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 (정근모)

곽호진2008.01.17
조회841
최고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 (정근모)

예수 그리스도,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며 절규했던 인류의 대속자.

그분을 통해서 나의 삶은 새롭게 변화되었다.

과학자이기에 앞서 한 크리스천임을 더욱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대학 2학년 때 돌아가셨다.

2년을 월반하였으니 고등학교 3학년 때인 셈이다.

나는 경기중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들어갔으며 고등학교를 4개월만에 끝냈다.

나의 월등한 성적에 놀란 담임 선생님과 아버지가 상의한 끝에 내린 결론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한 결과였다.

그 시험도 수석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 후 아버지는 서서히 건강을 잃어 뇌일혈로 세상을 뜨셨다.

그 바람에 나는 두 동생을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이 되었다.

이때는 돈 벌랴, 동생 돌보랴, 공부하랴 참으로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런 가운데,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 창설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진학했다.

이공계 출신으로서 나는 유일한 응시생이었는데 결과는 또 '수석 합격'이었다.

이공계 출신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시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석 합격을 한 것이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경무대의 이승만 대통령이 공보 비서 최치환 씨를 통해 미국 유학을 제의해 왔다.

최치환 씨는 미시간 주립 대학에 편지를 써서 나에 대한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유학을 받아 줄 것을 요청했다.

그 덕분에 나는 1960년, 조국을 떠나 미지의 대륙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그러나 미시간 대학에는 정책적으로 많은 수의 좋은 학생들이 장학생으로 모여 있는 곳이었다.

과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입학에 앞서 다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어렵다는 그곳의 학생들과 겨루어 당당히 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또 수석 합격인 셈이었다.  

미시간 주립대학에서는 자격 시험에서 'A학점'을 받았기 때문에 석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박사 과정으로 들어갔다.

또 1962년에는 선배의 소개로 만나, 미시간 대학에 유학와 있던 길경자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는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하고 함께 미시간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내 나이가 스물 셋이었으니 상당히 빠른 결혼이었다.


박사 과정은 2년만에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플로리다 대학의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스물 셋이라는 나이에 교수가 되었으니 신문에는 일제히 '소년 교수'라는 기사를 내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생활은 순풍에 돛단 듯 매끄럽게 잘 풀려 나가고 있었다.

두 딸과 아들 진후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욕심이 적었던 데 있었다.

학문 연구에 대한 열정이 다른 욕심들을 상쇄시켰던 것이다.

어쩌면 천성적으로 소유에 대한 욕구가 적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서른 둘에 한국과학기술원 부원장으로 부임했다.

1971년 2월 16일은 과학 한국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한국과학기술원(KIST)이 출범한 날이다.

나의 아이디어가 반영되어 설립된 그곳에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내가 부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벅찬 감격의 날이었다. '이곳에서 과학 한국의 꿈을 활짝 펼치리라.

바로 나의 조국에서'라고 나는 마음먹었다.  


그러나 서서히 먹구름이 찾아들고 있었다.

유신 정부로부터 부당한 압력이 계속되었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나는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과학원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져야 합니다. 위에서 압력과 간섭을 가해 와서는 안됩니다.

학교는 전적으로 교수와 학생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아무리 주장하고 외쳐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외부로부터의 압력은 학자로서 견딜 수 없는 수치였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간염을 앓아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1974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간염 치료도 중요하지만 좀 쉬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 해 여름, 열 살된 아들 진후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진후의 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만성 신장염' 증세였다.  

'오, 이럴 수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토록 무관심했던가.'  

우리 부부는 자책감과 절망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병원에 가니 진찰 결과는 냉혹했다.

신장이 견딜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5년인데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5년, 신장이 견딜 수 있는 기간…….

일에만 몰두하느라 내 아들이 이토록 심하게 병들어 있는 것도 몰랐단 말인가.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절망의 한숨을 토해 냈다.  

"오, 하나님, 도와 주십시오. 제 아들을 좀 살려 주십시오."  

나는 비로소 하느님이라는 범신이 아닌 '하나님'을 불렀다.

이웃에 사는 한인 크리스천들과 함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나는 롱아일랜드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뉴욕공대의 핵공학과 및 전기공학과 교수로 취임했다.

