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사건들은 ‘거울’이라네

김현수2007.12.26
조회127

 

 

세상의 사건들은 ‘거울’이라네

 

친구여,
일전에 보내준 티켓으로 우리 가족이 좋은 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 고마웠네. 오늘도 이 편지가 성경에 대해, 신앙에 대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전과는 확실히 비교할 수 없는 문명의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네. 혁신적인 발견 및 발명들이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남으로써 인간의 삶은 더욱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지고 있음은 자네도 잘 알겠지. 그래서인지 도처에서 ‘인간에겐 불가능이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위험한 도전들이 많이 행해지고 있는 것 같네.

그러나 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복되는 고민들이 있지. 즉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연의 삶이 무엇인가?’, ‘어떤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인가?’ 라는 자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심연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지. 그러나 이러한 본질을 향한 몸부림은 우리의 삶에서는 애써 외면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하지만 때때로 죽음의 문제가 나올 때마다, 그것도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문제를 만날 때마다 인간은 겸손해지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비로소 가지게 되는 것 같다네.

우리는 금세기 최악의 자연재해를 당했던 가슴 아픈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약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진으로 인한 해일로 우리 곁을 떠나기도 했고, 지금 이라크에서만 미군을 포함하여 수 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전쟁의 피해는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네.

이러한 일들이 현대사회에서 가능하리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우리의 충격은 더 큰 것 같네. 바다 해일의 경우에도 되돌아보면, 전 세계는 한 마음으로 사고를 당한 많은 사람들의 처지를 위로하고 도움의 직ㆍ간접적인 원인들을 제공하였고, 사고 장면들이 생생하게 안방으로 전해지면서 죽음이라는 문제가 주는 엄청난 무게에 한 마음으로 슬픔을 느끼게 되었다네. 일시적이겠지만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이 거대한 사건들 앞에서 가지게 되었다고 하겠지.

그런 면에서 이 사건은 살아있는 우리 인간의 무력함과 추함을 다시금 되짚는 거울 같은 사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물질만능주의로 인간 본질의 문제를 외면한 채로 살아가고 있던 현대에 예기치 못한 큰 불행들이 하나의 큰 경종의 사건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네.

역사는 시대마다 비슷한 슬프고 비극적인 큰 사건들이 있었음을 또한 증언해 주고 있다네. 이러한 비극적 사건들은 국지적이었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이것은 그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그 사건을 면할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네.

그런데 성경에 ‘지구상의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큰 사건이 있었다’고 증언하는 바, 바로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날이라네.

태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은 아름답고 질서가 있었지. 그 가운데 인간은 으뜸이었다네.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창조주의 모습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지.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네.

그러나 곧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급기야는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자신의 존귀함이나 이웃의 존귀함을 잊어버린 채 힘의 논리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말았다네. 죽고 죽이는 모습이 일어나게 된 것이지. 창세기 4장에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네.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칠십칠 배로다.”

이러한 모습은 급기야는 통제 불능의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지. 이것을 창세기 6장에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네.

이러한 통제 불능의 모습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였지. 이 심판은 물로써 이루어졌는데, 이 물의 심판이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남으로써 땅에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네. 단 방주 속에 있었던 사람들과 짐승들은 예외였고. 심판 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은 바로 노아에 의해 만들어졌던 방주를 통해만 있었다네.

사람의 죄악이 너무 크고 많았던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이 노아였다네. 성경은 노아를 ‘의인’이라고 말한다네. 이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며, 자신의 삶을 거룩히 함으로써 당시 만연한 죄악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살았음을 의미한다네. 성경은 이러한 노아를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지. 이러한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었으므로 방주를 만들어 심판을 면하라고 말씀하셨다네.

이 방주를 만드는 시간이 성경에는 대략 120년으로 나오고 있지. 120년간의 방주를 제조하는 동안,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람들은 왜 방주를 만드는지에 대해 들었을 것임이 분명하지 않겠나. ‘하나님께서 죄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으시고 심판 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것이 분명할 것이라네. 그러나 방주에 들어온 사람은 노아와 그의 가족 8명뿐이었지. 이들 외에 어느 누구도 방주에 들어오지 않았다네.

하나님께서 120년의 기회를 사람들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끝내 물의 심판으로 다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결말이라네. 우리 인간은 전능한 존재들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죽음이라는 문제가 닥칠 때마다 여실히 드러났던 것이지.

친구여,
죽음은 늘 우리 가까이 있지만 그럼에도 예기치 못한 죽음들은 분명히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겠나?

성경은 분명히 마지막 있을 심판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다네. 처음 심판은 물에 의한 것이었지만 마지막 심판은 불로써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그리고 노아의 방주처럼 우리 인간이 구원을 얻을 길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함을 통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으로 구원을 받게 되고 우리는 비로소 인생이 이 땅에 온 목적을 성취하며 살아가게 된 것이라네.

사랑하는 친구여,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해 심판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네.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신다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이루어진다네. 이 예수님을 친구와 함께 믿게 되는 날을 기대하면서, 추운겨울이지만 늘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네. 또 편지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