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안은실20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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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국의 한 일간지에 실린 중경삼림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2007년 광화문에 새로 문을 연 소극장에서 개관 첫 작품으로 올린 중경삼림이 연일 만원이라는...
만든지 십수년이 지난 이 영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 좋은 영화는 역시 시대나 유행을 넘어서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왕가위, 그리고 중경삼림의 껍데기...

이제는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들어선 왕가위지만, 한국에서 왕가위는 을 통해 비로소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왕가위는 그 이전에 이미 데뷔작인 . 그리고 칸느영화제 수상작품인 을 봉해 일부 매니아 층의 사랑을 받고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거나 성공한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제목부터 수수께끼같다. 원래 중경(重慶)은 중국의 사천성에 소재한 대도시 이름이다. 사천성은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분지지역으로서 등소평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며, 매운맛이 특징인 사천요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지역이기도 하다. 중경은 그중에서도 교통의 요지로서 무려 3천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어, 단일도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많은 인구가 사는 도시이고 중일전쟁 당시에는 국민당의 임시정부가 섰던, 역사적인 고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 중경삼림의 중경은 중경이라는 도시가 아니라, 홍콩 까우룽반도(구룡, 九龍半島)의 중심지인 침사추이 나단로드(Nathern Rd)에 있는 중경대하(重慶大廈)에서 따온 것.
이 영화를 통해 갑자기 유명해지고 관광명소가 된 중경대하는 지금도 침사추이의 한복판에 그대로 자리잡고 있는데, 실은 명물이기 보다 도시미관을 해치는 흉물에 가깝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쪽방촌이리고 할까? 중경대하는 싸구려 게스트 하우스로서 갈곳업는 부랑자들, 일용직 노무자들, 특히 돈벌러 온 인도, 파키스탄인들이 우글대는 다시 말하면 밑바닥 인생의 애환과 분노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장이다.

이 중경대하가 있는 침사추이는 왕가위에게는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의미있는 곳이라고 한다.

왕가위는 다섯살이던 1963년 가족과 함께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이주하였는데, 그의 어머니는 지독한 영화광이어서 늘 어린 왕가위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서 하루에 두 세편의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그 영화관은 아마도 중경대하가 있는 나단로드뒷편 어디쯤에 지금도 있지 않을까 싶다.


왕가위는 여기서 장 뤽 고다르를 만났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리치를 접했으며, 쿠로사와 아키라를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북적대고 시끄러운 이 돈네의 풍경들은 그가 탐닉하였던 동서양의 온갖 영화들과 함께 어린 왕가위가 훗날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하는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자양분을 공급하였을것이다.

 

중경삼림의 영어제목은 Chung king Express. 삼림을 그대로 해석하다면 Chung king Jungle 이나 Chung king Forest 로 하는게 더 정확했을듯~ 

Express는 영화의 두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이 란콰이펑 의 바.. Midnight Express에서 따온것 같다. 그렇게 보면 영어제목은 오히려 이해하기 쉬워진다. Chung king은 첫번째 배경인  Chung king Mansion에서 따오고, Express는 두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인  Midnight Express에서  따온것이니까..

그럼 삼림은 또 뭘까? 모르긴 해도 중경대하로 대변되는 누추하고 억압된 일상에서 펼쳐지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삶과 꿈을 마치 얽히고 섥힌 깊숙한 정글에 비유한것인지도 모르겠다.

 

중경삼림 INSIDE~

그러나 제목을 여하히 해석하건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경삼림이 그리고자 한 것이 정확이 무엇이었는지, 왜 중경대하가 배경으로 설정되어야만 했는지, 금성무가 출연한 전편의 에피소드와 왕비, 양조위가 출연한 우편의 에피소드가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지 수수께끼는 꼬리를 물고 나오기 때문.

 

사실 감독인 양가위조차 그 정답을 모를지도 모른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양가위는 대본도 없이 이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그때 그때 느낌이 오는대로 즉흥적으로 촬영을 해나갔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 영화를 이해하려고 하는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싶다.

왕가위가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를 읽어도 오리무중이긴 매한가지.

그도 그럴것이, 왕가위는 소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를 영상화한것이니까. 그러나 굳이 찾아보면 영화속의 두개의 에피소드는 몇가지 공통분모를 가지고있다.

 

우선 두 에피소드는 모두 사랑이야기다. 배경은 번잡하고 북적대는 도시 한가운데이고 각 에피소드의 남자주인공은 모두 실연당한 경찰관이다. 남자주인공들은 나이가 직업에 거랒지 않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이고 여자주인공들은 뭔지모를 미스터리에 휩싸여있다. 원래 왕가위는 영화의 끝부분에 두커플을 만나게 하려고 생각했다는데 제작과정중에 없는일이 되버리고 말았단다.

 

사실 내 생각으론 그런 미완성 내지는 여백이 주는 여운이 영화를 더멋있게 만들었던 것 같다. 세상일이란 사실 다 그렇게 속시원히 설명할 필요는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아무리 쿨하고 스타일리쉬하다해도 영화는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수없다.