그러나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머리 속은 온통 진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점점 병세가 나빠지기 시작한 진후는 기계의 힘을 빌려 피를 세척해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진후의 병세가 악화될수록 우리 부부의 기도는 점점 뜨거워졌다.

이웃에 사는 신자들까지 기도에 합세했다.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우리는 문턱이 닳도록 교회를 드나들었다.

'구원'이니 '은혜'니 하는 말보다는 진후가 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될 뿐이었다.

이제는 양쪽의 신장이 거의 마비되어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진후는 심한 우울 증세를 보이면서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웃으면서, "하나님께서는 너를 매우 사랑하고 계시단다.

그리고 이 고통은 반드시 극복될 거야.

너는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설 거야. 그것을 위해 우리 기도하자." 하며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나 자신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확신이 없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이 거대한 우주 자체가 곧 하나님인가.

아니면 모든 신을 대표하는 범신인가. 내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은근히 원망의 독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열심히 양심적으로 살아온 내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내가 무슨 큰 죄라도 지었단 말입니까?'  

나의 원망 섞인 투정에 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응답을 받은 크리스천들도 많다는데 나에게는 도무지 아무런 말씀도,

계시도 주시지 않는 하나님…….  

1970년 7월, 진후는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었다.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내는 자신의 신장을 주겠다고 하고,

나는 내 신장을 주겠다고 하여 서로 조금도 양보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우기다가 나는 합리적인 결론을 유도해 냈다.

우리 부부 중에 누구의 신장이 진후에게 적합한지 정밀 검사를 받아 보아,

가장 잘 맞는 사람의 신장을 나누어 갖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아내는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진후, 이 세 사람이 나란히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나의 한쪽 신장을 진후에게 주기로 결정되었다.  

우리 부자는 버지니아 대학병원에 나란히 입원해 신장을 나눠 가졌다.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남편과 아들이 큰 수술을 받고 누워 있는 어려운 상황을 아내는 침착하게 잘 참아 주었다.

아내는 찬송을 부르면서 지극히 평화로운 모습으로 우리 두 사람을 간호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신앙의 힘이었다.  

나는 병상에 누워서 속으로,

'진후의 건강만 되찾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고통도 달게 받으리라.' 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수술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의사는 왜 예견하지 못했단 말인가.  

의사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약을 쓰지 않으면 신장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약을 쓰면 간에 손상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의사도 어찌할 수 없는데 난들 어떻게 한단 말인가.

생사의 경각에 서 있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무능한 아버지……

, 인간의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된단 말인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그것을 거둬가는 분은 누구인가. 절대자 하나님,

그렇다면 그렇다면……

. 나는 갈급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부르짖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매달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처절한 순간이었다.  


이런 최악의 상태에 있는데 뉴욕의 교회로부터 전갈이 왔다.

기도 제목이 있으니 부부가 함께 와서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위급한 상태에서? 진후를 혼자 남겨 두고?

교회 성도들은 우리에게 닥친 시련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 더욱 어이없는 것은 아내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뉴욕으로 날아갈 뜻을 비치는 것이었다.


"성도들이 진후를 돌봐 주시기로 했으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뉴욕으로 갑시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마음을 합쳐서 기도해야 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는지도 모르잖아요."  


너무나도 태연한 아내의 말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흑달 증세를 보이는 진후를 남겨 두고 우리는 뉴욕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뜨겁게 기도했다.

교회에 닥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 진후의 완쾌를 위해,

때로는 통성으로 고함치듯 기도했으며 때로는 조용히 속삭이듯 기도했다.  


철야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기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후를 괴롭히던 흑달이 서서히 벗겨지고 1주일 후에는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 왔다.

간이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기적 앞에서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건강을 되찾은 진후는 다시 학교에 복학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우울 증세와 뒤떨어진 학업 문제 등으로 심한 좌절감에 빠진 것이다.  

"아버지, 세상을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들어요.

옛날과는 모든 것이 너무도 많이 변해 버렸어요."  


그런 진후가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다.


차를 몰고 가다가 고의로 가로수를 들이받았고 또 한 번은 10여 미터나 되는 낭떠러지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두 번 다 진후는 무사했다.

차가 작은 소나무에 걸려서 밑으로 추락하지 않은 것이다.  


자살에 실패한 진후는 슬피 울었다.

