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여럿이 함께 -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유상은2008.02.06
조회56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

 

 

 

프레시안 유료회원으로 등록하면서 책 한권이 왔다.

 

오오. 간만에 보는 사회과학 서적. 반가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난독증이 왔는지 책 읽기가 힘들어졌다는 것 뿐이다-_-

 

이런 젠장!!!!!!!

 

 

핑계를 대자면.. 

 

대학 다닐 때 수없이 토론했던 주제들이어서 집중하기 어렵기도 했고

 

스스로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논점들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는 도피심리도 작용했는지 모르다.

 

그래서 아래 글도 무척 두서없다.

 

책 내용 요약과 내 생각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어서 참 읽기 싫은 후기가 되어버린 점은 안습.

 

수정 따위 없다. 정말 읽기만 해도 벅찼다니깐ㅠ

 

그냥 써 내려간 것만 해도 스스로가 기특하다. [book] 여럿이 함께 -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1. 신영복 선생님의 [대립과 갈등의 시대,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

 

강연의 핵심은 [인문학적 가치]로 요약된다.

인문학적 가치는 인본주의, 즉 사람을 중시하는 가치라고 풀어 쓸 수 있겠다.

모든 노동은 사람을 화폐 단위로 가치를 매기고 판단하는 것을 학습시켰다.

환경의 학습효과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대단히 유물론적 관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사람은 '사람'이 아닌 '노동력'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양'만 남은 사회에서 '질'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진정한 토론 역시 사라진다.

(토론은 생각의 '질'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 성장, 목표액 달성 등 '숫자'만 드러나는 목표들 속에서 과정에 대한 성찰도 사라진다.

속도와 효율은 중요한 문제지만, 속도와 효율만 남은 사회는 분명 소통과 공유, 교류를 담보하지 않는다.

 

관계를 볼 수 있는 사회.

사람을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사회.

즉,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사회여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얘기.

그 중에서도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하방연대]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이야기.

 

뻔하다면 뻔한 얘기고, 추상적이라면 추상적인 이야기인지라, 사실은 보는 내내 살짝 지루했다.

그러나 긴 시간을 사색하고 고민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강연 내용인지라 참고 보던 중,

[신뢰집단]은 사이다처럼 톡 쏘는 단어였다.

더 이상 언론과 여론은 분리되지 않으며, 독자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제 2의 생산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언론은 신뢰집단으로써 해야 할 역할이 있고 능력이 있다는 얘기.

다양성과 인간적 가치가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여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언론이라는 얘기다.

가쉽과 오락. 옐로우 저널리즘과 하이에나 저널리즘이 판치는 상황에서

당연하지만 필요한 한 마디가 아니었나 싶다.

독자가 소비자가 되었다고 해서 커뮤니케이션의 대상과 영역이 넓어진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바른 토양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공중의 몇 명이고, 그들의 역할이 제대로 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

뼈아픈 한마디다.

 

 

 

 

2. 김종철 편집인의 [난파 직전의 배에서 내리는 것을 두려워 마라]

 

한미 FTA.

타결되었다고 한 차례 시끌벅적했지만, 사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한미자유무역협정.

그러고보니 [신뢰집단] 언론에서는 이제 한미 FTA에 대한 관심을 접었는지 조용하다.

 

압축적인 근대화. 경제 성장의 필연적인 결과는 극심한 경쟁 사회와 환경 오염 등이다.

김종철 편집인은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단어의 엄청만 딜레마에 주목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사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 경제성장은 필요하다.

인구가 늘어나고 자원은 희소성을 띄니 자연적으로 경쟁이 발생하는 경제의 기본적인 논리 안에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제로 성장'은 미친 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생계(색계라고 쓸 뻔했다-_-, livelihood)와 생명(life)은 분명 모순적이다. 동의.

 

그렇다고 이렇게 모순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하니-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돌아갈 곳은 농촌사회. 즉, 농업이란다.

아하. 그래서 강연의 화두가 FTA였구나, 싶었다.

우리가 경제 성장에만 몰두하는 동안,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은 소진되어 버렸고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받쳐주고 있던 infra인 농업은 붕괴 직전이다.

우리가 사회를 벗어나 살지 못하듯, 환경을 벗어나 살지 못할진대

우리 농업을 포기하는 FTA는 우리의 경제, 환경, 미래를 모두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몇몇 기업의 이익을 위해 우리 경제의 infra를 버릴 수 없다는 이야기.

당장의 이익과 미래의 환경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는 매우 단순한 논리다.

그게 생계 vs. 생명의 모순 속에서 맴맴 도니까 선택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 뿐이지.

 

이런 관점에서 FTA는 국익 문제가 아니라 범 국가적 계급 문제이며 세계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이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줄다리기가 아니라 근시안적 관점을 이겨야 하는 '노력의 문제'란 말이다.

