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복잡한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성해서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영적인 공허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공허에서 탈피하고자 일종의 종교운동을 일으키는데요. 이 운동의 특징은 공동체의 구원보다는 개인적 체험을 중시하고, 신비적이며 심리적인 체험을 통해서 자신과 우주와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범신론으로 빠져 들어 가는데요. 즉, 자연이 곧 신이며, 신은 곧 자연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바로 이런 주장이 십계명의 제1계명인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와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지요. 특히 음악이라는 장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에,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들어서 부정적인 모습을 표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뉴에이지 음악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몽환적인 느낌을 들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음악을 들으면 내 정신세계가 맑아지고 깨끗해 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편안한 느낌에만 머물게 되어 자폐증, 우울증 여기서 더 나아가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뉴에이지 음악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솔직히 그 기준을 어떻게 내려야 할런지요. 더군다나 요즘은 너무 많은 음악들이 뉴에이지란 장르를 가지고 발표되는 상황이라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바로 지금이 우리 가톨릭 고유의 영성을 더욱 부각시켜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제껏 소홀했던 가톨릭 고유의 영성생활에 더욱 더 관심을 갖고, 기도와 묵상 생활에 충실해 진다면, 어떤 부정적인 문화가 우리 곁에 다가온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하느님은 분명 뉴에이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크신 분입니다.
뉴에이지 음악
추천수 (0) 답글 (0) 참조글 (0) 스크랩 (0) http://kr.blog.yahoo.com/her225/1468694하느님 존재부정. 우울증 유발까지.
우선 뉴에이지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1960년대의 복잡한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성해서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영적인 공허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공허에서 탈피하고자 일종의 종교운동을 일으키는데요. 이 운동의 특징은 공동체의 구원보다는 개인적 체험을 중시하고, 신비적이며 심리적인 체험을 통해서 자신과 우주와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범신론으로 빠져 들어 가는데요. 즉, 자연이 곧 신이며, 신은 곧 자연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바로 이런 주장이 십계명의 제1계명인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와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지요. 특히 음악이라는 장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에,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들어서 부정적인 모습을 표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뉴에이지 음악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몽환적인 느낌을 들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음악을 들으면 내 정신세계가 맑아지고 깨끗해 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편안한 느낌에만 머물게 되어 자폐증, 우울증 여기서 더 나아가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뉴에이지 음악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솔직히 그 기준을 어떻게 내려야 할런지요. 더군다나 요즘은 너무 많은 음악들이 뉴에이지란 장르를 가지고 발표되는 상황이라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바로 지금이 우리 가톨릭 고유의 영성을 더욱 부각시켜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제껏 소홀했던 가톨릭 고유의 영성생활에 더욱 더 관심을 갖고, 기도와 묵상 생활에 충실해 진다면, 어떤 부정적인 문화가 우리 곁에 다가온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하느님은 분명 뉴에이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크신 분입니다.
조명연 신부 (인천 간석4동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