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호빵을 잘 데우는 여자다. 하얗고 통통한 호빵의 겉 표면에 약간의 물기를 묻힌 다음에,
비닐 랩으로 싸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따끈따끈한 호빵을 건네주곤 했는데.. 그것은 언제나 아주 딱 적당한 정도로 데워져 있었다. 호빵의 탄력성, 부풀어 오른 크기, 한 입 베어물면 그 속의 팥앙금이 하얀 김을 뿜어내는... 아주 성공스러운 호빵...
마치 그녀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끔 했던... 호빵이었다.
어제 나는, 난생처음 호빵 데우기를 단독으로 진행하였다. 아내가 일주일간 여행을 떠난 참이라, 제대로 된 아침 식사는 불가능하였고, 아침부터 식당을 이용한다는 것도 그닥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열시쯤 눈을 뜬 나는 위장을 태워버릴 것 같은 허기를 못이겨, 무언가 먹을 것이 없을까 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호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단독으로 호빵 데우기를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
.
빨간색 전자렌지의 문을 열고, 싱크대에서 수돗물을 약간 호빵에 묻혔다.
<하하하... 별거 아니군> 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은,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내다볼 수 없는... 그저 나는 그만그만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호빵에 수분을 공급하였으니 이제 비닐랩을 씌우면 된다!고. 간편한 생각들이 재빠르게 연결되고 있었다.
배고픔은 인간을 성급하고 과격하게 만들기 마련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는 대신, 그저 급하게 싱크대의 수납장을 열어 젖히기 시작했다. 세번째 칸에서 비닐랩을 획득했다. 나는 직사각형 모양의 길다란 랩 상자에서 랩을 끄집어 내어. 호빵을 감쌀 수 있을만큼 부욱 찢어서 호빵에 착용시켰다. <하하하... 별거 아니군> 이라고 또 한번 생각하면서... 나는 어느새 전자렌지 안에 호빵을 던져 넣고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진정성이 떨어지는 모양새였으나, 당시에는 역시 체크할 수 없었다.
음.. 전자렌지 표면에 단추가 여러개 있었는데.. 뭐 별로 차이가 없어 보였다. 시간입력만 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분명 아내에게 전화 한통을 걸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직감을 믿은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을 때, 아내가 호빵 먹을래? 라고 물은 후에 한 3분정도 쯤 있다가 호빵을 먹게 되지 않았던가? 라고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2분 30초를 입력했다. 하하! 나는 십초 정도 전자렌지가 돌아가는 것을 구경하다가 , 내방의 컴퓨터 앞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지나면 삐삐 하고 소리가 날테니 그때 가서 먹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모니터속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전날 적어둔 소설을 다시 읽던 중에, 매케한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 들어왔다. 마치 물에 젖은 종이박스를 태울 때 나는 냄새 같은 것이었다. 머리에 호빵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무사할까!!? 겁이 덜컥 났다. 거실로 달려나가니, 온방안 가득 하얀 연기가 꽉 차있었고, 전자레인지에서는 오... 정말이지 공포스럽게.. 문이 닫혀 있는상태에서 , 하얀연기가 울컥울컥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냄새만 없다면 드라이아이스가 녹으면서 나는 연기와도 같은. 너무나 많은 연기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 가히 놀라웠다. 나는 황급히 전자렌지의 전원을 끄고, 거실문과 베란다의 문을 열었다. 후아~
호빵은 완소되었다. 완전 소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연소 되었다....
나는 배고픔에 기절하기 직전이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호빵을 위해 잠시 묵념을 하기로 했다.
자고 일어난 그대로 머리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었고, 세수도 안한 채로 였다. 거기다 츄리닝 바지의 한쪽은 무릎인근까지 끌어 올려진.. 정말이지 몹시 안 단정한 차림이었으나, 아무튼 묵념을 하고나서
검게 최후를 맞이한 호빵을 손에 쥐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 호빵을 먹으려고 했는데, 글쎄.. 호빵이 완전 연소되었어 "
" 뭐라구? " 아내가 되물었다.
" 그러니까 호빵이 다 타버렸다구,, 온방에 연기가 가득차고.. 불날뻔 했어" 라고 나는 정말 슬픈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슬펐다. 위로받고 싶었다.
" 으이구...호빵하나도 감당못하냐 " 라며, 아내는 수화기 저편에서 깔깔넘어 가고 있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아내는, 20초 정도면 데우는거야, 라고 지식을 제공해 주었다...
