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가난한 사람이었으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난 그 자체였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숨결로 말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운명지어진 죽음을 맞이했다. 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성서를 해석하는 우리는 예수가 걸었던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의 사회적 처지가 그와 유사성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지위는 그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언어는 복잡하기 그지없으나 예수의 언어는 단순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와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 준다. 무엇보다도 서글픈 것은, 바로 그 차이점을 우리가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호세 까르데나스 빠야레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인 1973년 봄부터 동네 친구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아주 열성적인 신자는 못 되지만 주일만큼은 교회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으니 주일 대예배 설교만 해도 이천 번 가량은 들은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가난한 이들의 숨결”이 담긴 설교, “가난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운명지어진 죽음을 맞이”한 예수를 전하는 설교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리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한 1984년부터 지금까지 수백 권의 신학 서적을 한 줄 한 줄 밑줄 그으며 읽었다. 그런데 그 책들 중에 예수가 즐겨 사용한 “단순”한 이야기체로 “가난한 이들의 숨결”을 담고 있는 책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신학 서적들은 산문체의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들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도 꽤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제는 내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난 그 자체”였던 예수와 “사회적 처지”가 별로 같지 않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눈에 “가난한 사람” 예수가 포착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거라고. “우리의 언어는 복잡하기 그지없으나 예수의 언어는 단순했다”는 사실은 그저 언어 양태의 차이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훨씬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그렇다. 이 땅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가난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기존의 사회질서에 맞서는 혁명적 대안으로서 하나님나라운동을 펼쳤던 예수, 복음서에 뻔히 들여다보이는 그 예수를 이야기하려고 애쓰는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이나 여성신학처럼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신학을 정통 교리와 신학의 이름으로 깔보고 이단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과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 한다.
우리 신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겸허한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성서를 해석하는 우리는 예수가 걸었던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는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와 동떨어진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와 우리, “가난한” 예수와 배부른 우리 사이의 “차이점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난한 이들의 숨결”이 없는 설교와 예배와 기도와 찬양과 신학이 과연 성서적·복음적일 수 있을까?
“가난한” 예수의 재발견, “단순”한 예수 이야기로의 복귀,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교회로의 전환! 이건 교회가 교회답기 위한 필수 요소가 아니겠는가.
2. 예수님의 희로애락을 알고 싶으면
“노동자나 농부가 그리스도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으면 자기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의 얼굴은 틀림없이 땀에 젖어 있었을 것이고 햇빛에 그을려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나 농부가 예수님의 희로애락을 알고 싶으면 자기네 자신의 희로애락을 성찰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피로와 고통을 겪으셨다. 예수님도 일에 쫓겨 아침 일찍 일어났을 것이고 일이 없을 때에는 일감을 찾으려고 초조해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비애를 느꼈으며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고통을 받으셨다”(남미의 어느 신자).
조영래 변호사를 아는가? 수재 중의 수재였으면서도 일찍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시절부터 민중에 대한 애정을 갖고 고달픈 삶을 살면서도 순박한 인간미를 잃지 않았던 사람. 숨막히는 수배생활 속에서도 청계천의 피복 노동자 전태일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하여 『전태일 평전』을 정리한 사람.
그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전태일이 지식인들보다 빼어나게 현실 인식을 하고 사랑의 철학을 거침없이 펼치는 것을 보면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현실’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전태일은 비록 제도교육의 혜택은 받지 못했지만, 아니 획일적인 지식을 강요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 대신 자신의 밑바닥 현실로부터 생생하게 배웠기 때문에 인생살이의 참된 진리들에 눈뜰 수 있었다는 놀라운 깨달음에.
나 자신도 그런 깨달음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전문 신학자들의 책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평범한 듯 신선하고 충격적인 신앙 고백들을 나는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소박하고 일상적인 자기 성찰에서 종종 발견한다. 체계적인 신학 지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아니 그런 지식에 물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그런 고백들은 알게 모르게 지식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나의 숨통을 열어 주는 귀한 선물이다.
남미의 어느 신자의 예수 고백이 바로 그렇다.
