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오후 마이클잭슨 노래를 들으며 다시 한번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는가, 깨닫는다. 최고의 팝아티스트, 마이클잭슨,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뮤직비디오에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아티스트였으며 이후 보고 듣는 음악의 새 지평을 연 선구자 였다는 이야기부터 말해야할까,
아니면 불과 13살의 나이에 가창력의 고수들만 도전한다는 Ain't No Sunshine 을 소름끼칠정도로 기가막히게 불러낸 천재소년의 음악인생 시작점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아니면 전문댄서수준의 댄스스킬을 보이면서도 라이브에서 흔들림없는 보이스를 보여주고 자신의 히트곡을 직접 만들어낸 작사,작곡에도 능한 팝의 그 모든것이었다는 것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아니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 2번의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오르게 만든 평생을 일관되게 쏟은 세계평화에 대한 관심과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과 지원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기네스북 2000년도판- 힐더월드재단을 "한 명의 팝스타(마이클 잭슨)가 지원하는 최다 자선 단체" , 마이클 잭슨은 Childhelp USA등 39곳의 자선 단체를 지원함으로 인해 기네스 북에 기록되었다
아니다, 지금이라도 유투브에 가서 최초의 퍼포먼스 리뷰를 쓰게 만들었던 1995년 MTV 댄저러스 퍼포먼스를 봐라, 찰리채플린이 골프 치는 장면,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가 양복을 터는 장면을 비롯 200여가지가 넘는 영화의 장면들을 안무에 응용함으로서 획기적인 안무를 선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금전적 여유가 된다면 댄저러스 투어 부카레스트 공연을 디비디로 한번 사서봐라, 단 1초의 다른 생각조차 허용할 수 없을 만큼 무대에서 보여주는 그 모든것에 압도당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맨인더미뤄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춤을 추지 않아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전율케 하는 노래 역시 잘 부른다는 사실은 정말인지 신의 축복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더 허락된다면 2001년 30주년 솔로데뷔에서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간지나게" 문워크하는 그의 공연을 보라, 30주년 빌리진 엔딩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상당히 멋진 스텝을 보여줬는데 이는 풀라압둘의 말처럼 왼손 올리고 다음에 오른손 올리고 하는 식의 연습으로 단련된 기계적 춤이 아닌 전적으로 그 자신의 필링에 의존한 춤이기에 가능했고 그렇기에 마이클잭슨이 추는 춤은 오로지 그만의 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클잭슨... 그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다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엔터테이너였는지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나는 아티스트였는지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고 있음을 행복해 할것이다.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1억 400만장이란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9곡중 7곡이 빌보드탑텐안에 올랐으며 그래미에서 8개를 휩쓸어 한회 최다수상 기록을 갖게 만든 팝음악 역사상 최고의 파급력을 보여주고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 드릴러로 그는 남들이 평생 꿈꾸는 모든걸 이미 20대 초반에 모두 이루었다.
이어진 이디오피아 난민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유에스 포 아프리카(we are the world)의 전세계적인 히트는 배드앨범의 성공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배드앨범은 한 앨범 최다 1위곡을 배출하고 역사상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드릴러에 이어 당시로선 2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내놓은 댄저러스앨범은 신화의 정점이었다. 91년 11월에 발매되었음에도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으며 몰핑기법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한 블랙오어화이트뮤비는 전세계적으로 무려 5억명이 시청하였고 Mtv 역사상 일주일간 최다 방송 되었다.
이어 자신을 둘러싼 각종 스캔들과 매스컴에 대한 분노가 격하게 담긴 2시디로 구성된 자전적 성격의 앨범 히스토리가 나왔다. 첫 싱글 scream은 빌보드차트 5위 데뷔라는 기록을 세웠고 이어 you are not alone으로 빌보드차트에 최초로 1위 데뷔함으로서 자신이 세운 기록을 깨뜨렸다.
90년후반에 히스토리앨범에 대한 아쉬움이 담긴 블러드온더 댄스플로어앨범을 내놓았고 리믹스앨범 최다판매량을 기록했다.
불과 6장의 정규앨범으로 그는 세계음반판매량 2위에 랭크되었으며 (IFPI출처) 그가 어린시절 리드싱어로 활동한 잭슨파이브는 20위에 올라 음판판매 역사에 있어서도 가히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2007년 그를 기억하는 대중의 지점은 어디에 있을까.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그리움이 남는 건 마이클잭슨 이후 여전히 그의 자장아래 머물며 넘어서지 못한 후배 아티스트들의 탓으로 돌려야 할까 아니면, 한번 시선을 두면 뗄 수 없는 그 마력과도 같은 매력으로 돌려야 할까.
