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도가철학 리포트. 이 영화는 원래 처음 개봉 했을 즈음에 구해서 봤었는데, 레너드를 좋은 놈이라고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보게 되니 완전 나쁜 놈이었다는 걸, 물론 완전까진 아니어도, 알게 되고 경악했다. 난 왜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지?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는 이에 해당하는 건 아닌것 같고, 잔존하는 기억, 혹은 이미지가 전체를 대변하는 기억이 되는 걸까?
구성이 매우 특이해서 개봉당시에도 화재가 되었던 메멘토, 이번에 수업을 들으면서 자세한 세부를 보면서 보니 더 재밌고 멋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강력히 추천.
메멘토
메멘토는 개봉당시 그 독특한 영화 구성으로 인해 화재가 되었던 영화다. 처음 등장인물이랑 감독 등의 소개가 나올 때의 화면은 어떤 손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보고 있으면 흔드는 모양이 굉장히 자연스럽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게 시간이 역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저 사진이 나타나는 동안 빨리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흔들고 있나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사진은 점점 희미해지며, 그게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고나서부터 서야 관객은 시간이 역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때로부터 화면상 시간은 거꾸로 흘러 사진을 찍고 죽어있는 테디와 권총발사, 그리고 테디의 최후로 발악까지로 역으로 구성이 되며 첫 장면은 끝이 난다. 이러한 처음의 화면 구성은 감독이 관객에게 나는 이 영화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식으로 풀어가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항상 이렇게 시간이 완전한 역순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짧은 단위로 끊어지고, 각 단위 내에서는 시간의 흐름대로 사건이 진행된다. 단지 그 짧은 단위들이 가장 나중의 사건부터 배열될 뿐이다. 따라서 사건의 마지막, 혹은 영화의 처음부분에서만 그렇게 행동들 자체가 시간의 역순으로 흘러가는 것은 다른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이 영화의 구성에 대한 가이드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다지 돋보이거나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저런 장치가 필수적으로 필요할 만큼 영화의 구성 자체는 굉장히 독특하다. 영화가 그 관객을 영화 자체에 몰입하도록 하는 것은 어떤 동질감, 혹은 동화감을 느끼게 하는 측면이 크다. 영화 내에서는 시간과 장소의 단절과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이것은 우리가 느끼는 현실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영화에 몰입하고 마치 실제 사건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커다란 사건과 사건, 행동과 행동, 시간과 시간, 장소와 장소의 간극이 발생하더라도 우리의 뇌는 자동으로 앞뒤 인과 관계를 추측하여 그 끊어진 부분을 이어붙이며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들 간에 간혹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시간상의 역구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영화 전개상 포인트를 주거나 중요한 내용 전개를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지 일반적으로 영화 전체적으로 그런 구성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메멘토는 그렇게 했다. 그것은 우리가 친숙해져 있는 인식과는 다르며, 우리가 어떤 픽션을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인식시킨다. 따라서 우리가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영화를 볼 때 그 결말에 대해서 다 알고 있게 된다. 시간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떤 등장인물이 나오더라도 우리는 그 인물이 미래에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즉, 죽을지 살지, 때리는지 얻어맞는지, 도전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를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영화의 결말을 알려주는 것을 스포일링이라고 하며, 그러한 스포일링은 영화의 극적 재미와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영화를 보는 가치를 심각하게 삭감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흔히 우리가 반전영화라고 이야기 하는 영화들에서 더 심하다. 누가 과연 절름발이가 진짜 범인인 줄 알면서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려고 하고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인줄 알면서 식스센스를 보려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멘토를 볼 때, 이러한 결말을 알고 있음에서 오는 부작용이 그렇게 크지 않다. 혹은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산만하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은 한 장면을 구성하며, 그 한장면 한장면은 짧고 자주 끊어진다. 더군다나 각 장면 사이에는 회색 처리된 다른 사건이 역시 토막토막 잘려서 등장하는데, 이 사건은 시간의 정진행 순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이걸 보고 있노라면 혼란까지 느끼게 된다. 도대체 컬러 장면과 회색 처리된 장면의 연관관계는 무얼까? 어느 게 먼저 일어난 사건이지? 지금 보고 있는 장면 다음에 뭐가 일어났었지? 등의 물음은 영화의 진행방향과는 반대이기 때문에 골치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이 사건은 왜 이렇게 진행된 것일까? 이 둘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지금 진행되는 사건이 진행되는 앞에 존재했을, 이미 알게 된 모든 사건을 일으키게 된 어떤 근원에 대한 궁금증이다.
