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트리오 그룹 씨야의 리더 남규리는 부잣집 막내딸 같은 외모였지만 실은 굳은살 투성이의 들장미 소녀였다. 가수가 되어 막일을 하는 아버지, 파출부와 음식점 주방일을 하며 4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호강시켜주겠다는 꿈을 잃지 않은 소녀. 거실과 방 하나짜리 반지하에서 여섯 식구가 살아야했지만 한번도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고교시절 보컬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마다 유일한 연습실인 반지하 창고에서 더 크게 노래를 불렀다. 용돈 한번 받아쓴 적 없지만, 부모님이 임플란트 시술을 받게 한 뒤 난생 처음 효도한 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는 남규리. 그녀를 만나보자.
●생활고와 가수의 꿈 때문에 대학에서 제적돼
남규리를 만난 날은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총기탈취범이 검거된 그날 밤이었다. 마침 경기도 광명에서 국군방송 '위문열차' 출연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는 남규리는 "라디오에서 검거 소식을 들었는데 왜 무고한 사람까지 죽여야 했을까요"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군인 오빠들 한동안 비상 걸렸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군인들 대상으로 하는 프로나 행사가 유독 많이 들어와요. 여가수의 경우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군인 오빠들이 좋아해주면 거의 대부분 뜨거든요. 효리 언니도 그랬잖아요."
-이효리씨와 같은 소속사인데, 효리씨 취중토크할 때는 매니저 7~8명이 우르르 왔는데 오늘은 한 명 왔네요.
"아직 제가 효리 언니 만큼은 아니잖아요. 갈 길이 멀지만 저도 언젠가 그런 따뜻한 날이 오지 않을까요?(웃음)"
-술을 잘 못한다면서 취중토크에 응한 이유는?
"저, 안 취해도 솔직할 자신 있거든요. 그리고 주량이 맥주 한 병인데 그만큼만 마시면 되지 않나요?"
-소주 말고 맥주를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소주는 냄새 때문에 잘 못 마시게 돼요. 하지만 맥주는 과자랑 먹기 좋잖아요. 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맥주에 과자 먹으면 기분 좋아지거든요."
-남자친구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겠죠?
"그럼요. 크리스마스 앞두고 진짜 남친 생겼으면 좋겠어요. 요즘들어 부쩍 외롭고 의지하고 싶을 때가 많거든요."
-고향은 서울인가요?
"네. 부모님은 전라도 분들이시고요. 아빠는 순천, 엄마는 장성이세요. 어릴 때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기도 했어요. 다섯살 때 쯤에는 부안 고모집에서 가지 따먹고, 가축들과 놀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요."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가 봐요.
"네. 명지대 실용음악과 03학번인데 신입생 때 선배들이 무조건 소주 한 병씩 마시라고 해서 악으로 깡으로 마셨다가 밤새 토한 적이 있어요. 안주도 동치미 국물이 전부였거든요. 소주 보면 그때 악몽이 떠올라서 가슴 철렁할 때가 많아요."
-적당히 버리거나 요령을 피우면 되잖아요?
"선배들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이고 다들 참고 마시는 분위기라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아직 졸업을 안 했던데 휴학중인가요?
"아니요. 아마 미등록 제적됐을 거예요. 한 학기만 마치고 휴학을 거듭했거든요. 그때 가수하겠다고 오디션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일단 돈이 필요하더라고요. 부모님한테 손 벌릴 순 없으니까 알바를 뛰어야 했죠."
●"커피숍 일할 때 유명 가수에게 대시 받았어요"
-주로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나요?
"커피숍 서빙도 해봤고, 버거킹에서도 일해봤어요. 노트북 거리 판촉 행사 때는 도우미도 해봤고요. 가장 짭짤한 건 CF 코러스였죠. 한 곡당 15만원씩 받았으니까요."
-햄버거 매장에서는 얼마나 일했어요?
