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13d62745b004febb1429ac6dfc13&name=1448512369137521476912253.swf" cywrite_src="http://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13d62745b004febb1429ac6dfc13&name=1448512369137521476912253.swf" wmode="transparent" quality="high" menu="false" pluginspage="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630" height="478"> 1995년도의 어느날 나는 잠실 롯데백화점 10층에서 서성이고 있었다.아버지의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가진 채. 당시 아버지는 사업의 성과가 나오지 않아 비감에 젖어 계시던 시기였는데 그래도 매일 출근은 양복을 입고 하셨으며 퇴근도 적절한 시각에 하시던터라 회사에 출근하신 아버지를 만나러 내가 왜 아버지 회사가 아닌 롯데백화점으로 가야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그저 심부름 내용만 말씀해 주셨을 뿐이었으므로 난 가타부타 말 없이 그저 어머님의 심부름 내용만을 들은 채 롯데백화점 10층에서 아버지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찾아간 롯데백화점은 증축 공사로 한창이었는데 증축전 맨 마지막 층인 10층은 이벤트 행사나 또는 디스카운트 상품들을 판매하던 일종의 상설매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그날 때마침 열린 스키용품 행사로 10층엔 사람들이 북적였는데 1995년도만 해도 스키는 그다지 대중화 되지 않았으므로 중산층은 되어야 즐길 여력이 있는 기득권층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시절이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부티나는 고객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며 서성인지 30분 즈음이 흘렀을까... 스키용품 판매점 사이로 아버지께서 그 모습을 드러내셨다. 나무가루가 가득한 머리와 허름한 작업복을 걸치신 채로 부티나고 번지르한 아주머니들 사이로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아버지는 내게로 다가오셨다. 그랬다. 아버지의 사업은 이미 실패했던 거였다. 분명히 잘 다려진 정장과 깨끗한 셔츠와 말끔한 넥타이를 보기좋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던 내 인생의 히어로인 아버지가 허름하고 낡은 작업복에 몸을 맡기곤 때가 절은 얼굴로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부티나는 아주머니들이 아버지가 지나치자 눈살을 찌푸리며 황급히 물러서는 광경을 보았을 때 매장의 점원이 아버지를 보곤 마치 "당신 어서 나가지 못해?"라고 따지는 듯한 표정을 짓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급기야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성스레 스무켤레도 넘는 구두에 광을 내며 "사내의 진정한 멋은 구두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실만큼 멋을 아는 남자였던 아버지께선 백화점 화장실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으셨는데 이내 아버지가 부끄러워 칸막이 안으로 숨어버린 싹수 노란 아들을 찾으시며 "태형아~ 이따가 아버지랑 소주 한 잔 하자"며 너털웃음을 짓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다. 그 싹수 없는 아들 되는 나는 화장실 칸막이 속에서 불도 잘 붙지 않은 담배만 뻐끔 빨아대면서 볼우물 가득 나도몰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담아두고는 누군가를 향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분노에 주먹을 굳게 쥐었다. 주민등록증과 도장은 아버지의 노동에 적합한 급여를 받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멋스럽지만 잠시 멋을 포기한 아버지와, 애써 멋을 부리지만 싹수가 노랗게 바래 멋이라곤 찾을 수 없는 나는 나란히 서서 아버지 당신의 급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아버지는 얼굴 가득 흐릿한 미소를 담고 내게 말씀하셨다. "기다리기 지루하지?"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 때문에 얼이 반쯤 빠져 아버지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을 바라보다 못한 아버지는 옆에 서 계시던 어느 인부와 다음과 같이 대화하셨다. "이봐요 황씨. 급여가 좀 늦는데 내 우리 아들이 찾아왔거든요 내 주머니사정이 그렇고 그런지라 아들하고 소주 한 잔 할래도 여의치 않으니 내게 3만원만 빌려주구려. 내일 급여를 받게 되면 갚으리다." 황씨라고 불리운 중년 사내는 흔쾌히 허락하였다. 아버지가 "김사장"이 아닌 "김씨"로 불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처음 깨달았고 내 인생의 히어로는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져 갔다. 남의 돈 천원도 빌리는 게 쑥스러워 늘 제 돈으로 사업하고 늘 제 돈 모자라 사업 망하고 늘 갚지 아니해도 될 돈 갚느라 허리가 휘는 경험을 숱하게 했던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가 남에게 돈을 빌리는 광경을 나는 처음 목도하게 되었다. 내 주머니에도 있는 3만원이 없어 싹수 노란 자식 술 한 잔 먹이려고 돈을 빌리는 아버지를 말이다. 아버지와 나는 롯데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를 찾았다. 갖가지 회를 미리 썰어두고 이모저모 고르면 그램으로 계산해주는 저렴한 냉동회집을 찾았고 그렇게 한잔 두잔 마시던 것이 소주 8병까지 불어났다. "아버지는 말이다. 네게 미안하다." "뭐가요 아버지" "지갑만 들고 나왔어도 네게 들키지 않는건데..." "..." "네게 조금도 아픈 마음을 갖게 하기 싫었는데 말이다" 그랬다. 