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를 풍미한 MBC <유쾌한 청백전>과 <명랑 운동회>는 일요일 아침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변웅전 아나운서를 국민 MC로 만든 이 프로그램들은 가족이나 일반인이 단체로 출연해 운동회처럼 스튜디오에서 장애물달리기, 터널통과, 박 터뜨리기를 수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식상한 포맷과 시청자들의 달라진 감수성에 부응하지 못한 이 프로그램들은 자연히 도태되었다. ‘일요일 오전=운동회형 오락프로그램’이란 공식을 이어받은 것은 1990년부터 93년까지 방영된 KBS의 <열전! 달리는 일요일>이었다. 대학생들이 각각의 관문을 통과하던 이 프로그램은 신세대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높은 인기를 얻었으나 일본의 <풍운의 젠다성>을 표절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수명을 다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연예인들만 출연하는 <출발 드림팀>이 높은 인기를 얻었지만, 2003년 KBS <서바이벌 정글특급>이나 2005년 MBC <일요 스타워즈> 등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서세원쇼>는 세기말과 함께 왔다. 출연하기만 하면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시대가 가고 대여섯 명의 게스트가 둘러앉아 각 면에 주제가 쓰여진 토크박스를 굴리며 토크왕의 자리를 노리는 살벌한 ‘집단 토크 배틀’의 시대가 열린 것은 99년이었다. 대개 ‘톱스타’가 아니었던 이들은 카메라에 잡히기 위해, 좌중을 웃기기 위해 급기야 자신의 ‘굴욕 시리즈’까지 고백하기를 불사했고 유재석을 비롯해 지석진, 송은이 등이 승자가 되는 동안 <서세원쇼>는 시청률 30%를 훌쩍 넘기는 황금기를 누렸다. 2003년 시작된 <야심만만>은 집단 토크쇼에 차트쇼를 결합한 형태, 연애와 남녀관계에 대한 연예인들의 솔직 대범한 고백을 듣는 재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동안 영화배우들의 작품 홍보 필수 코스이기도 했던 <야심만만>은 그러나 지난 1월 중순 소재 고갈과 식상함을 이유로 5년 만에 종영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서세원과 강호동은 이러한 집단 토크쇼야말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다수를 장악할 수 있는 MC의 자질이 필수적임을 확인시켰다.
90년대는 MC의 이름을 프로그램 전면에 내세운 호스트 토크쇼의 전성시대였다. 96년 <이홍렬쇼>가 MC와 게스트가 함께 요리를 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참참참’과 차트를 도입한 ‘맞아 맞아 베스트 5’ 등으로 인기를 끈 데 이어 98년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가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이승연이 불법 운전면허 취득 사건에 연루되며 문을 닫았다. 그러나 뒤이은 <김혜수 플러스 유> 역시 세련되면서도 친근한 김혜수의 진행에 힘입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시 떠오르는 신인이었던 배우 유지태도 이 쇼의 단골손님이었는데, 그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무용 실력을 보여주다가 무대 밖으로 떨어지는 등 ‘순수한’ 모습으로 인기가 치솟기도 했다. 존재감 있는 MC, 스타성 있는 게스트가 만나 심도 있는 대화를 펼쳐야 하는 호스트 토크쇼는 2000년대 들어 대부분 사라졌지만 2007년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의 MC 강호동은 “게스트의 고민을 해결해준다”는 기획 아래 자연인 강호동이 아니라 ‘무릎 팍 도사’라는 캐릭터로 분해 게스트의 문제점, 스캔들 등을 전면에 끌어내는 방식으로 새로운 호스트 토크쇼의 시대를 열었다.
합숙 쇼는 스타의 무대 뒤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반영한다. 2000년부터 1년이 넘게 방영되었던 ‘god의 육아일기’는 그룹 god의 멤버들이 세 살짜리 아기를 맡아 키우며 겪는 해프닝을 생생히 담아냈다. 당시 신인이었던 god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적이고 유쾌한 남자들이라는 이미지를 얻어 국민적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역시 2000년에 시작되었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은 무려 열 명 이상의 연예인이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투표로 매주 한 명을 탈락시키는 획기적인 콘셉트에 개인의 재치와 단체생활에서의 적응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진행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2007년 <해피 선데이>의 ‘1박 2일’은 연예인들이 국내 여행을 가서 밥을 해 먹고, 씻고, 잠드는 순간까지 카메라를 끄지 않으며 ‘야생 버라이어티쇼’를 자처한다. 최근에는 강호동을 비롯한 여섯 명의 고정 출연자 가운데 ‘은초딩’, ‘허당’ 등의 캐릭터가 뚜렷해지며 캐릭터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남들처럼 미팅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에요”라고 말하던 무수한 연예인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일까. 2001년 <목표달성 토요일>의 ‘애정만세’는 김동완, 성시경 등 남성 스타들이 미모의 여대생 한 명을 두고 구애 작전을 펼치는 콘셉트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2002년 <강호동의 천생연분>은 젊은 남녀 연예인들이 각종 게임, 댄스, 장기자랑 등으로 매력 대결을 펼치는 미팅 프로그램이었는데 남의 연애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항상 ‘뚜쟁이’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강호동의 밀어붙이기식 진행이 특히 빛을 발했다. 반면 <자유선언 토요 대작전>의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은 남자 연예인과 여자 일반인이라는 조합으로 묘하게 리얼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며 화제를 모았다. 물론 연예인 지망생이었던 여자 출연자들 가운데 남상미, 이수경, 서지혜 등 많은 스타가 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리얼’이 될 수 없는 연예인들의 연애사는 억지스런 재탕을 반복하며 식상해졌고 ‘애정만세’ 2기와 <러브 서바이벌 두근두근>, <리얼 로망스 연애편지>는 구관을 뛰어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무한도전>은 2005년 <강력추천 토요일>의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했다. 당시에는 매주 새로운 게스트가 출연해 은지원은 개헤엄을 치고 차승원이 연탄을 날랐다. 하지만 현재의 여섯 멤버로 확정된 뒤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 사상 가장 다양한 시도를 하는 와중에 각각의 캐릭터를 살리기 시작했다. 인기 있는 1인자 유반장(유재석), 2인자 하찮은 형 박거성(박명수), 소녀떼를 사랑하는 돌+아이(노홍철), 잘생기고 자신을 사랑하는 상 꼬맹이(하하), 빨리 친해지길 바라는 어색한 형돈이(정형돈), 철없는 알콜 CEO(정준하)는 잘 구성된 아이돌 그룹만큼이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고, 이들은 ‘체인지’ 편에서 역할을 바꾸어 연기할 수 있을 만큼 서로의 캐릭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연인으로서의 멤버들과 그 캐릭터의 경계를 알 수 없어지면서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은 점점 ‘국내 최강 캐릭터쇼’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유형별로 알아보는 시대를 풍미한 TV쇼
유형별로 알아보는 시대를 풍미한 TV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