조금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은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인과관계의 흐름과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원인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사건에 친숙하지 그 역방향은 친숙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러한 역진행을 평소에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추리소설 등에 결과를 바탕으로 원인이나 그 앞의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가 등장하며, 현실세계에서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메멘토가 이토록 생경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원인을 추적해 나가는 방법 자체도 역진행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로 든 추리소설의 경우, 그 사건을 파해쳐 나가는 행위 자체는 시간의 흐름대로 이어져 나간다. 문제의 원인을 추적할 때도, 어떤 깊은 근원으로부터 순서대로 짚어 나오지 완전 역순으로 되짚어 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그 부작용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실제로는 결과로부터 원인을 탐색하는, 시간을 거슬러 생각하는 사고에 대해 생경하지 않으며 또한 역으로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이전의 사건들에서 굉장한 흥밋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초반에 이러한 구성이 거슬렸을지라도, 차츰 드러나는 원인에 집중하다보면 우리는 곧 이러한 거슬림을 잊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 굉장한 흥밋거리란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감독은 왜 이 영화를 이렇게 역으로 구성했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의 내용으로 들어가서, 이 영화의 주요 소재 중의 하나는, 주인공인 레너드가 겪고 있는 순간 기억 상실증이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기억 상실증과는 그 증세가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기억상실증은 과거 기억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어버린다. 기억상실증의 시점 이후의 기억은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레너드의 순간 기억 상실증은 기억 상실증이 일어난 순간까지의 과거의 기억은 기억하나, 그 이후의 사건은 기억하지 못한다. 단순히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고, 굉장히 짧은 순간만을 기억하며 그 이전은 기억은 곧 잊게 된다.
이 때문에 레너드는 굉장히 곤란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재미있게 표현되는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도록 하겠다. 극중 레너드는 어떤 총을 든 사람에게 쫓기는데, 도망치는 도중에 자신이 왜 도망치고 있었는지, 혹은 이 달린다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쫓고 있는 줄 알았다가 상대방이 총을 쏘는 것을 보고는 곧 자기가 도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도망간다.
두 번째 소재는 메모, 혹은 기록이다. 레너드는 자신의 특이한 증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메모와 기록을 택했다. 그는 항상 종이와 펜을 가지고 다니며 메모를 하고,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사물을 찍고 또 메모를 한다. 중요한 사항들은 직접 몸에 문신을 하기도 한다. 그는 처음 등장하는 회색 화면 장면에서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어도 메모는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며 메모를 강조한다. 또한 메모는 체계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잘 짜여진 메모는 레너드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야 할 그 어떤 것이다. 레너드는, 자신의 병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억은 메모에 비해서 불완전하다고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기억은 왜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에 있어서 등장하는 소품 가운데 메모에 대한 레너드의 생각이나 자세를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성경이다. 영화에서는 큰 역할 없이 성경이 몇 번 등장한다. 레너드는 자신의 숙소 서랍을 열면 성경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성경은, 기독교 신자에게 있어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이며 구원의 수단이다. 레너드는 이러한 성경이 항상 서랍을 열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는 레너드가 몸에 문신으로 새겨 넣었기 때문에 굉장히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는 메모와 일종의 비유가 될 수 있다. 그렇다. 메모는 레너드에게 있어서는 어떤 절대적인 영역인 것이다.