.
.
지식은 유용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호빵을 아주 맛있게 만들어 먹었다.
그래... 어제는 태웠던 호빵을, 오늘은 잘 데울 수 있는 것...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1일
분명한 현실
" 나 얼마전에 사고 친거 알아요? "
술과, 생각에 잠긴 나를 깨우는 목소리..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왠 처음보는 여자애가 옆 그네에 앉아있다. 제법 예쁘장한...
그런데 내게 말을 건 것인가? 주변에 나 말고는 사람이 없으므로 그런것 같긴한데. 게다가 지금,
내 얼굴을 반듯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저기, 아저씨! 나 사고 친거 아냐구요? " 라고, 그애가 다시 한번 물어왔다.
뭐지? 같은 놀이터의 그네를 이용하는 유저(USER)들 간의 대화? 음,,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다. 나란히 붙어 있는 그네는, 대화를 나누기에 참으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있으니.
" 아... 아니. 내가 알리 없잖아;;무슨. 사고를. 친거니? "
나는 몽롱한 기분으로, 대화에 응해 보았다.
딱히 다른 일로 바쁜 것도 아니고, 난생 처음 보는 열여섯~ 열일곱 정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의 질문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신중히 조심해야 할 대화도 아니고..
" 아저씨, 저 밑에 목욕탕 앞 횡단보도 알죠? 이 동네의 입구 말이에요 "
그애는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은 말투였다. 몹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런 말투...
" 응.. 알지. "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곳이다. 목욕탕이 하나 밖에 없으니.
" 거기는 이상하게, 지나다니는 차는 참 많은데 신호등이 없잖아요.. "
" 그래. 거긴 신호등이 없어서 꽤 불편한 곳이지. "
" 제가 거기를 건너다가 차에 치였어요 !! " 라고 여자애는 무척 신이난 것처럼 말을 했지만
나는 여자애의 얼굴이 아닌 다른 곳들을 처음으로 신중하게 훓어보았다. 특별히 부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네를 타기에는 치마가 좀 짧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 말고는, 괜찮아 보였다. 다행이었다.
치마가 짧은 것이 다행이 아니라, 심각한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이... 정말이지 다행스럽다고 생각되었다.
교통사고란 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다. 운전을 하다보면, 일주일에 2~3번은 끔찍한 사고현장을 목격한다. 내가 '고양이 떡'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아스팔트 위를 건너다 자동차 타이어에 깔려서, 납작하게 눌러붙어서, 겨우 살아있을 때의 털 색깔만 가까스로 알아볼 수 있는... 그래.. 떡이 되어버린 고양이 사체다. 볼 때 마다 난.. 그래 언제 떡이 될지 모르는 건, 인간도 마찬가지야... 라고 생각했던. 아무튼 교통사고는 무서운 일이다.
" 큰일날 뻔 했구나. 조심해야지... 떡이되는 수가 있다구. "
나는, 눈썹 사이에 W 를 그리며, 완전 심각한 어조로 얘기했다.
" 떡 ? "
여자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표현이 조금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떡이 되고 싶니? 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런 어떤 공격성을 담은 것이 아니라, 고양이의 형태가.. 떡같이 찰지게 되어 버렸다는, 그런 의도에서, 아무튼..
나는, 고양이 떡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하필, 동물 중에서 고양이를 특별히 가장, 좋아한다는 그녀는,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공감하며, 분개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나는, 그애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도로교통법에 고양이 보행 안전을 위한 특별법이 추가 되어야 한다고 거들어 주었다. 그애는 정말로 그것을 바라는 것인지... 가능할까요?라고 의문을 표시했으나. 나는,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가능할 리가 없지... 인간은, 인간의 문제를 위한 법을 만드는 데에도 성실하지 못한 편인데, 하물며 인간의 관점에서는 그저 '무단횡단을 하는 고양이들'과 관련하여 법을 만들 국회의원이 있겠는가...혹여 몸에 좋다면, 고양이를 삶아 먹을 의원님들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 그건 그렇고, 엄밀하게 보자면, 넌 사고를 친게 아니라, 사고를 당한거구나 " 라고
내가 책상위를 정리하듯이 말했다.
