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몽유도원도

김형석200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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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몽유도원도(新夢遊挑源圖)


 


김형석/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배를 띄운 물이 배를 침몰시킨다."는 중국속담이 있는데 5년 만에 민심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놀랍다. 대통령 후보의 온갖 의혹과 허물도 ‘경제대통령’ 바램 앞에서는 추풍낙엽이었던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당선인은 법정 선거운동의 시작과 끝을 청계천(淸溪川)에서 가졌었다. 청계천 복원의 상징적 이미지가 대통령 후보의 경제 부흥에 필요한 ‘추진력’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문화’라고 참모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청계천에서 용이 난다’*1는 예감을 적은 졸필을 거제시문화예술재단에서 발행하는 문예정보지 '예술을 사랑하는 거제사람들' 2006년 봄호에 기고했었는데 현대사회는 외연(外緣)을 넓힐 수 있는 필수 코드, 대중을 움직이는 중요한 키워드가 '문화'라고 절감했기 때문이다.


 


서울 출장길에 들린 청계천의 추억은 인터넷, 언론의 수많은 도덕성 문제 제기에도 ‘장사꾼은 이익을 좆다보면 무리수를 둘 수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단점보다 장점만을 보게 했었다. 그러나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은 다르다. 경제적 위상에 버금가는 ‘문화선진국’을 만들기 위해서 최고경영자 출신으로서의 약점인 이익을 추구하는 본성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경제회생’이라는 시대정신이 들끓어도 실용주의와 경영성과만 강조해 인간적인 부분이 간과되어서도 안된다. 청계천으로 상징되는 대통령 당선인의 문화마인드가 야망을 위한 콘크리트 문화가 아니라 따뜻한 인정이 맑은 물처럼 흐르는 ‘희망가꿈’과 ‘행복나눔’의 창조적 문화이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래서 5년 후 저잣거리의 풍문에 흔들린 소인배를 부끄럽게 해주기를 기원하며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와 기우가 교차하는 정치의 계절에 함께 읽고 싶은 화두 네 가지를 이야기해 본다.

신몽유도원도

거제도 해금강/김와곤




1. 독배가 있는 야연(夜宴)
“냄새도 맡지 마시오. 비상보다 얼마나 더 독한지 모른다오.”
"세상에서 이 독약 보다 더 독한 것은 없겠군요?"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입니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을 표절했던 수년전 개봉한 중국 삼류영화에 나오는 대사이다. 권력을 위해 황제인 남편과 형을 공모하여 독살하는 폐덕과 불륜의 시대를 비껴살 수 없었던 왕세자 햄릿의 고뇌가 동양적인 시대극에도 그대로 투영되, 비수처럼 육신에 파고드는 탐욕과 애증으로 파멸되는 영화였다. 역사책을 보아도 인간의 추악한 권력욕 앞에선 부모, 자식, 형제, 친구, 동지도 적이 된다. 인륜이 휴지가 되어 백골처럼 뒹군다. 권력욕이란 음주가무에 취해 밤늦도록 질펀하게 벌어지는 연회의 독배(毒杯)이지 않을까?


 


2. 개국과 치국
2000여 년 전, 항우와 유방이 중국의 패권을 놓고 싸울 때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을 이룬 책사 장량은 낙향을 결심한다. 유방의 관상은 '장경오훼(長頸烏喙)'의 까마귀상으로 '고생은 같이 해도 복은 같이 누릴 상이 아니다'라며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눈치 채고 가족들과 함께 은둔을 결심한다. 고향으로 향하다 천하제일의 절경을 발견하고 정착하는데 '장씨 마을'이라는 뜻의 장가계이다. 고향을 버릴 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숨은 장량은 천수를 누렸지만 한신 장군을 비롯한 개국공신들이 피의 숙청을 당한다. 그러나 개국(開國)과 치국(治國)에 필요한 인재가 다르다는 제왕학(帝王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해는 된다. 현대의 축구경기처럼 전천후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플레이어가 그리 흔한가? 국민들이 태평가를 부르게 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일꾼이라면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면 어떠하고 박힌 돌, 굴러온 돌이면 어떠하리.


