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이지만, 외계인의 접촉설을 긍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만약 외계인과 만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과 우리들이 서로 유의미한 존재로 서로 인식할 수나 있을까? 절대 다수의 과학자들이 인간의 외계인 접촉설에 대하여 넌센스로 치부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은 인간적인 수준을 갖추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그들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환타지를 긍정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을 훼손하는 것이라면 환타지는 장사꾼들의 허풍에 불과하다.
발명은 대부분 기업을 통해 사회에 확산된다. 그 과정에서 발명가가 큰 이득을 얻기도 하지만 남만 좋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발명의 확산이 기업과 사회 양쪽에 득을 주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발명을 주도한 기업은 오히려 망하고 다른 기업을 통해 발명이 사회 전체에 득을 준 경우도 있다. 또 발명의 확산이 기업에게만 득을 주고 사회적 잡음만 발생시키고 끝나기도 한다. 고대인의 발명인 최면술이 현대 문화 산업과 결합함으로써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사건이 있다.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부부가 최면술의 도움을 받아 당시 기억을 되찾았다는 일화가 알려지자, 그와 유사한 일을 당했다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여기에는 UFO 연구가 버드 홉킨스(B. Hopkins),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존 맥(J. Mack), 심리치료사들, 그리고 출판계의 끈끈한 공조가 있었다. 심지어 1990년대에는 외계인에게 납치당하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현대인에게 ‘문화’라는 것은 항상 긍정적 가치를 지닌 것처럼 이해되고, 문화 산업 또한 가치 창출의 수레바퀴처럼 여겨지지만, ‘외계인 납치극’에 대한 일화는 출판업을 매개로 거의 종교 현상이 되었던 것이다. 출판업계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지만, 외계인 납치극을 둘러싼 잡음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그것은 현대 문화 산업의 부작용으로 평가되어야 할까? 아니면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희극으로 평가되어야 할까?
집단 환각의 발단
한 밤중, 갑자기 밝은 섬광과 함께 벽이 열리고 너는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빛줄기에 이끌려 미지의 미확인 비행물체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인간과 다른 모습의 외계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너를 수술대와 같은 곳에 뉘인 다음 실험에 들어간다. 이러한 이야기는 외계인에 의해 납치를 당했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에서 발견된다. 지금도 수만 명, 아니 어쩌면 수십만 명이 외계인 납치극을 믿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적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납치 사건 이후에도 외계인에 의해 텔레파시로 조정당하고 있다고 믿으며, 심지어 이들을 위한 특수 헬멧을 파는 곳도 있다. 이러한 세태는 출판업계에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막말로 외계인 납치극을 다룬 책은 기본 부수는 나가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일부 출판사의 기여도 있었다.
외계인 납치극에 대한 집단 환각은 어디에서 발단한 것일까? 어떤 이는 19세기, 심지어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61년 베티 힐과 바니 힐 부부의 일화를 사건의 발단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뉴햄프셔 산간 지역을 여행하던 중, 밝은 섬광이 그들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 섬광은 거대한 우주선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힐 부부는 섬광을 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더 이상 기억해낼 수 없었다. 베티가 기괴한 모습의 외계인 꿈으로 시달리자, 부부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최면상태에서 힐 부부가 기억해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후 생체 실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힐 부부의 일화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UFO 연구가 홉킨스의 책 잃어버린 시간(Missing Time)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홉킨스의 주장에 따르면,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간과될 수 없는 몇 가지 공통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그들은 납치된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할 수 없다.
둘째,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생채기가 얼굴이나 몸에 나있다.
셋째, 아침에 일어난 순간 자기 방이 낯선 곳처럼 느껴지면서 마비 증세가 나타난다.