이러한 메모에 대한 레너드의 광신은, 자신의 비극적인 과거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레너드가 굉장히 잘 볼 수 있는 곳, 레너드의 왼손목 부근에는 새미를 기억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처음 영화상에 새미는 레너드가 보험 조사관이었을 때 조사 대상이었던 인물로, 교통사고로 인해 레너드가 가지고 있는 순간 기억 상실증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새미 이야기는 좀 비극적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순간 기억 상실증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어떤 특정의 것을 기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미는 그것을 하지 못한다. 그것 때문에 그는 보험금을 타지도 못하고, 아내에게 불신을 심어주게 되어 결국 목숨을 걸고 그를 시험한 아내를 죽이게 되고 만다. 레너드가 메모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새미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새미 역시 자신처럼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신의 기억능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메모를 선택했지만 그다지 체계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나중에 영화의 후미에 가면 결국 레너드가 생각했던 새미는 그 자신의 야기였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따라서 이는 레너드가 자신의 과거의 실수의 원인을 체계적이지 못한 메모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새미라는 가상의 인물을 자신의 기억속에 만들어내어 과거를 부정하기 이전에 그 잘못의 원인을 자신의 외부의 것으로 둠으로서 역시 과거를 부정하는 수단으로서 메모에 집착하게 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의 결말, 혹은 사건의 전모는 결국 레너드 자신이 위에서 살펴본 주요 소재들, 즉 순간 기억 상실증과 메모에 대한 집착을 이용하여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영화 중간중간 드러나는 사실들을 보면, 레너드는 자신의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그 사실이 드러나는 나탈리의 경우, 나탈리는 레너드가 기억을 오래 유지하지도 못하고 메모를 열심히 하는 습성을 이용하여 레너드를 이용해 먹는다. 애초에 레너드가 나탈리를 만나게 된 이유는 그가 나탈리의 애인을 죽이고(결국 그것도 그가 이용당한 결과이지만) 나탈리의 애인의 차를 강탈했는데 그 차에 나탈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는 메모를 보고 자신의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레너드가 나탈리의 애인을 죽였는지 나탈리는 모르지만, 레너드의 특성을 알고는 자신이 편한대로 레너드를 이용한다. 심지어 이용하기 전에 레너드 전부인에 대한 욕을 와장창하고는 레너드가 기록을 하지 못하도록 주변에 있는 펜을 모조리 숨긴 뒤 자기는 레너드를 이용하고 말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한다. 레너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나탈리에게 이용당해서 한 명을 두들겨 팬다. 그리고 경찰관인 토드는, 레너드와 함께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바가 있긴 하지만 범죄자를 색출하고 처리하는데 레너드가 그 범죄자를 자신의 복수대상으로 믿도록 유도하여 레너드를 이용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이용해 먹는 것은 레너드 자신이다. 레너드는 자신과 같은 상태에서도 반복적인 학습을 통하여 어떤 특정 사실을 기억하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실제로도 그 사실을 이용하여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사, 즉 기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를 죽인 사건을 자기가 그런 것이 아닌, 다른 타인에 관한 기억으로 바꿔 버린다. 또한 정작 아내가 죽은 이유는 어떤 범죄자의 강간 살해로 기억한다. 그럼으로써 레너드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지우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며 더불어서 또 하나를 얻게 된다. 바로 살아가는 이유이다. 레너드가 메모에 집착하는 만큼 집착하는 것은 바로 아내의 복수이다.
레너드의 상태는 작게 이야기 하든 크게 이야기 하든 목적이 결여되어 있다. 사실 목적 자체는 존재한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레너드 자신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레너드가 나탈리한테 이용당해서 어떤 남자를 손봐주러 갈 때, 그는 그의 숙소로 찾아가 무기로서 병을 들고 화장실에 숨는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에서 곧 그는 왜 거기 갔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술병을 보고는 내가 마신 것은 아닌데 왜 여기 있지? 라고 생각하며 적지라고도 할 수 있는 화장실 안에서 샤워를 한다. 처음에 술병을 들고 화장실에 간 목적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심성과 기민함으로 인해 결국 목적을 달성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레너드가 결국 어떤 행동을 하건 간에 그 특성으로 인해서 모든 행동을 세부적인 목적의식을 결여하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레너드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는 대전제는 오직 아내에 대한 복수밖에 남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 또한 자기 자신에 의해서 조작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중간에 보면 레너드가 숙소에서 여자를 사는데, 이 여자에게 시키는 행동이 독특하다. 그 여자에게 자기 아내가 소중하게 소장했던 물품 몇 가지를 주고는 방안에 여기저기 흩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 여자가 그 물품을 쓰는 것은 반대한다. 또 자기가 자는 것 같으면 화장실 문을 닫아서 소리를 내어 자기를 깨우라고 시킨다. 여기서는 두가지 정도를 읽을 수 있다. 먼저 한가지로 자신의 아내에 대한 어떤 사랑이나 기억을 강화, 혹은 유지 시키려 한다는 것 혹은 과거로의 회귀를 노린다는 것이다. 아내의 소유물을 일부러 흩어놓고, 자기는 물론 일부러 흩어놓았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며 또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마치 자기 부인이 살아생전에 가졌던 분위기를 재현하여 마치 자신이 부인의 생시에 함께 있는 것 같이 착각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또한 이 장면은 레너드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떤 조작을 가해왔는지를 단편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암시하는 부분이다. 여자에게 화장실 문을 세게 닫으라고 할 때, 레너드 자신은 그 때 그 소리를 듣고 깨게 되면 그 이전에 자기가 무엇을 시켰는지, 혹은 그 여자와 무엇을 했는지 잊어버린 상태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상황을 자기가 스스로 일부러 만들어낸다.