도무지 세상을 살아갈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춘기에 처한 그는 정말로 위태로운 시기를 맞고 있었다.

슬피 우는 진후를 끌어안고 우리 부부도 함께 울었다.

초등학교 때 진후의 IQ는 152를 나타낼 만큼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도 항상 진후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고 말해 왔었다.

그러나 만성 신장염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번번이 좌절감을 느껴야 하는 고통은 오죽했으랴.  

눈물을 닦으며 그는 내게 말했다.  

"아버지,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나 보죠?

낭떠러지로 추락하던 승용차가 그렇게 조그마한 소나무에 걸릴 수도 있나요?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에요.

그 작은 소나무가 육중한 자동차를 떠받칠 수 있다니……."  


"작은 소나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란다.

하나님은 아주 작은 것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나타내신단다.

때로는 당나귀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일기의 변화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신단다."  

'작은 소나무'는 분명히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진후도 그 사실을 시인했다. 우리의 주변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이 은밀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과학자인 나도 증명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의 손길이었다.  

우리 부부의 기도는 계속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완쾌뿐 아니라 생활의 적응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중생(born again)을 위한 기도였다.

나도 다른 기독교인들처럼 '성령 체험'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정 집사 부부가 먼저 참 기독교인이 되어야 아들의 병이 낫게 된다."  

어느 권사님의 말씀이 계속 귓전을 때려 왔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교인들은 거의 매일 우리 가정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큰소리로 찬송하면서 '불과 같은 성령'을 간구했다.

기도하고 찬송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평화의 성령'을 간구했다.

그러나 나에겐 아직도 세상적인 체면이 훨씬 중요했다.

'성령 체험'이라는 것을 원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밑바닥에는

'그래도 지성인인데…….' 하는 교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변화받기 어렵다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진후에게 있어서

'만성 신장염'이라는 제어 장치가 없었더라면 나의 모든 삶은 그야말로 세속의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이다.


그러던 중 1982년 3월, 워싱턴 중앙장로교회에서 4일간의 부흥회가 열렸다.


뉴욕 퀸스 한인교회의 한진관 목사를 강사로 초빙, 새벽과 낮,

저녁에 걸쳐 하루에 세 차례씩 예배를 갖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이번 집회를 단단히 별러 왔었다.  

'이번 집회에서 뭔가 체험적인 신앙을 가져 보자.

막연하게 믿는 신자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자.'  

집회를 앞두고 나는 계속 준비 기도를 해오고 있었다.  

'이번 부흥회에서는 성령 체험을 하게 해주소서.

뜨겁게 회개하며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니고데모처럼 중생하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진후의 완치를 위한 기도도 중요했지만 내 스스로도 뜨거운 믿음을 가진 신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온전히 부흥회에만 참석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 대신에 낮 예배를 제외하고 새벽과 저녁 집회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토록 사모하는 부흥회가 다 끝나가는데도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옆 사람들은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며 기뻐하는데 나는 맨송맨송한 제외자에 불과했다.  

기쁨이 충만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없이 처연한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야속한 마음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망에 가득찬 상태에서 주일 낮 예배의 안내 위원으로 봉사하면서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워싱턴 중앙장로교회의 이원상 목사는 에베소서 2장 1절∼8절 말씀을 봉독한 뒤 설교를 시작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을 듣는 가운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예리한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예리한 말씀들은 눈물샘을 파고들어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 냈다.


안내 위원을 맡고 있었기에 남에게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서 꾹 참았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말씀을 반추할 때마다 흐르는 눈물,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말씀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절절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동안 신앙 생활을 해오면서도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러나 정작 사건은 밤 예배에서 터지고 말았다.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참석한 예배인데, 설교를 듣는 중에 다시 눈물샘이 터졌다.

그때 나는 너무나도 크고 분명한 음성을 들었다.  

"아들아, 너는 네 아들에 대해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그건 뚜렷한 주님의 음성이었다. 그리고 그 음성은 다시 이어졌다.  

"네 아들이 너를 위해 십자가를 졌는데 너는 한 번이라도 아들에 대해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나는 너무나 놀라서 울음을 뚝 그쳤다.  


"주님, 제가 어떻게 아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건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제 아들은 나의 도움이 없으면…….