우리들 중 죽는 그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자신 있게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누구도 죽는 그 순간 자체를 경험할 수 없고, 또 되살아난 경우에도 그 순간만큼은 기억해낼 수 없다. 나 또한 단순 기절이 아니라 코마에 빠졌다가 깨어났던 적이 있지만, 내가 기억해낼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사고 전과 깨어난 과정이 전부였다. 죽는 그 순간에 대한 경험이 불가능하다면,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도 불가능하다. 외계인에 의해 납치당한 순간이 죽는 순간은 아니다. 사람을 죽였다 되살릴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외계인이 죽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실험했다면, 그들은 납치된 동안 벌어진 일을 기억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영원히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을 것이며, 외계인 납치극이 집단 환각을 넘어 종교 세력처럼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계인의 납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분명히 UFO 안에서도 살아 있어야 했다. 잠자는 동안에 발생한 일도 다 기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또 어린 시절의 경험도 다 기억해낼 수 없다. 최면술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준다는 믿음은 심리치료사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하나의 통념과 같은 것이다. 기억할 수 없는 동안은 인간에게 ‘잃어버린 시간’인 것이다. 최면술의 도움을 받아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이다.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세 특징은 죄다 설명을 요구하는 사실들이다. 그 사실들은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은 가설을 요구한다. 외계인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가설을 설정하는 순간 세 특징은 일단 설명된다.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진 외계인은 인간 두뇌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의 경험을 망각상태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첫째 특징은 ‘외계인 납치’ 가설에 의해 설명된다. 얼굴이나 몸에 난 생채기는 외계인에 의해 생체 실험을 당한 증거가 된다. 특히 여성의 하복부에 난 생채기는 멸종 위기에 도달한 외계인들이 인간 난자를 이용해 인공 번식을 시도하고 있다는 가설 설정을 가능케 해준다. 몇 시간 동안 생체 실험을 당했으니 몸이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몸에 마비 증세가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밝은 섬광을 목격한 후 망각 증세에 빠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면술을 건 결과, 그들은 하나같이 외계인에 의해 납치당했다고 증언한다. 이제 외계인 납치 가설은 하나의 사실이 된다. 하지만 최면 상태의 증언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 외계인 납치극에 대한 신봉자들에게는 불행한 얘기이지만, 최면 상태의 증언은 타인이나 평소 믿고 싶어 하던 것에 의한 암시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면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면 상태에서 나온 증언의 내용을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억은 타인의 조정에 의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외계인 납치 가설은 단지 가설로만 남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전문가가 나타나 외계인 가설을 옹호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전문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외계인 납치극이 막강한 문화 산업으로 등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적, 물질적, 또는 종교적
1991년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맥은 약 10만 명의 심리치료사들에게 외계인 납치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64쪽의 보고서를 돌린 후, 사방에서 외계인에게 납치당했었다는 사람들이 출몰했다. 약 400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외계인 납치극의 희생양이라는 연구결과도 뒤따랐다. 그 400백만 명은 어떻게 추정되었을까? 이 물음을 살펴보기 전에 퓰리처상 수상자이자이기도 한 맥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홉킨스의 책은 외계인 납치 가설을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보다는 뛰어난 작가가 필요했다. 공상과학소설 작가 스트라이버(W. Streiber)는 교우: 실화(Communion: A True Story)에서 힐 부부가 겪은 경험담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스트라이버의 책은 1989년 모라(P. Mora)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그 영화가 단순히 베스트셀러의 힘을 빌려 대중적 성공을 노린 것만은 아니다. 에릭 클랩톤(E. Clapton)의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그 영화는 어떻게 본다면 초현실주의 기법 속에 미지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동경, 그리고 그 동경에 의한 실재의 가상화를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월켄(C. Walken) 또한 한 인터뷰에서 외계인 납치 가설을 세상에서 가장 일어나기 힘든 일로 묘사했다.