아버지는 당신이 생각하는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인 내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낙오자의 인생으로서 막노동판에서 일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일부러 귀찮고 또 귀찮고 무시무시하게 귀찮게도 매일 옷을 갈아입는 번거로움과 같이 일하는 인부들의 비웃음을 참아가면서 정장차림으로 출근하셨던 것이었지. 싹수 노란 아들놈이 기죽는 게 싫어 싹수 노란 아들놈이 아버지 걱정하는 게 싫어 싹수 노란 아들놈이 고생하는 아버질 보고 맘 아픈 게 싫어 내 인생의 히어로 나의 아버지는 귀찮음과 고됨과 아픔을 잠시 미뤄뒀던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버지. 내일부터는 그냥 편하게 입고 출근해요" "그래... 그래도 되겠지?" "아버지 앞으로는 제가 열심히 할께요" "그래 고맙다. 아버진 네게 늘 고맙다" 무엇이 그렇게 고마운지 묻고 싶었지만 가슴 어딘가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마냥 아려오고 저려와서 여쭤볼 수 조차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와 나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둘이 함께 아는 트로트를 부르며 걸었다. 아버지는 흥에 겨워 즐거워하였지만 내 눈에는 절절하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으로 나는 그날 밤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지금은 모든게 안정적이 되었고 부모님도 그리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 제 구실을 하게 된 나와 내 동생도 각자 그 때 생각을 하며 웃는 낯을 보인다. 지금의 표독스럽고 독하고 강성위주의 내 성격은 대부분 스무살 내 대학 신입생 시절의 그 때 아버지와 함께 술잔을 기울인 바로 그 날 만들어졌는데 아버지를 아프게 한 세상에 대한 내 분노의 표출이었고 아버지를 고생하게 하는 세상에 대한 내 마음가짐의 하나였다. 스무 살의 그날 이후로 난... 어떠한 일도 어떠한 역경도 어떠한 아픔도 내게 부담스럽고 고되고 힘들다 여긴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아버지가 그러했듯 나도 그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거다. 난 스키를 싫어한다. 매우 어릴때 스키를 배웠지만 나는 지금 스키를 싫어한다. 그 날... 스무 살의 어리고 여린 마음에 롯데백화점 10층의 어느 부티나는 여인이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를 보곤 길거리의 "쓰레기"마냥 마주하지 말아야 할 물건인 듯 황망히 비켜서며 아버지를 피했을 때 아마 그때부터... 아마 그때부터... 나는 스키가 싫어졌는가보다. 내 모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내 스스로 만족하는 정상에 서는 날 나는 스키장에 서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히어로와 함께 말이다. Michael Kay Copyright ⓒ Michael Kay All Rights Reserved
아버지와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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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도의 어느날
나는 잠실 롯데백화점 10층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가진 채.
당시 아버지는 사업의 성과가 나오지 않아 비감에 젖어 계시던 시기였는데
그래도 매일 출근은 양복을 입고 하셨으며 퇴근도 적절한 시각에 하시던터라
회사에 출근하신 아버지를 만나러 내가 왜 아버지 회사가 아닌 롯데백화점으로 가야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그저 심부름 내용만 말씀해 주셨을 뿐이었으므로
난 가타부타 말 없이 그저 어머님의 심부름 내용만을 들은 채 롯데백화점 10층에서 아버지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찾아간 롯데백화점은 증축 공사로 한창이었는데 증축전 맨 마지막 층인 10층은
이벤트 행사나 또는 디스카운트 상품들을 판매하던 일종의 상설매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그날 때마침 열린 스키용품 행사로 10층엔 사람들이 북적였는데
1995년도만 해도 스키는 그다지 대중화 되지 않았으므로
중산층은 되어야 즐길 여력이 있는 기득권층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시절이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부티나는 고객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며 서성인지 30분 즈음이 흘렀을까...
스키용품 판매점 사이로 아버지께서 그 모습을 드러내셨다.
나무가루가 가득한 머리와 허름한 작업복을 걸치신 채로 부티나고 번지르한 아주머니들 사이로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아버지는 내게로 다가오셨다.
그랬다. 아버지의 사업은 이미 실패했던 거였다.
분명히 잘 다려진 정장과 깨끗한 셔츠와 말끔한 넥타이를 보기좋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던
내 인생의 히어로인 아버지가
허름하고 낡은 작업복에 몸을 맡기곤 때가 절은 얼굴로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부티나는 아주머니들이 아버지가 지나치자 눈살을 찌푸리며 황급히 물러서는 광경을 보았을 때
매장의 점원이 아버지를 보곤 마치 "당신 어서 나가지 못해?"라고 따지는 듯한 표정을 짓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급기야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성스레 스무켤레도 넘는 구두에 광을 내며
"사내의 진정한 멋은 구두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실만큼 멋을 아는 남자였던 아버지께선
백화점 화장실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으셨는데
이내 아버지가 부끄러워 칸막이 안으로 숨어버린 싹수 노란 아들을 찾으시며
"태형아~ 이따가 아버지랑 소주 한 잔 하자"며 너털웃음을 짓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다.