제 콩팥까지 나눠 가진 것을 주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부모가 감사해야 할 자식이란 적어도 옛날의 나와 같은 자식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부모가 자랑할 만한 학업 성적과 순종하는 자세, 남들보다는 뭔가 특출한 재주,

그리하여 부모에게 흐뭇한 마음을 줄 수 있는 자녀, 나의 효자상은 이렇게 정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 아들은?

주님, 제가 아들에게 감사하다니요.

그것은 도저히……."  

주님께서는 다시 내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이었다.  


'내가 비록 효자였다고 한들 부모님께 드린 것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세속적 기쁨 외에 무엇이 있었던가.

영생의 소망,

구원에 대한 확신을 드린 적이 있었던가.'  


전혀 아니었다.

잠시 동안의 자랑거리를 드렸는지는 몰라도 영혼에 대한 것들은 전혀 드린 적이 없었다.

우수한 성적과 모범적 생활로 흐뭇해 하시는 모습은 보았지만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 진후는?"  

진후의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신앙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지 않았던가.

진후로 인하여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하나님을 찾게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네가 지금껏 큰짐으로 생각해 왔던 네 아들을 통해 너와 네 가족이 구원받지 않았느냐."  

주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그제야 나는 더 이상 질문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오 주님, 제 아들은 진정한 효자이옵니다.

저를 구원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져야 했던 아들 진후에게 감사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제 아들은 효자이옵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후가 아니었던들 나는 어쩌면 크리스천이 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것이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질병을 죄에 대한 벌로 생각해 온 것을 회개했다.

나의 가슴 밑바닥에는 진후의 질병으로 항상 불만스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내게 왜 이런 아픔을 주시는가.

나보다 큰 죄를 짓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구원의 도구였다니,

모든 의문이 순식간에 걷히는 순간이었다.

고통은 곧 축복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진후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겨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내가 돌봐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후는 내 보호의 손길을 벗어나서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하지 않았던가.

추락하던 차가 작은 소나무에 걸려 추락을 멈추었던 사건, 어찌 내 힘으로 아들을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나의 잘못을 빌었다.

교만함과 불만에 가득찼던 생활을 고백했다.

그런 죄악들을 고백할 때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예배가 시작될 때에는 조금씩 흐느끼는 정도였으나 예배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대성 통곡을 하고 있었다.

체면이나 지위도 아랑곳없이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네 아들에 대해 감사하라."  

주님은 거듭 말씀하셨다.

내 아들뿐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감사한가.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그 은혜가 감사하여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옛날의 나를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삶,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  


그날은 바로 나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임하신 날이었다.

기쁘고도 감격스러운 날, 내가 다시 태어난 날, 그날이 바로 1982년 3월 14일이었다.

지금껏 고통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진후에 대하여 감사함을 보냈던 날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진후와 가족들에게 나의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진후야,

나는 지금껏 너를 무겁고 힘겨운 짐으로만 생각해 왔단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져야 할 짐을 진 후 네가 지고 있다고…….

우리는 이제 너에게 감사할 뿐이다.

너로 인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야."  


진후는 고개를 떨구며 울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건강 때문에 번번이 좌절해야 했던 그였다.

그의 눈에서 후드득 떨어진 눈물의 온도가 내 손에 뜨겁게 느껴져 왔다.

그 눈물은 다시 나의 마음에 전달되었다.  

간증을 듣고 있던 우리 다섯 식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진후도 딸들도 아내도 나도 모두 울었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고 교대로 돌아가면서 통성으로 기도했다.

인간은 극한 기쁨에 이르면 슬플 때보다도 더 큰소리로 울게 되는 존재인가 보다.

우리는 모두 눈물의 잔치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을 나누었다.  

그때부터 우리 가정과 부부에게 있어서 신앙 생활은 최대의 기쁨이었다.

특히 믿음 좋은 신앙인들과의 교제는 더욱 즐거웠다.  

건강을 되찾은 진후는 결혼도 하고 미국에서 자신감 넘치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를 혼자서 개발하더니 지금은 의료 기기 기술업에 종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진후는 컴퓨터 분야에 매우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항공 회사에 근무할 때에도 제 스스로 비행기의 이착륙을 조정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곤 했다.  

당시 항공 회사 사장은 내게, "저 녀석과 함께 있으면 신이 나요. 뭔가 잘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거든요.

진후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며 칭찬을 했다.  


