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변태를 만난다면?(경험+대응책)

이수현2008.01.21
조회52,381

사실.. 이런 글.. 남자/여자 또 대결할 듯 싶어 조심스럽네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에요...

 

그리고 글도 잘 못 쓰기 때문에 몇 분 못 보실테지만 용기내어 씁니다.

 

지하철에서 변태를 만난 경험담과 이를 계기로 생각해보게 된 대응책을 쓰려구요.

 

 

제가 지난 일요일에 밤 9시쯤 전철을 타고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주말이라 남자친구와 데이트하고 있었는데 할아버님이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지방으로 급히 가게 되었어요.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택시 타고 집에 가라는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진짜 괜찮다고 그리고 오히려 밤에는 지하철이 더 안전하다고

 

잘 갈 수 있다며 탔죠.

 

책 보면서 잘 가고 있는데, 점퍼 입은 중년 아저씨께서 제 오른쪽 옆에 탔습니다.

 

그런데.. 허벅지 쪽이 간질간질 뭔가 이상하더라구요.

 

'혹시....????' 막 떨리기 시작하더군요.

 

그렇지만 무서워서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고.. 슬쩍 눈만 밑으로 깔고 봤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씬 팔짱끼고 위에 가방을 얹고 있었고,

 

약간 웅크린 자세였는데, 손가락이나 손은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전 바보같이 그냥 전철 진동인가보다. 에이 설마~ 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으로 꼬아 올렸습니다.

 

오른쪽 아저씨와 약간 거리가 멀어지게 했지만, 사람들이 꽉차게 앉아 있어 약간만 거리가 있었어요.

 

조금 이상하다고 일어나기에는 집까지 40분 더 남아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치만 신경이 곤두서서 잘 살펴보자 싶었죠.

 

다리 꼬고 좀 괜찮더니 다시 뭔가가 스물스물~~... 하더라구요.

 

아까보다 아주 약간 더 심하게.

 

미친듯이 심장이 방망이질하고 가슴이 약간 숨차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 아 어떻게 해야할까....'

 

 

얼마 전에 제 친구가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사람들한테 밀리는 척 하면서

 

자꾸 엉덩이 만지던 아저씨 만난 얘기, 

 

다른 친구가 예전에 지하철은 아니었지만, 택시에서 기사아저씨가

 

포르노를 트는 등 완전 변태짓을 했던 얘기,

 

사촌동생이 자기는 유독 지하철만 타면 하도 변태를 많이 만나서

 

버스만 탄다는 얘기 등등 들었을 때, 난 그런 경험 정말 단 한 번도 없어서

 

남의 일 같았지만, 그래도 변태 만나기만 하면 본때를 보여준다며 결심했었는데....

 

 

'그래, 난 가만히 있으면 안돼.. 안돼..' 생각은 드는데

 

막상 그런 일이 닥치니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아서

 

머리는 막 하얘지는 느낌인데 어찌 해야할 지를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용기 내서, "아저씨..! 왜 이러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떨려서 크게 말해야지 했는데도, 처음 아저씨는 작게 떨리면서 목소리 나오다가

 

끝으로 갈수록 더 큰 목소리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작은 목소리로 "미안합니다." 그러며 일어났습니다.

 

정말 뜻밖이죠.

 

예상외로 너무나너무나 멀쩡한 그 아저씨 목소리를 들으니까 울컥 화가 치밀더군요.

 

얼른 다음 칸으로 가는 아저씨 뒤에 대고,

 

"이 변태 자식아!!!!!!!!!!!!!" 진짜 크게 외쳤습니다...........

 

 

이제 곧 문이 열릴테니 옆 칸으로 가서 내리려는 듯 싶었습니다.

 

'아 신고를 해야하는데, 신고...'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제가 소리치는 통에 모든 사람들이 저만 보고 있더라구요.

 

야속할 정도로 그 아저씨 보다는 저만... 저만 다 보고 있었습니다.

 

당한게 너무 억울해서 뒷따라가서 가방으로라도 후려칠까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다가 도와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아저씨가 힘으로 절

 

치거나 밀면 제가 남자 힘을 어떻게 당하나 싶더라구요.

 

그 때 한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에요?"라고 여쭤보셨어요.