“노동자나 농부가 예수님의 희로애락을 알고 싶으면 자기네 자신의 희로애락을 성찰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맞는 말이다. 남의 설교를 듣고 남들이 써놓은 글을 읽는 것도 더러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참으로 소중한 것은 “자기네 자신”을 “성찰”하는 것,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것이다. 이 “자기” “성찰”을 자극하지 못하는 설교는 오히려 구원의 장애물일 수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인간에게 끝없이 다가선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 복음서를 갖고 예수를 인간으로부터 끝없이 갈라놓는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민중(民衆)과 한 몸이다(마태 25:31-46 참조). 그런데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교리와 신학을 들이대면서 예수를 자꾸만 신격화해서 민중과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초월적인 그리스도로 둔갑시킨다. 그래서 이 땅의 가난한 신자들이 “자기네 자신의 희로애락”과는 무관한 예수를 그들의 구세주로 모시는 서글픈 일이 벌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비애”를 모르고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들 그런 고백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눈앞의 불을 보듯 뻔하다.
“전통적 기독론의 형성에 있어서는 예수의 삶이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오늘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독론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독론은 살과 피를 지닌 인간 예수의 역사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우리는 신비에 싸인 예수의 삶에서 베일을 벗기고 그 진면목을 드러내야 한다”(엘라꾸리아).
3. 예수와 가난한 사람들
예수의 하나님나라운동. 그것은 가난한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눔과 평등과 자유에 기초한 사랑과 평화와 만인의 친교의 따뜻하고 인정(人情)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운동이다! 그 무슨 신학과 교리를 갖고서도 복음서의 각 페이지들마다 기록되어 있는 이 명백한 사실을 뒤엎지는 못할 것이다.
예수는 부잣집 아들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 탄생 소식을 천사의 입을 통해 맨 처음 전해 들은 사람들은 들판에서 밤을 세워가며 양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자들”이었다(눅 2:8-12). 예수의 부모가 아기 예수를 주님께 바치면서 드린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제물인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이었다(눅 2:24).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고 예수는 말했다(눅 9:58).
예수의 메시아 취임사 첫마디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였다(눅 4:18). 예수는 가난한 제자들을 향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말했다(눅 6:20). 예수가 친히 가르쳐 준 주기도문에는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눈물겨운 기도가 들어 있다(눅 11:3). 예수의 별명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였다(막 2:16).
예수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다. 그들의 아픔과 예수님의 아픔이 만나 나눔과 사랑과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는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고상한 도덕적 설교로 그들을 훈계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오랜 세월 숨죽인 아픔을 제 아픔으로 느끼며 그들에게 믿음을, 새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예수가 전한 복음이 그들에게는 한줄기 구원의 빛이었다.
그러나 가진 자들, 배운 자들은 예수를 걸고넘어지기에 바빴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눈엣가시로 여겨졌고, 그들의 드높은 학식은 예수의 단순 소박한 하나님 나라 “비유”들을 이해하는 데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를 그대로 살려 둔다는 것은 곧 그들 세계의 종말을 의미했으므로.
예수 시대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사람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가난한 이들의 인간적 권리 회복을 위해 몸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기는커녕 그들의 사상을 의심하고 비방하고 감옥에 처넣는 세상! 인간의 의식이 많이 깨인 오늘날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이천여 년 전 예수가 가난한 이들과 한몸 한 공동체를 이루면서 겪어야 했을 비방과 박해와 고독은 얼마나 크고 깊었을까!
예수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고 요구했다(막 8:34). 무슨 십자가? “가난의 십자가”가 아니겠는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마 6:24)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면서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살아가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 복음적 가난이 참된 신자의 길이 아니겠는가.
물론 예수는 가난의 예찬자는 아니었다. 가난은 극복의 대상이다. 굶주림은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 주변에 굶주린 이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겠다는 것이 예수의 한결같은 자세였다.
오늘 이 땅의 교회와 신자들은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다정한 벗의 관계인가, 아니면 낯선 타인의 관계인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그 절묘한 구원의 진리는 복음서의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마태 25:31-46의 “최후의 심판”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두렵다. 예수를 위해 한평생 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과는 늘 안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나.
