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해야할 일들은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냥 다 내팽겨쳐 버리고 싶었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 무렵을 함께 견뎌낸 것이 2Pac의 'Life goes on'이었다. 삶은 계속 된다는 진리를 말하는 노래. 어떤 순간이 내겐 너무 가혹하고 힘들어도, 그 무게에 내가 짓눌려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해도, 세상은 돌아가고 나를 제외한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만약 무게를 이겨낸다면, 나의 삶 역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도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에는 전 연인의 그늘을 지우지 못한 네 남자가 나온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죽은 연인을 자신 속에 각인하는 일 밖에 하지 않는 남자, 죽은 아내의 빈 자리가 채워질까봐 뒷걸음질 치는 남자, 헤어진 연인의 그늘에 살며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 것도 모르는 남자, 6년이라는 시간을 그녀와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온 남자. 에피소드의 밝기와 깊이는 제각각이지만 네 남자는, 닮은 꼴이다.
삶은 계속 됨의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하는 남자는 진만(엄태웅)이다. 프리허그 운동을 하는 6년간 한 순간도 잊지 않은 그녀는 그가 약속대로 돌아왔을 때 결혼했다고 고백한다. 목표가 하나인 사람은 그 목표가 좌절되었을 때 몇 배의 충격을 받는다. 하나 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는 법을 잊게 되고, 다른 것도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하지만 엄태웅은, 이미 깨어진 하나에 연연하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런 상황을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약속을 기억할까, 다른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을까. 그랬기에, 예상한 일이 벌어졌을 때 의연히 대처한다. 눈물을 닦고 다시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가 "안아드립니다!"를 외친다.
왜 갑자기 마음을 열게 된 건지 이어지는 감정선은 매끄럽지 않지만, 결국 정석(류승룡)도 수정(임정은)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뻔하긴 하지만, 지우(정일우)도 소현(이연희)이 자신의 그늘을 지운 새로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새롭게 시작한다.
그러나 삶이 이렇게 계속 되는 동안 유독 세진(감우성)만은 움직일 줄을 모른다. 과거의 기억 속에 몸을 움츠리고 그 안으로 침잠한다. 그의 일과는 주원(최강희)과의 추억이 깃든 지하철 2호선을 몰며 함께 했던 그 길을 밟고 또 밟는 것 뿐이다. 때로는 그녀의 환영을 보기도 하면서. 부서 이동으로 2호선을 떠나게 되자 상사에게 그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지르고는 사직서를 두고 나온다. 세진이 한 일은 내가 왜 2호선을 떠나면 안 되는지 설명하는 것도, 계속 2호선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는 오히려 흐르는 시간 속에 그녀와의 시간을 더 이상 붙잡아 둘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 인식 후에 찾아온 감정의 폭발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부탁할 여유가, 그에게는 없다.
다른 에피소드의 갈등이 풀리는 개기일식의 순간, 감우성은 텅빈 옛 2호선 열차를 찾았다가 연인이 남긴 선물을 발견한다. 개기일식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선물. 이로 인해 네 에피소드들을 억지로 묶어주는 역할 뿐이던 개기일식이라는 소재가 '기적'의 의미로, 유효해진다. 그 기적의 순간 감우성은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래서?
부인과 사별하고 길지 않을 남은 생을 부인을 그리며 혼자 보내는 할아버지는 주위에 있다면, 분명 멋질 것이다. 하지만 산 날보다 살 날이 훨씬 많은 젊은이가 이별한 연인, 죽은 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건 멋지지 않다. 때로는 가슴 아프게 안타깝고, 때로는 미련스러워 따지고 싶을 것 같다. 그, 혹은 그녀의 어깨에는 그 자신의 남은 삶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삶의 일부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외로운 아빠의 부족한 관심 속에 게임만 하는 아들의 삶이, 선배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기를 바라는 수정의 삶이, 함께 얹혀 있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은 떠나보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세진은 좀처럼 그러지 못했고, 그가 흘린 눈물 역시 그의 삶이 앞으로는 움직이게 될 것인지 말해주지는 못한다.
세진은 눈물을 흘리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왜 그녀는 이런 선물만 남기고 먼저 떠나고 말았을까, 내가 생일날 그렇게 보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까. 나는 이런 생각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은 2호선을 운전하는 동안 지나치도록 했었을 것이므로. 그녀의 사랑이 충분하다는 것, 그녀를 향했던 내 사랑 역시 충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내 멈춘 기억 속에서 그녀를 놓아주어야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면 좋겠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 이후론 세진의 삶도 변할 거라는, 계속 될 거라는 암시가 없는 게, 못내 아쉬었다.