" 사고를 당한거나 친거나.. 그게 중요해요? 키스를 당한거나, 입술을 훔친거나.. 어짜피 결국은 키스를 했을 뿐이라구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어쨋든 늘 같기만 하고, 별다른 일이 없던 일상에 대해 엑시던트를 친거라구요 " 또릿또릿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여자애는 그네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네타기 행위를 같이 해야 하는건가라고 고민을 하던 찰라에 내 옆을 빠르게 뒤로 스쳐가며 여자애가 소리쳤다
" 어제 막 깁스를 풀었답니다! 나름 심각했어요! 저기 한 중간에 8층! 불 꺼져있는 데가 내 방이에요. "
환하게 불이 켜진 고층건물을 향해 날아갈듯이 솟아오르며 그녀가 가르킨 곳은
놀이터 바로 앞 201동으로 내가 사는 203동과는 놀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곳이었다.
" 보름정도 방안에서 책만 읽었다구요. 학교도 결석하고요! 몇날몇일 온종일 집안에서 혼자 책만 읽는 여자애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
라고 그녀가 어느새 또 앞으로 솟아 오르며 말을 해댔다.
" 교과서는 아니었겠지? "
나는 그대로 아파트에 눈을 둔채 물었다.
" 물론 아니에요. 아저씨는 모처럼 학교를 안가도 되는데, 교과서나 읽는 타입인가보죠? "
라고 그애가 말했다.
" 아니, 나도 그렇지는 않아. " 라고, 있는 그대로 답했다.
" 난 아저씨를 자주 봤어요. 이 놀이터에 매일같이 덩그러니 앉아서, 술이나 마시고. 도대체 뭐에요?ㅎㅎ"
그네의 속도를 다소 줄인 여자애의 질문은 당돌하기도 하고, 참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근래에들어 이곳의 그네를 혼자 점령하고, 캔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의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다. 캔맨주에게도 그 자신이 병맥주가 될 수는 없는, 예컨데.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처럼.. 흠, 나와 상관없는 아이의 말이니 별 스러울 것도 없었으나, 누군가에 의해 객관적으로 그 모습을 듣게되니.. 별안간, 내가 얼마나 멍청한 시간들을 보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분이 썩 별로였다.
" 안 좋아, 남몰래 본다는 건.... "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봉지안에, 빈캔을 구겨 넣으며, 새로운 캔을 꺼내 오픈하였다. 그리고 한번에 다 들이켜 버렸다.
" 하지만. 누구나 그런걸요. 아저씨는 안 그래요? 사람들은 원래 남몰래 볼 수 밖에 없어요"
라고 그애가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겠으나, 내게는 그것이 깊게 파고들었다.
누구나... 남몰래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 남 몰래 본다... 남 몰래 본다....
" 이틀전에, 울고... 있었죠? "
놀이터옆으로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는 통에, 들릴듯 말듯한 소리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확실히 알아 들을 수 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못들은 척, 대답하지 않았다. .
" 사실,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책을 읽거나, 창밖을 보거나 였어요. 티비나 인터넷 같은건 전 별로에요. 그러던 중에 아저씨가 목격된 것 뿐이었어요. 그냥 보인거고, 전 그냥 본거였어요. 별 의도란것도 없었고. 딱히 몰래 본거라기 보다는, 누구나 그렇게 보잖아요. 근데 자주 보이더라구요. 늘 같은 시간, 10시쯤에 말이죠. 근데 나도 그 시간에, 이곳 놀이터에 한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근데 아저씨가 매일 죽치고 있으니, 무섭기도 하고, 왠지 아저씨가 주인같은 느낌이 들어서 망설여졌죠. 하지만 엊그제는 나도 이곳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놀이터를 당당히 이용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근처까지 왔었지만, 아저씨가 울고 있는 거 같아서 전 다시 집으로 고고씽했답니다. 왜 울었어요? 실연당했어요?"
" 나 안울었거든.. 그네, 많이 타다가 가라. "
나는 일어나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냥 그렇게 일어나고 싶었다.
작은 놀이터를 막 빠져나가려는데, 예의 그 낭낭한 목소리가 뒷통수를 때렸다.
" 담부터는 그냥 소리내서 울어요!! 어깨로만 우는건 더 힘들다구요!"
..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못박혔다가,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잠과 술은 확실히 깨어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 내방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침대 속에 몸을 파묻고도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그녀를 만나다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40일의 이야기...
open story 무의식중에 그녀를 만나다
프롤로그
[ 나는, 언제나 인간은 자신의 목숨과 무엇인가를 맞바꾸며 살아간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인간은, 어느 순간에는 꿈과 현실을 맞바꾼다...]