[정연복의 민중신학] 구원의 진리, 민중사랑 없는 예수사랑은 어불성설
“예수는 가난한 사람이었으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난 그 자체였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숨결로 말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운명지어진 죽음을 맞이했다. 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성서를 해석하는 우리는 예수가 걸었던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의 사회적 처지가 그와 유사성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지위는 그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언어는 복잡하기 그지없으나 예수의 언어는 단순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와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 준다. 무엇보다도 서글픈 것은, 바로 그 차이점을 우리가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호세 까르데나스 빠야레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인 1973년 봄부터 동네 친구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아주 열성적인 신자는 못 되지만 주일만큼은 교회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으니 주일 대예배 설교만 해도 이천 번 가량은 들은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가난한 이들의 숨결”이 담긴 설교, “가난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운명지어진 죽음을 맞이”한 예수를 전하는 설교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리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한 1984년부터 지금까지 수백 권의 신학 서적을 한 줄 한 줄 밑줄 그으며 읽었다. 그런데 그 책들 중에 예수가 즐겨 사용한 “단순”한 이야기체로 “가난한 이들의 숨결”을 담고 있는 책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신학 서적들은 산문체의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들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도 꽤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제는 내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난 그 자체”였던 예수와 “사회적 처지”가 별로 같지 않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눈에 “가난한 사람” 예수가 포착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거라고. “우리의 언어는 복잡하기 그지없으나 예수의 언어는 단순했다”는 사실은 그저 언어 양태의 차이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훨씬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그렇다. 이 땅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가난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기존의 사회질서에 맞서는 혁명적 대안으로서 하나님나라운동을 펼쳤던 예수, 복음서에 뻔히 들여다보이는 그 예수를 이야기하려고 애쓰는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이나 여성신학처럼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신학을 정통 교리와 신학의 이름으로 깔보고 이단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과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 한다.
우리 신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겸허한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성서를 해석하는 우리는 예수가 걸었던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는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와 동떨어진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와 우리, “가난한” 예수와 배부른 우리 사이의 “차이점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난한 이들의 숨결”이 없는 설교와 예배와 기도와 찬양과 신학이 과연 성서적·복음적일 수 있을까?
“가난한” 예수의 재발견, “단순”한 예수 이야기로의 복귀,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교회로의 전환! 이건 교회가 교회답기 위한 필수 요소가 아니겠는가.
2. 예수님의 희로애락을 알고 싶으면
“노동자나 농부가 그리스도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으면 자기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의 얼굴은 틀림없이 땀에 젖어 있었을 것이고 햇빛에 그을려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나 농부가 예수님의 희로애락을 알고 싶으면 자기네 자신의 희로애락을 성찰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피로와 고통을 겪으셨다. 예수님도 일에 쫓겨 아침 일찍 일어났을 것이고 일이 없을 때에는 일감을 찾으려고 초조해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비애를 느꼈으며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고통을 받으셨다”(남미의 어느 신자).
조영래 변호사를 아는가? 수재 중의 수재였으면서도 일찍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시절부터 민중에 대한 애정을 갖고 고달픈 삶을 살면서도 순박한 인간미를 잃지 않았던 사람. 숨막히는 수배생활 속에서도 청계천의 피복 노동자 전태일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하여 『전태일 평전』을 정리한 사람.
그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전태일이 지식인들보다 빼어나게 현실 인식을 하고 사랑의 철학을 거침없이 펼치는 것을 보면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현실’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전태일은 비록 제도교육의 혜택은 받지 못했지만, 아니 획일적인 지식을 강요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 대신 자신의 밑바닥 현실로부터 생생하게 배웠기 때문에 인생살이의 참된 진리들에 눈뜰 수 있었다는 놀라운 깨달음에.
나 자신도 그런 깨달음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전문 신학자들의 책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평범한 듯 신선하고 충격적인 신앙 고백들을 나는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소박하고 일상적인 자기 성찰에서 종종 발견한다. 체계적인 신학 지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아니 그런 지식에 물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그런 고백들은 알게 모르게 지식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나의 숨통을 열어 주는 귀한 선물이다.
남미의 어느 신자의 예수 고백이 바로 그렇다.
