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은 19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교도소를 탈출하였다.
1999년 7월 16일 가스렌지 수리의뢰를 받고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 들어갔던
수리공의 제보로 검거될 때까지
2년 6개월 동안 신창원은 경찰의 수사망을 뚫고 전국 각지로 출몰하며 숱한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 신창원은 1967년 5월 전북 김제군 금구면 하신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잃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김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으나, 가난한 집안사정 등으로 2학년 때 중퇴하였다.
15세인 1982년 절도죄로 김제경찰서에 붙잡혀 소년원에 들어갔다.
소년원에서 나온 다음 해 서울로 올라와 청량리역 주변 유흥가에서 음식점 배달원 등을 전전하면서
1983년 절도죄로 다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1989년 3월 24일 공범 3명과 함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 정모 씨 집에 침입,
정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그 해 9월 검거되어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서울구치소와 청송교도소 등을 거쳐 1994년 11월 부산교도소로 이감되었다.
1997년 1월 20일 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후 도피생활을 하는 중에도 108건의 강도와 절도를 저질러 9억 8000여 만 원을 빼앗았다.
이 돈을 이용하여 다방 여종업원 등 유흥업소 종사자를 유혹하여 동거장소를 은신처로 삼았다.
신창원의 도피기간 동안 경찰수사의 공조부재, 주민신고 무시 등 고질적인 허점이 드러났으며,
많은 경찰관이 체포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경찰에서 물러났다.
이렇듯 경찰의 수사망을 정말 잘 피해다니면서 화려한 도피생활을 하셨던 분인데요,
이전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살인범 유영철 씨만큼 큰 범죄보다는 주로 절도, 강도를 일삼던 분인데..
전에 우연히 신창원 씨가 하셨던 말씀을 보고 그 이후로 한 번쯤 포스팅을 해볼까..했었던 중에
오늘 블로그씨의 질문이었던 "전설적인 고수"에 대한 답변을 하다 생각이 나서
이렇게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예전에 봤던 신창원 씨의 말씀입니다, 많이들 보셨을거에요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은 쓰는데, 나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가지 안 왔을 거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새끼야, 돈 안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백과사전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창원 씨는 초등학교 1학년이던 그 어린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렇다고해서 집안환경이 풍족하던 것도 아니었죠
중학교 때 중퇴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저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날의 신창원 씨를 있게했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정도 일조를 하셨을거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신창원 씨는 선생님의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네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인데,
가뜩이나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어린 학생에게 저런 말을 하신 것은 정말 아니라고봐요
그렇다고 신창원 씨의 범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며, 정당한 범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원인, 과정이 어찌되었든 결론은 범죄였고 범죄는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신창원 씨의 과거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신창원 씨의 말씀대로 다시는 신창원 씨 같은 분이 태어나지 않도록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까지도 신창원 씨에 대한 이야기, 관심은 이곳저곳에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 4월, 신창원 씨가 고입고시에 합격 후,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 또한
보기 좋다/해서 뭐하냐는 식으로 양분화 되어 의견들이 표출되었었는데요.
전 '보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교도소에 수감 된 무기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하물며 일반인들 중에도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이 신창원 씨에게 "밖에 나오지도 못할텐데 공부는 해서 뭐하냐"는 식의
말씀을 하실 수는 없으실테죠.
현재 신창원 씨는 교도소에서 무기징역+22년 6개월이라는 형을 받으셨는데요.
교도소에서 열심히 생활하시면서 후에 대학진학을 하게되면 상담학 쪽 전공을 희망하시며
열심히 독학을 하고 계신다고 해요, 꼭 희망이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금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등반에 편입해서 배우고 있지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독학으로 해야 하니 어려움이 많네요.
나중에 전공을 한다면 '상담학'을 배우고 싶습니다. 통신으로 대학과정을 밟을 수 있을지....
대학에서 허락만 한다면 배우는 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합격하려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평균 95점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습니다...
(중략) ... 공부를 하게 된 것은 가족들의 권유 때문이지만
국민들에게 사죄를 드리는 의미, 그리고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못다한 효도를 한다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어요. 시험을 치르게 된다면 높은 점수로 합격할 자신 있습니다."
청송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무기수 신창원(38)이 올해 1월 엄상익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1997년 부산교도소에서 탈옥했다가 99년 검거된 그가 공부를 시작한 것은 올해 초.
