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담론(要要談論) ;; 이명박 정부와 지지자에 부쳐.

염규현200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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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은 골목길에 부스러진 잿더미를 보고  

 

' 연탄재 차지마라 너는 언제 한 번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고 성토한다. 

 

 

 혹자는 이런 시구(詩句)를 두고, 

 

 세상 모든 이들을  온정을 잃은 냉혈한으로 만들셈이냐고 흠집을 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스며든 이유는 무엇일까? 

 

 

 연탄보다 체온이 떨어져 버린 우리 사회.

 

 그것은 온기의 결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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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세계화와 자본자유화 10 여년, '극단의 경쟁'이라는 종양 덩어리는

 

 이제 폐부를 찢고 몸 밖으로 튀어 나와 뜨끈한 핏물을 쉴 새 없이 게워내고 있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체온도 점점 떨어져 이젠 생동을 잃어버리는 임계점에 와 있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작은 온기만이라도 남아있으면 그것이 피인양 가리지 않고 먹어대려 든다. 

 

 

 당선만 되면 수십억을 지원하겠다는 초선심성 대통령 후보의 공약.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것도 아닌, 목적과 수단이 비열해도 결과만능주의적 사고를

 

 실용으로 포장하는 언론과 이에 열광하는 일부 갈급한 자들의 맹목적인 지지.  

 

 

 이 모든 것들이 부족한 피와 온기를 보충하기 위함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다고 해서 아무 주사바늘이나 막 꽂아 넣을 수 있겠는가. 

 

 아무거나 마셔대면 쓰겠는가.

 

 

 대기업은 자본논리로 정치, 경제, 예술.문화, 사법, 입법, 행정을 휘젓고,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며, 암덩어리를 키우고 거대 언론은 뿜어져 나오는

 

 죽은 피를 하이에나 마냥 받아마시며 벌건 눈이 잔뜩 충혈되어 더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2008년 1월 22일자 중앙일보

 

 에버랜드 창고에 숨겨진 고가 미술품 수만점에 대한 기사

 

 사회면 10면 우측하단에 손바닥 절반만한 크기로 게재되어 있다.

 

 동일 페이지에는 지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폰트로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는 기사가 자리한다. 

 

 

 에버랜드 기사가 한겨레 신문 1면 대서특필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일자 사회면 10면

 

 삼성 중공업 기름유출 쌍방과실 판정에 대한 기사

 

 다행히 이 기사는 손바닥 하나 반 만해서 위의 기사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사회면 11면으로 이어지는 전면 기사,

 

 < 길고 긴 설연휴 뭐하고 보낼까? > 

 

 세간의 관심을 연휴 특수에 분산 시킴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태는 23면으로 이어진다.

 

 < 70만명이 태안으로 달려가 - 자원봉사 경제적 가치는? >

 

 " 자원봉사는 행복나눔 품앗이 "

 

 " 자원봉사를 하면 엔돌핀이 분비돼 스트레스 해소돼.. "

 

 " 자원봉사는 ... 어쩌고.. 저쩌고.. "

 

  - 장욱 기자 -

 

 삼성 관련기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기업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며, 국민들의 자원봉사로 손을 씻으려 하는,

 

 가히 자본과 제대로 결탁한 언론답다.

 

 

 우리나라 최대 그룹 산하의 거대기업이 작년 하반기 연일 상한가를 치며 이익을 내던

 

 기업의 과실로 기름이 유출되어 회복불능의 피해를 낳았고, 그 후유증으로 현지 주민들의

 

 분신과 자살이 속출하고 있는 시점에, 근 50일만에 사과문을 내놓은 무책임한 기업윤리에

 

 대한 중앙일보의 보도는 고작 손바닥 만한 기사였다.

 

 

 어디 언론뿐인가.

 

 사회는 표면적 양극화를 넘어 입체적으로 진화하고 있고,

 

 즉, 국적과 혼혈,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들의 편견과 차별 속에 학벌과 지역,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다면화 된 빈부 격차는 이제 그 표적을 가늠하기 어렵다.

 

 

 농어촌에서는 외국인 며느리들이 늘면서

 

'다문화자녀(속칭 혼혈아동)'의 교육과 복지가 시급한 문제라는데 여전히 우리의 관심

 

 밖일 뿐이다. 고작 그들이 성인이 되어 유권자의 입장에 서서 정치세력화 하게 되면

 

 그 때는 알아줄까. 지금으로서는 특히, 차기 새 정부의 인수과정을 보면 그러한 세심한

 

 움직임, 진정한 따스함은 요원하기만 한다. 

 

 

이런 이슈들을 꼽자면 하루 반나절이 부족할 것이다.

 

 

 

 

필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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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고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정책.

 

이것이 우선이 되는 사회. 그것은 우리 사회에 따뜻하고 맑은 피를 수혈해 줄 그 무엇임에도

 

이명박 예비정부는 정작 필요선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듯 하다.

 

 

반면, 그들은 필요악과 불요선을 혼동하면서 불요선을 남발해 대고 있다. 

 

그것이 마치 필요악이라 어쩔 수 없다는 양.

 

 

물론 지금 추진하는 효율성 제고의 측면이나 재벌규제완화 등의 긍정적 측면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당장은 필요없는

 

시혜적인 배려일 뿐이다.

 

 

오히려, 효율성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규제하고 사회의 법도와 기강을 확립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필요악이요, 정책 목표와 입법의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살을

 

빼기보다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우리 사회와 민족적 특수성에 비추어 꼭 필요한

 

가치로서 남겨둘 것들에 대한 검토는 필요악일 것인데,

 

 

이 둘을 뒤집어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아니면 이 둘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이와 같은 우를 범하는 똑똑한 예비관료라면 그 역시

 

죽은 피를 받아마시고 있는 중이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충혈된

 

언론은 이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게걸스럽게 침을 흘리며 꽁무니를 쫒고 있다.

 

 

결과와 평가는 머지 않아 '역사의 신'이 판단해주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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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변화가 필요하다.

 

필요악과 불요선을 다시금 인지하고, 필요선부터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작은 의식의

 

전환에서부터 출발한다. 정권의 교체를 국가 기틀의 개조라는 거대담론으로 환원하지 말라.

 

 

그들이 진정으로 변화하기 전 까지는

 

또한 국민들이 올바른 가치와 '수혈의식(?)'을 가지기 전까지는

 

 

우리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연탄재를 걷어차도 고작 연탄보다도

 

차가운 놈으로 매도되어 어느 시인의 펜 끝에 뭇매를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없애고, 불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예비 새정부를 보다가

 

또한 무심코 신문을 읽다가 그다지'진보'적 이지도 않은 나를 분하게 만든 현 시점만큼은

 

정말 ' 이념의 상대성'을 일깨워 주는 듯 하다. 

 

 

노장의 대선후보가 한나라당을 좌파로 공격한 것에 비하면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 수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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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네 불요네하는 '요요담론'은 일종의 지푸라기로

 

남겨 놓으란 어떤이의 충고도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한번 두고 보자는 일종의 '관망론'일테지만

 

내가 보기엔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상황 같다. 

 

 

하늘도 이와 같으신지 날은 온통 흐려 슬픈 눈만 하염없이 내리고

 

더불어 코스피지수도 하염없이 내리고

 

더불어 내 코묻은 돈도 하염없이 내리는 하루다.  

 

 

'필요' 운운하는 것도 이러할진대

 

국토를 파괴하고 운하를 가로지르는

 

화물선 같은 불요악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리.

 

 

-t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