“노동자나 농부가 예수님의 희로애락을 알고 싶으면 자기네 자신의 희로애락을 성찰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맞는 말이다. 남의 설교를 듣고 남들이 써놓은 글을 읽는 것도 더러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참으로 소중한 것은 “자기네 자신”을 “성찰”하는 것,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것이다. 이 “자기” “성찰”을 자극하지 못하는 설교는 오히려 구원의 장애물일 수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인간에게 끝없이 다가선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 복음서를 갖고 예수를 인간으로부터 끝없이 갈라놓는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민중(民衆)과 한 몸이다(마태 25:31-46 참조). 그런데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교리와 신학을 들이대면서 예수를 자꾸만 신격화해서 민중과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초월적인 그리스도로 둔갑시킨다. 그래서 이 땅의 가난한 신자들이 “자기네 자신의 희로애락”과는 무관한 예수를 그들의 구세주로 모시는 서글픈 일이 벌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비애”를 모르고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들 그런 고백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눈앞의 불을 보듯 뻔하다.
“전통적 기독론의 형성에 있어서는 예수의 삶이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오늘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독론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독론은 살과 피를 지닌 인간 예수의 역사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우리는 신비에 싸인 예수의 삶에서 베일을 벗기고 그 진면목을 드러내야 한다”(엘라꾸리아).
3. 예수와 가난한 사람들
예수의 하나님나라운동. 그것은 가난한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눔과 평등과 자유에 기초한 사랑과 평화와 만인의 친교의 따뜻하고 인정(人情)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운동이다! 그 무슨 신학과 교리를 갖고서도 복음서의 각 페이지들마다 기록되어 있는 이 명백한 사실을 뒤엎지는 못할 것이다.
예수는 부잣집 아들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 탄생 소식을 천사의 입을 통해 맨 처음 전해 들은 사람들은 들판에서 밤을 세워가며 양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자들”이었다(눅 2:8-12). 예수의 부모가 아기 예수를 주님께 바치면서 드린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제물인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이었다(눅 2:24).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고 예수는 말했다(눅 9:58).
예수의 메시아 취임사 첫마디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였다(눅 4:18). 예수는 가난한 제자들을 향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말했다(눅 6:20). 예수가 친히 가르쳐 준 주기도문에는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눈물겨운 기도가 들어 있다(눅 11:3). 예수의 별명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였다(막 2:16).
예수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다. 그들의 아픔과 예수님의 아픔이 만나 나눔과 사랑과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는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고상한 도덕적 설교로 그들을 훈계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오랜 세월 숨죽인 아픔을 제 아픔으로 느끼며 그들에게 믿음을, 새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예수가 전한 복음이 그들에게는 한줄기 구원의 빛이었다.
그러나 가진 자들, 배운 자들은 예수를 걸고넘어지기에 바빴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눈엣가시로 여겨졌고, 그들의 드높은 학식은 예수의 단순 소박한 하나님 나라 “비유”들을 이해하는 데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를 그대로 살려 둔다는 것은 곧 그들 세계의 종말을 의미했으므로.
예수 시대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사람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가난한 이들의 인간적 권리 회복을 위해 몸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기는커녕 그들의 사상을 의심하고 비방하고 감옥에 처넣는 세상! 인간의 의식이 많이 깨인 오늘날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이천여 년 전 예수가 가난한 이들과 한몸 한 공동체를 이루면서 겪어야 했을 비방과 박해와 고독은 얼마나 크고 깊었을까!
예수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고 요구했다(막 8:34). 무슨 십자가? “가난의 십자가”가 아니겠는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마 6:24)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면서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살아가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 복음적 가난이 참된 신자의 길이 아니겠는가.
물론 예수는 가난의 예찬자는 아니었다. 가난은 극복의 대상이다. 굶주림은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 주변에 굶주린 이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겠다는 것이 예수의 한결같은 자세였다.
오늘 이 땅의 교회와 신자들은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다정한 벗의 관계인가, 아니면 낯선 타인의 관계인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그 절묘한 구원의 진리는 복음서의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마태 25:31-46의 “최후의 심판”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두렵다. 예수를 위해 한평생 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과는 늘 안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나.
민중사랑 없는 예수사랑은 어불성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