얼마 전에 카메라의 광고 카피 가운에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바로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레너드가 사는 방식이다. 이 메멘토라는 영화가 취한 전개 방식은, 굉장히 특이하고 이질적일지는 모르지만 사실 우리가 레너드라는 인물의 상황에 대해서 알고 느끼기에 상당히 적합한 방식이다. 우리는 어떤 단서나 상황정보도 없이 단순히 레너드가 알고 있는 정보, 즉 메모와 사진들만을 공유하고 그 때 그 때의 상황들만을 쫓아가게 된다. 우리는 레너드가 메모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들만 알 수 있을 뿐, 그 이상을 알 수 없다. 또한 이로 인해서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단절시켜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영화상에서 레너드의 마지막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내 마음 밖의 세상을 믿어야 한다. 기억은 못할지라도, 눈을 감고 있어도 세상은 존재한다는 걸 믿어야 한다. 믿을 수 있을까? 존재하겠지? 하는군. 현재의 나를 알려면 기억이 필요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었지?”
이를 영화의 내용과 결부시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메모로 상황을 해석하려 하지만 이것들은 어디나 간접적인 것일 뿐이다. 즉 내 마음 밖의 세상이며, 기억도 못하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너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앞서 레너드가 기억의 가치를 무시하고 메모를 중요시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레너드가 세상의 존재를 믿는 방식, 그리고 기억을 가지는 방식으로 택한 것이 바로 자신의 목적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일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심는 것이다. 레너드에게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갈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 즉 세상의 존재를 각인시킬, 혹은 세상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견뎌낼 수 있는 의미가 필요한 것이다.
레너드는 나쁜 놈이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고 죄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또한 자기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도 서슴치 않으며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완전히 떠넘기기도 한다. 자기합리화에 능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데 거침이 없다. 그러나, 과연 레너드가 처해진 상황 하에서 그를 일반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약간의 의문의 여지를 남겨 놓아야만 할 것이다. 그의 전부를 긍정할 수는 없더라도, 그의 전부를 부정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메멘토
술 많이 먹으면 메멘토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이것도 도가철학 리포트. 이 영화는 원래 처음 개봉 했을 즈음에 구해서 봤었는데, 레너드를 좋은 놈이라고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보게 되니 완전 나쁜 놈이었다는 걸, 물론 완전까진 아니어도, 알게 되고 경악했다. 난 왜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지?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는 이에 해당하는 건 아닌것 같고, 잔존하는 기억, 혹은 이미지가 전체를 대변하는 기억이 되는 걸까?
구성이 매우 특이해서 개봉당시에도 화재가 되었던 메멘토, 이번에 수업을 들으면서 자세한 세부를 보면서 보니 더 재밌고 멋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강력히 추천.
