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gar Varese

이옥형200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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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도 음악의 1차적 소재로 사용

축음기의 발달로 소리 채집 보관 조작 가능하게 되었고

전통적인 악기의 한계성을 실감 하여

더욱더 전자 매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순음과 소음의 벽을 허무는데 일조함


 

바레즈(Edgar Varese 1883~1965)의 생애
1) 유년기
1883년 12월 22일 엔지니어였던 앙리 바레즈의 첫째 아이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프랑스인이었다. 7살까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는데 아버지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1892년 학교를 다니기 위해 튜랭으로 이주 하였는데 이 때부터 공학도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 몰래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튜랭음악원 원장 볼쪼니(Bolzoni)에게 화성법 대위법을 배웠고 튜랭 오페라단의 타악기주자로 일하면서 간혹 대리 지휘자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죽고 어버지는 재혼하였는데 어머니는 누이를 부탁하며 아버지를 살인자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남편을 증오하며 죽어갔다. 이런 어머니를 동정과 연민으로 평생 어머니의 사진을 곁에 두고 지냈다.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또 다시 구타하기 시작하면서 극도로 사이가 나빠진 바레즈는 혼자 1903년 파리로 이주하여 음악을 전공하기로 결심하였다.

 

2)제 1차 파리 시기(1903~1907)
  그의 나이 21살인 1904년 스콜라 칸도룸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댕디로부터 지휘 루셀에게 작곡 보르데에게선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음악을 공부하였다. 댕디와는 처음에 관계가 무척 좋았으나 사이가 점점 악화되어 서로 완전한 적으로 등을 돌렸지만 보르드는 그가 바흐 이전 시대의 음악을 평생 사랑하도록 한 중요한 인물로 바레즈는 그를 존경했다.

  바레즈는 또한 화가 자코브(Max Jacob) 피카소 모디리아니(Modigliani) 시인 아폴리네르(Apolinaire) 사티 등과 교류하였다. 1906년 파리 국립 음악원에 들어가 비도르(Widor) 마스네(Massenet)를 사사하였지만 권위적인 학교 분위기와 보수적 교육에 반기를 들고 자퇴하여 대학에 가 수학과 철학 공부를 하였다. 이 때 ‘소음을 순음으로의 전환’에 대한 사고 시작하였고「저녁의 서곡(Prelude a la fin d'un jour)」을 작곡하였다.
  비도르와 마네스의 추천으로 파리 시 예술 장학금 4년간 수혜하였고 스쿨라 칸도룸에서 보르데에게 옛 음악 계속 배웠다. 1908년 드뷔시 라벨 로망-롤랑 등과 만남을 가졌는데 강렬한 인상을 남겨 「장 크리스토프」를 쓴 로망-롤랑은 주인공 인상을 바레즈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3)베를린 시기(1907~1913)
  1907년 11월 5일 여배우였던 빙(Susanne Bing)와 결혼했고 고리타분한 파리 음악계 벗어나 베를린으로 떠났다. 1909년 부조니 R 스트라우스 폰 호프만스탈(Hug von Hormannathal)등의 도움으로 교향 합창단(Symphonischer)을 결성하였고 주로 바흐 이 전의 옛 음악을 연주하였다. 하지만 1911년 교향 합창단을 포기하였다.

 

4)제2차 파리 시기(1913~1915)
  1913년 6여 년간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빙과 이혼 한후 파리로 돌아오게 되고 딸은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이 해 6월 부조니의 집에서 연주됐던 쇤베르크의 를 감상하는 자리에서 쇤베르크를 만났고 훗날 미국에서 바레즈는 쇤베르크와 가끔 교류하며 지냈다. 1914년 프라하 지휘자로 데뷔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 발발로 활동을 중지하고 파리로 돌아가 군 입대했던 그는 폐렴으로 6개월만에 제대하였다.

 

5)미국 뉴욕 시기(1915~1928)
1915년 12월 바레즈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에서 지휘자 작곡가 작품 활동을 전개하여 1921년 『미국/Amerique』비롯하여 1925년 『적분/Integrales』까지 발표하였다.
  1921년 국제 작곡가 길드(International Composer's Guild) 결성하여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보호하고 좋은 조건에서 연주될 수 있도록 적극 앞장섰다. I.C.G의 첫 번째 음악회가1922년 2월 19일에 열렸는데 이 연주회에서는 위톤(Whithorne) 그륀베르그(Gruenberg) 말리피에로(Gian Francesco Malipiero1882~1973) 오네게르(Arthur Honegger1892~1955) 등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1927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파리와 뉴욕을 왕래하며 전자 음악에 관여를 하였다.


 

6)제3차 파리시기(1928~1933)
  1928년 10월 10일 그는 파리로 옮겨 그곳에서 5년간 생활하였고 1933년에 타악기만으로 작곡된 『전리(Ionisation)』볼 수 있다.

 

7)미국 뉴욕 로스엔젤레스 시기(1934~1965)
1935년~1948년까지 13여 년에 걸친 긴 정신적 육체적 위기를 맡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1936년 『밀도 21.5(Density 21.5)』작곡하였다. 1948년 콜럼비아 대학에서 세미나와 강의를 담당하였고 1950년에는 다름슈타트와 독일에서 세미나 강의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