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고흐... 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미치광이 천재화가? 독특한 붓터치? 세계최고가 그림의 주인공?초상화와 해바라기?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책을 통해 알고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화가중의 한명인 빈센트 반고흐 막연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그의 작품이 서울에 왔다.영삼성 열정운영진과 함께 고흐전에 가보자~~~~연인들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그 무시무시한 거리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쭈우욱~~~ 올라가다보면 거리엔 반 고흐가 한국에 왔음을 알리는 거리 배너광고가우리의 시선을 그곳으로 따라가게 만들어준다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그냥 막연히만 알고 있었던...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면서서양미술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었고 반 고흐라는 화가가 미술사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그의 작품이 한국에 온다는 것에 무척이나 들떠있었다.11월 24일부터 전시회가 열렸지만 한창 학기중이였기에 뒤늦게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나이때는 초딩들의 방학기간이라는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싸글한 서울의 찬 바람을 맞으며 돌담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서울시립미술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과거에도 좋은 전시회가 있을때마다 종종 들렸던 이곳이곳의 느낌은 삭막하고 답답한 서울에서 벗어나 고풍스럽고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배경에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런지 예술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장소인거 같다.평일 점심때 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거장 반 고흐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은 꽤나 많았다..주말에는 사람들이 몰릴듯 싶어 평일 낮을 선택했는데... 이때부터 조금은 불안해졌다.매표소를 지나 드디어 서울시립미술관 정문 앞에 왔다.2002년 5월 중구 서소문동 옛 대법원 자리로 이전을 해 이 동네의 대표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하고있는 서울 시립미술관은 지하2층, 지상3층으로 옛날 서울 건축물의 느낌이 물씬 났다.아치형의 정문과 길다란 창문... 여러분들도 그렇게 느껴지시지 않는지...저기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로비가 나오고 고흐전이 이곳에서 하고 있음을말해주듯 아주 큰 포스터가 붙어져 있다그곳에서는 줄을 서서 기념촬영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오늘 관람객이 생각했던것 보다훨씬 많을거라는 느낌도 이때부터 들기 시작했다.오른편에 보이는 입구가 보이는가? 바로 저곳이 반 고흐전 전시회 입구이다.노란색의 문부터 아.... 고흐전이구나 하는걸 흠뻑 느끼게 해주는듯 하다.하지만 이게 왠걸... 이곳은 촬영이 불가능 하단다. 과거에도 전시회에 올때 사진을 못찍게했었던거 같았는데 하면서... 반신반의 하면서 왔는데.... 그렇다면 취재는 못하는것인가?잠시 고민한 끝에 굳이 전시회 내부의 사진을 찍지 않아도 분위기를 보여줄수 있다는 생각이들어 카메라를 가방안에 넣고 전시회 입구로 들어갔다.전시회 입구를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사진촬영 금지라는 문구가 아주 선명하게 붙여져 있었다.휴우....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이제부터 고흐를 만나러 가보자. 예술이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가본것을 기억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허무하지도 생각에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고독하지도 않을것이다.-1878. 11. 15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전시회 장에 들어서자 마자 붙여져 있는 보이는 편지글...과연 고흐는 동생에게 무엇을 말 하려고 한것일까? 본 것을 기억 할 수 있는 사람이라...그래.. 생각해보면 맞는 얘기같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매일 돈을 만지고 보지만 정작 그것을 정확히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매일 보고 만지는 것조차우리는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걸까? 그래서 우리들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그것들을 기억하고자 애쓰는 것일까? 이 문구를 지나 가장 먼저 보이는 것들은 바로 고흐와 그 주변인들의 흑백 사진들이었다.