 


3. 선비의 고향
“선비의 목을 칠지언정 욕을 보이지는 않는 법이다. (士可殺 不可辱)”
청마 유치환 친일 논쟁, 거제시와 통영시의 청마 고향문제 등으로 갑론을박하던 ‘청마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중국의 고전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 문장을 인용한 지역 언론사 김덕훈 회장의 말씀이 귀에 남는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는데 거제도가 낳은 위대한 영혼이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며 공과는 후세의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나라 민족분단 전후, 껍데기 같은 이념에 의해 고향사람들이 좌우로 편가르기 하여 살육을 일삼던 야만과 광기의 시절처럼 더 이상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인간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4. 기다림이 아름다운 풍경
‘쓰임을 받으면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숨는다. (用之則行, 舍之則藏)’
논어에 나오는 이 말을 일류처럼 살고싶은 그들과 국민에게 선택받아 일류인생을 살았던 그들, 그리고 세상이 늘 인생의 목표였던 그들에게 해 주고 싶다. 은거(隱居)는 쓰이기를 바라는 ‘기다림’이었다. 그래서 기다림은 늘 쓰라림이었다. 그러나 즐겁게 자연으로 찾아드는 사람에게 자연은 도피처가 아니라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새로운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자연과 책을 벗 삼아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삶도 아름답지 아니한가? 밖으로 자연의 변화를 본받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체득하며 내일을 준비하다보면 한겨울 두텁던 얼음도 봄바람에 녹아내려 꽃 피고 새가 노래하는 계절이 올 것이다.


 


강태공처럼 때를 기다리며 세월을 낚던 유배지였던 섬에서 사는 삼류인생 범부의 삶도 유쾌하고 행복하다. ‘세상의 나무 밑이 나의 여인숙’이라는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쉬며 꿈 꿀 수 있는 곳이 나의 고향이다. 태어난 고향이든, 마음의 고향이든, 정신적 고향이든 어떠하랴? 서울공화국에서 먼 남쪽 끝, 장승이 서 있는 바닷가 마을에 사는 촌부는 ‘헤엄을 잘 치는 자의 무덤은 물 속에 있다’는 인도 격언이 입안의 생선가시처럼 자꾸 걸린다. 경제 살리기와 문화 제자리 찾기로 품격 높고 신뢰 받는 소프트 파워가 국제 경쟁력인 평화의 문화공동체로의 번영! 대한민국의 미래를 낙관하지만...



신몽유도원도

거제문화예술회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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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계비룡(淸溪飛龍)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에 문화가 흐르게 하겠다"
'문화 마인드가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로 작년, 거제여성문화예술대학에서 개최한 특강에서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의 강연 중 지금도 뇌리에 남는 말이다. 창조적 의지력에 신뢰를 주는 연극계의 든든한 기둥으로서, 서울의 문화를 경영하는 문화행정가로서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그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철학에 깃든 문화와 예술, 교육 분야 등 박학다식한 열정적인 강의는 무대가 아닌 강단에서도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카리스마를 보았다.


 


"사는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공연, 전시 등 예술분야에 관심이 많아 젊은 시절부터 연극인으로서 작품으로 승부하는 프로정신을 지켜보았었다. 대한민국 천민자본주의 1번지인 서울 강남에 사재를 틀어 만든 유시어터 소극장에서 ‘햄릿’의 절규를 들었고, 성수대교 공사현장 옆 한강변 야외 임시무대에서의 실험적인 연극 '철안붓다'는 감동 그 자체였다. 무절제한 발전이 극에 달한 수천년 후, 황폐화된 문명 속에 인간들은 환경오염으로 거의 멸종에 이른 미래에 생명복제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철안족의 구원으로 열연한 작품을 보며 상업적인 연극, 말도 안 되는 코미디들이 판을 치는 세태에 시원한 영혼의 청량제를 마신 기분이었다.


 


"청계천에서 용이 난다"
서울 출장길에 들린 청계천에서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처럼 확실히 21세기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코드는 '문화와 환경'일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보더라도 권력은 총구에서, 등산화에서, 인터넷으로 이동하며 순기능의 역동성으로 움직였다. 로마제국을 통치한 현군이며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지도자의 4가지 덕목으로 지혜(Wisdom), 정의감(Justice), 강인성(Fortitude), 절제력(Temperance)을 꼽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 현대사회 리더의 핵심 키워드로 '문화마인드'와 '유머감각'을 꼭 추가하고 싶다.


 


"제 갈 길을 아는 사람에게 세상은 길을 비켜준다"
올해에는 지방선거, 내년에는 대선이 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거제사람들은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민주노동당도 아니다. 문화예술당이다! '문화거제'의 큰그림 보다 지역이기주의와 정치적 발목잡기, 소아(小我)에 집착하는 반(反)문화적 후보자는 반(反)부패와의 전쟁 만큼 시급하게 시민들의 건강한 감별력으로 척결해야 한다. 문화적 마인드가 빛을 발하는 혜안을 가진 대의(大義)의 리더십에게 해양문화관광도시 거제와 2만불 시대의 문화선진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
청계천을 걸으며 대중을 움직이는 용의 발톱 속의 여의주, 문화의 힘을 본 것 같다.


 


*거제시문화예술재단 문예정보지 2006년 봄호'예술을 사랑하는 거제사람들' 기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