 

왕가위는 이 영화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그는 홍콩 영화계에서, 아니 전세계 영화계에서 보기드문 스타일리스트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지만 그 현란한 스타일이 감싸고 있는 내용이나 주제의식은 때로 터무니없이 빈약하고 공허하기까지 하다. 내용없는 외형의 집착은 결국 파탄을 드러낼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외형상 미학의 극치를 달린 영화중경삼림은... 이후 왕가위 영화의 붕괴와 몰락을 엿볼수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중경삼림 이후에 발표한 타락천사(墮落天使)나 동사서독(東邪西毒)은 스타일 면에서 더욱 진보한 기법과 연출을 보여줬는지 모르겠지만, 흥행면에서 참패했고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특히 90년대 최고의 흥행감독이었던 왕정 같은 이는 노골적으로 양가위를 욕하고 다니는데.. 하긴 숱한 영화를 만들고 매번 홍콩영화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그지만 변변한 영화제에서 수상기록 하나없는 처지에서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쓰는 왕가위가 샘이 날만도 하다.

 

어쨌건 이 모든 비평이나 비난에도 불구하고 왕가위는 장국영과 양조위를 동성애자로 등장시킨 이후 오히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2000년에 발표한 화양연화는 가히, 왕가위 영화의 최고의 성과물로 보여진다. 이전 몇몇 작품과는 달리 어깨에 힘을 뺀 연출이 돋보이며 감독은 애정어린 눈으로 60년대 홍콩을 돌아보고 여유와 관조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아쉽고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지난날. 즉 화양연화가 아니겠는가..

 

 

중경삼림 OST 와 웡페이...

각설하고, 중경삼림은 왕가위 영화의 파탄 징조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여전히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쿨~~ 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바로 왕가위 감독이라는데 동의 하지 않을수없을것이다. 왕가위의 오랜 동료안 예술감독 장숙평과  촬영감독 Chris Doyle 의 세트제작이나 카메라 워크도 훌륭하지만 이 영화릐 또다른 매력중 하나는 왕가위 영화가 늘 그렇듯 영화 음악에 있다.

 

이 영화의 후편 에피소드에서는 두곡의 노래가 시종 배경에 흐르는데 공교롭게도 하나는 복고풍의 올디스 넘버인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의 "California Dreaming"이고 또 하나는 9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아일랜드의 록밴드 크랜 벨스 (Cranberries)의 얼터너티브 넘버인 "Dreams"를 웡페이가 번안해서 부르는 몽중인 이다.
이 대조적인 두양식의 곡이 얼마나 묘하게 어울리고 조화되는지만 보아도 왕가위의 앞선 감각을 느낄수있다.

특히 몽중인을 듣고 있노라면 스튜어디스가 되어 하늘을 날고 어딘지 모를 이국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식당종업원 웡펭이의 들뜬 심경과 꿈이 그대로 가슴에 전해진다. 아마도 원곡을 부른 크랜베리스의 보컬 Dolores O'riordan 보다도 웡페이의 목소리가 더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니었나 한다.

 

중경삼림의 히로인은 뭐니워미해서 Faya Wong, 웡페이(王菲)다. 웡페이는 원래 중국본토 북경 출신으로서 18세인 1987년 처음 홍콩에 건너왔다. 노래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89년 시네폴리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앨범을 발표하는데 이때 프로덕션에서는 그녀에게 왕정문(광동어 웡칭만)이라는 예명을 지어주고 셜리라는 영어 예명까지 지어줘서 그녀는 데뷔초 셜리 웡, 웡칭만으로 불렸다.
데뷔와 동시에 웡페이는 특유의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전속사인 시네포리의 대표가수로 자리잡았고 이후 내놓는 노래마다 빅히트를 기록하며 중경삼림이 만들어진 94년 이전에 이미 홍콩을 포함한 중국어권에서 가장인기있는 가수로 떠오른다.

후에 웡페이는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다시 앨범을 내놓으면서 과거의 예명을 모두 버리고 본명인 웡페이란 이름으로 활약하게 된다. 영어 예명도 셜리를 버리고 본명인 Faye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때 웡페이는 이름만 바꾼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완전히 변신을 하는데 과거의 소녀취향의 발라드나 국적불명의 댄스곡에서 벗어나 중국적인 정서와 실험적인 형식을 갖춘 곡들을 자신이 직접 만들거나 남자친구인 두위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냈다.
이무렵 웡페이는 아시아 최고의 디바란 제목과 함께 타임지의 표지인물로 나오기도했다. 두위는 중국본토에서 그룹활동을 하는 젊은 음악인으로서 그 나름대로 실력과 인기를 모두 갖춘 가수였다.

웡페이와 두위는 90년대 후반 끊임없는 스캔들로 시달렸고 웡페이는 결국 그의 아이까지 낳고 결혼도 했지만, 지금은 헤어졌고 한참의 공백뒤에 재기하여 다시 음악에 몰두하다가 얼마전 어린 중국남자배후와 재혼, 뉴스를 타기도 했다.

웡페이 이후 숱한 여가수들이 새로운 천후 자리를 노리고 명멸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카리스마와 인기를 능가하진 못한것같다. 2046 이후잠잠한 왕가위의 신작을 기대하며 재혼이후 활동이 뜸한 웡페이의 모습도 더 자주 볼수있었으면 생각해본다.

 

에필로그...

이번 주말은 중경삼림에게 내 빈시간을 내줄까한다.

생각 난 김에, 양가위 감독 영화관(觀)을 제공해주었던 중경대하에도 들러 사진도 찍고~~~

잠들기 전, 가장 달콤한 시간에 중경삼림에게 눈맞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