"한 4~5개월이요. 대학로와 노량진에서 일했는데 무엇보다 햄버거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되게 좋았어요.(웃음) 그때만 해도 주문할 때 치즈 한 장 추가할까, 말까로 '갈등 때리던' 시기였잖아요. 주방에서 햄버거 세팅하는 게 제 담당이었어요."
-커피숍에선 외모 때문에 남자들 시선 깨나 끌었겠어요.
"가요 기획사 대부분이 청담동쪽에 몰려 있어서 일부러 그쪽 커피숍에서 일했어요. 오디션 보러 다녀야 하니까 시간도 아껴야 했거든요. 짓궂은 손님 많았죠. 명함 주면서 '언제 끝나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노골적으로 '사귀자'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런 사람 중엔 제가 끌리는 사람이 없었어요.(웃음)"
-혹시 기억에 남는 손님은?
"아, 이건 처음 말하는 건데 그때 지금은 유명해진 가수 분이 저한테 사귀자고 했어요. 제가 버블티숍에서 일할 때 거의 매일 같이 와서 버블티를 드셨는데 제가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옮기자 그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쪽으로 오시더라고요. 그러더니 어느날 '좋아한다'며 '가수 준비하는 사람인데 사귀자'고 하는 거예요. 그땐 오로지 빨리 돈 벌어서 오디션 봐야 한다는 생각이 굴뚝 같을 때라 연애가 사치였어요. 완곡하게 거절했죠. 그래서 그런지 데뷔한 뒤 대기실이나 행사장에서 그분을 몇 번 마주쳤는데 아는 척을 안 하시더라고요.(웃음)"
-알바 해서 돈은 많이 벌었나요?
"네. 택시 한 번 안 타고 모아서 500만원까지 됐어요. 엄마한테 맡겨놓았죠."
-'지름신'이 올 때는 어떻게 참아요?
"집 밖에 안 다니는 게 상책이에요. 아무래도 보면 사고 싶으니까요. 알바할 때 동대문에서 3만5000원 주고 산 청바지 한 벌을 1년 동안 입고 다녔어요. 그랬더니 언니들이 독하다며 '나중에 성공하면 청바지를 가보로 물려주라'고 말하더라고요. 고교 때도 보컬 학원 다니는 애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그나마 컴퓨터라도 있었던 게 다행이었죠."
-아, 컴퓨터 음악으로 연습했나 봐요?
"아니, 그거 말고 검색이요. 인터넷에 '노래 잘 부르는 법' '바이브레이션 잘 하는 법' '허스키한 목소리 나게 하는 법' 같은 걸 검색해서 출력한 뒤 혼자 공부했어요. 좀 무식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몰라요."
-다음달 나오는 2.5집 뮤직비디오에 또 출연했어요. 두 번째죠?
"네. '슬픈 발걸음-구두2' 뮤비에서 룸살롱 아가씨로 나와요. 병으로 머리를 맞는 장면 촬영하면서 진짜 머리가 찢어져 피가 났어요. 어찌나 아프던지, 감독님이 컷 하고 달려오는데 얼굴은 웃는데 피 나죠, 눈물 나죠… 이런 게 정말 대략난감이구나 싶었어요.(웃음) 연기도 알바할 때 '백색의 모놀로그'라는 책을 보면서 혼자 공부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에요."
●포기하고 싶을 때 용기 준 사람은 엄마
-처음엔 다른 기획사에 픽업됐었죠?
"커피숍에서 알바할 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제가 일하는 곳에 이수만, 양현석 사장님이 손님으로 온 거예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죠. 어떻게든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다 싶어서 꾀를 냈어요."
-어떤 꾀요?
"일단 제 돈으로 그분들이 주문한 커피 외에 아이스티를 서비스로 갖다 드렸어요. 직원용으로 꽉꽉 담아서요. 그런데 아이스티 온 것도 모르고 계속 얘기만 하시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종이에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구구절절히 사연을 적어서 가실 때 내밀었죠. 그런데 저 같은 애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별말 없이 가시더라고요."