스트라이버의 소설과 영화가 불러온 반향은 대단했다. 어떤 이들은 스트라이버 자신은 외계인 납치 가설을 믿고 있지 않았다고 추측했다. 그 대신 공상과학 소설 속에 미지에 대한 인간의 동경심을 반영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심미적 이해를 다룬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스트라이버는 1985년 정말 자신이 외계인에 의해 납치당했고 믿었다. 그는 인간 사이에 외계인과 지구인의 잡종 종족들이 섞여 있으며, 그들은 언젠가 지구를 차지하려고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수백만 명이 외계인 납치극의 희생자라면서 사방에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쪽에서 본다면 우습기 그지없는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의 문화사를 고려한다면, 그리 우스운 것만도 아니다. 서구인들이 물질적 에너지와는 별개로 가정된 기(氣)에 아직까지 집착하는 동양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주원인은 무엇일까? 기의 검증 불가능성보다는 이쪽 문화에 대한 무지이다. 마찬가지로 서구 문화사를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외계인이 하나의 종교물로 대체되는 현상은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의 신(God)은 그리스의 제우스나 우리의 옥황상제와는 다른 것이다. 제우스나 옥황상제가 자연의 정령을 상징한다면, 기독교의 신은 그야말로 하늘 혹은 위에서 아래를 지배하는 존재자로 가정되었다. 그래서 하늘이 갖는 의미도 사뭇 다르다. 비록 고대 중국에서도 하늘이 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그 하늘이라는 것, 곧 천(天)은 결코 ‘인격신’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서구 문화사에서 하늘은 천의 맑은 기운이 담긴 곳이 아니라 인격신의 사랑이 구현된 것인 만큼, 그 인격신은 자연의 질서와 인간 도덕성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고대 중국의 제사가 하늘을 숭배하는 것이라면, 서양의 찬송은 하늘을 창조한 신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서구 문화에서 하늘과 인간을 창조한 신 개념이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다. 신을 믿지 않을지라도, 신에 대한 믿음이 남긴 흔적을 서양 전통에서 없앨 수는 없다. 결국 신에 부여된 속성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현재 서구 문화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일부는 특정 과학, 실례로 진화론이 도덕성의 객관적 설명 토대인 것처럼 선동하며, 과학적 지식의 확산과 함께 서구 대중은 은연중에 ‘신의 합리적 대체물’을 찾는다. 과학적으로 그 존재가 부정되지 않는 외계인은 대중에게는 ‘인간사에 영향을 미치는 미지의 존재자’로 자리 잡기 쉽다. 그 미지의 존재자는 일부에게는 과거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으로, 다른 일부에게는 신에 대립된 악마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실제 외계인은 한편에서는 숭배의 대상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사의 불행을 가져올 루시퍼의 화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내가 지금 말한 것은 완전한 가설이다. 하지만 그 가설은 적어도 외계인 납치 가설보다는 그럴듯한 것이라 자신한다. 미지에 대한 동경이 종교가 되는 것은 모든 문명권에서 나타나지만, 그렇게 되는 방식은 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가 서구인에 비해 외계인 납치극에 시큰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더 합리적이라서가 아니다. 다만 미지의 것에 대해 동경하는 방식이 다른 역사적 여정을 밟아왔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스트라이버가 사기를 쳐 돈만 벌기 위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스트라이버는 모종의 의무감으로 책을 썼을 수도 있지만, 출판사 쪽 입장에서 본다면 그 의무감은 대중의 호기심과 맞물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뛰어난 작가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로 책을 쓰겠다는 데 반대할 출판사는 지극히 드물다.
스트라이버 자신은 인간사에 영향을 미치는 미지의 존재자, 곧 과거의 신이나 악마의 대체물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을 수가 있다. 그의 소설이 성공하자,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맥도 외계인 납치 가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맥은 홉킨스의 주선으로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접촉했다. 맥은 홉킨스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추적하기 위해 최면술을 사용했다. 맥 또한 자기 자신도 모종의 암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가 접한 이들 대부분은 이미 외계인에게 납치당했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소설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로렌스(T.E. Lawrence)의 전기였다. 로렌스를 다룬 여러 책들 중 그의 것에 비교될만한 것은 지금까지도 드물다고 한다. 뛰어난 작가적 역량을 가진 맥은 그의 경험을 책으로 출판했다. 그의 책 납치: 외계인과의 만남(Abduction: Human Encounters with Aliens)은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외계인 납치극은 미국 출판사들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것은 정말 일정 판매 부수를 보증해주는 것이 되어버렸다.
맥이 외계인 납치극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면서, 외계인 납치 가설은 좀 더 쉽게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가설의 확산에 필요한 전문가의 권위가 부가되었기 때문이다. 존 맥이 그냥 홉킨스의 권고에 따라 최면술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영성이 의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심성의학’(Mind Medicine)의 주창자인 체코 출신의 스타니슬라프 그로프(Stanislav Grof)의 학생이었다. 외계인에 의해 조종당하는 인간의 존재는 맥에게 텔레파시와 같은 영적 능력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몸과 분리된 우주적 영혼의 실재는 맥이 동경하는 것이었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 Kuhn)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맥은 처음에는 외계인 납치 가설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쿤의 독려로 외계인 납치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에 뛰어든 맥이 2004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맥 재단은 그가 일방적으로 외계인 납치 가설을 확신하지 않았다면서 일종의 ‘사후 변호론’을 펼쳤다. 내 눈에는 무의미한 변호론이다. 홉킨스가 정말 생명체로서의 외계인 존재를 믿었다면, 맥은 ‘우주적 영’(cosmic spirit)을 믿었던 것이다. 맥은 만나본 사람들에게서 대마초나 LSD의 영향 등에 의해 ‘변화된 의식’이 아닌 ‘미지의 힘에 의해 변화된 정신’에 대한 증거를 감지해냈다고 여겼다. 홉킨스가 ‘물질적 외계인’ 존재를 확신했다면, 맥은 일종의 ‘영적 외계인’ 존재를 추정했었던 것이다.
