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山東省) 자오저우(膠州)에선 두 개의 한국 피혁 제조업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D사는 경영 환경이 어려워진 4년 전부터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주문이 감소하고 인건비·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직원을 3분의 1로 줄였다. 급여체계도 성과급제로 바꾸었다. 그 결과 D사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생산량을 기록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S사는 그 기간 은행 대출을 늘리고, 직원 임금을 체불하고, 거래처와 건물주에 대한 '부채'도 최대한 키웠다. 3년 후 S사의 한국인 임직원 30여명은 중국에 총 2억위안(약 260억원)의 부채를 남기고 '야반도주'했다. 현지의 한 기업인은 "S사는 3년간 도망갈 준비만 했다"고 말했다.
며칠 전 칭다오 외곽 청양구(城陽區)에서도 똑같은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곳 와리(窪里)공업원구에는 800여개의 한국 액세서리 업체가 모여 있다. 한 골목길로 들어서자 공장 대문에 붉은 글씨로 '공장 임대'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해 한국인 사장이 도망간 업체다. 반면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둔 S공예품 유한공사는 차가운 날씨에도 150여명의 직원들이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 회사 사장은 "기업 환경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액세서리는 아직 할 만하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한국 기업의 '중국 탈출' 현상을 놓고 양국이 시끄럽다. 국민 감정도 악화되고 있다. 도망간 기업은 원인도 제각각이다. 어떤 기업은 급격한 기업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또 어떤 기업은 중국의 느려터진 청산 절차와 중국 정부의 불공정한 법 집행이 싫어서, 다른 기업은 거래업자들의 신변 위협이 두려워서, '맨몸 철수'를 택했다.
본업은 뒷전이고 골프 음주에 열심인 기업인도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만 비난하는 것은 정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한계 상황에 도달한 중국 진출 기업의 사정에 맞게 양국 정부가 나서서 '청산'을 도와주는 일이다.
먼저 중국 정부는 '청산 절차를 밟으면 고생만 하고 재산을 몽땅 날리며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한국인의 우려를 해소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5대 보험이나 관세의 소급 적용을 완화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또 한국인에게 가해지는 납치 폭행 등 신체적 위협을 줄이는 데 힘써야 한다. 중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한국 기업에 대해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시며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한다)'의 자세로 청산을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기업 내 청산소조(팀)가 만들어질 때 한국측 법정대리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 그래야 설비와 재고를 제값에 평가받을 수 있다. 반면 고의적으로 은행 대출금이나 임금을 떼먹는 기업인은 귀국하면 경제사범으로 처벌해야 한다.
중국 경제는 지금 구조조정 단계에 있다. 노동자 권익이 향상되고, 저임금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저효율·저부가산업은 고효율·고부가산업으로 바뀌는 중이다. '맨몸 철수'는 '경제 패러다임 변화'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이 단계를 거치면 중국 경제의 거품이 걷히고 한결 투명화·규범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중산층이 증가하여 내수시장도 커질 것으로 예측한다. 중국시장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할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골칫거리인 '맨몸 철수'가 길게 보면 양국 경제에 '약(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해범 중국전문 기자
중국 설날 앞두고 한국업체 밀집 산둥.광둥 긴장고조
한국정부, 칭다오.상하이.광저우 실태조사
설날을 앞두고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해있는 중국 산둥(山東), 광둥(廣東)성 일대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중국에서 사업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야반도주’와 같은 비정상적인 철수가 늘어날 조짐을 보이자 경영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대해 중국 현지 직원들이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는 설날이 다가오면서 귀성차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아예 돌아오지 않는 한국업체 임직원들이 상당수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최근 종업원 3천명을 거느린 중견섬유업체 세강섬유 임직원들이 ’야반도주’한 옌타이(煙臺)에서는 한국업체들이 극심한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옌타이 한국상회의 한 관계자는 한국업체와 거래할 때 중국인들이 모두 현금거래를 요청하고 있다면서 상관행상 용인되는 1-2개월의 외상거래조차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설 연휴가 끝난 뒤 종업원들이 이직, 귀향 등으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지금은 한국업체 임직원들이 돌아오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업체 임직원들이 현지에서 제대로 끝마무리를 하지 않고 달아날 경우 남아있는 기업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안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업체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칭다오(靑島)에서는 산업자원부와 관계기관 등이 28일 경영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으며 30일 상하이(上海)를 거쳐 31일에는 광저우(廣州)에서 실태조사를 벌인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업체들은 경영환경이 어려워 사업을 접을려고 해도 청산절차가 까다로와 ’야반도주’가 늘고 있다며 한국정부가 중국 정부와 접촉해 청산을 쉽게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건의하고 있다.