-그게 끝인가요?
"아니요. 양현석 사장님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디션 볼 기회를 잡은 거죠. 그때 하도 낙방을 많이 해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태였거든요. 데모 CD 들려드리고, 춤도 제가 먼저 '춰볼까요' 물었어요. 그런데 굳이 안 춰도 된다는 거예요. 준비를 워낙 많이 한 상태라 '그러지 마시고 한번 보시라'면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노래에 맞춰 춤까지 췄죠. 연습생으로 뽑혔고, 1년간 그쪽에서 생활했는데 피치 못할 이유 때문에 짐을 싸게 됐어요. 2004년이었는데 그때가 최고 위기였어요."
-절망감이었나요?
"네. 대인기피증까지 겪었으니까요. 홍대에서 언더밴드로 활동할까도 고민했었죠. 그러다가 그동안 가수 되는 걸 반대했던 엄마한테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좋아하실 줄 알았던 엄마가 오히려 '후회하지 않겠냐. 끝까지 도전해봐라'라며 용기를 주시는 거예요. 그날 엄마 부둥켜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고맙기도 하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조성모·SG워너비를 키워낸 김광수 사장과는 어떻게 만난 건가요?
"바이브의 (류)재현 오빠가 소개해줬어요. 오디션에서 윤정희와 박화요비 노래를 불렀는데 좋게 봐주셔서 그날부터 다시 지하연습실에서 하루 10시간 노래하고 춤추는 연습생이 됐죠."
-자신에게 연민이 느껴질 때는 어떻게 다독여주나요?
"그냥 울어요. 지칠 때까지 울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안 되겠다 싶으면 울면서 미친듯이 글을 쓰는 습관이 있어요. 벌써 세 권이나 됐는데 지금 보면 유치하지만 눈물 자국 보면 숙연해지죠. 게을러진다 싶을 때마다 들춰보는데 제겐 회초리 같은 보물이에요."
-그밖의 취미나 특기는?
"뭐든 두 글자로 줄이는 걸 좋아하고, 네일아트 사랑해요. 삼겹살도 4인분까지 먹을 만큼 식신 기질도 있고요.(웃음)"
●"반지하 단칸방 옆 창고가 개인 연습실이었어요"
-가수들은 데뷔하면 일단 성공한 거네요.
"그럼요. 데뷔란 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거거든요. 씨야도 처음엔 반신반의 했어요. 사무실에선 준비하라며 팀 이름까지 지어줬지만 첫방송 잡힐 때까지는 몰라요.(웃음) 실망을 너무 자주 해봐서 아예 기대를 안 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음반 녹음할 때 작곡가나 프로듀서들이 그렇게 엄하다면서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눈물 쏙 빼고 군기 잡는 분들이 많으시죠. 군인들도 사격하기 전에 특히 기합 많이 받잖아요. 차라리 험한 말 하는 분이 나아요. 계속 '다시 하자'만 반복하면 정말 공포스럽죠. 저희들도 녹음하면서 화장실에서 눈 퉁퉁 부을 때까지 엄청 울었어요. 참 희한한 건 그렇게 마음이 아파봐야 슬픈 노래가 잘 된다는 거예요."
-가수 된 뒤 언제 가장 기뻤나요?
"부모님 임플란트 해드렸을 때요. 아빠가 환갑이 넘으셨고 엄마도 쉰이 넘으셔서 고기를 못 드시길래 치과에 모시고 갔어요. 딸 덕분에 호강한다고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가족들한테 '끝순이(막내딸)만 믿어라. 내가 집도 지상에서 살게 해주고, 차도 사주겠다'고 큰소리 쳤거든요. 엄마는 저와 한 달간 '투쟁' 끝에 얼마 전 식당일을 그만두셨어요. 허리랑 발이 안 좋으시거든요."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힘들었나요?