아내는 호빵을 잘 데우는 여자다. 하얗고 통통한 호빵의 겉 표면에 약간의 물기를 묻힌 다음에,
비닐 랩으로 싸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따끈따끈한 호빵을 건네주곤 했는데.. 그것은 언제나 아주 딱 적당한 정도로 데워져 있었다. 호빵의 탄력성, 부풀어 오른 크기, 한 입 베어물면 그 속의 팥앙금이 하얀 김을 뿜어내는... 아주 성공스러운 호빵...
마치 그녀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끔 했던... 호빵이었다.
어제 나는, 난생처음 호빵 데우기를 단독으로 진행하였다. 아내가 일주일간 여행을 떠난 참이라, 제대로 된 아침 식사는 불가능하였고, 아침부터 식당을 이용한다는 것도 그닥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열시쯤 눈을 뜬 나는 위장을 태워버릴 것 같은 허기를 못이겨, 무언가 먹을 것이 없을까 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호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단독으로 호빵 데우기를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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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전자렌지의 문을 열고, 싱크대에서 수돗물을 약간 호빵에 묻혔다.
<하하하... 별거 아니군> 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은,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내다볼 수 없는... 그저 나는 그만그만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호빵에 수분을 공급하였으니 이제 비닐랩을 씌우면 된다!고. 간편한 생각들이 재빠르게 연결되고 있었다.
배고픔은 인간을 성급하고 과격하게 만들기 마련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는 대신, 그저 급하게 싱크대의 수납장을 열어 젖히기 시작했다. 세번째 칸에서 비닐랩을 획득했다. 나는 직사각형 모양의 길다란 랩 상자에서 랩을 끄집어 내어. 호빵을 감쌀 수 있을만큼 부욱 찢어서 호빵에 착용시켰다. <하하하... 별거 아니군> 이라고 또 한번 생각하면서... 나는 어느새 전자렌지 안에 호빵을 던져 넣고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진정성이 떨어지는 모양새였으나, 당시에는 역시 체크할 수 없었다.
음.. 전자렌지 표면에 단추가 여러개 있었는데.. 뭐 별로 차이가 없어 보였다. 시간입력만 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분명 아내에게 전화 한통을 걸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직감을 믿은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을 때, 아내가 호빵 먹을래? 라고 물은 후에 한 3분정도 쯤 있다가 호빵을 먹게 되지 않았던가? 라고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2분 30초를 입력했다. 하하! 나는 십초 정도 전자렌지가 돌아가는 것을 구경하다가 , 내방의 컴퓨터 앞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지나면 삐삐 하고 소리가 날테니 그때 가서 먹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모니터속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전날 적어둔 소설을 다시 읽던 중에, 매케한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 들어왔다. 마치 물에 젖은 종이박스를 태울 때 나는 냄새 같은 것이었다. 머리에 호빵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무사할까!!? 겁이 덜컥 났다. 거실로 달려나가니, 온방안 가득 하얀 연기가 꽉 차있었고, 전자레인지에서는 오... 정말이지 공포스럽게.. 문이 닫혀 있는상태에서 , 하얀연기가 울컥울컥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냄새만 없다면 드라이아이스가 녹으면서 나는 연기와도 같은. 너무나 많은 연기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 가히 놀라웠다. 나는 황급히 전자렌지의 전원을 끄고, 거실문과 베란다의 문을 열었다. 후아~
호빵은 완소되었다. 완전 소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연소 되었다....
나는 배고픔에 기절하기 직전이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호빵을 위해 잠시 묵념을 하기로 했다.
자고 일어난 그대로 머리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었고, 세수도 안한 채로 였다. 거기다 츄리닝 바지의 한쪽은 무릎인근까지 끌어 올려진.. 정말이지 몹시 안 단정한 차림이었으나, 아무튼 묵념을 하고나서
검게 최후를 맞이한 호빵을 손에 쥐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 호빵을 먹으려고 했는데, 글쎄.. 호빵이 완전 연소되었어 "
" 뭐라구? " 아내가 되물었다.
" 그러니까 호빵이 다 타버렸다구,, 온방에 연기가 가득차고.. 불날뻔 했어" 라고 나는 정말 슬픈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슬펐다. 위로받고 싶었다.
" 으이구...호빵하나도 감당못하냐 " 라며, 아내는 수화기 저편에서 깔깔넘어 가고 있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아내는, 20초 정도면 데우는거야, 라고 지식을 제공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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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유용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호빵을 아주 맛있게 만들어 먹었다.
