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4 대개봉!! 저는 에반게리온 매니아입니다.저번에 부산에서 대회 폐막식때 이것을 개봉했었는데 25분만에 온좌석 매진이 되어 볼수 없었다고 할정도랍니다. 에반게리온 ! 다들기억하시죠 ?! 정말 저도 이만화영화 안지는 6개월 조금 안됩니다하지만 너무 감명깊게 봤으며 일본영화중에 최고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겠네요!! 아래글을 네이버 에서 좋은 글이 많아 몇개 퍼온것입니다 " 안노 히데아키 " 가 말하는 새로운 에반게리온 「에바」는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몇 번이고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한결같이 "다시 일어서"가는 이야기입니다. 조금이라도 앞을 향하려고 하는, "의지"의 이야기입니다.
모호한 고독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가 두렵더라도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각오"의 이야기입니다.
같은 이야기로부터 또다른 형태로 변화해가는
4가지의 작품을, 즐겨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전편[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서]
중편[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파] 2008년 계봉예정 런닝타임:90분
후편[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급] 2008년 여름 "완결편" 과 함꼐 동시 개봉예정 런닝타임:45분.
완결편[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2008년 여름 후편과 동시계봉예정 런닝타임:45분
그리고 에반게리온에 대해서
좋게 평가해주신분들과 안좋게 보신분들 평가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한일의 퇴폐의 미학
얼마전에 읽은 [일본열광]을 떠올리며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생각하면 참으로 묘한 느낌이 든다. 특히 다음의 몇가지가 그러하다.
에반게리온 서! 한국에 개봉된다네요!!
주인공이 몇 번이고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한결같이 "다시 일어서"가는 이야기입니다.
조금이라도 앞을 향하려고 하는, "의지"의 이야기입니다.
모호한 고독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가 두렵더라도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각오"의 이야기입니다.
같은 이야기로부터 또다른 형태로 변화해가는
4가지의 작품을, 즐겨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전편[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서]
중편[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파] 2008년 계봉예정 런닝타임:90분
후편[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급] 2008년 여름 "완결편" 과 함꼐 동시 개봉예정 런닝타임:45분.
완결편[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2008년 여름 후편과 동시계봉예정 런닝타임:45분
그리고 에반게리온에 대해서
좋게 평가해주신분들과 안좋게 보신분들 평가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한일의 퇴폐의 미학얼마전에 읽은 [일본열광]을 떠올리며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생각하면 참으로 묘한 느낌이 든다. 특히 다음의 몇가지가 그러하다.
1.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착한 일본 아이들-베이붐 시대의 일본인들
2. 일본 근대화의 시작-바로 기차역(시작점이라고 표기하는 곳)
3. 소심한 반항-그러나 너무나 작은 반항
1)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이 다가오는 2007년은
일본 여성들이 자유를 외치며 이혼이 급증
(착한 아이로 자라온 일본남성들이 그에 대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메이드 시중 찻집에서 유치한 놀이나 하며 지내는 일)
2) 일본의 불륜(반항) 드라마에는 항상 기차가 나온다.
3) 착한 일본인의 표상으로서의 철도원
특히 착한 아이로 자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여기 주인공들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가장 큰 상처들이다.
대체 왜 착한 아이들로 자라야 한다는 것인가? 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로보트 메카닉물 중 유일하게 자신이 로보트에 타고 있는 것 자체에
고민하는 만화가 이 에반게리온이다.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해야 하는... 그래서 결국 개인은 퇴폐적 정신상태
-비정상적 해결방식을 요구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 퇴폐의 미학은 결코 해결하지 않는다.
종막에 가서 모두가 하나가 되어 마음을 합친다는 다소 황당한 공상과학적
발상도, 결국에는 서로가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결론으로 끝이 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번 9월 1일에 부산영화제에서 열어본 이 새로운 극장판도
이 퇴폐의 미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95년 키노에서는 에반게리온의 주제는 [다 죽어버려라]라고
원령공주는 [살아라]로 정리한 것을 보면 이게 농담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는 내가 속한 사회 속의 한국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기본적으로 한국의 성인들은 [착하게 살지] 않는다.