어머니, 아버지, 동생테오, 여동생의 모습을 먼저 볼 수 있게 해서 관람객들의 궁금증을해소시켜 주려 했으며 그 다음 빈센트 반고흐의 연혁이 큰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그리고 다시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인물사진이 아닌 빈센트 반고흐가보냈던 장소들... 고흐의 집이라던지 고흐가 살았었던 생레미 정신병원의 고흐의 방고흐와 뗄래야 뗄수 없는 사이인 고갱, 그리고 고흐의 무덤등을 직접 보여줌으로서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사진에서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해소 시켜주려고 배려를 한듯 보였다. 반고흐의 그림에는 유령도 없고 환영도 없고 환각도 없다.그것은 오후 두시에 내리비치는 태양이 작영하는 진실이다.-아토냉 아르토- 아토냉 아르토의 반고흐 그림에 대한 찬사를 시작으로 이제부터 본격적인반고흐의 작품세계가 펼쳐졌다. 반고흐 작품세계의 첫번째 시기라고 할 수 있는네덜란드 시기 (1881-1885) 7년간의 화상생활과 4년간의 성직자생활 끝에 동생 테오의권유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여서 그런지 반고흐의 초기 작품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Sorrow 슬픔 1882 석판화)(The potato eaters 감자먹는 사람들 1885 석판화) 기초수업에 몰두했던 헤이그에서 그린 작품 (슬픔)은 드로잉에 주력하던 시기에그려진 고흐의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으로 고흐의 전시회는 시작되어진다.그밖에 감자먹는 사람들, 여인의 초상, 베틀과 방직공등의 작품이 네덜란드 시기에그려진 그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엔틱풍 나무액자와 그의 그림이 너무나 환상적으로조화를 이루어 처음부터 관람객들의 감동을 유도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시기가 입문기여서 그런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화, 붓터치 느낌의 반 고흐그림과는 많이 달랐지만 본격적으로 그의 화풍이 들어나기 시작한 파리시기는 그가 어떻게대가로 성장해 갔는지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듯 싶었다.파리시기 (1886.3 ~ 1888.2)(Self portrait 자화상 1887 유채)(Vase of cornflowers, daisies, poppies and carnations 1886 유채)렘브란트, 홀바인등 같은 미술사 대가들의 작품을 답습하던 네덜란드 시기를 벗어나서점묘파로 불리는 후기인상파의 모습 즉 빛을 발견한 시기가 바로 이 파리시기인 것이다.인상주의와 더불어 당시 유럽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일본판화도 고흐에게 많은 영향을끼쳤고 일본판화가 담고있는 자연의 모습이 그리워 아방가르드 미술과 함께 했던 2년간의파리생활을 접고 색채를 찾아서... 태양을 느끼기 위해 그는 아를르로 떠나게 된다.아를르 시기 (1888.2 ~ 1889.4) 파리시기가 그에게 빛을 발견해준 시기였다면아를르시기는 그에게 색채를 발견해준 시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같다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재신의 방식대로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채에 심취되었다는 반고흐(우체부 조셉 롤랭 1889 유화)(The yellow house 노란집 1888 유화)노란집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는 파리에서 도착한 고갱을 맞이하고 함께 생활하면서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2달 뒤 그를 떠나려는 고갱에 대한 집착은 급기야자신의 귀를 자르면서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1년 남짓한 아를르에서 자그마치 187점의 유화작품이 제작되었다고 하면 믿어지시는가? 3층에는 셍레미시기가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셍레미시기 (1889.5 ~ 1890.5) 아를르 시기가 반고흐 예술에 있어 색채발견을 통한실현과 좌절이었다면 이 시기에는 색채회화가 완성되는 시기이다.비록 정신병원에 있었던 시기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양식의 그림을 통해안정을 취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천재 예술가는 미쳐야만 한다는 우리들의 조그만한 생각이바로 고흐에서 연상되지 않았나 싶을정도로 강력한 붓터치는 최고의 걸작들을 탄생시키고있었다.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1890 유화)고흐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위의 그림을 보면 야경의 모습이 너무나 독특한모습으로 하지만 시골길의 풍경이 그대로 전해지는 감동을 받게되지 않는가?오베르시기 (1890.5~7) 남프랑스의 꿈을 접고 북쪽으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반고흐가도착한 때는 1890년 5월이었다.오베르에서의 생활은 그림 그리기가 전부였다고 한다. 자신의 생에 마지막 70일을 이곳에서보냈는데 그는 무려 80여점의 유화작품을 남겼다고 한다.