 

"저 아저씨가 제 허벅질 만졌어요!" 그러자

 

"아휴 가서 한 대라도 때리지 그랬어~ 아휴 별일이야~~"

 

이 말씀을 듣는데 더 서럽더라구요.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고 저런 못된 변태자식 한 번이라도 때릴걸...'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저만 보고 있는 사람들...

 

집 가는 행 전철은 배차간격이 20분이 넘어서 그냥 내릴 수도 없고..

 

내가 피해자이고, 죄인이 아닌데 내릴 이유가 없다 싶어서 꿋꿋이 있었지만요... 가는 내내 괴로웠습니다.

 

 

집에 왔어도.. 3일은 그 스물스물했던 느낌과 그 아저씨가 일어날 때 봤던 가느다란 손가락이

 

자꾸 생각나서 소름 끼치고.. 너무나 불쾌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치마라도 입고 있었다면 덜 억울할 지도 모르겠는데..

 

청바지에 두꺼운 코트입고, 목도리 칭칭 두르고, 안경 끼고 있었는데도 그랬다니..

 

더 보복해주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던 것이 후회스러워요.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다음에 또 변태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고요.

 

 

막연히 '변태를 만나면 가만있지 않을거야!'라기 보다는

 

어떤 구체적인 말을 할 것이고, 진짜 욕이라도 퍼부어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당황스러운 순간에 좋은 방법이 생각이 안나거든요.

 

할 말을 미리 연습해 놓는게 좋을 것 같아요.

 

전 20대 중반의 여자에요. 평상시에 변태를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을 했기에

 

큰 소리로라도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보다 어리거나, 직접 당할 줄 몰랐던 분들은 크게 당황하시면 식은땀만 흘리고

 

잘 말씀 못할 거에요.

 

그렇지만 당하는 분은 피해자이고, 나쁜 가해자 놈들은 꼭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시고

 

가만히 참지만은 마세요.

 

 

아니면 진짜 신고를 할 것인지, 한다면 어디에 신고를 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세요.

 

전 112를 누를까 하다가 변태아저씨가 그냥 내릴 것 같아서.. 그럼 112가 지하철 담당은 아니고

 

담당자 연락하고 출동하고 일이 많은데 이미 그 아저씨는 내린 후일 테니 소용 없을 것 같아서 안했는데 후회되더라구요.

 

저한텐 사실 성추행을 심한 수준으로 한 건 아니지만, 그런 아저씨가 다른 사람한테 더 심하게

 

할 수도 있고, 계속해서 다른 피해자들이 생길 테니까요.

 

그래서 알아봤어요. "지하철 수사대"가 담당이고요,

 

1-4호선은 1577-1234, 5-8호선은 1577-5678 으로 전화하면 된대요.

 

이 번호 저장해 놨어요. 전 다음 번에 그런 일 생기면 꼭 전화부터 할 거에요.

 

목격자가 있으면 꼭 증언해달라고 부탁할 거구요, 없어도 같이 붙들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려구요.

 

그 순간 창피한게 너무너무 억울해서 홧병 날 것 같은 것보다 낫잖아요.

 

 

지하철에 여성전용칸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전 당했던 순간엔 필요성도 느꼈지만, 보통의 남자분들은 엄청 기분 나빠하시는 것 같아요.

 

일부 여성분들은 찬성도 하고, 또 일부는 불편하고 여러가지 다른 문제로 반대도 하고..

 

복잡한 문제니 전용칸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요,

 

지하철 역에, 안에 요즘 tv도 나오고 광고도 많이 하잖아요.

 

"성추행 방지 캠페인"도 했으면 좋겠어요. 경각심을 일깨워 줄 것 같고.

 

캠페인 나오는데 바로 그 때 성추행하기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성추행 신고는 어떻게 해라 이런것도 안내방송에 나오거나 영상에 나오면

 

진짜 당했을 때 바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 그렇게 당한 여성분들 있으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같이 욕이라도 해주던지

 

도와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당황한 여성분도 용기내서 결단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부터가 그런 일을 목격하면 꼭 도와주렵니다.

 

처음엔 정말 불쾌했지만...

 

이런 일을 계기로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으니,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이렇게나 길고 재미없는 글을 읽으신 분들이 있다면 정말 감사해요.

 

더 좋은 대응책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