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일 1시간씩 운동하기 2. 엄마 잘 보살피기 3. 논문 잘 쓰기 4. 책 많이 읽기 위의 올해 후반기 목표는 표면적으로 100%를 달성했다. 엄마와 잘 지냈고, 두보에 관한 학사논문은 직접 써서 김원선생님한테 A+를 받았다. 반면에 매일 운동을 했는데도 다리는 더욱 안 좋아졌고, 논문 준비를 하느라 두보와 관련된 책 이외의 책들은 별로 보지 못하였다. 이제 7년이라는 긴 시간의 대학 여정이 막을 내린다. 재학기간 이외에 군복무, 어학연수, 휴학, 교환학생 등의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들 모두를 대학생활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나에게 대학생활은 인생의 한 부분이 아닌, 하나의 인생 축소판이었다. 난 그곳에서 인간관계에 드러나는 대표적인 양상을 처음, 중간, 끝 3단계에 걸쳐 체험할 수 있었다. 대학을 갓 들어갔을 때 난 매우 들떠 있었다. 겉멋이 잔뜩 들었고 유명해지고 싶었고, 잘 놀고 외모가 괜찮은 애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1학년 때는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와~하며 보냈다. 2학년 때 군복무와 1년의 휴학을 마치고, 1학년 때와는 상당히 대비되는 차분한 생활을 하였다. 이제는 허영심과 열정이 많이 사라져 일부러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거나, 소위 주류적인 애들 틈에 껴보려는 시도도 그다지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의 지독한 허영심은 날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난 2학년 애들의 주류쪽에 조금이라도 껴보려고 주위에서 알짱거렸고, 후배들에게는 "내가 중문과짱이니 어서 나에게 다가와 살갑게 굴으렴" 하는 생각으로 그들이 나에게 다가왔으면 하는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좌절되었고 적잖은 낙담을 했다. 1년의 어학연수 뒤 3학년 때는 이제는 마음을 비우자 하는 태도를 일관하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에 끼려는 허영과 후배들이 나를 찾아줬으면 하는 기대는 많이 남아 있었다. 3학년 2학기부터 4학년 1학기 때까지가 나의 이런 허영심과 타인에게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의 절정기였다. 3학년 2학기 때 타지생활이라 그런지 난 또 조금씩 사람에 대한 기대와 주류에 끼고픈 마음이 부풀기 시작했다. 2학기가 끝나갈 때쯤 또다시 철저하게 예전과 같은 낙담과 실패를 맛봤고 4학년 1학기가 시작되면서 이제는 정말 마음을 비우자고 매일 매일 이를 갈면서 맹세했다. 그때 사람에 대한 기대를 지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았고 이 반 년이 지나자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때마침 그때 김용옥씨가 쓴 를 읽었는데 無我 無相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4학년 2학기 때 학술제를 도와주면서 많은 어린 후배 애들을 만났는데 이제는 날 거의 제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재차 기대가 꺾이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대학생활의 우여곡절 끝에 내 곁에 믿음이 가는 친구는 세민이와 용식이가 남았다. 아쉽게도 여자 동기 중에선 한 명의 친구도 만들지 못했다. 대학생활을 통해 친구의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자 대학 이외의 어릴 적 친구들과의 관계도 분명하게 정리가 됐다. 믿음이 가는 어릴 적 친구는 조경이뿐이다. 슬픔과 좌절이 많았던만큼 이제는 인간관계의 형성에 꽤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2007.8 - 2007.12 결산
1. 매일 1시간씩 운동하기
2. 엄마 잘 보살피기
3. 논문 잘 쓰기
4. 책 많이 읽기
위의 올해 후반기 목표는 표면적으로 100%를 달성했다.
엄마와 잘 지냈고,
두보에 관한 학사논문은 직접 써서 김원선생님한테 A+를 받았다.
반면에 매일 운동을 했는데도 다리는 더욱 안 좋아졌고,
논문 준비를 하느라
두보와 관련된 책 이외의 책들은 별로 보지 못하였다.
이제 7년이라는 긴 시간의 대학 여정이 막을 내린다.
재학기간 이외에
군복무, 어학연수, 휴학, 교환학생 등의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들 모두를 대학생활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나에게 대학생활은 인생의 한 부분이 아닌,
하나의 인생 축소판이었다.
난 그곳에서 인간관계에 드러나는 대표적인 양상을
처음, 중간, 끝 3단계에 걸쳐 체험할 수 있었다.
대학을 갓 들어갔을 때 난 매우 들떠 있었다.
겉멋이 잔뜩 들었고 유명해지고 싶었고,
잘 놀고 외모가 괜찮은 애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1학년 때는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와~하며 보냈다.
2학년 때 군복무와 1년의 휴학을 마치고,
1학년 때와는 상당히 대비되는 차분한 생활을 하였다.
이제는 허영심과 열정이 많이 사라져
일부러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거나,
소위 주류적인 애들 틈에 껴보려는 시도도
그다지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의 지독한 허영심은 날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난 2학년 애들의 주류쪽에 조금이라도 껴보려고
주위에서 알짱거렸고,
후배들에게는
"내가 중문과짱이니 어서 나에게 다가와 살갑게 굴으렴"
하는 생각으로 그들이 나에게 다가왔으면 하는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좌절되었고 적잖은 낙담을 했다.
1년의 어학연수 뒤 3학년 때는
이제는 마음을 비우자 하는 태도를 일관하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에 끼려는 허영과
후배들이 나를 찾아줬으면 하는 기대는 많이 남아 있었다.
3학년 2학기부터 4학년 1학기 때까지가
나의 이런 허영심과 타인에게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의 절정기였다.
3학년 2학기 때 타지생활이라 그런지
난 또 조금씩 사람에 대한 기대와
주류에 끼고픈 마음이 부풀기 시작했다.
2학기가 끝나갈 때쯤
또다시 철저하게 예전과 같은 낙담과 실패를 맛봤고
4학년 1학기가 시작되면서
이제는 정말 마음을 비우자고 매일 매일 이를 갈면서 맹세했다.
그때 사람에 대한 기대를 지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았고
이 반 년이 지나자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때마침 그때 김용옥씨가 쓴 를 읽었는데
無我 無相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4학년 2학기 때 학술제를 도와주면서
많은 어린 후배 애들을 만났는데
이제는 날 거의 제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재차 기대가 꺾이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대학생활의 우여곡절 끝에
내 곁에 믿음이 가는 친구는 세민이와 용식이가 남았다.
아쉽게도 여자 동기 중에선 한 명의 친구도 만들지 못했다.
대학생활을 통해 친구의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자
대학 이외의 어릴 적 친구들과의 관계도 분명하게 정리가 됐다.
믿음이 가는 어릴 적 친구는 조경이뿐이다.
슬픔과 좌절이 많았던만큼
이제는 인간관계의 형성에 꽤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