사회에 다시 한 번 사죄하고 부모에게 못다한 효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계기이자 이유다.
그는 지난해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았다. 헛것이 보이거나 곡(哭)하는 소리가 들리는 이명 현상 때문에
3개월 이상 불면증에 시달렸다. 어느 때는 귀신이 보이는 등 신경쇠약 증세도 보였다.
그러나 지인들과 가족의 지극한 간호로 병세는 호전됐다. 이때 이들이 권유한 것이 공부다.
잡생각을 하며 지내기보다는 공부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초등학생 때 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대학입시 합격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르쳐 줄 사람 없어 어려움 많아
현재 그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고등학교 입학과정이다.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중퇴했기 때문에 우선 고입과정에 합격하는 것이 첫째 목표다.
내친김에 합격한 이후 대학시험을 치르겠다는 욕심이다.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은 분야는 '상담학'.
어리석었던 자신의 삶을 남들에게 타산지석으로 삼게 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걸림돌이 많다. 우선 그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또한 새롭게 구성된 교재도 교도소에서는 구입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편으로 받아봐야 할 입장이다.
그는 그림도 그리고 있다. 예전에는 잡지에 나온 그림을 그대로 그리는 수준이었지만
요즘은 자신의 손과 발, 얼굴 등 실체적인 그림을 그릴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기약없이 무기수 생활을 하고 있는 신창원. 죗값을 치르고 있지만 그의 학구열은 식지 않을 것 같다.
네티즌들은 신창원의 검정고시 준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무기수가 공부는 해서 무엇 하냐' '대견하다'는 등 의견이 엇갈린다.
한편 무기수의 입학전형에 대해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재소자를 위한 대학과정은 2년제이며
현재 주성대학과 순천청암대학에서 각각 실시하고 있다"면서
"교수들을 교도소로 초빙해 이뤄지는 위탁교육인 만큼 무기수도 일정 조건을 갖추면 졸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기징역+22년6개월.
청송 제2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치러야 할 잔여 형기(刑期)다.
설혹 무기형이 20년으로 감형되더라도 추가 형기를 채워야 하니, 이 역시 절반으로 줄어도 얼추 23년을 복역해야 한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 환갑이 되어 흰머리가 성성해진 뒤에나 햇빛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신창원이 쇠톱날로 감방 화장실 쇠창살을 ‘썰고’ 탈옥을 감행한 게 1997년 1월.
그는 강도치사죄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이때부터 2년6개월에 걸친 도주 과정은 그야말로 ‘신출귀몰’이다.
그는 서울과 부산을 50번도 넘게 오가며 130여 차례 강절도 행각을 벌였다.
토굴과 비트에서 들쥐를 잡아먹기도 하고 비스킷 한 쪽으로 버텼다. 초인적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눈앞에 두고도 13차례나 놓쳤다.
경찰 헬기가 뜨고 전경부대가 동원됐으나 그는 번번이 이를 비웃었다.
현상금 200만원은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로는 최고액인 55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가 한번 ‘떴다’ 사라질 때마다 경찰이 줄줄이 징계를 받고 지휘선이 무너지는 바람에
‘신출경몰(申出警沒)’이라는 우스갯말까지 생겨났으니.
신창원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던 경찰.
그 경찰은 검거 당시 분풀이라도 하듯 결박된 그의 윗옷을 치켜 올려 TV 카메라 앞에 세워놓았다.
어렵사리 포획한 ‘전리품’의 등에 새겨진 문신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으니.
그것은 경찰과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만행이었다.
교도관들의 가혹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탈옥했다는 신창원.
그는 평생 그 교도관들과 함께 지내야 될지도 모르는 처지지만 2004년 4월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최근 이해인 수녀에게 이런 편지를 띄웠다.
“저는 아직도 예수님께 전부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조그만 것에 집착하고 있거든요….”
그는 개과천선(?)한 것일까.
‘대도’ 조세형의 부탁으로 변호를 맡았던 엄상익 변호사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는 절도범이고 강도범입니다. 사형을 당해 마땅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신창원
이름 : 신창원
생년월일 : 1967년 5월 (네이버 검색을 해도 현 변호사 분만 뜨시니..^^;;)
제가 초등학교 3~4학년이던 98~99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범죄자입니다.
