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 이야기2 - 강제이발 * 위 8명의 학생은 나에게 머리를 잘린 학생들이다.* 아래 40명의 학생은 두발자유를 위한 삭발시위를 하는 학생들이다.* 다른 학생의 호응을 얻기 위해 학생회 카페에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사진을 올렸다. - 앞 머리카락은 눈썹에 닿지 않아야 한다. - 옆 머리카락은 귀를 덮지 않아야 한다. - 뒷 머리카락은 교복 깃에 닿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반한 학생을 발견하면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가위를 사용했다.
인권위의 결정에 힘을 얻은 두발자유의 외침이 인터넷상에서 판을 쳐도 나는 강제이발을 했다.
염색을 한 여학생들을 복도에 꿇어앉히고 직접 염색도 했다.
규정이 만들어졌으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규정이 바뀌면 바뀐 규정에 맞게 집행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규정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있었던 규정에서 약간의 수정과 보완만 할뿐이다.
어렵사리 규정을 개정 할 때면 학생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준다. 의욕만 앞세우는 학생들의 반론을 잠재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학부형들에게도 설문지를 보냈다. 돌아오는 설문지는 몇 장 없다. 교사의 의견과 지역주민의 의견도 반영했다. 규정을 개정하기 위한 모든 절차는 정당했다. 그래서 나는 한 손에 규정을 내세우고, 한 손에 가위를 당당하게 들 수 있었다.
나에게 강제이발을 당한 학생들의 모습을 인터넷에 떠돌지 않기 위해 어느 한쪽만을 자르거나 지나치게 많이 자르지는 않았다. 강제이발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네가 와서 해봐라”는 마음뿐이었다. 학생들의 인권을 얘기하는 교사를 만나면 “내년에 학생부 오시죠?”라며 반박했다. 어차피 학생부에는 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혹시라도 온다면 나는 기쁨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관리하며
다른 부서에 가면 되는 일이다.
법을 어기는 독재는 없다. 나름의 법과 규칙을 만들어 적용한다. 나는 이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박정희대통령 시절의 두발단속에 대한 얘기를 어른들에게 들을 때 추억이라 생각했고, 나에게 강제이발을 당한 학생들도 추억처럼 생각하리라 믿었다. 굳이 나쁜 기억이 퇴색되어 추억이 되게 할 필요는 없는 일이지만 나의 강제이발을 내 스스로 정당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었다.
2007년 12월을 끝으로 손에서 가위를 놓으려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규정을 바꿔야 한다. 학생들은 물론 좋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도 모범생과 노는 학생의 판단기준에 헤어스타일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결심을 하면서도 가치관의 혼란은 남아있다. 약간의 시간만 흐르면 지금의 강제이발도 잘못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과거가 되겠지만...
강제로 머리 잘린 학생들
* 위 8명의 학생은 나에게 머리를 잘린 학생들이다.* 아래 40명의 학생은 두발자유를 위한 삭발시위를 하는 학생들이다.* 다른 학생의 호응을 얻기 위해 학생회 카페에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사진을 올렸다. - 앞 머리카락은 눈썹에 닿지 않아야 한다.
- 옆 머리카락은 귀를 덮지 않아야 한다.
- 뒷 머리카락은 교복 깃에 닿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반한 학생을 발견하면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가위를 사용했다.
인권위의 결정에 힘을 얻은 두발자유의 외침이 인터넷상에서 판을 쳐도 나는 강제이발을 했다.
염색을 한 여학생들을 복도에 꿇어앉히고 직접 염색도 했다.
규정이 만들어졌으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규정이 바뀌면 바뀐 규정에 맞게 집행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규정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있었던 규정에서 약간의 수정과 보완만 할뿐이다.
어렵사리 규정을 개정 할 때면 학생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준다.
의욕만 앞세우는 학생들의 반론을 잠재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학부형들에게도 설문지를 보냈다. 돌아오는 설문지는 몇 장 없다.
교사의 의견과 지역주민의 의견도 반영했다.
규정을 개정하기 위한 모든 절차는 정당했다.
그래서 나는 한 손에 규정을 내세우고, 한 손에 가위를 당당하게 들 수 있었다.
나에게 강제이발을 당한 학생들의 모습을 인터넷에 떠돌지 않기 위해
어느 한쪽만을 자르거나 지나치게 많이 자르지는 않았다.
강제이발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네가 와서 해봐라”는 마음뿐이었다.
학생들의 인권을 얘기하는 교사를 만나면 “내년에 학생부 오시죠?”라며 반박했다.
어차피 학생부에는 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혹시라도 온다면 나는 기쁨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관리하며
다른 부서에 가면 되는 일이다.
법을 어기는 독재는 없다. 나름의 법과 규칙을 만들어 적용한다.
나는 이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박정희대통령 시절의 두발단속에 대한 얘기를 어른들에게 들을 때 추억이라 생각했고,
나에게 강제이발을 당한 학생들도 추억처럼 생각하리라 믿었다.
굳이 나쁜 기억이 퇴색되어 추억이 되게 할 필요는 없는 일이지만
나의 강제이발을 내 스스로 정당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었다.
2007년 12월을 끝으로 손에서 가위를 놓으려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규정을 바꿔야 한다.
학생들은 물론 좋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도 모범생과 노는 학생의 판단기준에 헤어스타일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결심을 하면서도 가치관의 혼란은 남아있다.
약간의 시간만 흐르면 지금의 강제이발도 잘못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과거가 되겠지만...
하지만 모든 것(길이, 염색, 퍼머, 스크래치 등)을 허용해야 할 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어느 정도가 옳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