"아니요. 어릴 때는 아빠가 건물을 몇 채 갖고 계셔서 꽤 유복했는데 보증을 잘못 서고 사기를 당해서 하루 아침에 망했어요. 언니 둘에 여덟살 아래인 남동생까지 여섯 식구가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았어요. 인형은커녕 옷도 언니들 옷을 죄다 물려받아 입었죠. 어릴 때부터 내 것이 아닌 건 빨리 포기하는 법을 저절로 터득하게 됐어요. 걸스카우트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운동장에서 야영할 때 몰래 가서 구경했던 기억이 나요."
-노래 연습은 주로 어디에서 했어요?
"신대방동 반지하 단칸방 살 때 개를 기르던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가 제 연습실이었어요. 그때 병 걸려서 버려진 개를 주워서 키웠는데 그 녀석이 복덩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원망해본 적 있죠?
"중3때 딱 한 번이요. 그날도 창고에서 노래 연습하는데 아빠가 시끄럽다고 혼을 내시는 거예요. 그때 서러워서 '아빠가 해준 게 뭐 있냐'며 대들었는데 아빠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몰래 우시는 걸 봤어요. 그때 부모님께 절대 상처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제가 양념통닭 좋아하는데 아빠가 그날 친구들하고 닭 사먹으라고 3만원 주신 것도 잊지 않고 있어요."
-지금 지상에 사니까 좋죠?
"그럼요. 집이 계단 위에 있다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 방도 세 개고, 화장실도 두 개나 있어요. 큰언니가 1월에 결혼하는데 제가 축가 불러주기로 했어요. 저는 메이크업 일 하는 둘째 언니랑 같이 살고, 남동생은 고등학생이에요."
-끝으로 살면서 가장 두려운 건 뭔가요.
"인기도, 돈도 떨어지는 건 하나도 겁나지 않아요. 제가 진짜 두려운 건 나태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어른들이 돈이나 인기도 포만감이 있을 때 특히 조심하라고 그러잖아요. 저를 알아봐달라고 떼쓰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누군가를 사랑하듯 노래만 열심히 할 겁니다."
이여자가 멋진이유..
여성 트리오 그룹 씨야의 리더 남규리는 부잣집 막내딸 같은 외모였지만 실은 굳은살 투성이의 들장미 소녀였다. 가수가 되어 막일을 하는 아버지, 파출부와 음식점 주방일을 하며 4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호강시켜주겠다는 꿈을 잃지 않은 소녀. 거실과 방 하나짜리 반지하에서 여섯 식구가 살아야했지만 한번도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고교시절 보컬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마다 유일한 연습실인 반지하 창고에서 더 크게 노래를 불렀다. 용돈 한번 받아쓴 적 없지만, 부모님이 임플란트 시술을 받게 한 뒤 난생 처음 효도한 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는 남규리. 그녀를 만나보자.
●생활고와 가수의 꿈 때문에 대학에서 제적돼
남규리를 만난 날은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총기탈취범이 검거된 그날 밤이었다. 마침 경기도 광명에서 국군방송 '위문열차' 출연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는 남규리는 "라디오에서 검거 소식을 들었는데 왜 무고한 사람까지 죽여야 했을까요"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군인 오빠들 한동안 비상 걸렸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군인들 대상으로 하는 프로나 행사가 유독 많이 들어와요. 여가수의 경우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군인 오빠들이 좋아해주면 거의 대부분 뜨거든요. 효리 언니도 그랬잖아요."
-이효리씨와 같은 소속사인데, 효리씨 취중토크할 때는 매니저 7~8명이 우르르 왔는데 오늘은 한 명 왔네요.
"아직 제가 효리 언니 만큼은 아니잖아요. 갈 길이 멀지만 저도 언젠가 그런 따뜻한 날이 오지 않을까요?(웃음)"
-술을 잘 못한다면서 취중토크에 응한 이유는?
"저, 안 취해도 솔직할 자신 있거든요. 그리고 주량이 맥주 한 병인데 그만큼만 마시면 되지 않나요?"