독특한 규격의 그림도 그리곤 했는데 그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것들을 강조하기 위해일부러 채택을 했다고 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마지막으로 그는 7월에 자살을 시도하고 이틀 후 생을 마감하게 된다.비록 그의 어둡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인류애와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Farmhouse 농가 1890 유채화)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장소변화에 따른 작품의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반 고흐의 명성이 색채화가로서의 뛰어난 재능과 붓터치 양식으로 얻어졌지만 실제로 그의드로잉과 수채화 또는 판화작품은 실제 그의 유화작품보다 훨씬 수가 많다고 한다.이 전시회에서는 그의 데생작품 또한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었다.(가지 친 버드나무 길 1881 목탄)그의 데생작품을 보면 그가 데생으로도 위대한 작품을 많이 남겼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났다.현재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의 꿈은 다른것인데 나이때문에 혹은 현실적인 어려움때문에 안정을 택하곤 한다.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들어선 빈센트 반 고흐만약 그가 그냥 성직자나 사업가로 남았다면 현대 미술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다만.... 현실에서 고통속에서 어려움속에서 예술을 해야만 했던 그의 모습은 전시회 내내마음을 무겁게 했다. 지금받는 찬사를 살아있는 동안에도 느꼈더라면 좋았을텐데...만약 그랬다면 지금같은 작품은 나오지 않았으려나..... 지금까지 열운이 소개하는 불멸의화가 반 고흐전이었는데 어떠셨나요?전시가 3월 16일까지인데... 막판에는 몰릴 수 있으니 여유가 있으실때 한번 가보시는건어떨까요? 글, 사진 영삼성 열정운영진 4기 임용환 출처 : 당신의 열정 지지자 영삼성(www.youngsamsung.com)1
[열정리포트] 불멸의화가 반 고흐전 ~ 둘러볼까요?
빈센트 반고흐... 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미치광이 천재화가? 독특한 붓터치? 세계최고가 그림의 주인공?
초상화와 해바라기?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책을 통해 알고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중의 한명인 빈센트 반고흐 막연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그의 작품이 서울에 왔다.
영삼성 열정운영진과 함께 고흐전에 가보자~~~~
연인들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그 무시무시한 거리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쭈우욱~~~ 올라가다보면 거리엔 반 고흐가 한국에 왔음을 알리는 거리 배너광고가
우리의 시선을 그곳으로 따라가게 만들어준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그냥 막연히만 알고 있었던...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면서
서양미술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었고 반 고흐라는 화가가 미술사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그의 작품이 한국에 온다는 것에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11월 24일부터 전시회가 열렸지만 한창 학기중이였기에 뒤늦게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나
이때는 초딩들의 방학기간이라는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싸글한 서울의 찬 바람을 맞으며 돌담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서울시립미술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과거에도 좋은 전시회가 있을때마다 종종 들렸던 이곳
이곳의 느낌은 삭막하고 답답한 서울에서 벗어나 고풍스럽고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배경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런지 예술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장소인거 같다.
평일 점심때 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거장 반 고흐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은 꽤나 많았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몰릴듯 싶어 평일 낮을 선택했는데... 이때부터 조금은 불안해졌다.
매표소를 지나 드디어 서울시립미술관 정문 앞에 왔다.
2002년 5월 중구 서소문동 옛 대법원 자리로 이전을 해 이 동네의 대표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서울 시립미술관은 지하2층, 지상3층으로 옛날 서울 건축물의 느낌이 물씬 났다.
아치형의 정문과 길다란 창문... 여러분들도 그렇게 느껴지시지 않는지...