흑인뮤지션의 뮤직비디오는 방영할 수 없다는 엠티비의 불문률을 깨뜨려 이후 흑인뮤지션들의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앞당기고, 음악을 통한 흑백교류, 흑백의 크로스오버를 성공적으로 해냄으로서 그동안 금기시 될 정도로 흑백이 확연히 갈라져 있던 음악계에, 크로스오버가 성공 코드로 자리하게 만들었으며, 예민한 감수성으로 당대 대중의 욕구를 정확히 포착하여 시대를 앞선 음악을 선보이고 창조적인 혁명성으로 트랜드를 이끌었던,,, 천재적인 뮤지션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11살의 나이에 빌보드차트에 1위에 오르고 35살의 나이에 이미 그래미에서 최연소 전설의 아티스트상을 받은 뮤지션에겐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자신의 업적을 스스로 끊임없이 갱신해 나가야하는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2001년 비로소 오르게된 락큰롤명예의 전당은 마이클잭슨을 팝음악 역사상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와 같은 반열에 올려 놓을 수 있는 아티스트로 이미 평가하고 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에 이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며 대중음악사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기록되어 왔으며 기록되고 있다.
(* 마이클잭슨은 잭슨파이브란 이름으로 그룹부문에도 97년 올라 그룹부문 최연소, 솔로부문 최연소로 두번 오르게 되었다.)
엘비스는 죽었고 비틀즈는 해체되었다, 하지만 마이클잭슨은?
그는 엘비스의 비쥬얼과 비틀즈의 음악적재능 모두를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우리곁에 남아있다.
스스로 작사, 작곡, 프로듀싱, 어레인지먼트, 의상, 스타일, 안무, 퍼포먼스, 영상, 자신의 이미지 로고등을 직접 소화해내는 사람은 지금껏 없었다. 그는 고독하겠지만 팝(대중문화)은 천재를 만난 것이다.-빌리지보이스
(* 실물크기이며 대리석으로 만든 제임스 버틀러James Burtler의 작품,
영국에 세워져있음)
자신의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중심지에 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수많은 예술가들과 대중은 그를 사랑했고 존경했다. 그가 보여주고 들여주는 모든것에 감동받았고 영감을 얻었다.
마이클잭슨, 그가 팝의 신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
한낮의 오후 마이클잭슨 노래를 들으며 다시 한번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는가, 깨닫는다. 최고의 팝아티스트, 마이클잭슨,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뮤직비디오에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아티스트였으며 이후 보고 듣는 음악의 새 지평을 연 선구자 였다는 이야기부터 말해야할까,
아니면 불과 13살의 나이에 가창력의 고수들만 도전한다는 Ain't No Sunshine 을 소름끼칠정도로 기가막히게 불러낸 천재소년의 음악인생 시작점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아니면 전문댄서수준의 댄스스킬을 보이면서도 라이브에서 흔들림없는 보이스를 보여주고 자신의 히트곡을 직접 만들어낸 작사,작곡에도 능한 팝의 그 모든것이었다는 것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아니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 2번의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오르게 만든 평생을 일관되게 쏟은 세계평화에 대한 관심과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과 지원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기네스북 2000년도판- 힐더월드재단을 "한 명의 팝스타(마이클 잭슨)가 지원하는 최다 자선 단체" , 마이클 잭슨은 Childhelp USA등 39곳의 자선 단체를 지원함으로 인해 기네스 북에 기록되었다
아니다, 지금이라도 유투브에 가서 최초의 퍼포먼스 리뷰를 쓰게 만들었던 1995년 MTV 댄저러스 퍼포먼스를 봐라, 찰리채플린이 골프 치는 장면,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가 양복을 터는 장면을 비롯 200여가지가 넘는 영화의 장면들을 안무에 응용함으로서 획기적인 안무를 선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금전적 여유가 된다면 댄저러스 투어 부카레스트 공연을 디비디로 한번 사서봐라, 단 1초의 다른 생각조차 허용할 수 없을 만큼 무대에서 보여주는 그 모든것에 압도당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맨인더미뤄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춤을 추지 않아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전율케 하는 노래 역시 잘 부른다는 사실은 정말인지 신의 축복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더 허락된다면 2001년 30주년 솔로데뷔에서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간지나게" 문워크하는 그의 공연을 보라, 30주년 빌리진 엔딩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상당히 멋진 스텝을 보여줬는데 이는 풀라압둘의 말처럼 왼손 올리고 다음에 오른손 올리고 하는 식의 연습으로 단련된 기계적 춤이 아닌 전적으로 그 자신의 필링에 의존한 춤이기에 가능했고 그렇기에 마이클잭슨이 추는 춤은 오로지 그만의 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클잭슨... 그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다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엔터테이너였는지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나는 아티스트였는지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고 있음을 행복해 할것이다.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1억 400만장이란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9곡중 7곡이 빌보드탑텐안에 올랐으며 그래미에서 8개를 휩쓸어 한회 최다수상 기록을 갖게 만든 팝음악 역사상 최고의 파급력을 보여주고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 드릴러로 그는 남들이 평생 꿈꾸는 모든걸 이미 20대 초반에 모두 이루었다.