삶은 계속 된다는 사실이 진리라는 걸 알아도 현실은 여전히 팍팍할 수 있다. 힘든 시간의 한가운데서 삶은 계속 될거야, 라고 되뇌이는 일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보며 역시 삶은 계속 되더군, 하고 내뱉는 일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Life goes on <내 사랑>
삶은 계속 된다
life goes on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해야할 일들은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냥 다 내팽겨쳐 버리고 싶었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 무렵을 함께 견뎌낸 것이 2Pac의 'Life goes on'이었다. 삶은 계속 된다는 진리를 말하는 노래. 어떤 순간이 내겐 너무 가혹하고 힘들어도, 그 무게에 내가 짓눌려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해도, 세상은 돌아가고 나를 제외한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만약 무게를 이겨낸다면, 나의 삶 역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도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에는 전 연인의 그늘을 지우지 못한 네 남자가 나온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죽은 연인을 자신 속에 각인하는 일 밖에 하지 않는 남자, 죽은 아내의 빈 자리가 채워질까봐 뒷걸음질 치는 남자, 헤어진 연인의 그늘에 살며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 것도 모르는 남자, 6년이라는 시간을 그녀와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온 남자. 에피소드의 밝기와 깊이는 제각각이지만 네 남자는, 닮은 꼴이다.
삶은 계속 됨의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하는 남자는 진만(엄태웅)이다. 프리허그 운동을 하는 6년간 한 순간도 잊지 않은 그녀는 그가 약속대로 돌아왔을 때 결혼했다고 고백한다. 목표가 하나인 사람은 그 목표가 좌절되었을 때 몇 배의 충격을 받는다. 하나 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는 법을 잊게 되고, 다른 것도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하지만 엄태웅은, 이미 깨어진 하나에 연연하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런 상황을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약속을 기억할까, 다른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을까. 그랬기에, 예상한 일이 벌어졌을 때 의연히 대처한다. 눈물을 닦고 다시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가 "안아드립니다!"를 외친다.
왜 갑자기 마음을 열게 된 건지 이어지는 감정선은 매끄럽지 않지만, 결국 정석(류승룡)도 수정(임정은)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뻔하긴 하지만, 지우(정일우)도 소현(이연희)이 자신의 그늘을 지운 새로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새롭게 시작한다.
그러나 삶이 이렇게 계속 되는 동안 유독 세진(감우성)만은 움직일 줄을 모른다. 과거의 기억 속에 몸을 움츠리고 그 안으로 침잠한다. 그의 일과는 주원(최강희)과의 추억이 깃든 지하철 2호선을 몰며 함께 했던 그 길을 밟고 또 밟는 것 뿐이다. 때로는 그녀의 환영을 보기도 하면서. 부서 이동으로 2호선을 떠나게 되자 상사에게 그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지르고는 사직서를 두고 나온다. 세진이 한 일은 내가 왜 2호선을 떠나면 안 되는지 설명하는 것도, 계속 2호선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는 오히려 흐르는 시간 속에 그녀와의 시간을 더 이상 붙잡아 둘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 인식 후에 찾아온 감정의 폭발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부탁할 여유가, 그에게는 없다.
다른 에피소드의 갈등이 풀리는 개기일식의 순간, 감우성은 텅빈 옛 2호선 열차를 찾았다가 연인이 남긴 선물을 발견한다. 개기일식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선물. 이로 인해 네 에피소드들을 억지로 묶어주는 역할 뿐이던 개기일식이라는 소재가 '기적'의 의미로, 유효해진다. 그 기적의 순간 감우성은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래서?
부인과 사별하고 길지 않을 남은 생을 부인을 그리며 혼자 보내는 할아버지는 주위에 있다면, 분명 멋질 것이다. 하지만 산 날보다 살 날이 훨씬 많은 젊은이가 이별한 연인, 죽은 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건 멋지지 않다. 때로는 가슴 아프게 안타깝고, 때로는 미련스러워 따지고 싶을 것 같다. 그, 혹은 그녀의 어깨에는 그 자신의 남은 삶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삶의 일부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외로운 아빠의 부족한 관심 속에 게임만 하는 아들의 삶이, 선배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기를 바라는 수정의 삶이, 함께 얹혀 있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은 떠나보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세진은 좀처럼 그러지 못했고, 그가 흘린 눈물 역시 그의 삶이 앞으로는 움직이게 될 것인지 말해주지는 못한다.
세진은 눈물을 흘리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왜 그녀는 이런 선물만 남기고 먼저 떠나고 말았을까, 내가 생일날 그렇게 보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까. 나는 이런 생각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은 2호선을 운전하는 동안 지나치도록 했었을 것이므로. 그녀의 사랑이 충분하다는 것, 그녀를 향했던 내 사랑 역시 충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내 멈춘 기억 속에서 그녀를 놓아주어야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면 좋겠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 이후론 세진의 삶도 변할 거라는, 계속 될 거라는 암시가 없는 게, 못내 아쉬었다.
삶은 계속 된다는 사실이 진리라는 걸 알아도 현실은 여전히 팍팍할 수 있다. 힘든 시간의 한가운데서 삶은 계속 될거야, 라고 되뇌이는 일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보며 역시 삶은 계속 되더군, 하고 내뱉는 일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해도 문학작품이나 영화는, 삶은 계속 된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2007 12 감상
2008 1 3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