건강한 정상인들보다도 훨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주변에서도 말들을 하고 있었고,

우선 그와 함께 있으면 재미있어서 즐거움을 주는 존재라고도 했다.

진후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의 가슴은 뜨겁게 벅차 올랐다.

한때는 생명을 포기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진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는

모든 것이 변화되어 오랫동안 머물렀던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화시킨 것일까. 인간은 인간에게 일시적 위로밖에는 줄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내재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예수께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부정적 사고의 먹구름이 쫓겨간 것이다.  


역경, 이는 축복으로 통하는 암시의 관문일 뿐이다.

나는 수없이 계속되는 역경을 통해서 한 가지 소중한 기도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도와 함께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배웠다.  

"하나님, 이 고통을 주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깨우치게 하려고 이 고통을 주십니까?

제게 숨겨진 섭리를 알게 해주소서."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요 행복이었다.

사랑하는 진후가 의욕에 찬 생활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때는 도무지 삶에 대해 애착을 갖지 못했던 진후, 그가 이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아니란다."  

"그럼 누구를 위해 못박히신 건가요?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바로 나란다."  

나 때문에, 나의 죄 때문에 생명을 내놓으신 그 숭고한 사랑,

나를 살리기 위하여 어느 한 사람이 생명을 바쳤다면 나는 이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은 참으로 중차대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언젠가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오?"  


아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어요.

당신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내는 언제나 인생의 최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와 진후, 그리고 두 딸을 모두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더구나 형과 누나의 가족들까지도 지금은 매우 독실한 신자가 되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삶, 이런 삶은 어떤 역경이 와도 두려움이 없다.

먹구름 속에 가리어진 밝은 태양을 예견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크리스천인 것이다.  

세상에는 돈이나 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서 도달할 수 없는 영역들이 많다. 인간의 능력과 지혜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이 필요하다.  

"신이 존재하는가? 과학자인 당신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벌써 신이 아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다.

어찌 과학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 삶을 통해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 세미한 음성으로 때로는 위로해 주셨고

때로는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셨던 그 하나님을 믿는다.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보면 더욱 그것을 깨닫게 된다."  

보이지 않는 손, 그러나 분명히 느껴지는 손길,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실존이시다.  

세계의 역사, 나라의 역사, 개인의 역사를 조용히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

그것이 바로 신의 존재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주의 존재,

인간의 존재가 곧 기적이며 그 기적을 창출해 내신 분이 바로 절대자 하나님인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일꾼으로 사용하기 위해

때로는 고통을 주시기도 하고 용기를 주시기도 한다.

과거의 하나님이 아닌 현재의 하나님, 타인의 하나님이 아닌 바로 나의 하나님,

그분은 내 삶의 전부이시다. 왜냐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내어 인생에 대한 진리를 알게 해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찬송가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바람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연약한 후에 강건하며 애통한 후에 위로 받고  

눈물난 후에 웃음 있고 씨뿌린 후에 추수하네  



장관이 되고 나서도 내 생활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는 일도 여전했으며 주일은 거의 교회에서 보내다시피 했다.

나는 뚜렷한 일의 우선 순위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이다.

아무리 세상일이 바쁘고 중요하더라도 하나님 명령에 순종해야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내 가족에의 책임이다.

가족에게 책임을 못 지는 사람이 사회에 봉사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점은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 불충실하다는 것이다.

배우자에게 쓰라린 아픔을 준다든가 자식들에게 무심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에 선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맡은 바 직책에 충실해야겠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맡은 일에 뜻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들이 사회적 일에 과욕을 가지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데 있다.  

나는 초청을 받고 신앙 간증을 할 때마다 항상 두 가지 사실을 얘기해 왔다.  

"나는 장관 재직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국민일보에 신앙 간증을 연재함으로써 과학자가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었는가를 알림으로 전도의 기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제가 장관직을 사임함으로써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안면도 사건이 마무리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떠올리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때로는 채 1백 명도 되지 않는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기도 했고 때로는 수천 명 앞에서 간증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교인들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내 스스로가 집회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있었다.  

내가 집회 때마다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민족 화합의 기도이다.  

"학교, 직장, 거리에서 하루에 1분씩 민족 화합을 위해 기도합시다.

매년 3월 1일에는 전국 교회가 앞장서서 민족 화합의 집회를 갖기 바랍니다."  