하지만 ’야반도주’기업의 부도덕성이 더 큰 문제라는 의견도 많다. 단물을 다 빼먹고 어려워지니까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한국상회의 한 관계자는 일부 기업의 부도덕적인 ’야반도주’로 보다 밀접해지고 있는 한중 협력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이후 중국에서 인건비 상승속도가 빨라지고 올해부터 발효된 노동계약법, 환경관련 규제, 가공무역 금지에 따른 혜택 축소, 내외자 기업 소득세 단일화 등으로 기업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코트라 중국본부 박진형 본부장은 중국 내수를 겨냥한 보다 경쟁력있는 제품으로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인건비 따먹기’식의 중국 진출은 지금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맨몸 철수"의 두 얼굴
'맨몸 철수'의 두 얼굴
중국 산둥성(山東省) 자오저우(膠州)에선 두 개의 한국 피혁 제조업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D사는 경영 환경이 어려워진 4년 전부터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주문이 감소하고 인건비·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직원을 3분의 1로 줄였다. 급여체계도 성과급제로 바꾸었다. 그 결과 D사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생산량을 기록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S사는 그 기간 은행 대출을 늘리고, 직원 임금을 체불하고, 거래처와 건물주에 대한 '부채'도 최대한 키웠다. 3년 후 S사의 한국인 임직원 30여명은 중국에 총 2억위안(약 260억원)의 부채를 남기고 '야반도주'했다. 현지의 한 기업인은 "S사는 3년간 도망갈 준비만 했다"고 말했다.
며칠 전 칭다오 외곽 청양구(城陽區)에서도 똑같은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곳 와리(窪里)공업원구에는 800여개의 한국 액세서리 업체가 모여 있다. 한 골목길로 들어서자 공장 대문에 붉은 글씨로 '공장 임대'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해 한국인 사장이 도망간 업체다. 반면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둔 S공예품 유한공사는 차가운 날씨에도 150여명의 직원들이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 회사 사장은 "기업 환경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액세서리는 아직 할 만하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한국 기업의 '중국 탈출' 현상을 놓고 양국이 시끄럽다. 국민 감정도 악화되고 있다. 도망간 기업은 원인도 제각각이다. 어떤 기업은 급격한 기업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또 어떤 기업은 중국의 느려터진 청산 절차와 중국 정부의 불공정한 법 집행이 싫어서, 다른 기업은 거래업자들의 신변 위협이 두려워서, '맨몸 철수'를 택했다. 본업은 뒷전이고 골프 음주에 열심인 기업인도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만 비난하는 것은 정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한계 상황에 도달한 중국 진출 기업의 사정에 맞게 양국 정부가 나서서 '청산'을 도와주는 일이다.먼저 중국 정부는 '청산 절차를 밟으면 고생만 하고 재산을 몽땅 날리며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한국인의 우려를 해소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5대 보험이나 관세의 소급 적용을 완화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또 한국인에게 가해지는 납치 폭행 등 신체적 위협을 줄이는 데 힘써야 한다. 중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한국 기업에 대해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시며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한다)'의 자세로 청산을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기업 내 청산소조(팀)가 만들어질 때 한국측 법정대리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 그래야 설비와 재고를 제값에 평가받을 수 있다. 반면 고의적으로 은행 대출금이나 임금을 떼먹는 기업인은 귀국하면 경제사범으로 처벌해야 한다.
중국 경제는 지금 구조조정 단계에 있다. 노동자 권익이 향상되고, 저임금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저효율·저부가산업은 고효율·고부가산업으로 바뀌는 중이다. '맨몸 철수'는 '경제 패러다임 변화'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이 단계를 거치면 중국 경제의 거품이 걷히고 한결 투명화·규범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중산층이 증가하여 내수시장도 커질 것으로 예측한다. 중국시장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할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골칫거리인 '맨몸 철수'가 길게 보면 양국 경제에 '약(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해범 중국전문 기자 중국 설날 앞두고 한국업체 밀집 산둥.광둥 긴장고조 한국정부, 칭다오.상하이.광저우 실태조사
설날을 앞두고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해있는 중국 산둥(山東), 광둥(廣東)성 일대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중국에서 사업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야반도주’와 같은 비정상적인 철수가 늘어날 조짐을 보이자 경영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대해 중국 현지 직원들이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는 설날이 다가오면서 귀성차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아예 돌아오지 않는 한국업체 임직원들이 상당수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최근 종업원 3천명을 거느린 중견섬유업체 세강섬유 임직원들이 ’야반도주’한 옌타이(煙臺)에서는 한국업체들이 극심한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옌타이 한국상회의 한 관계자는 한국업체와 거래할 때 중국인들이 모두 현금거래를 요청하고 있다면서 상관행상 용인되는 1-2개월의 외상거래조차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설 연휴가 끝난 뒤 종업원들이 이직, 귀향 등으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지금은 한국업체 임직원들이 돌아오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업체 임직원들이 현지에서 제대로 끝마무리를 하지 않고 달아날 경우 남아있는 기업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안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업체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칭다오(靑島)에서는 산업자원부와 관계기관 등이 28일 경영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으며 30일 상하이(上海)를 거쳐 31일에는 광저우(廣州)에서 실태조사를 벌인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업체들은 경영환경이 어려워 사업을 접을려고 해도 청산절차가 까다로와 ’야반도주’가 늘고 있다며 한국정부가 중국 정부와 접촉해 청산을 쉽게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건의하고 있다.
하지만 ’야반도주’기업의 부도덕성이 더 큰 문제라는 의견도 많다.
단물을 다 빼먹고 어려워지니까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한국상회의 한 관계자는 일부 기업의 부도덕적인 ’야반도주’로 보다 밀접해지고 있는 한중 협력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이후 중국에서 인건비 상승속도가 빨라지고 올해부터 발효된 노동계약법, 환경관련 규제, 가공무역 금지에 따른 혜택 축소, 내외자 기업 소득세 단일화 등으로 기업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코트라 중국본부 박진형 본부장은 중국 내수를 겨냥한 보다 경쟁력있는 제품으로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인건비 따먹기’식의 중국 진출은 지금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