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여, 민주주의를 걷어차지 마라

윤주영200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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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어떤 의제가 정치의 영역을 떠나버리면 그에 대해 다수의 입장에서 논의를 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바로 이것을 알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들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의제를 정치의 영역에서 끌어내 경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것이다.

 

 

 위의 문장에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모두 다 설명할 수 있는 정답이 들어 있다. 대운하를 민간자본에 의해 건설하겠다고 하는 것, 정부를 통폐합하고 민간에 대폭 권한을 이양하려는 것, 교육정책을 대학에 맡기겠다는 것 모두 그래서다. 다수의 입장이 아닌 자신(권력, 자본 등 기득권)의 입장에 입각하여 모든 정책을 민주적 절차없이 달성하려하는 의도에서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쉽게 헌신짝 취급하여 내버릴 만큼 탄탄하지 않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린지 아무리 길게 잡아봤자 87년 이후 20년, 실질화된 기간은 정권교체 이후인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IMF의 한파를 맞고 자신과 배치되는 신자유주의라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걸어갔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이미 달성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을만큼 취약한 것이다. 어쩌면 다시 정권교체를 이룬다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그럴 개연성은 매우 높다.) 탄탄해보이는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곧 허물어질 수 있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민주주의 역사가 몇백년 된 서구유럽과 미국의 민주주의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토대는 매우 미약하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지상주의, 신자유주의 속에서 민주주의가 내동댕이쳐져버렸다. 

 

시장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시장에서 승자는 부자이다. 가난한 자들, 낙오자들은 그저 패배자일 뿐이다. 시장은 그들을 돌보지 않는다. 정치에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갖지 못한 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그들이 무시된다면, 시장은 나라를 집어삼키는 괴물일 뿐이다. 세계대공황의 비극은 21세기 신자유주의하에서 얼마든지 다시 출현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부 개편안을 보면 70년대 대처주의의 재림과 잃어버린 10년 찾기, 두 가지 기조를 뚜렷히 알 수 있다. 정부통폐합 등 작은 정부 지향은 7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노선이 같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긴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인 영국과 우리나라의 공공성이 같은 수준에 있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 우리나라 정부는 결코 큰정부가 아니다. 국민수 비례 공무원수는 선진국의 1/3 수준이 채 되지 않는다. 비효율을 없애는 것은 좋지만 공무원수를 줄인다고 그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년도 공무원 임용수가 대폭 축소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데, 청년실업이 사회문제인 시대에 수많은 공무원준비생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영국은 실업자들에 대한 복지정책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과도한 복지정책과 큰정부를 지녔던 나라에서 공공부분을 축소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제대로된 복지정책도 미흡한 형편에 사회의 공공성이 충분히 보장되지도 못한 상태에서 공공부분의 축소를 부르짖는 것이 과연 옳을까.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지 않는 대처리즘 도입은 일단 좋다고 하자. 더 큰 문제는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 찾기 운동이다. 통일부 폐지, 여성부 폐지, 독립 조직인 인권위의 청와대 휘하로 소속 변경 등 10년동안 생겨나거나 권한이 강화된 동시에 한나라당을 못마땅하게 했던 부서들이 우스운 꼴을 당하고 있다. 이런저런 말을 하지만 다 눈가리고 아옹이다.

 

정부조직 축소의 가장 큰 축은 조직의 통폐합이다. 그런데 폐지되는 조직에 대해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하면, 한결같이 "기능과 인력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말한다. (백분토론 보니까 그런 변명만 되풀이 하더라.) 그렇다면, 기능과 인력이 그대로 유지되는데, 굳이 왜 없애는가? 폐지되는 부서의 권한 축소와 이에 따른 기능 저하는 당연하다. 권한 축소와 기능 저하의 의도가 없다면 그 부서를 폐지할 이유도 없다. 다른 부서는 논외로 해도 통일부의 경우, 그 존치 여부가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심대하다. 잃어버린 10년 찾기라는 비합리적인 발상이 아니라면 기능과 인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통일부를 구태여 없앨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인수위의 지난 한달여간의 활동을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경제대통령으로 이명박대통령이 선출되긴 했지만, 경제만 하라고 뽑은 대통령이 아니다. 양극화로 인해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실업으로 절망하는 사람들을 돌볼 대통령 역시 필요하다. 기업이 잘되는 나라를 만들어줄 대통령도 필요하지만 서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줄 대통령 역시 간절하다.   

 

96년 OECD에 가입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화자찬했다. 흥청망청 과소비가 남무했고, 부동산 투기 과열 등 경제에 거품이 잔뜩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99년 IMF의 한파를 맞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나라"라는 세계의 비웃음을 받았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스스로 자화자찬 하고 있다. 사회의 공공성이 한미한 상태임에도 사회의 민주적 기제들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우리는 지난 10년, 혹은 20년간 달성한 민주주의로 서구사회와 같은 선진민주주의국가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달성된 민주주의는 헌신짝 취급하며, 신자유주의가 절대화하는 시장속에 사회의 공공성을 내던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여, 민주주의를 걷어차지 마라. 또 다시 "샴페인을 너무 일찍 떠뜨린 나라"라는 세계의 비웃음을 들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