메멘토
메멘토는 개봉당시 그 독특한 영화 구성으로 인해 화재가 되었던 영화다. 처음 등장인물이랑 감독 등의 소개가 나올 때의 화면은 어떤 손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보고 있으면 흔드는 모양이 굉장히 자연스럽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게 시간이 역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저 사진이 나타나는 동안 빨리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흔들고 있나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사진은 점점 희미해지며, 그게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고나서부터 서야 관객은 시간이 역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때로부터 화면상 시간은 거꾸로 흘러 사진을 찍고 죽어있는 테디와 권총발사, 그리고 테디의 최후로 발악까지로 역으로 구성이 되며 첫 장면은 끝이 난다. 이러한 처음의 화면 구성은 감독이 관객에게 나는 이 영화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식으로 풀어가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항상 이렇게 시간이 완전한 역순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짧은 단위로 끊어지고, 각 단위 내에서는 시간의 흐름대로 사건이 진행된다. 단지 그 짧은 단위들이 가장 나중의 사건부터 배열될 뿐이다. 따라서 사건의 마지막, 혹은 영화의 처음부분에서만 그렇게 행동들 자체가 시간의 역순으로 흘러가는 것은 다른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이 영화의 구성에 대한 가이드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다지 돋보이거나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저런 장치가 필수적으로 필요할 만큼 영화의 구성 자체는 굉장히 독특하다. 영화가 그 관객을 영화 자체에 몰입하도록 하는 것은 어떤 동질감, 혹은 동화감을 느끼게 하는 측면이 크다. 영화 내에서는 시간과 장소의 단절과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이것은 우리가 느끼는 현실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영화에 몰입하고 마치 실제 사건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커다란 사건과 사건, 행동과 행동, 시간과 시간, 장소와 장소의 간극이 발생하더라도 우리의 뇌는 자동으로 앞뒤 인과 관계를 추측하여 그 끊어진 부분을 이어붙이며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들 간에 간혹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시간상의 역구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영화 전개상 포인트를 주거나 중요한 내용 전개를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지 일반적으로 영화 전체적으로 그런 구성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메멘토는 그렇게 했다. 그것은 우리가 친숙해져 있는 인식과는 다르며, 우리가 어떤 픽션을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인식시킨다. 따라서 우리가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영화를 볼 때 그 결말에 대해서 다 알고 있게 된다. 시간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떤 등장인물이 나오더라도 우리는 그 인물이 미래에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즉, 죽을지 살지, 때리는지 얻어맞는지, 도전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를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영화의 결말을 알려주는 것을 스포일링이라고 하며, 그러한 스포일링은 영화의 극적 재미와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영화를 보는 가치를 심각하게 삭감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흔히 우리가 반전영화라고 이야기 하는 영화들에서 더 심하다. 누가 과연 절름발이가 진짜 범인인 줄 알면서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려고 하고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인줄 알면서 식스센스를 보려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멘토를 볼 때, 이러한 결말을 알고 있음에서 오는 부작용이 그렇게 크지 않다. 혹은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산만하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은 한 장면을 구성하며, 그 한장면 한장면은 짧고 자주 끊어진다. 더군다나 각 장면 사이에는 회색 처리된 다른 사건이 역시 토막토막 잘려서 등장하는데, 이 사건은 시간의 정진행 순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이걸 보고 있노라면 혼란까지 느끼게 된다. 도대체 컬러 장면과 회색 처리된 장면의 연관관계는 무얼까? 어느 게 먼저 일어난 사건이지? 지금 보고 있는 장면 다음에 뭐가 일어났었지? 등의 물음은 영화의 진행방향과는 반대이기 때문에 골치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이 사건은 왜 이렇게 진행된 것일까? 이 둘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지금 진행되는 사건이 진행되는 앞에 존재했을, 이미 알게 된 모든 사건을 일으키게 된 어떤 근원에 대한 궁금증이다.
조금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은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인과관계의 흐름과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원인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사건에 친숙하지 그 역방향은 친숙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러한 역진행을 평소에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추리소설 등에 결과를 바탕으로 원인이나 그 앞의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가 등장하며, 현실세계에서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메멘토가 이토록 생경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원인을 추적해 나가는 방법 자체도 역진행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로 든 추리소설의 경우, 그 사건을 파해쳐 나가는 행위 자체는 시간의 흐름대로 이어져 나간다. 문제의 원인을 추적할 때도, 어떤 깊은 근원으로부터 순서대로 짚어 나오지 완전 역순으로 되짚어 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그 부작용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실제로는 결과로부터 원인을 탐색하는, 시간을 거슬러 생각하는 사고에 대해 생경하지 않으며 또한 역으로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이전의 사건들에서 굉장한 흥밋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초반에 이러한 구성이 거슬렸을지라도, 차츰 드러나는 원인에 집중하다보면 우리는 곧 이러한 거슬림을 잊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 굉장한 흥밋거리란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감독은 왜 이 영화를 이렇게 역으로 구성했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의 내용으로 들어가서, 이 영화의 주요 소재 중의 하나는, 주인공인 레너드가 겪고 있는 순간 기억 상실증이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기억 상실증과는 그 증세가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기억상실증은 과거 기억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어버린다. 기억상실증의 시점 이후의 기억은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레너드의 순간 기억 상실증은 기억 상실증이 일어난 순간까지의 과거의 기억은 기억하나, 그 이후의 사건은 기억하지 못한다. 단순히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고, 굉장히 짧은 순간만을 기억하며 그 이전은 기억은 곧 잊게 된다.
