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운명

운명200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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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ː명(運命) [명사]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또는 그 힘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길흉화복. 타고난 운수나 수명. 기수(氣數). 명운(命運).

운ː명(殞命) [명사][하다형 자동사]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 곧 죽음.

 

통제의 범위를 넘어서버린 감정의 고도가 절정으로 치달았다고 느꼈을 때 그게 과학적으로 검증이 가능하던 그렇지 않던 개인적이던 주관적이던 간에 당사자의 판단으로 확실함을 인정 받았을 때 아니 정말 그럴거라고 뭔가에 홀려 있고 제정신은 아니라고 스스로도 알고 있을 때 사람들은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운명이란 단어를 꺼내게 된다.   이때는 하나님을 비롯 여타의 종교를 섬기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어느 전지전능한 절대적인 힘을 지닌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미리 내정되있다고 여기게 되며 자신이나 자신과 비슷한 무리들에 의해선 절대 설정될 수 없을거라는 불확실하면서도 굳건하기 그지없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렇게라도 여기지 않고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내 인생에 사랑? 사랑이라니.  결혼과 안정은 요원한 것이었지만 이성과의 뜨거운 눈맞음이라니. 그것이 비록 처음부터 쌍발합의에 의한 것은 아닐었을지라도 어느 한쪽의 안구에 주변의 사물과 말소리를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장애를 일시적으로 때론 그 기한을 딱히 정할 수 없을 정도의 정체불명의 증상을 앓게 하는 콩깍지가 씌워도 제대로 씌워진 것은 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그것에 휘둘리게된 당사자의 체내에 끊임없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그리게 해주는 사건인 것이다.   간헐적인 호흡곤란은 물론이요 심장의 급격한 운동력증가로 체온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안면홍조증은 거의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주변의 사물들이 대상이 된 이성과 조금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다면 그 즉시 일치화시켜 쓰다듬거나 멍하니 바라보는 버릇을 가지게 하고 하늘은 멀쩡하고 소가 날아다니는 일도 없는데 우두커니 서서 씨익 하는 미소를 자행하게 하는, 주변인에 의해 정신이상자로 낙인받아 격리를 당할지도 모를 습관들을 무의식중에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청력과 시력, 두뇌 회전력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어떤 말도, 어떤 이미지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느 하나 제대로 들리거나 보이지 않으며 행여나 비교적 객관적인 수준의 타자가 자신과 다소 상반된 뜻의 의견을 피력했을 때 전에 없던 흥분이나 화를 내며 주위를 당혹케 만드는 경우도 종종 신고 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온갖 머리를 짜내어 호르몬이 어떻게 반응해서 이렇게 변화시켜 언제까지 몸속을 휘돌다가 적당한 시기가 지나면 자연 소멸된다는 이론을 내놓고는 있지만 이것 또한  이미 사랑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이들에겐 언론사에 항의라도 해서 정정을 요구하거나 속도 모르는 사람들이 질투심에 취해 해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단정 짓는 결론을 맞게 한다.   더이상 어떤 누구의 어떤 말과 제어로도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인 통제 안에서 결정되었다는 운명이라는 믿음이 사랑에 관련한 최대치의 황홀한 신뢰감이 죽음을 각오할만큼의 판타지가 아닌 실제의 죽음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수많은 변수를 지나 운명이 지닌 두번째 사전적 의미로 넘어가게 되면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이 한때 이성적인 사람이었구나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정상이 아니더라도 좋아 에서 이젠 정신을 차려야겠어라는 다소 모호함을 불러일으키는 시츄에이션을 벌이며 자신이 정상임을 재차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뜨거운 열정은 어느새 이전에 주변인들이 그렇게 요구했던 냉철한 판단력으로 뒤바뀌고 한사람을 위한 마음은 '한때 사랑했던' 이를 제외한 모두가 동의하는 합리적인 결정으로 돌아서게 된다. 돌아서게 된다. 돌아서게 된다. 운명은 현실로 돌아오고 잠시동안의 꿈으로 치부된다. 꾸지 말았어야할 꿈. 더 잔인하고 더 아프고 더 슬픈게 현실이라면 운명같은 건 없다. 죄다 언해피엔딩으로 둘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살린채 막을 내린다. 죽는 건 둘뿐이다. 사랑을 잃은 사람. 사랑을 버린 사람.   영화 '너는 내운명'은 현실에 흔들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농약그릇을 들고 온 노부모 앞에서도 담지 말아야할 언어폭력까지 쏟아내며 자신의 운명을 지킨다. 죽음을 넘나들며 운명을 버리지 않는다. 죽더라도 운명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듯이. 그는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바보같은 그 지리멸렬해 보이는 순수의 울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가둔다. 자신들만의 것으로 지킨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단둘뿐이며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뺨을 부비며 힘겨웠지만 다 잊은듯 시간의 이김을 확인하는 미소를 짓는다.   난 믿는다. 비록 영화라는 매체를 빌어 판타지처럼 풀어낸 이 이야기가 결코 허구가 아닐 것임을. 비록 실제 있었던 일과 정확히 일치하진 않더라도 어느 누군가에 의해 정도를 가늠할 수 없는 치열함으로 타오르고 있는 중일 것임을 말이다. 면회장면. 손을 꽉 부여잡으며 울고 싶어도 다 울지 못하는 두 주인공을 보며 난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냥 울고나면 끝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될까봐. 그럼 안되니까, 저건 운명이고 저건 진짜니까. 스크린 밖의 무능력자로써 저들의 시련마저 제어해줄 수는 없었지만 내가 힐 수 있는 일은 그냥 믿어주는 것이었다. 운명을 믿어주는 일. 믿지 않는 일이 훨씬 쉬운 일이지만 지금 감당하고 있는 내 운명 역시 '운명'이라 칭하기에 아깝지 않을만큼 올인해왔기에 남은 희망의 잔여분을 몽땅 걸어보련다. 이미 내 뜻을 벗어났으니까. 이 역시 운명이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너는 내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