아직도 FTA는 논란이 많은 주제이기도 하고, 논의 시점마다 이슈들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주제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장기적인 문제라는 것이랄까.

 

 

 

 

 

3. 최장집 교수님의 [민주화 운동이 민주정치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여럿이 함께]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꼭지.

"민주화 운동이 민주 정치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이라는 부제는 분명 흥미롭다.

 

그 이유는

첫째. 민주화 이전에 강력한 구질서가 형성되어 민주화 운동이 이에 대한 반체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 태생적 한계.

여성학적 입장에서 봤을 때, 민주화 운동이 결코 '민주적'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체제 세력은 목적을 달성하든, 아니면 공동의 '적'이 자멸하든, 반체제 세력이 집권했을 때

헤게모니적인 흐름이나 지배적인 가치관, 경향이 기존 세력에 흡수되어버릴 수 있다는 '변형주의'는

참으로 설득력 있는 부분이었다.

둘째. 우리의 민주화 운동은 집단주의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공론의 장'이라는 민주주의적 속성을 저해했으며

민주화 운동에 반하는 의견은 무조건 '반민주적'이라고 찍어내리는 의식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러한 집단주의적 특징은 정치를 도덕적으로 접근하려는 성향을 가졌고, 이는 곧 정치의 '역할'을 무시하는

특징으로 이어졌다. 민주주의는 이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당 등 정치에서 시작하는 하나의 '틀'이다. 그러나 '우리'라는 집단이 되면서, 또 지저분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이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주체'의 문제인데,

정치체제로써의 민주주의를 인정하고 인식해야만 우리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치를 더러운 것, 지저분한 것으로 인식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념은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해 왔다.

사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정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래서 어려웠던 것일지도.

바른 정당, 선거라는 바른 장치가 제대로 된 vision을 제시하는 것.

일단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 가장 쉬운 첫걸음이 아닐까.

궁금하던 질문에 나름 뚜렷한 답을 제시한 것 같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어렵지만) 가장 명쾌했던 강연이 아니었나 싶다.

 

 

 

 

 

4. 박원순 변호사의 [시민운동은 블루오션이다]

 

애드보커시 적 시민단체'만'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이 과연 블루오션일까, 싶었다.

그러나 분명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등을 통해 시민단체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보여주었던

박원순 변호사의 강연인만큼 기대하게 되는 것 또한 당연.

 

결론은 하나다.

어떤 시대던지 그 시대의 과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운동이 있었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과제만큼 해야 할 일 또한 많은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그만큼 블루오션이라는 것 또한 인정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것들이 정부의 정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우리사회인만큼,

우리 시민단체가 애드보커시적 성향을 띄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시민운동의 vision이 거기에서 더 멀리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역시 박원순 변호사.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책이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지면 될 것이 아니냐 반문한다.

그래 역시 나의 상상력 문제인 것이다-_-

시민단체들이 현재 하고 있는 과제들이 잘못되었다면, 혹은 부족하다면,

다른 과제들을 발굴할 수 있도록 spec을 넓혀가면 될 일이다.

아무렴. 맞는 말씀.

너무 맞는 말들인지라 비판능력 가동 정지.

그냥 듣고 감동하는 강연이 되고 말았다. [book] 여럿이 함께 -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5. 백낙청 선생님의 [시민이 참여하는 '한반도식 통일'의 해법]

 

가장 난감하고 가장 논쟁거리가 많았던 듯 싶은 꼭지.

 

기본 전제는 이렇다.

1. 6.15 선언 1항에 기초하여 각 정부 뿐만이 아니라 제 7 당사자인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할 것

2. 국가연합, 혹은 낮은 연방제가 좋다!

3. 북의 핵실험은 분명 유감스러운 일이다.

4. 현대의 통일시민운동은 80~90년대에 머물러 있다. 6.15 선언 이후에는 그에 맞는 통일운동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접근을 통한 변화라고 할 때 은연중에 북의 변화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잘은 모르지만, 통일 한국의 모습은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당연히 북의 일방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백낙청 선생님은 독일과 예멘의 예를 들며, 이러한 사고의 위험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여전히 그 대안에 대해서는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국가연합, 혹은 낮은 연방제라는 대안이 제시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안이 아직 없어서일까.

 

옛날 서정우 교수님이 말씀하신 '통일은 꼭 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 반박 메일을 보냈던 것이 생각난다.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대의명분도 이제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필요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낮은 연방제라는 '대안'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 실행안이 저언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논의는 계속 제자리걷기가 아닐까.

시민사회가 제 7의 당사자가 되어 할 수 있는 일도, 사회, 문화적 교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역시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picture를 어느 누구도 제시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북의 핵실험이 6자회담 진전에 도움이 되었다, 아니다라는 것에서부터

역시 북한 문제는 끊임없는 논쟁거리인 동시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격렬해지는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