이 때문에 레너드는 굉장히 곤란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재미있게 표현되는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도록 하겠다. 극중 레너드는 어떤 총을 든 사람에게 쫓기는데, 도망치는 도중에 자신이 왜 도망치고 있었는지, 혹은 이 달린다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쫓고 있는 줄 알았다가 상대방이 총을 쏘는 것을 보고는 곧 자기가 도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도망간다.
두 번째 소재는 메모, 혹은 기록이다. 레너드는 자신의 특이한 증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메모와 기록을 택했다. 그는 항상 종이와 펜을 가지고 다니며 메모를 하고,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사물을 찍고 또 메모를 한다. 중요한 사항들은 직접 몸에 문신을 하기도 한다. 그는 처음 등장하는 회색 화면 장면에서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어도 메모는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며 메모를 강조한다. 또한 메모는 체계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잘 짜여진 메모는 레너드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야 할 그 어떤 것이다. 레너드는, 자신의 병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억은 메모에 비해서 불완전하다고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기억은 왜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에 있어서 등장하는 소품 가운데 메모에 대한 레너드의 생각이나 자세를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성경이다. 영화에서는 큰 역할 없이 성경이 몇 번 등장한다. 레너드는 자신의 숙소 서랍을 열면 성경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성경은, 기독교 신자에게 있어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이며 구원의 수단이다. 레너드는 이러한 성경이 항상 서랍을 열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는 레너드가 몸에 문신으로 새겨 넣었기 때문에 굉장히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는 메모와 일종의 비유가 될 수 있다. 그렇다. 메모는 레너드에게 있어서는 어떤 절대적인 영역인 것이다.
이러한 메모에 대한 레너드의 광신은, 자신의 비극적인 과거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레너드가 굉장히 잘 볼 수 있는 곳, 레너드의 왼손목 부근에는 새미를 기억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처음 영화상에 새미는 레너드가 보험 조사관이었을 때 조사 대상이었던 인물로, 교통사고로 인해 레너드가 가지고 있는 순간 기억 상실증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새미 이야기는 좀 비극적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순간 기억 상실증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어떤 특정의 것을 기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미는 그것을 하지 못한다. 그것 때문에 그는 보험금을 타지도 못하고, 아내에게 불신을 심어주게 되어 결국 목숨을 걸고 그를 시험한 아내를 죽이게 되고 만다. 레너드가 메모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새미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새미 역시 자신처럼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신의 기억능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메모를 선택했지만 그다지 체계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나중에 영화의 후미에 가면 결국 레너드가 생각했던 새미는 그 자신의 야기였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따라서 이는 레너드가 자신의 과거의 실수의 원인을 체계적이지 못한 메모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새미라는 가상의 인물을 자신의 기억속에 만들어내어 과거를 부정하기 이전에 그 잘못의 원인을 자신의 외부의 것으로 둠으로서 역시 과거를 부정하는 수단으로서 메모에 집착하게 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의 결말, 혹은 사건의 전모는 결국 레너드 자신이 위에서 살펴본 주요 소재들, 즉 순간 기억 상실증과 메모에 대한 집착을 이용하여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영화 중간중간 드러나는 사실들을 보면, 레너드는 자신의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그 사실이 드러나는 나탈리의 경우, 나탈리는 레너드가 기억을 오래 유지하지도 못하고 메모를 열심히 하는 습성을 이용하여 레너드를 이용해 먹는다. 애초에 레너드가 나탈리를 만나게 된 이유는 그가 나탈리의 애인을 죽이고(결국 그것도 그가 이용당한 결과이지만) 나탈리의 애인의 차를 강탈했는데 그 차에 나탈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는 메모를 보고 자신의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레너드가 나탈리의 애인을 죽였는지 나탈리는 모르지만, 레너드의 특성을 알고는 자신이 편한대로 레너드를 이용한다. 심지어 이용하기 전에 레너드 전부인에 대한 욕을 와장창하고는 레너드가 기록을 하지 못하도록 주변에 있는 펜을 모조리 숨긴 뒤 자기는 레너드를 이용하고 말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한다. 레너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나탈리에게 이용당해서 한 명을 두들겨 팬다. 그리고 경찰관인 토드는, 레너드와 함께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바가 있긴 하지만 범죄자를 색출하고 처리하는데 레너드가 그 범죄자를 자신의 복수대상으로 믿도록 유도하여 레너드를 이용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이용해 먹는 것은 레너드 자신이다. 레너드는 자신과 같은 상태에서도 반복적인 학습을 통하여 어떤 특정 사실을 기억하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실제로도 그 사실을 이용하여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사, 즉 기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를 죽인 사건을 자기가 그런 것이 아닌, 다른 타인에 관한 기억으로 바꿔 버린다. 또한 정작 아내가 죽은 이유는 어떤 범죄자의 강간 살해로 기억한다. 그럼으로써 레너드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지우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며 더불어서 또 하나를 얻게 된다. 바로 살아가는 이유이다. 레너드가 메모에 집착하는 만큼 집착하는 것은 바로 아내의 복수이다.
