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하다 #387

김미선2008.01.20
조회187
사랑을 말하다 #387

헤어진 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남자의 미니홈피에도 개점휴업 간판이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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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컴퓨터만 켜면 제일 먼저 찾아가던 곳이었지만

이젠 가봤자 속상하기나 하고, 슬프기나 하고

그게 아니면 남들이 보기엔 유치하기만 할

시련의 푸념이나 하게 될게 뻔했다

 

너무 힘들다.. 슬프다.. 가슴이 아프다..

정말이지 남들처럼 그런 말 따위는 쓰고싶지 않았다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래서 헤어진 후 남자는 단 한번 미니홈피에 들러

그저 사진들을 비공개로 돌리고 인사말 정도만 바꾸어 놓았다

 

'영원히 둘이서' 라는 말은

이제 너무 어울리지 않으므로 남자의 바뀐 인사말은 이것이었다

 

'시간은 흐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남자가 자기 홈피에 접속했을때

남자는 방명록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이름을 발견했다

그것은 헤어진 그녀의 이름

남겨진 메세지는 이런 것이었다

 

'인사말 바뀌었네 시간은 흐른다.. 좋은말이네. 잘 지내지?'

 

겨우 괜찮은 척하고 있는데

불쑥 찾아와서는 이따위 메세지나 남기는 마치 테러같은 행동

남자는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래서 아주 긴 답장을 썼다

 

'그래 시간은 흐르지

근데 시간이 얼마나 상대적인진 너도 알고 있지?

비행길 탔는데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는거 같애

양쪽에는 덩치 큰 남자 둘이 앉아서 둘다 내 팔걸이까지

차지해 버렸어 난 중간에 껴서 다리도 못 편채로 이러고도

10시간을 더 날아가야 돼 잠을 자볼까 했지만 그럴수도 없어

엄청난 소리로 한명은 코를 골고 또 한명은 이를 갈고 있거든

비행기가 꽉차서 자리를 바꿀 수도 없어

기차처럼 중간에 내릴 수도 없지

헤드폰을 쓰고 영화를 볼까 생각도 했지만

짜증이 나서 영화의 내용이 보이지도 않아

이제 좀 시간이 자났다 싶어 시계를 보면 겨우 5분 지났고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일어나면 겨우 30분 지났어

인사말이 마음에 든다구? 잘 지내냐구? 나 이렇게 지낸다

나한테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어

넌.. 이런게 궁금했니?'

 

몇번이고 고쳐 쓴 남자의 글은 하지만 곧 지워졌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그렇게 혼자서 화내고 삭히는 동안

덕분에 힘든 밤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대신 남자는 그녀의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

무심한 듯한 짧은 답장을 남겼다

다만 의문문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난 잘 지낸다.. 너도.. 잘 지내라..'

 

그리고 남자가 미니홈피에 걸어놓은 노래 하나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고 현명해지면

지금은 너무 아픈 말들도 그 때는 의미없이 가을바람처럼

내곁을 스쳐가겠지?

 

시간마져 희미해진 그 먼날

사람들이 내게 너를 아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웃으면서 대답하겠지

내 친구 중 하나였다고

슬픔은 내 눈가에서 사라지겠지

내가더 나이를 먹고 현명해진 그 때쯤엔

 

when i'm old wise~

 

 

 

#사랑을 말하다_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