맥의 옹호자들 일부는 그가 유물론의 강세와 함께 서구에서 잃어버린 영적 전통을 되살렸다면서 동양을 언급하기도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러한 어설픈 손짓에 현혹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문화에서 인격신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 도덕성에 대한 객관성의 원천이었다. 자연법(natural laws)에 입각한 인권 개념을 보라. 그것의 원래 동기는 인권이라는 것이 신의 속성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과거 원시사회에 인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인권은 신에 의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인 만큼 발견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객관성에 대한 원천이 그 인격신이었던 만큼, 신에서 탈피할 때 돌파구는 무엇인가? 합리적 세계 이해와 심미적 세계 이해의 절묘한 각색 속에 ‘신의 대체물’을 찾아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서구 문화사 전반을 짓누른 측면이 있다. 이 점을 받아들인다면, 영적 객관성을 인정하든 말든 그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겠다는 일체의 시도가 이 땅에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일종의 ‘해프닝’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성찰 없는 족속’임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홉킨스가 물질적 외계인 존재를 확신했든, 맥이 미지의 우주적 영의 존재를 확신했던 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돌파구가 필요했고, 또 출판계에게 그들의 주장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미국 대중에게 홉킨스와 맥의 미묘한 차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외계인’이 신의 대체물로 여겨지든, 아니면 악마의 대체물로 여겨지든, 그것은 어느덧 미국 사회에서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렸다.
외계인 납치
외계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이지만, 외계인의 접촉설을 긍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만약 외계인과 만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과 우리들이 서로 유의미한 존재로 서로 인식할 수나 있을까? 절대 다수의 과학자들이 인간의 외계인 접촉설에 대하여 넌센스로 치부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은 인간적인 수준을 갖추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그들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환타지를 긍정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을 훼손하는 것이라면 환타지는 장사꾼들의 허풍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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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goodking.new21.net/bbs/index.php
글쓴이 : 착한왕
* 다음 글을 (변형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외계인 납치
*문화 산업의 부작용 또는 인간사의 희극
발명은 대부분 기업을 통해 사회에 확산된다. 그 과정에서 발명가가 큰 이득을 얻기도 하지만 남만 좋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발명의 확산이 기업과 사회 양쪽에 득을 주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발명을 주도한 기업은 오히려 망하고 다른 기업을 통해 발명이 사회 전체에 득을 준 경우도 있다. 또 발명의 확산이 기업에게만 득을 주고 사회적 잡음만 발생시키고 끝나기도 한다. 고대인의 발명인 최면술이 현대 문화 산업과 결합함으로써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사건이 있다.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부부가 최면술의 도움을 받아 당시 기억을 되찾았다는 일화가 알려지자, 그와 유사한 일을 당했다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여기에는 UFO 연구가 버드 홉킨스(B. Hopkins),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존 맥(J. Mack), 심리치료사들, 그리고 출판계의 끈끈한 공조가 있었다. 심지어 1990년대에는 외계인에게 납치당하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현대인에게 ‘문화’라는 것은 항상 긍정적 가치를 지닌 것처럼 이해되고, 문화 산업 또한 가치 창출의 수레바퀴처럼 여겨지지만, ‘외계인 납치극’에 대한 일화는 출판업을 매개로 거의 종교 현상이 되었던 것이다. 출판업계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지만, 외계인 납치극을 둘러싼 잡음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그것은 현대 문화 산업의 부작용으로 평가되어야 할까? 아니면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희극으로 평가되어야 할까?