그는 97년 탈옥해 99년에 간신히 경찰에 체포되기 까지 수많은 이슈를 만들어내며
한 때 최고의 이슈메이커로 자리매김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아래는 신창원 검거에 대한 백과사전의 내용입니다.
신창원은 19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교도소를 탈출하였다.
1999년 7월 16일 가스렌지 수리의뢰를 받고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 들어갔던
수리공의 제보로 검거될 때까지
2년 6개월 동안 신창원은 경찰의 수사망을 뚫고 전국 각지로 출몰하며 숱한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
신창원은 1967년 5월 전북 김제군 금구면 하신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잃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김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으나, 가난한 집안사정 등으로 2학년 때 중퇴하였다.
15세인 1982년 절도죄로 김제경찰서에 붙잡혀 소년원에 들어갔다.
소년원에서 나온 다음 해 서울로 올라와 청량리역 주변 유흥가에서 음식점 배달원 등을 전전하면서
1983년 절도죄로 다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1989년 3월 24일 공범 3명과 함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 정모 씨 집에 침입,
정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그 해 9월 검거되어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서울구치소와 청송교도소 등을 거쳐 1994년 11월 부산교도소로 이감되었다.
1997년 1월 20일 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후 도피생활을 하는 중에도 108건의 강도와 절도를 저질러 9억 8000여 만 원을 빼앗았다.
이 돈을 이용하여 다방 여종업원 등 유흥업소 종사자를 유혹하여 동거장소를 은신처로 삼았다.
신창원의 도피기간 동안 경찰수사의 공조부재, 주민신고 무시 등 고질적인 허점이 드러났으며,
많은 경찰관이 체포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경찰에서 물러났다.
이렇듯 경찰의 수사망을 정말 잘 피해다니면서 화려한 도피생활을 하셨던 분인데요,
이전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살인범 유영철 씨만큼 큰 범죄보다는 주로 절도, 강도를 일삼던 분인데..
전에 우연히 신창원 씨가 하셨던 말씀을 보고 그 이후로 한 번쯤 포스팅을 해볼까..했었던 중에
오늘 블로그씨의 질문이었던 "전설적인 고수"에 대한 답변을 하다 생각이 나서
이렇게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예전에 봤던 신창원 씨의 말씀입니다, 많이들 보셨을거에요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은 쓰는데,
나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가지 안 왔을 거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새끼야, 돈 안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백과사전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창원 씨는 초등학교 1학년이던 그 어린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렇다고해서 집안환경이 풍족하던 것도 아니었죠
중학교 때 중퇴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저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날의 신창원 씨를 있게했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정도 일조를 하셨을거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신창원 씨는 선생님의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네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인데,
가뜩이나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어린 학생에게 저런 말을 하신 것은 정말 아니라고봐요
그렇다고 신창원 씨의 범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며, 정당한 범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원인, 과정이 어찌되었든 결론은 범죄였고 범죄는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신창원 씨의 과거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신창원 씨의 말씀대로 다시는 신창원 씨 같은 분이 태어나지 않도록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까지도 신창원 씨에 대한 이야기, 관심은 이곳저곳에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 4월, 신창원 씨가 고입고시에 합격 후,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 또한
보기 좋다/해서 뭐하냐는 식으로 양분화 되어 의견들이 표출되었었는데요.
전 '보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교도소에 수감 된 무기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하물며 일반인들 중에도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이 신창원 씨에게 "밖에 나오지도 못할텐데 공부는 해서 뭐하냐"는 식의
말씀을 하실 수는 없으실테죠.
현재 신창원 씨는 교도소에서 무기징역+22년 6개월이라는 형을 받으셨는데요.
교도소에서 열심히 생활하시면서 후에 대학진학을 하게되면 상담학 쪽 전공을 희망하시며
열심히 독학을 하고 계신다고 해요, 꼭 희망이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금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등반에 편입해서 배우고 있지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독학으로 해야 하니 어려움이 많네요.
나중에 전공을 한다면 '상담학'을 배우고 싶습니다. 통신으로 대학과정을 밟을 수 있을지....
대학에서 허락만 한다면 배우는 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합격하려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평균 95점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습니다...
(중략) ... 공부를 하게 된 것은 가족들의 권유 때문이지만
국민들에게 사죄를 드리는 의미, 그리고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못다한 효도를 한다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어요. 시험을 치르게 된다면 높은 점수로 합격할 자신 있습니다."