그 싹수 없는 아들 되는 나는 화장실 칸막이 속에서 불도 잘 붙지 않은 담배만 뻐끔 빨아대면서
볼우물 가득 나도몰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담아두고는
누군가를 향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분노에 주먹을 굳게 쥐었다.
주민등록증과 도장은 아버지의 노동에 적합한 급여를 받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멋스럽지만 잠시 멋을 포기한 아버지와, 애써 멋을 부리지만 싹수가 노랗게 바래 멋이라곤 찾을 수 없는 나는
나란히 서서 아버지 당신의 급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아버지는 얼굴 가득 흐릿한 미소를 담고 내게 말씀하셨다.
"기다리기 지루하지?"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 때문에 얼이 반쯤 빠져 아버지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을 바라보다 못한 아버지는
옆에 서 계시던 어느 인부와 다음과 같이 대화하셨다.
"이봐요 황씨. 급여가 좀 늦는데 내 우리 아들이 찾아왔거든요 내 주머니사정이 그렇고 그런지라
아들하고 소주 한 잔 할래도 여의치 않으니 내게 3만원만 빌려주구려. 내일 급여를 받게 되면 갚으리다."
황씨라고 불리운 중년 사내는 흔쾌히 허락하였다.
아버지가 "김사장"이 아닌 "김씨"로 불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처음 깨달았고
내 인생의 히어로는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져 갔다.
남의 돈 천원도 빌리는 게 쑥스러워 늘 제 돈으로 사업하고
늘 제 돈 모자라 사업 망하고 늘 갚지 아니해도 될 돈 갚느라 허리가 휘는 경험을 숱하게 했던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가 남에게 돈을 빌리는 광경을 나는 처음 목도하게 되었다.
내 주머니에도 있는 3만원이 없어 싹수 노란 자식 술 한 잔 먹이려고 돈을 빌리는 아버지를 말이다.
아버지와 나는 롯데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를 찾았다.
갖가지 회를 미리 썰어두고 이모저모 고르면 그램으로 계산해주는 저렴한 냉동회집을 찾았고
그렇게 한잔 두잔 마시던 것이 소주 8병까지 불어났다.
"아버지는 말이다. 네게 미안하다."
"뭐가요 아버지"
"지갑만 들고 나왔어도 네게 들키지 않는건데..."
"..."
"네게 조금도 아픈 마음을 갖게 하기 싫었는데 말이다"
그랬다.
아버지는 당신이 생각하는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인 내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낙오자의 인생으로서 막노동판에서 일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일부러 귀찮고 또 귀찮고 무시무시하게 귀찮게도 매일 옷을 갈아입는 번거로움과
같이 일하는 인부들의 비웃음을 참아가면서 정장차림으로 출근하셨던 것이었지.
싹수 노란 아들놈이 기죽는 게 싫어
싹수 노란 아들놈이 아버지 걱정하는 게 싫어
싹수 노란 아들놈이 고생하는 아버질 보고 맘 아픈 게 싫어
내 인생의 히어로 나의 아버지는 귀찮음과 고됨과 아픔을 잠시 미뤄뒀던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버지. 내일부터는 그냥 편하게 입고 출근해요"
"그래... 그래도 되겠지?"
"아버지 앞으로는 제가 열심히 할께요"
"그래 고맙다. 아버진 네게 늘 고맙다"
무엇이 그렇게 고마운지 묻고 싶었지만 가슴 어딘가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마냥 아려오고 저려와서 여쭤볼 수 조차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와 나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둘이 함께 아는 트로트를 부르며 걸었다.
아버지는 흥에 겨워 즐거워하였지만 내 눈에는 절절하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으로
나는 그날 밤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지금은 모든게 안정적이 되었고
부모님도
그리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 제 구실을 하게 된 나와 내 동생도
각자 그 때 생각을 하며 웃는 낯을 보인다.
지금의 표독스럽고 독하고 강성위주의 내 성격은 대부분 스무살 내 대학 신입생 시절의 그 때
아버지와 함께 술잔을 기울인 바로 그 날 만들어졌는데
아버지를 아프게 한 세상에 대한 내 분노의 표출이었고
아버지를 고생하게 하는 세상에 대한 내 마음가짐의 하나였다.
스무 살의 그날 이후로
난...
어떠한 일도 어떠한 역경도 어떠한 아픔도
내게 부담스럽고 고되고 힘들다 여긴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아버지가 그러했듯 나도 그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거다.
난 스키를 싫어한다.
매우 어릴때 스키를 배웠지만
나는 지금 스키를 싫어한다.
그 날...
스무 살의 어리고 여린 마음에
롯데백화점 10층의 어느 부티나는 여인이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를 보곤
길거리의 "쓰레기"마냥 마주하지 말아야 할 물건인 듯 황망히 비켜서며 아버지를 피했을 때
아마 그때부터...
아마 그때부터...
나는 스키가 싫어졌는가보다.
내 모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내 스스로 만족하는 정상에 서는 날
나는 스키장에 서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히어로와 함께 말이다.
Michael K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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