-소주 말고 맥주를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소주는 냄새 때문에 잘 못 마시게 돼요. 하지만 맥주는 과자랑 먹기 좋잖아요. 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맥주에 과자 먹으면 기분 좋아지거든요."
-남자친구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겠죠?
"그럼요. 크리스마스 앞두고 진짜 남친 생겼으면 좋겠어요. 요즘들어 부쩍 외롭고 의지하고 싶을 때가 많거든요."
-고향은 서울인가요?
"네. 부모님은 전라도 분들이시고요. 아빠는 순천, 엄마는 장성이세요. 어릴 때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기도 했어요. 다섯살 때 쯤에는 부안 고모집에서 가지 따먹고, 가축들과 놀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요."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가 봐요.
"네. 명지대 실용음악과 03학번인데 신입생 때 선배들이 무조건 소주 한 병씩 마시라고 해서 악으로 깡으로 마셨다가 밤새 토한 적이 있어요. 안주도 동치미 국물이 전부였거든요. 소주 보면 그때 악몽이 떠올라서 가슴 철렁할 때가 많아요."
-적당히 버리거나 요령을 피우면 되잖아요?
"선배들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이고 다들 참고 마시는 분위기라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아직 졸업을 안 했던데 휴학중인가요?
"아니요. 아마 미등록 제적됐을 거예요. 한 학기만 마치고 휴학을 거듭했거든요. 그때 가수하겠다고 오디션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일단 돈이 필요하더라고요. 부모님한테 손 벌릴 순 없으니까 알바를 뛰어야 했죠."
●"커피숍 일할 때 유명 가수에게 대시 받았어요"
-주로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나요?
"커피숍 서빙도 해봤고, 버거킹에서도 일해봤어요. 노트북 거리 판촉 행사 때는 도우미도 해봤고요. 가장 짭짤한 건 CF 코러스였죠. 한 곡당 15만원씩 받았으니까요."
-햄버거 매장에서는 얼마나 일했어요?
"한 4~5개월이요. 대학로와 노량진에서 일했는데 무엇보다 햄버거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되게 좋았어요.(웃음) 그때만 해도 주문할 때 치즈 한 장 추가할까, 말까로 '갈등 때리던' 시기였잖아요. 주방에서 햄버거 세팅하는 게 제 담당이었어요."
-커피숍에선 외모 때문에 남자들 시선 깨나 끌었겠어요.
"가요 기획사 대부분이 청담동쪽에 몰려 있어서 일부러 그쪽 커피숍에서 일했어요. 오디션 보러 다녀야 하니까 시간도 아껴야 했거든요. 짓궂은 손님 많았죠. 명함 주면서 '언제 끝나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노골적으로 '사귀자'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런 사람 중엔 제가 끌리는 사람이 없었어요.(웃음)"
-혹시 기억에 남는 손님은?
"아, 이건 처음 말하는 건데 그때 지금은 유명해진 가수 분이 저한테 사귀자고 했어요. 제가 버블티숍에서 일할 때 거의 매일 같이 와서 버블티를 드셨는데 제가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옮기자 그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쪽으로 오시더라고요. 그러더니 어느날 '좋아한다'며 '가수 준비하는 사람인데 사귀자'고 하는 거예요. 그땐 오로지 빨리 돈 벌어서 오디션 봐야 한다는 생각이 굴뚝 같을 때라 연애가 사치였어요. 완곡하게 거절했죠. 그래서 그런지 데뷔한 뒤 대기실이나 행사장에서 그분을 몇 번 마주쳤는데 아는 척을 안 하시더라고요.(웃음)"
-알바 해서 돈은 많이 벌었나요?
"네. 택시 한 번 안 타고 모아서 500만원까지 됐어요. 엄마한테 맡겨놓았죠."
-'지름신'이 올 때는 어떻게 참아요?