그래... 어제는 태웠던 호빵을, 오늘은 잘 데울 수 있는 것...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1일
분명한 현실
" 나 얼마전에 사고 친거 알아요? "
술과, 생각에 잠긴 나를 깨우는 목소리..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왠 처음보는 여자애가 옆 그네에 앉아있다. 제법 예쁘장한...
그런데 내게 말을 건 것인가? 주변에 나 말고는 사람이 없으므로 그런것 같긴한데. 게다가 지금,
내 얼굴을 반듯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저기, 아저씨! 나 사고 친거 아냐구요? " 라고, 그애가 다시 한번 물어왔다.
뭐지? 같은 놀이터의 그네를 이용하는 유저(USER)들 간의 대화? 음,,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다. 나란히 붙어 있는 그네는, 대화를 나누기에 참으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있으니.
" 아... 아니. 내가 알리 없잖아;;무슨. 사고를. 친거니? "
나는 몽롱한 기분으로, 대화에 응해 보았다.
딱히 다른 일로 바쁜 것도 아니고, 난생 처음 보는 열여섯~ 열일곱 정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의 질문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신중히 조심해야 할 대화도 아니고..
" 아저씨, 저 밑에 목욕탕 앞 횡단보도 알죠? 이 동네의 입구 말이에요 "
그애는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은 말투였다. 몹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런 말투...
" 응.. 알지. "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곳이다. 목욕탕이 하나 밖에 없으니.
" 거기는 이상하게, 지나다니는 차는 참 많은데 신호등이 없잖아요.. "
" 그래. 거긴 신호등이 없어서 꽤 불편한 곳이지. "
" 제가 거기를 건너다가 차에 치였어요 !! " 라고 여자애는 무척 신이난 것처럼 말을 했지만
나는 여자애의 얼굴이 아닌 다른 곳들을 처음으로 신중하게 훓어보았다. 특별히 부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네를 타기에는 치마가 좀 짧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 말고는, 괜찮아 보였다. 다행이었다.
치마가 짧은 것이 다행이 아니라, 심각한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이... 정말이지 다행스럽다고 생각되었다.
교통사고란 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다. 운전을 하다보면, 일주일에 2~3번은 끔찍한 사고현장을 목격한다. 내가 '고양이 떡'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아스팔트 위를 건너다 자동차 타이어에 깔려서, 납작하게 눌러붙어서, 겨우 살아있을 때의 털 색깔만 가까스로 알아볼 수 있는... 그래.. 떡이 되어버린 고양이 사체다. 볼 때 마다 난.. 그래 언제 떡이 될지 모르는 건, 인간도 마찬가지야... 라고 생각했던. 아무튼 교통사고는 무서운 일이다.
" 큰일날 뻔 했구나. 조심해야지... 떡이되는 수가 있다구. "
나는, 눈썹 사이에 W 를 그리며, 완전 심각한 어조로 얘기했다.
" 떡 ? "
여자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표현이 조금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떡이 되고 싶니? 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런 어떤 공격성을 담은 것이 아니라, 고양이의 형태가.. 떡같이 찰지게 되어 버렸다는, 그런 의도에서, 아무튼..
나는, 고양이 떡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하필, 동물 중에서 고양이를 특별히 가장, 좋아한다는 그녀는,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공감하며, 분개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나는, 그애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도로교통법에 고양이 보행 안전을 위한 특별법이 추가 되어야 한다고 거들어 주었다. 그애는 정말로 그것을 바라는 것인지... 가능할까요?라고 의문을 표시했으나. 나는,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가능할 리가 없지... 인간은, 인간의 문제를 위한 법을 만드는 데에도 성실하지 못한 편인데, 하물며 인간의 관점에서는 그저 '무단횡단을 하는 고양이들'과 관련하여 법을 만들 국회의원이 있겠는가...혹여 몸에 좋다면, 고양이를 삶아 먹을 의원님들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 그건 그렇고, 엄밀하게 보자면, 넌 사고를 친게 아니라, 사고를 당한거구나 " 라고
내가 책상위를 정리하듯이 말했다.