집단 환각의 발단
한 밤중, 갑자기 밝은 섬광과 함께 벽이 열리고 너는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빛줄기에 이끌려 미지의 미확인 비행물체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인간과 다른 모습의 외계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너를 수술대와 같은 곳에 뉘인 다음 실험에 들어간다. 이러한 이야기는 외계인에 의해 납치를 당했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에서 발견된다. 지금도 수만 명, 아니 어쩌면 수십만 명이 외계인 납치극을 믿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적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납치 사건 이후에도 외계인에 의해 텔레파시로 조정당하고 있다고 믿으며, 심지어 이들을 위한 특수 헬멧을 파는 곳도 있다. 이러한 세태는 출판업계에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막말로 외계인 납치극을 다룬 책은 기본 부수는 나가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일부 출판사의 기여도 있었다.
외계인 납치극에 대한 집단 환각은 어디에서 발단한 것일까? 어떤 이는 19세기, 심지어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61년 베티 힐과 바니 힐 부부의 일화를 사건의 발단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뉴햄프셔 산간 지역을 여행하던 중, 밝은 섬광이 그들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 섬광은 거대한 우주선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힐 부부는 섬광을 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더 이상 기억해낼 수 없었다. 베티가 기괴한 모습의 외계인 꿈으로 시달리자, 부부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최면상태에서 힐 부부가 기억해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후 생체 실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힐 부부의 일화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UFO 연구가 홉킨스의 책 잃어버린 시간(Missing Time)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홉킨스의 주장에 따르면,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간과될 수 없는 몇 가지 공통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그들은 납치된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할 수 없다.
둘째,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생채기가 얼굴이나 몸에 나있다.
셋째, 아침에 일어난 순간 자기 방이 낯선 곳처럼 느껴지면서 마비 증세가 나타난다.
우리들 중 죽는 그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자신 있게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누구도 죽는 그 순간 자체를 경험할 수 없고, 또 되살아난 경우에도 그 순간만큼은 기억해낼 수 없다. 나 또한 단순 기절이 아니라 코마에 빠졌다가 깨어났던 적이 있지만, 내가 기억해낼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사고 전과 깨어난 과정이 전부였다. 죽는 그 순간에 대한 경험이 불가능하다면,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도 불가능하다. 외계인에 의해 납치당한 순간이 죽는 순간은 아니다. 사람을 죽였다 되살릴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외계인이 죽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실험했다면, 그들은 납치된 동안 벌어진 일을 기억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영원히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을 것이며, 외계인 납치극이 집단 환각을 넘어 종교 세력처럼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계인의 납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분명히 UFO 안에서도 살아 있어야 했다. 잠자는 동안에 발생한 일도 다 기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또 어린 시절의 경험도 다 기억해낼 수 없다. 최면술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준다는 믿음은 심리치료사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하나의 통념과 같은 것이다. 기억할 수 없는 동안은 인간에게 ‘잃어버린 시간’인 것이다. 최면술의 도움을 받아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이다.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세 특징은 죄다 설명을 요구하는 사실들이다. 그 사실들은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은 가설을 요구한다. 외계인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가설을 설정하는 순간 세 특징은 일단 설명된다.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진 외계인은 인간 두뇌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의 경험을 망각상태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첫째 특징은 ‘외계인 납치’ 가설에 의해 설명된다. 얼굴이나 몸에 난 생채기는 외계인에 의해 생체 실험을 당한 증거가 된다. 특히 여성의 하복부에 난 생채기는 멸종 위기에 도달한 외계인들이 인간 난자를 이용해 인공 번식을 시도하고 있다는 가설 설정을 가능케 해준다. 몇 시간 동안 생체 실험을 당했으니 몸이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몸에 마비 증세가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밝은 섬광을 목격한 후 망각 증세에 빠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면술을 건 결과, 그들은 하나같이 외계인에 의해 납치당했다고 증언한다. 이제 외계인 납치 가설은 하나의 사실이 된다. 하지만 최면 상태의 증언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 외계인 납치극에 대한 신봉자들에게는 불행한 얘기이지만, 최면 상태의 증언은 타인이나 평소 믿고 싶어 하던 것에 의한 암시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면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면 상태에서 나온 증언의 내용을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억은 타인의 조정에 의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외계인 납치 가설은 단지 가설로만 남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전문가가 나타나 외계인 가설을 옹호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전문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외계인 납치극이 막강한 문화 산업으로 등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적, 물질적, 또는 종교적
1991년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맥은 약 10만 명의 심리치료사들에게 외계인 납치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64쪽의 보고서를 돌린 후, 사방에서 외계인에게 납치당했었다는 사람들이 출몰했다. 약 400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외계인 납치극의 희생양이라는 연구결과도 뒤따랐다. 그 400백만 명은 어떻게 추정되었을까? 이 물음을 살펴보기 전에 퓰리처상 수상자이자이기도 한 맥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홉킨스의 책은 외계인 납치 가설을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보다는 뛰어난 작가가 필요했다. 공상과학소설 작가 스트라이버(W. Streiber)는 교우: 실화(Communion: A True Story)에서 힐 부부가 겪은 경험담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스트라이버의 책은 1989년 모라(P. Mora)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그 영화가 단순히 베스트셀러의 힘을 빌려 대중적 성공을 노린 것만은 아니다. 에릭 클랩톤(E. Clapton)의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그 영화는 어떻게 본다면 초현실주의 기법 속에 미지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동경, 그리고 그 동경에 의한 실재의 가상화를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월켄(C. Walken) 또한 한 인터뷰에서 외계인 납치 가설을 세상에서 가장 일어나기 힘든 일로 묘사했다.