이어진 이디오피아 난민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유에스 포 아프리카(we are the world)의 전세계적인 히트는 배드앨범의 성공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배드앨범은 한 앨범 최다 1위곡을 배출하고 역사상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드릴러에 이어 당시로선 2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내놓은 댄저러스앨범은 신화의 정점이었다. 91년 11월에 발매되었음에도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으며 몰핑기법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한 블랙오어화이트뮤비는 전세계적으로 무려 5억명이 시청하였고 Mtv 역사상 일주일간 최다 방송 되었다.
이어 자신을 둘러싼 각종 스캔들과 매스컴에 대한 분노가 격하게 담긴 2시디로 구성된 자전적 성격의 앨범 히스토리가 나왔다. 첫 싱글 scream은 빌보드차트 5위 데뷔라는 기록을 세웠고 이어 you are not alone으로 빌보드차트에 최초로 1위 데뷔함으로서 자신이 세운 기록을 깨뜨렸다.
90년후반에 히스토리앨범에 대한 아쉬움이 담긴 블러드온더 댄스플로어앨범을 내놓았고 리믹스앨범 최다판매량을 기록했다.
불과 6장의 정규앨범으로 그는 세계음반판매량 2위에 랭크되었으며 (IFPI출처) 그가 어린시절 리드싱어로 활동한 잭슨파이브는 20위에 올라 음판판매 역사에 있어서도 가히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2007년 그를 기억하는 대중의 지점은 어디에 있을까.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그리움이 남는 건 마이클잭슨 이후 여전히 그의 자장아래 머물며 넘어서지 못한 후배 아티스트들의 탓으로 돌려야 할까 아니면, 한번 시선을 두면 뗄 수 없는 그 마력과도 같은 매력으로 돌려야 할까.
흑인뮤지션의 뮤직비디오는 방영할 수 없다는 엠티비의 불문률을 깨뜨려 이후 흑인뮤지션들의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앞당기고, 음악을 통한 흑백교류, 흑백의 크로스오버를 성공적으로 해냄으로서 그동안 금기시 될 정도로 흑백이 확연히 갈라져 있던 음악계에, 크로스오버가 성공 코드로 자리하게 만들었으며, 예민한 감수성으로 당대 대중의 욕구를 정확히 포착하여 시대를 앞선 음악을 선보이고 창조적인 혁명성으로 트랜드를 이끌었던,,, 천재적인 뮤지션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11살의 나이에 빌보드차트에 1위에 오르고 35살의 나이에 이미 그래미에서 최연소 전설의 아티스트상을 받은 뮤지션에겐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자신의 업적을 스스로 끊임없이 갱신해 나가야하는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2001년 비로소 오르게된 락큰롤명예의 전당은 마이클잭슨을 팝음악 역사상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와 같은 반열에 올려 놓을 수 있는 아티스트로 이미 평가하고 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에 이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며 대중음악사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기록되어 왔으며 기록되고 있다.
(* 마이클잭슨은 잭슨파이브란 이름으로 그룹부문에도 97년 올라 그룹부문 최연소, 솔로부문 최연소로 두번 오르게 되었다.)
엘비스는 죽었고 비틀즈는 해체되었다, 하지만 마이클잭슨은?
그는 엘비스의 비쥬얼과 비틀즈의 음악적재능 모두를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우리곁에 남아있다.
스스로 작사, 작곡, 프로듀싱, 어레인지먼트, 의상, 스타일, 안무, 퍼포먼스, 영상, 자신의 이미지 로고등을 직접 소화해내는 사람은 지금껏 없었다. 그는 고독하겠지만 팝(대중문화)은 천재를 만난 것이다.-빌리지보이스
(* 실물크기이며 대리석으로 만든 제임스 버틀러James Burtler의 작품,
영국에 세워져있음)
자신의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중심지에 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수많은 예술가들과 대중은 그를 사랑했고 존경했다. 그가 보여주고 들여주는 모든것에 감동받았고 영감을 얻었다.
그의 신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는 돌아와야 한다.
the legend continue....
2007년 8월 29일 그의 생일을 기념하여 씀.
출처 : 네이버 지식 in 마이클잭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