"집 밖에 안 다니는 게 상책이에요. 아무래도 보면 사고 싶으니까요. 알바할 때 동대문에서 3만5000원 주고 산 청바지 한 벌을 1년 동안 입고 다녔어요. 그랬더니 언니들이 독하다며 '나중에 성공하면 청바지를 가보로 물려주라'고 말하더라고요. 고교 때도 보컬 학원 다니는 애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그나마 컴퓨터라도 있었던 게 다행이었죠."
-아, 컴퓨터 음악으로 연습했나 봐요?
"아니, 그거 말고 검색이요. 인터넷에 '노래 잘 부르는 법' '바이브레이션 잘 하는 법' '허스키한 목소리 나게 하는 법' 같은 걸 검색해서 출력한 뒤 혼자 공부했어요. 좀 무식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몰라요."
-다음달 나오는 2.5집 뮤직비디오에 또 출연했어요. 두 번째죠?
"네. '슬픈 발걸음-구두2' 뮤비에서 룸살롱 아가씨로 나와요. 병으로 머리를 맞는 장면 촬영하면서 진짜 머리가 찢어져 피가 났어요. 어찌나 아프던지, 감독님이 컷 하고 달려오는데 얼굴은 웃는데 피 나죠, 눈물 나죠… 이런 게 정말 대략난감이구나 싶었어요.(웃음) 연기도 알바할 때 '백색의 모놀로그'라는 책을 보면서 혼자 공부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에요."
●포기하고 싶을 때 용기 준 사람은 엄마
-처음엔 다른 기획사에 픽업됐었죠?
"커피숍에서 알바할 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제가 일하는 곳에 이수만, 양현석 사장님이 손님으로 온 거예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죠. 어떻게든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다 싶어서 꾀를 냈어요."
-어떤 꾀요?
"일단 제 돈으로 그분들이 주문한 커피 외에 아이스티를 서비스로 갖다 드렸어요. 직원용으로 꽉꽉 담아서요. 그런데 아이스티 온 것도 모르고 계속 얘기만 하시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종이에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구구절절히 사연을 적어서 가실 때 내밀었죠. 그런데 저 같은 애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별말 없이 가시더라고요."
-그게 끝인가요?
"아니요. 양현석 사장님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디션 볼 기회를 잡은 거죠. 그때 하도 낙방을 많이 해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태였거든요. 데모 CD 들려드리고, 춤도 제가 먼저 '춰볼까요' 물었어요. 그런데 굳이 안 춰도 된다는 거예요. 준비를 워낙 많이 한 상태라 '그러지 마시고 한번 보시라'면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노래에 맞춰 춤까지 췄죠. 연습생으로 뽑혔고, 1년간 그쪽에서 생활했는데 피치 못할 이유 때문에 짐을 싸게 됐어요. 2004년이었는데 그때가 최고 위기였어요."
-절망감이었나요?
"네. 대인기피증까지 겪었으니까요. 홍대에서 언더밴드로 활동할까도 고민했었죠. 그러다가 그동안 가수 되는 걸 반대했던 엄마한테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좋아하실 줄 알았던 엄마가 오히려 '후회하지 않겠냐. 끝까지 도전해봐라'라며 용기를 주시는 거예요. 그날 엄마 부둥켜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고맙기도 하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조성모·SG워너비를 키워낸 김광수 사장과는 어떻게 만난 건가요?
"바이브의 (류)재현 오빠가 소개해줬어요. 오디션에서 윤정희와 박화요비 노래를 불렀는데 좋게 봐주셔서 그날부터 다시 지하연습실에서 하루 10시간 노래하고 춤추는 연습생이 됐죠."
-자신에게 연민이 느껴질 때는 어떻게 다독여주나요?
"그냥 울어요. 지칠 때까지 울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안 되겠다 싶으면 울면서 미친듯이 글을 쓰는 습관이 있어요. 벌써 세 권이나 됐는데 지금 보면 유치하지만 눈물 자국 보면 숙연해지죠. 게을러진다 싶을 때마다 들춰보는데 제겐 회초리 같은 보물이에요."
-그밖의 취미나 특기는?