스트라이버의 소설과 영화가 불러온 반향은 대단했다. 어떤 이들은 스트라이버 자신은 외계인 납치 가설을 믿고 있지 않았다고 추측했다. 그 대신 공상과학 소설 속에 미지에 대한 인간의 동경심을 반영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심미적 이해를 다룬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스트라이버는 1985년 정말 자신이 외계인에 의해 납치당했고 믿었다. 그는 인간 사이에 외계인과 지구인의 잡종 종족들이 섞여 있으며, 그들은 언젠가 지구를 차지하려고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수백만 명이 외계인 납치극의 희생자라면서 사방에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쪽에서 본다면 우습기 그지없는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의 문화사를 고려한다면, 그리 우스운 것만도 아니다. 서구인들이 물질적 에너지와는 별개로 가정된 기(氣)에 아직까지 집착하는 동양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주원인은 무엇일까? 기의 검증 불가능성보다는 이쪽 문화에 대한 무지이다. 마찬가지로 서구 문화사를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외계인이 하나의 종교물로 대체되는 현상은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의 신(God)은 그리스의 제우스나 우리의 옥황상제와는 다른 것이다. 제우스나 옥황상제가 자연의 정령을 상징한다면, 기독교의 신은 그야말로 하늘 혹은 위에서 아래를 지배하는 존재자로 가정되었다. 그래서 하늘이 갖는 의미도 사뭇 다르다. 비록 고대 중국에서도 하늘이 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그 하늘이라는 것, 곧 천(天)은 결코 ‘인격신’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서구 문화사에서 하늘은 천의 맑은 기운이 담긴 곳이 아니라 인격신의 사랑이 구현된 것인 만큼, 그 인격신은 자연의 질서와 인간 도덕성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고대 중국의 제사가 하늘을 숭배하는 것이라면, 서양의 찬송은 하늘을 창조한 신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서구 문화에서 하늘과 인간을 창조한 신 개념이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다. 신을 믿지 않을지라도, 신에 대한 믿음이 남긴 흔적을 서양 전통에서 없앨 수는 없다. 결국 신에 부여된 속성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현재 서구 문화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일부는 특정 과학, 실례로 진화론이 도덕성의 객관적 설명 토대인 것처럼 선동하며, 과학적 지식의 확산과 함께 서구 대중은 은연중에 ‘신의 합리적 대체물’을 찾는다. 과학적으로 그 존재가 부정되지 않는 외계인은 대중에게는 ‘인간사에 영향을 미치는 미지의 존재자’로 자리 잡기 쉽다. 그 미지의 존재자는 일부에게는 과거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으로, 다른 일부에게는 신에 대립된 악마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실제 외계인은 한편에서는 숭배의 대상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사의 불행을 가져올 루시퍼의 화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내가 지금 말한 것은 완전한 가설이다. 하지만 그 가설은 적어도 외계인 납치 가설보다는 그럴듯한 것이라 자신한다. 미지에 대한 동경이 종교가 되는 것은 모든 문명권에서 나타나지만, 그렇게 되는 방식은 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가 서구인에 비해 외계인 납치극에 시큰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더 합리적이라서가 아니다. 다만 미지의 것에 대해 동경하는 방식이 다른 역사적 여정을 밟아왔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스트라이버가 사기를 쳐 돈만 벌기 위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스트라이버는 모종의 의무감으로 책을 썼을 수도 있지만, 출판사 쪽 입장에서 본다면 그 의무감은 대중의 호기심과 맞물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뛰어난 작가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로 책을 쓰겠다는 데 반대할 출판사는 지극히 드물다.