청송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무기수 신창원(38)이 올해 1월 엄상익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1997년 부산교도소에서 탈옥했다가 99년 검거된 그가 공부를 시작한 것은 올해 초.
사회에 다시 한 번 사죄하고 부모에게 못다한 효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계기이자 이유다.
그는 지난해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았다. 헛것이 보이거나 곡(哭)하는 소리가 들리는 이명 현상 때문에
3개월 이상 불면증에 시달렸다. 어느 때는 귀신이 보이는 등 신경쇠약 증세도 보였다.
그러나 지인들과 가족의 지극한 간호로 병세는 호전됐다. 이때 이들이 권유한 것이 공부다.
잡생각을 하며 지내기보다는 공부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초등학생 때 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대학입시 합격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르쳐 줄 사람 없어 어려움 많아
현재 그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고등학교 입학과정이다.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중퇴했기 때문에 우선 고입과정에 합격하는 것이 첫째 목표다.
내친김에 합격한 이후 대학시험을 치르겠다는 욕심이다.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은 분야는 '상담학'.
어리석었던 자신의 삶을 남들에게 타산지석으로 삼게 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걸림돌이 많다. 우선 그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또한 새롭게 구성된 교재도 교도소에서는 구입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편으로 받아봐야 할 입장이다.
그는 그림도 그리고 있다. 예전에는 잡지에 나온 그림을 그대로 그리는 수준이었지만
요즘은 자신의 손과 발, 얼굴 등 실체적인 그림을 그릴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기약없이 무기수 생활을 하고 있는 신창원. 죗값을 치르고 있지만 그의 학구열은 식지 않을 것 같다.
네티즌들은 신창원의 검정고시 준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무기수가 공부는 해서 무엇 하냐' '대견하다'는 등 의견이 엇갈린다.
한편 무기수의 입학전형에 대해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재소자를 위한 대학과정은 2년제이며
현재 주성대학과 순천청암대학에서 각각 실시하고 있다"면서
"교수들을 교도소로 초빙해 이뤄지는 위탁교육인 만큼 무기수도 일정 조건을 갖추면 졸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기징역+22년6개월.
청송 제2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치러야 할 잔여 형기(刑期)다.
설혹 무기형이 20년으로 감형되더라도 추가 형기를 채워야 하니, 이 역시 절반으로 줄어도 얼추 23년을 복역해야 한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 환갑이 되어 흰머리가 성성해진 뒤에나 햇빛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신창원이 쇠톱날로 감방 화장실 쇠창살을 ‘썰고’ 탈옥을 감행한 게 1997년 1월.
그는 강도치사죄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이때부터 2년6개월에 걸친 도주 과정은 그야말로 ‘신출귀몰’이다.
그는 서울과 부산을 50번도 넘게 오가며 130여 차례 강절도 행각을 벌였다.
토굴과 비트에서 들쥐를 잡아먹기도 하고 비스킷 한 쪽으로 버텼다. 초인적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눈앞에 두고도 13차례나 놓쳤다.
경찰 헬기가 뜨고 전경부대가 동원됐으나 그는 번번이 이를 비웃었다.
현상금 200만원은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로는 최고액인 55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가 한번 ‘떴다’ 사라질 때마다 경찰이 줄줄이 징계를 받고 지휘선이 무너지는 바람에
‘신출경몰(申出警沒)’이라는 우스갯말까지 생겨났으니.
신창원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던 경찰.
그 경찰은 검거 당시 분풀이라도 하듯 결박된 그의 윗옷을 치켜 올려 TV 카메라 앞에 세워놓았다.
어렵사리 포획한 ‘전리품’의 등에 새겨진 문신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으니.
그것은 경찰과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만행이었다.
교도관들의 가혹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탈옥했다는 신창원.
그는 평생 그 교도관들과 함께 지내야 될지도 모르는 처지지만 2004년 4월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최근 이해인 수녀에게 이런 편지를 띄웠다.
“저는 아직도 예수님께 전부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조그만 것에 집착하고 있거든요….”
그는 개과천선(?)한 것일까.
‘대도’ 조세형의 부탁으로 변호를 맡았던 엄상익 변호사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는 절도범이고 강도범입니다. 사형을 당해 마땅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여운을 남겼다.
“어릴 때 누가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