내 간증은 보통, 민족 화합의 기도를 당부하고 끝을 맺는다.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 깊고 오묘해서 금방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세월을 지내 놓고 보면 '바로 이런 뜻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인간의 눈으로는

천왕성, 명왕성이 보이지 않지만 과학자들에 의해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이 사실을 믿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믿는다. 어디 믿기만 할 뿐인가.

나는 그분과 매일 세미한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도움을 구하고 있다.

내 주변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것을 본다.  

과학자들이 세상의 일만을 보고서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스런 교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과학자들일수록 오묘한 창조주의 능력에 대해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학 기술에는 여러 가지 연구와 개발 활동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가장 위험스런 것은 연구자가 자신만의 성을 그려 놓고 그 안에서만 연구를 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기술 사회'라 부른다. 이처럼 과학 기술 문명이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무역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출이 안되고 우리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그 원인을 기술 문제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기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개발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말한다.  

과학 기술 행정만의 고립된 영역에서 접근할 때에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과학 기술은 전체적인 생활 속에서 균형되고 조화된 생활 속의 한 영역일 뿐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진리에 서열이 있듯이 생활의 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늘의 상황을 '총체적 위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은 어느 장관의 인터뷰 중에

'토털 크라이시스(Total crisis)라고 표현한 것을 야당의 대변인이 번역한 것이다.


사용하고 보니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 같아서 이제는 위기가 아니라고도 말하고 있다.  

경제적 위기를 그렇게 표현했는데 사실은 정신적 위기가 더 큰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적 위기 속에서는 신앙적 위기도 내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천들은 진심으로 기도하고 회개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사명이 부여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과학자들은 학문을 사랑하며 하나님께서는 과학하는 사람들을 또한 사랑하신다.  

과학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될 때에 비로소 마음의 눈이 떠지게 된다.

학문적 진리에 닫혀 있던 마음이 활짝 열리고 참된 진리를 깨닫는 희열과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기쁨에 가득 찬 상태에서 더욱 연구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학문적 성취도를 높여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자신의 위치를 안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재물을 얻으면 무척 기뻐하지만 그 재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를 생각하면 의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연구 결과를 얻어 냈을 때에도 큰 기쁨을 맛본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슨 의미를 갖느냐 하는 것을 곰곰 생각해 보면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된다.  

우리 인류가 사용해서는 안되는 무기가 세 가지 있다. 이것이 바로 '사용 불가 무기 ABC '이다.  

A=Atomic Bomb (핵무기, 원자 무기)  

B=Biological Weapon (생물 무기, 세균전 등)  

C=Chemical Weapon (화학 무기)  

우리가 세균이나 원자력도 조작할 수 있지만 이것은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다.

화학 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불법 무기가 되고 있다.

그러한 무기를 이라크가 만들어 놓았다고 선포한 것이다. 한때는 카다피도 만들었고

또 다른 나라에서도 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탄은 항상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영(靈)을 흐리게 하려고 애를 쓴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에도 믿음의 진리를 깨달은 신앙인들의 책임이 큰 것이다.  


사탄은 진리를 향한 길을 막으려고 애쓴다.

악한 무리들을 조종하여 인류 공동의 적을 만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심을 하게 되면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고 만다.

이런 사탄의 작용을 저지시킬 수 있는 가장 무섭고도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가. 진리를 깨달은 크리스천들의 기도인 것이다.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여 사탄의 조종에 말려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된다. 성경의 이곳 저곳에 이런 명령이 나와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심지어 십계명의 첫 계명이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  

우리 현대인들의 우상은 무엇인가. 금송아지인가? 아니다. 재물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갖고

그것에 대한 동경으로 하나님을 잊어버렸을 때에 그 재물이 바로 우상이 되는 것이다.


지식에 대하여 지나친 애정을 갖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지식이 또한 우상일 수밖에 없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어떤 아름다운 예술 세계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면

그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썩고 병들게 하는 우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이기 때문에 항상 창조주의 존재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리고 창조주가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도 항상 느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며 절규했던 인류의 대속자,

그분을 통해서 나의 삶은 새롭게 변화되었다.

과학자이기에 앞서 한 크리스천임을 더욱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내 삶의 전부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시다.

호흡이 계속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