저기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로비가 나오고 고흐전이 이곳에서 하고 있음을
말해주듯 아주 큰 포스터가 붙어져 있다
그곳에서는 줄을 서서 기념촬영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오늘 관람객이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많을거라는 느낌도 이때부터 들기 시작했다.
오른편에 보이는 입구가 보이는가? 바로 저곳이 반 고흐전 전시회 입구이다.
노란색의 문부터 아.... 고흐전이구나 하는걸 흠뻑 느끼게 해주는듯 하다.
하지만 이게 왠걸... 이곳은 촬영이 불가능 하단다. 과거에도 전시회에 올때 사진을 못찍게
했었던거 같았는데 하면서... 반신반의 하면서 왔는데.... 그렇다면 취재는 못하는것인가?
잠시 고민한 끝에 굳이 전시회 내부의 사진을 찍지 않아도 분위기를 보여줄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가방안에 넣고 전시회 입구로 들어갔다.
전시회 입구를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사진촬영 금지라는 문구가 아주 선명하게 붙여져 있었다.
휴우....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이제부터 고흐를 만나러 가보자.
예술이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가
본것을 기억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허무하지도
생각에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고독하지도 않을것이다.
-1878. 11. 15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전시회 장에 들어서자 마자 붙여져 있는 보이는 편지글...
과연 고흐는 동생에게 무엇을 말 하려고 한것일까? 본 것을 기억 할 수 있는 사람이라...
그래.. 생각해보면 맞는 얘기같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매일 돈을 만지고 보지만
정작 그것을 정확히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매일 보고 만지는 것조차
우리는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걸까? 그래서 우리들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그것들을 기억하고자 애쓰는 것일까?
이 문구를 지나 가장 먼저 보이는 것들은 바로 고흐와 그 주변인들의 흑백 사진들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테오, 여동생의 모습을 먼저 볼 수 있게 해서 관람객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려 했으며 그 다음 빈센트 반고흐의 연혁이 큰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인물사진이 아닌 빈센트 반고흐가
보냈던 장소들... 고흐의 집이라던지 고흐가 살았었던 생레미 정신병원의 고흐의 방
고흐와 뗄래야 뗄수 없는 사이인 고갱, 그리고 고흐의 무덤등을 직접 보여줌으로서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사진에서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해소 시켜주려고 배려를 한듯 보였다.
반고흐의 그림에는 유령도 없고 환영도 없고 환각도 없다.
그것은 오후 두시에 내리비치는 태양이 작영하는 진실이다.
-아토냉 아르토-
아토냉 아르토의 반고흐 그림에 대한 찬사를 시작으로 이제부터 본격적인
반고흐의 작품세계가 펼쳐졌다. 반고흐 작품세계의 첫번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네덜란드 시기 (1881-1885) 7년간의 화상생활과 4년간의 성직자생활 끝에 동생 테오의
권유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여서 그런지 반고흐의 초기 작품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orrow 슬픔 1882 석판화)
(The potato eaters 감자먹는 사람들 1885 석판화)
기초수업에 몰두했던 헤이그에서 그린 작품 (슬픔)은 드로잉에 주력하던 시기에
그려진 고흐의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으로 고흐의 전시회는 시작되어진다.
그밖에 감자먹는 사람들, 여인의 초상, 베틀과 방직공등의 작품이 네덜란드 시기에
그려진 그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엔틱풍 나무액자와 그의 그림이 너무나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처음부터 관람객들의 감동을 유도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시기가 입문기여서 그런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화, 붓터치 느낌의 반 고흐
그림과는 많이 달랐지만 본격적으로 그의 화풍이 들어나기 시작한 파리시기는 그가 어떻게
대가로 성장해 갔는지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듯 싶었다.