아니 6.25라는 초유의 전쟁을 겪으며
[무슨 식으로든 살아라]가 되버린 게 한국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뭉쳐서 살아라"
그래서 생존의 문제가 우리 삶의 중심테제가 되버린다.
일본이 국가를 위해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며
작은 반항을 하며 별다른 탈없[이 보이]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우리는 60~80년대부터 살아야 한다는 절대명제 속에서
굶주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반쯤은 미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우린 잘 하고 있어"라고 한다면)
사회적으로는 조용하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며..
한국인들은 미치지는 않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이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전쟁터에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혼란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너무 솔직해서 표현의 극단을 달리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국가주의가 아니라 (아니 일본에 대해서는 국가주의다)
철저히 생존을 위한 가족,연고주의이다.
좋은 연고를 얻기 위해 오늘도 학원에서 죽치고 앉아있을
혹은 도서관에서, 혹은 집에서 미친듯이 좋은 연줄을 위해
싸우는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보라.
일본의 퇴폐성과 우리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그 모습들이 그들 자신의 아버지 세대가 강요한 착한 아이들이라면
우리의 퇴폐성은 무엇일까?
역시 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 것을 이야기하는
-생존을 위해서는 비굴한 것도, 폭력도, 강간도, 그 어떤 것도 참아야 하는
-절대권력에 대한 비굴한 복종도, 군대에서의 절대복종도 모두 참아야 하는
그리고 그 위치에 올랐을 때는 다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무시무시한 퇴폐성이다.
그래서 우직하고, 느린 아이들은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왕따 당하고
사회에서는 패배자로 남는다.
한국 사회는 정직하고,
수단과 방법을 신중히 검토하고,
느리게 나아가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생존의 문제야 말로 유일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쉽게 쉽게 어서어서 풀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적향상이다.
학원에서는 이것이 아주 체계화되어 있다.
하나하나 그 근본을 가르치거나 그 뿌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이 자라면 다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고
출세를 향해 올라가는 법만 배운다.
이건 민주화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내 이전 세대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아무도 인식하지 않는 무의식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무조건 무엇인가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는 종교들이
성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복종이 내재화되어 인간을 퇴폐의 길로 가게 하는 일본인
생존만이 목적이 되어 퇴폐의 길로 가고 있는 한국인
신세대 일본인들은 어쨌든 그 점만은 알고 있으며
결국 일본을 변화시키는 건 거부와 반항의 신세대일 것이다.
그들 아버지 세대가 저지른 국가만을 위한 복종의 끝일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고민하는 예술을 보면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예술은, 문학은, 정치는, 교육은 이제부터라도
생존만이 목적이 아닌, 생존 그 이상을 위해서 싸워야 하지 않을까?
수단과 방법을 고려하는 방법을
사고하고 차분히, 느리게 움직이는 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개인의 내면을 고통으로 몰아가지 않는 그런
미래를 위해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무서운 일이지만 이것이 우리 전세대의 민주화 세대가 아닌
지금 바로 나의 세대와 그 다음 세대가 해야할 일들이다.
상처입은 전세대들과 달리 무엇인가 해야할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문화나 한국의 교육, 정치를 보고 있으면
그리고 이따금 터지는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학원들의 빛나는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멀고먼 일이라고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하고는///
주인공은 신지다.
신지는 바로 저러한 "반항하고자 하나 반항할 수 없는" 인물이다.
아니 패전 후 나라의 위기(사도들의 역습)를 위해
메이지유신 때부터 그 아버지들이 시켜온 경제개발을 위한(위기를 물리치기 위한 로봇조종)
개인의 희생을 참아온 자들이다.
(기차 안이 에바이며, 에바 안에서만 기차를 볼 수 있다.)
그러한 메카닉이 너무나도 싫지만 그야말로 로봇트처럼 살아야 하는
인간들이 바로 일본인들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 자신의 육체의 어머니보다 더욱 견고한
사회라는 자궁에서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들에 억눌린 일본인들.
(가장 복종하는 레이의 기체가 가장 폭력적인 자아분열을 일으키고
외향적인 아스카가 가장 크게 당한다. 신지는 레이와 비슷하지만
내부에서 가장 분열이 크다. 이들은 일본인의 가장 견고한 형태다)
물론 평가는 여러분의 것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