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연구학교, 시범학교가 아닌 학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창의성, 독서, 방과후 학교, 혁신 등등의 다양한 타이틀을 달고 시범학교, 연구학교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운영실적 보고서에 따라 등수도 매겨지고 상금도 나온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많은 시범연구가 실제 교육현장에서 얼만큼 실효를 거두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시범운영 보고서에서 운영 결과 비효율적이었다, 잘못됐다, 등의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모든 운영 보고서가 잘 됐다, 효과적이었다는 논조로 작성된다. 그렇게 많은 시범연구가 성공적이었는데도 왜 우리 교육현장은 아직 그대로인가.
교사 집단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연구들이 탄탄한 지원을 받는 체제였다면 이런 문제는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학교, 시범학교가 교장, 교감의 명성과 승진점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한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지원을 하기 전에 학교 전체 교원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가 생략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돼도 그만이고 만약에 따내게 되면 그때 가서 밀어붙이자는 계산이다. 안돼도 그만이지만 일이 성사되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범연구가 제대로 될 리 없음에도 어쨌거나 보고서는 만들어지고 제출된다. 형식적이고 비효율적인 행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높으신 분'의 의욕적인 추진과 '아랫 것들'은 따로 놀기 마련이다. 구성원과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일체의 의사결정에 신이 날리 만무하다. 일은 '아랫 것들'이 하고 감투는 '높으신 분들'이 나눠가지신다.
얼마전 신학기를 맞은 회식자리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담소를 나누고 있던 교사들에게 종업원이 다가와 하는 말이, "교장 선생님 오시기 전에는 음식 드시지 마시랍니다" 였다. 어안이 벙벙한 우리들에게 회식연을 열면서 높으신 분이 한마디 하신다. 이번에도 역시 교사들의 의견반영이 일체 이루어지지 않은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잘 부탁드린다"는, "잘 하면 또 상금 탑니다" 는 말만 되풀이 하신다.
개인적인 경로를 통해 캐나다의 중학교 교장선생님 한분이 우리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자기네 학교에도 한국 학생들이 3명 있다면서 한국 학생들의 수학성적이 좋은 이유가 무엇일지, 또 자기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2개 국어 프로그램을 설명하면서 그런 모델이 한국 학교에 괜찮지 않을까 한다는 조심스런 제의도 하셨다. 금발의 캐나다 교장 선생님은 자기 학교의 학생들이 손수 만든 학교 교지(year book)를 펼쳐보이며 학생 하나하나에 대한 코멘트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교지를 건네고는 우리 학교 영어신문도 한부 받아가면서 캐나다 학교와 한국 학교의 교류에도 관심을 보였다. 몇년 전 동창회 주선으로 미국 초등학교에서 교장을 하고 있는 같은 과 선배의 강연회에 간 적이 있었다.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교장이 되기까지 이야기들과 교장이 된 이후 빈민가에 있는 자신의 학교에 학생들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등 60에 가까운 나이에도 정열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우리 학교를 방문한 캐나다인 교장과 더불어 내가 만나고 얘기를 들어본 북미의 교장들은 자기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에 대내외적으로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보였고 따라서, 학교 교육 전반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교장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교육활동을 위한 지원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미 의회에는 30세 미만의 의원들로만 구성된 소집단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참신한 식견과 아이디어는 미국 정부가 만드는 정책에 심심찮게 반영된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고 있는 힐러리와 오바마도 27살의 하원의원을 자기 선거 캠프에 영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우리나라의 거대한 교육시스템에도 이런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건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일까 . "늘 해 먹던 사람들"이 혁신, 개혁이라고 몇년 째 외치고 있지만,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가 시스템에 반영되는 통로가 거의 없다.
교장의 학교
요즘들어 연구학교, 시범학교가 아닌 학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창의성, 독서, 방과후 학교, 혁신 등등의 다양한 타이틀을 달고 시범학교, 연구학교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운영실적 보고서에 따라 등수도 매겨지고 상금도 나온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많은 시범연구가 실제 교육현장에서 얼만큼 실효를 거두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시범운영 보고서에서 운영 결과 비효율적이었다, 잘못됐다, 등의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모든 운영 보고서가 잘 됐다, 효과적이었다는 논조로 작성된다. 그렇게 많은 시범연구가 성공적이었는데도 왜 우리 교육현장은 아직 그대로인가.
교사 집단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연구들이 탄탄한 지원을 받는 체제였다면 이런 문제는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학교, 시범학교가 교장, 교감의 명성과 승진점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한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지원을 하기 전에 학교 전체 교원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가 생략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돼도 그만이고 만약에 따내게 되면 그때 가서 밀어붙이자는 계산이다. 안돼도 그만이지만 일이 성사되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범연구가 제대로 될 리 없음에도 어쨌거나 보고서는 만들어지고 제출된다. 형식적이고 비효율적인 행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높으신 분'의 의욕적인 추진과 '아랫 것들'은 따로 놀기 마련이다. 구성원과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일체의 의사결정에 신이 날리 만무하다. 일은 '아랫 것들'이 하고 감투는 '높으신 분들'이 나눠가지신다.
얼마전 신학기를 맞은 회식자리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담소를 나누고 있던 교사들에게 종업원이 다가와 하는 말이, "교장 선생님 오시기 전에는 음식 드시지 마시랍니다" 였다. 어안이 벙벙한 우리들에게 회식연을 열면서 높으신 분이 한마디 하신다. 이번에도 역시 교사들의 의견반영이 일체 이루어지지 않은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잘 부탁드린다"는, "잘 하면 또 상금 탑니다" 는 말만 되풀이 하신다.
개인적인 경로를 통해 캐나다의 중학교 교장선생님 한분이 우리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자기네 학교에도 한국 학생들이 3명 있다면서 한국 학생들의 수학성적이 좋은 이유가 무엇일지, 또 자기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2개 국어 프로그램을 설명하면서 그런 모델이 한국 학교에 괜찮지 않을까 한다는 조심스런 제의도 하셨다. 금발의 캐나다 교장 선생님은 자기 학교의 학생들이 손수 만든 학교 교지(year book)를 펼쳐보이며 학생 하나하나에 대한 코멘트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교지를 건네고는 우리 학교 영어신문도 한부 받아가면서 캐나다 학교와 한국 학교의 교류에도 관심을 보였다. 몇년 전 동창회 주선으로 미국 초등학교에서 교장을 하고 있는 같은 과 선배의 강연회에 간 적이 있었다.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교장이 되기까지 이야기들과 교장이 된 이후 빈민가에 있는 자신의 학교에 학생들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등 60에 가까운 나이에도 정열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우리 학교를 방문한 캐나다인 교장과 더불어 내가 만나고 얘기를 들어본 북미의 교장들은 자기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에 대내외적으로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보였고 따라서, 학교 교육 전반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교장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교육활동을 위한 지원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미 의회에는 30세 미만의 의원들로만 구성된 소집단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참신한 식견과 아이디어는 미국 정부가 만드는 정책에 심심찮게 반영된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고 있는 힐러리와 오바마도 27살의 하원의원을 자기 선거 캠프에 영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우리나라의 거대한 교육시스템에도 이런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건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일까 . "늘 해 먹던 사람들"이 혁신, 개혁이라고 몇년 째 외치고 있지만,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가 시스템에 반영되는 통로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