"뭐든 두 글자로 줄이는 걸 좋아하고, 네일아트 사랑해요. 삼겹살도 4인분까지 먹을 만큼 식신 기질도 있고요.(웃음)"
●"반지하 단칸방 옆 창고가 개인 연습실이었어요"
-가수들은 데뷔하면 일단 성공한 거네요.
"그럼요. 데뷔란 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거거든요. 씨야도 처음엔 반신반의 했어요. 사무실에선 준비하라며 팀 이름까지 지어줬지만 첫방송 잡힐 때까지는 몰라요.(웃음) 실망을 너무 자주 해봐서 아예 기대를 안 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음반 녹음할 때 작곡가나 프로듀서들이 그렇게 엄하다면서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눈물 쏙 빼고 군기 잡는 분들이 많으시죠. 군인들도 사격하기 전에 특히 기합 많이 받잖아요. 차라리 험한 말 하는 분이 나아요. 계속 '다시 하자'만 반복하면 정말 공포스럽죠. 저희들도 녹음하면서 화장실에서 눈 퉁퉁 부을 때까지 엄청 울었어요. 참 희한한 건 그렇게 마음이 아파봐야 슬픈 노래가 잘 된다는 거예요."
-가수 된 뒤 언제 가장 기뻤나요?
"부모님 임플란트 해드렸을 때요. 아빠가 환갑이 넘으셨고 엄마도 쉰이 넘으셔서 고기를 못 드시길래 치과에 모시고 갔어요. 딸 덕분에 호강한다고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가족들한테 '끝순이(막내딸)만 믿어라. 내가 집도 지상에서 살게 해주고, 차도 사주겠다'고 큰소리 쳤거든요. 엄마는 저와 한 달간 '투쟁' 끝에 얼마 전 식당일을 그만두셨어요. 허리랑 발이 안 좋으시거든요."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힘들었나요?
"아니요. 어릴 때는 아빠가 건물을 몇 채 갖고 계셔서 꽤 유복했는데 보증을 잘못 서고 사기를 당해서 하루 아침에 망했어요. 언니 둘에 여덟살 아래인 남동생까지 여섯 식구가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았어요. 인형은커녕 옷도 언니들 옷을 죄다 물려받아 입었죠. 어릴 때부터 내 것이 아닌 건 빨리 포기하는 법을 저절로 터득하게 됐어요. 걸스카우트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운동장에서 야영할 때 몰래 가서 구경했던 기억이 나요."
-노래 연습은 주로 어디에서 했어요?
"신대방동 반지하 단칸방 살 때 개를 기르던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가 제 연습실이었어요. 그때 병 걸려서 버려진 개를 주워서 키웠는데 그 녀석이 복덩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원망해본 적 있죠?
"중3때 딱 한 번이요. 그날도 창고에서 노래 연습하는데 아빠가 시끄럽다고 혼을 내시는 거예요. 그때 서러워서 '아빠가 해준 게 뭐 있냐'며 대들었는데 아빠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몰래 우시는 걸 봤어요. 그때 부모님께 절대 상처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제가 양념통닭 좋아하는데 아빠가 그날 친구들하고 닭 사먹으라고 3만원 주신 것도 잊지 않고 있어요."
-지금 지상에 사니까 좋죠?
"그럼요. 집이 계단 위에 있다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 방도 세 개고, 화장실도 두 개나 있어요. 큰언니가 1월에 결혼하는데 제가 축가 불러주기로 했어요. 저는 메이크업 일 하는 둘째 언니랑 같이 살고, 남동생은 고등학생이에요."
-끝으로 살면서 가장 두려운 건 뭔가요.
"인기도, 돈도 떨어지는 건 하나도 겁나지 않아요. 제가 진짜 두려운 건 나태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어른들이 돈이나 인기도 포만감이 있을 때 특히 조심하라고 그러잖아요. 저를 알아봐달라고 떼쓰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누군가를 사랑하듯 노래만 열심히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