고음질은 아니었지만,
멋진 컴포넌트를 갖고 있었고,
자는 중까지 음악을 틀고 잔다고 했다.
난, 매일 이어폰을 끼고 있는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고,
홍대 클럽에서 노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도 그다지 그 친구를 가까이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20대 초반엔 누구나 다 그렇듯
괜히 방황하고 싶고 괜히 고민이 많고 싶고, 그리고 바쁘고 싶었다.
그때까진 비교적 '낭만적 학자타입'의 분위길 갖고 있던 나는
마치 세상의 모든 고민을 갖고 있는 표정으로 되도 않는 분위기를 잡으려 하곤 했고,
순진했던 그 친구는 내 모습 그대로를 믿었던 것 같다.
-힘들 땐 왜 사람들은 억지로 기분 좋은 노래를 들으면서, 기분 좋아지려고 노력 할까? 난 잘 모르겠어. 차라리 우울할 땐 그 분위기에 녹아 드는 것도 좋을 텐데. 난 잘 안 우울해져서 모르겠지만... 그럴 땐 말이지. 슬픈 노래를 들어. 그럼 꼭 깊고 파란 바다에서 돌고래를 타고 헤엄치는 것 같아.
이런 요지의 얘기와 함께 그 친구가 들려준 노래는.
오래전 내가 경멸했던.
업타운의 '내안의 그대'였다.
그때서야 난 닫혔던 내 귀가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늘 아무런 생각이나 고민 따위는 없어 보였던 그 친구가
나보다 훨씬 더 큰 사람 처럼 느껴졌고 좋아졌다.
그 후 나와 그 친구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차이나는
서로의 학교 사이에서 자주 만났고
그리고 많은 노래를 들었다.
****
편견과 고정관념.
좀 더 좋게 말하면 고.집.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닫힌 마음은
얼핏 보면 주관있어보여서 멋지지만,
결국은 남을 이해 못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도태되고 만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기의 관념 속에 갇혀 겁쟁이가 되어 버린다.
'흑인애들은 다 갱스터야.'
'취미가 다른 사람하고는 도저히 만날 수가 없어.'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지금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좋은 사람들과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가?
17세의 난, 015B와 유영석이 최곤줄 말 알았던 나에겐
업타운이란 친구들은 너무 강했고 거부감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때는 이런 신선한 충격을 받아들이기엔
난 너무 내공이 약했고, 고정관념에 잡혀 있었다.
이제 마약에 쩌든 것 같았던 정연준의 목소리는
'깊은 바다속을 돌고래를 타고 헤엄치는 심연의 목소리'이고.
외모 때문에 놀림감이 되곤 했던 윤미래의 목소리는
지금도 '추억만이 남아... 내 귓가를 간지럽힌다.'(노래 가사중 일부임)
수년 째 나의 MP3 목록에서 사라지지 않는,
우울할 때 더 아름다운 두 노래
'난 행복해'와 '내안의 그대'
이런 쓸쓸하고 낙담한 연말에,
안주처럼 한번 쯤 다시 들어 보길 바란다.
아울러 시대를 잘 못타고난(요새 데뷔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R&B의 대가인 그들의 새로운 음악을 또 기다려 본다.
2007/12
ROGERDA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