" 사고를 당한거나 친거나.. 그게 중요해요? 키스를 당한거나, 입술을 훔친거나.. 어짜피 결국은 키스를 했을 뿐이라구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어쨋든 늘 같기만 하고, 별다른 일이 없던 일상에 대해 엑시던트를 친거라구요 " 또릿또릿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여자애는 그네를 굴리기 시작했다
저만치 위치가 상향조정된 그애의 뒷통수를 보며, 음... 나도 그네를 굴릴까?....같은 유저로서...
그네타기 행위를 같이 해야 하는건가라고 고민을 하던 찰라에 내 옆을 빠르게 뒤로 스쳐가며 여자애가 소리쳤다
" 어제 막 깁스를 풀었답니다! 나름 심각했어요! 저기 한 중간에 8층! 불 꺼져있는 데가 내 방이에요. "
환하게 불이 켜진 고층건물을 향해 날아갈듯이 솟아오르며 그녀가 가르킨 곳은
놀이터 바로 앞 201동으로 내가 사는 203동과는 놀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곳이었다.
" 보름정도 방안에서 책만 읽었다구요. 학교도 결석하고요! 몇날몇일 온종일 집안에서 혼자 책만 읽는 여자애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
라고 그녀가 어느새 또 앞으로 솟아 오르며 말을 해댔다.
" 교과서는 아니었겠지? "
나는 그대로 아파트에 눈을 둔채 물었다.
" 물론 아니에요. 아저씨는 모처럼 학교를 안가도 되는데, 교과서나 읽는 타입인가보죠? "
라고 그애가 말했다.
" 아니, 나도 그렇지는 않아. " 라고, 있는 그대로 답했다.
" 난 아저씨를 자주 봤어요. 이 놀이터에 매일같이 덩그러니 앉아서, 술이나 마시고. 도대체 뭐에요?ㅎㅎ"
그네의 속도를 다소 줄인 여자애의 질문은 당돌하기도 하고, 참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근래에들어 이곳의 그네를 혼자 점령하고, 캔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의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다. 캔맨주에게도 그 자신이 병맥주가 될 수는 없는, 예컨데.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처럼.. 흠, 나와 상관없는 아이의 말이니 별 스러울 것도 없었으나, 누군가에 의해 객관적으로 그 모습을 듣게되니.. 별안간, 내가 얼마나 멍청한 시간들을 보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분이 썩 별로였다.
" 안 좋아, 남몰래 본다는 건.... "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봉지안에, 빈캔을 구겨 넣으며, 새로운 캔을 꺼내 오픈하였다. 그리고 한번에 다 들이켜 버렸다.
" 하지만. 누구나 그런걸요. 아저씨는 안 그래요? 사람들은 원래 남몰래 볼 수 밖에 없어요"
라고 그애가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겠으나, 내게는 그것이 깊게 파고들었다.
누구나... 남몰래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 남 몰래 본다... 남 몰래 본다....
" 이틀전에, 울고... 있었죠? "
놀이터옆으로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는 통에, 들릴듯 말듯한 소리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확실히 알아 들을 수 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못들은 척, 대답하지 않았다. .
" 사실,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책을 읽거나, 창밖을 보거나 였어요. 티비나 인터넷 같은건 전 별로에요. 그러던 중에 아저씨가 목격된 것 뿐이었어요. 그냥 보인거고, 전 그냥 본거였어요. 별 의도란것도 없었고. 딱히 몰래 본거라기 보다는, 누구나 그렇게 보잖아요. 근데 자주 보이더라구요. 늘 같은 시간, 10시쯤에 말이죠. 근데 나도 그 시간에, 이곳 놀이터에 한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근데 아저씨가 매일 죽치고 있으니, 무섭기도 하고, 왠지 아저씨가 주인같은 느낌이 들어서 망설여졌죠. 하지만 엊그제는 나도 이곳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놀이터를 당당히 이용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근처까지 왔었지만, 아저씨가 울고 있는 거 같아서 전 다시 집으로 고고씽했답니다. 왜 울었어요? 실연당했어요?"
" 나 안울었거든.. 그네, 많이 타다가 가라. "
나는 일어나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냥 그렇게 일어나고 싶었다.
작은 놀이터를 막 빠져나가려는데, 예의 그 낭낭한 목소리가 뒷통수를 때렸다.
" 담부터는 그냥 소리내서 울어요!! 어깨로만 우는건 더 힘들다구요!"
..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못박혔다가,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잠과 술은 확실히 깨어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 내방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침대 속에 몸을 파묻고도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내게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be continue...
새해에 뵙겠습니다. 글/하.얀.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