스트라이버 자신은 인간사에 영향을 미치는 미지의 존재자, 곧 과거의 신이나 악마의 대체물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을 수가 있다. 그의 소설이 성공하자,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맥도 외계인 납치 가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맥은 홉킨스의 주선으로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접촉했다. 맥은 홉킨스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추적하기 위해 최면술을 사용했다. 맥 또한 자기 자신도 모종의 암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가 접한 이들 대부분은 이미 외계인에게 납치당했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소설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로렌스(T.E. Lawrence)의 전기였다. 로렌스를 다룬 여러 책들 중 그의 것에 비교될만한 것은 지금까지도 드물다고 한다. 뛰어난 작가적 역량을 가진 맥은 그의 경험을 책으로 출판했다. 그의 책 납치: 외계인과의 만남(Abduction: Human Encounters with Aliens)은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외계인 납치극은 미국 출판사들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것은 정말 일정 판매 부수를 보증해주는 것이 되어버렸다.
맥이 외계인 납치극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면서, 외계인 납치 가설은 좀 더 쉽게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가설의 확산에 필요한 전문가의 권위가 부가되었기 때문이다. 존 맥이 그냥 홉킨스의 권고에 따라 최면술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영성이 의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심성의학’(Mind Medicine)의 주창자인 체코 출신의 스타니슬라프 그로프(Stanislav Grof)의 학생이었다. 외계인에 의해 조종당하는 인간의 존재는 맥에게 텔레파시와 같은 영적 능력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몸과 분리된 우주적 영혼의 실재는 맥이 동경하는 것이었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 Kuhn)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맥은 처음에는 외계인 납치 가설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쿤의 독려로 외계인 납치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에 뛰어든 맥이 2004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맥 재단은 그가 일방적으로 외계인 납치 가설을 확신하지 않았다면서 일종의 ‘사후 변호론’을 펼쳤다. 내 눈에는 무의미한 변호론이다. 홉킨스가 정말 생명체로서의 외계인 존재를 믿었다면, 맥은 ‘우주적 영’(cosmic spirit)을 믿었던 것이다. 맥은 만나본 사람들에게서 대마초나 LSD의 영향 등에 의해 ‘변화된 의식’이 아닌 ‘미지의 힘에 의해 변화된 정신’에 대한 증거를 감지해냈다고 여겼다. 홉킨스가 ‘물질적 외계인’ 존재를 확신했다면, 맥은 일종의 ‘영적 외계인’ 존재를 추정했었던 것이다.
맥의 옹호자들 일부는 그가 유물론의 강세와 함께 서구에서 잃어버린 영적 전통을 되살렸다면서 동양을 언급하기도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러한 어설픈 손짓에 현혹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문화에서 인격신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 도덕성에 대한 객관성의 원천이었다. 자연법(natural laws)에 입각한 인권 개념을 보라. 그것의 원래 동기는 인권이라는 것이 신의 속성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과거 원시사회에 인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인권은 신에 의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인 만큼 발견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객관성에 대한 원천이 그 인격신이었던 만큼, 신에서 탈피할 때 돌파구는 무엇인가? 합리적 세계 이해와 심미적 세계 이해의 절묘한 각색 속에 ‘신의 대체물’을 찾아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서구 문화사 전반을 짓누른 측면이 있다. 이 점을 받아들인다면, 영적 객관성을 인정하든 말든 그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겠다는 일체의 시도가 이 땅에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일종의 ‘해프닝’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성찰 없는 족속’임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홉킨스가 물질적 외계인 존재를 확신했든, 맥이 미지의 우주적 영의 존재를 확신했던 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돌파구가 필요했고, 또 출판계에게 그들의 주장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미국 대중에게 홉킨스와 맥의 미묘한 차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외계인’이 신의 대체물로 여겨지든, 아니면 악마의 대체물로 여겨지든, 그것은 어느덧 미국 사회에서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