파리시기 (1886.3 ~ 1888.2)
(Self portrait 자화상 1887 유채)
(Vase of cornflowers, daisies, poppies and carnations 1886 유채)
렘브란트, 홀바인등 같은 미술사 대가들의 작품을 답습하던 네덜란드 시기를 벗어나서
점묘파로 불리는 후기인상파의 모습 즉 빛을 발견한 시기가 바로 이 파리시기인 것이다.
인상주의와 더불어 당시 유럽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일본판화도 고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일본판화가 담고있는 자연의 모습이 그리워 아방가르드 미술과 함께 했던 2년간의
파리생활을 접고 색채를 찾아서... 태양을 느끼기 위해 그는 아를르로 떠나게 된다.
아를르 시기 (1888.2 ~ 1889.4) 파리시기가 그에게 빛을 발견해준 시기였다면
아를르시기는 그에게 색채를 발견해준 시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같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재신의 방식대로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채에 심취되었다는 반고흐
(우체부 조셉 롤랭 1889 유화)
(The yellow house 노란집 1888 유화)
노란집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는 파리에서 도착한 고갱을 맞이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2달 뒤 그를 떠나려는 고갱에 대한 집착은 급기야
자신의 귀를 자르면서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1년 남짓한 아를르에서 자그마치 187점의 유화작품이 제작되었다고 하면 믿어지시는가?
3층에는 셍레미시기가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셍레미시기 (1889.5 ~ 1890.5) 아를르 시기가 반고흐 예술에 있어 색채발견을 통한
실현과 좌절이었다면 이 시기에는 색채회화가 완성되는 시기이다.
비록 정신병원에 있었던 시기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양식의 그림을 통해
안정을 취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천재 예술가는 미쳐야만 한다는 우리들의 조그만한 생각이
바로 고흐에서 연상되지 않았나 싶을정도로 강력한 붓터치는 최고의 걸작들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1890 유화)
고흐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위의 그림을 보면 야경의 모습이 너무나 독특한
모습으로 하지만 시골길의 풍경이 그대로 전해지는 감동을 받게되지 않는가?
오베르시기 (1890.5~7) 남프랑스의 꿈을 접고 북쪽으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반고흐가
도착한 때는 1890년 5월이었다.
오베르에서의 생활은 그림 그리기가 전부였다고 한다. 자신의 생에 마지막 70일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그는 무려 80여점의 유화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독특한 규격의 그림도 그리곤 했는데 그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것들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채택을 했다고 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마지막으로 그는 7월에 자살을 시도하고 이틀 후 생을 마감하게 된다.
비록 그의 어둡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인류애와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Farmhouse 농가 1890 유채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장소변화에 따른 작품의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반 고흐의 명성이 색채화가로서의 뛰어난 재능과 붓터치 양식으로 얻어졌지만 실제로 그의
드로잉과 수채화 또는 판화작품은 실제 그의 유화작품보다 훨씬 수가 많다고 한다.
이 전시회에서는 그의 데생작품 또한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가지 친 버드나무 길 1881 목탄)
그의 데생작품을 보면 그가 데생으로도 위대한 작품을 많이 남겼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났다.
현재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의 꿈은 다른것인데 나이때문에 혹은
현실적인 어려움때문에 안정을 택하곤 한다.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들어선 빈센트 반 고흐
만약 그가 그냥 성직자나 사업가로 남았다면 현대 미술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다만.... 현실에서 고통속에서 어려움속에서 예술을 해야만 했던 그의 모습은 전시회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지금받는 찬사를 살아있는 동안에도 느꼈더라면 좋았을텐데...
만약 그랬다면 지금같은 작품은 나오지 않았으려나.....
지금까지 열운이 소개하는 불멸의화가 반 고흐전이었는데 어떠셨나요?
전시가 3월 16일까지인데... 막판에는 몰릴 수 있으니 여유가 있으실때 한번 가보시는건
어떨까요?
글, 사진 영삼성 열정운영진 4기 임용환
출처 : 당신의 열정 지지자 영삼성(www.young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