레너드의 상태는 작게 이야기 하든 크게 이야기 하든 목적이 결여되어 있다. 사실 목적 자체는 존재한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레너드 자신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레너드가 나탈리한테 이용당해서 어떤 남자를 손봐주러 갈 때, 그는 그의 숙소로 찾아가 무기로서 병을 들고 화장실에 숨는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에서 곧 그는 왜 거기 갔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술병을 보고는 내가 마신 것은 아닌데 왜 여기 있지? 라고 생각하며 적지라고도 할 수 있는 화장실 안에서 샤워를 한다. 처음에 술병을 들고 화장실에 간 목적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심성과 기민함으로 인해 결국 목적을 달성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레너드가 결국 어떤 행동을 하건 간에 그 특성으로 인해서 모든 행동을 세부적인 목적의식을 결여하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레너드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는 대전제는 오직 아내에 대한 복수밖에 남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 또한 자기 자신에 의해서 조작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중간에 보면 레너드가 숙소에서 여자를 사는데, 이 여자에게 시키는 행동이 독특하다. 그 여자에게 자기 아내가 소중하게 소장했던 물품 몇 가지를 주고는 방안에 여기저기 흩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 여자가 그 물품을 쓰는 것은 반대한다. 또 자기가 자는 것 같으면 화장실 문을 닫아서 소리를 내어 자기를 깨우라고 시킨다. 여기서는 두가지 정도를 읽을 수 있다. 먼저 한가지로 자신의 아내에 대한 어떤 사랑이나 기억을 강화, 혹은 유지 시키려 한다는 것 혹은 과거로의 회귀를 노린다는 것이다. 아내의 소유물을 일부러 흩어놓고, 자기는 물론 일부러 흩어놓았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며 또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마치 자기 부인이 살아생전에 가졌던 분위기를 재현하여 마치 자신이 부인의 생시에 함께 있는 것 같이 착각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또한 이 장면은 레너드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떤 조작을 가해왔는지를 단편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암시하는 부분이다. 여자에게 화장실 문을 세게 닫으라고 할 때, 레너드 자신은 그 때 그 소리를 듣고 깨게 되면 그 이전에 자기가 무엇을 시켰는지, 혹은 그 여자와 무엇을 했는지 잊어버린 상태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상황을 자기가 스스로 일부러 만들어낸다.
얼마 전에 카메라의 광고 카피 가운에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바로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레너드가 사는 방식이다. 이 메멘토라는 영화가 취한 전개 방식은, 굉장히 특이하고 이질적일지는 모르지만 사실 우리가 레너드라는 인물의 상황에 대해서 알고 느끼기에 상당히 적합한 방식이다. 우리는 어떤 단서나 상황정보도 없이 단순히 레너드가 알고 있는 정보, 즉 메모와 사진들만을 공유하고 그 때 그 때의 상황들만을 쫓아가게 된다. 우리는 레너드가 메모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들만 알 수 있을 뿐, 그 이상을 알 수 없다. 또한 이로 인해서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단절시켜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영화상에서 레너드의 마지막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내 마음 밖의 세상을 믿어야 한다. 기억은 못할지라도, 눈을 감고 있어도 세상은 존재한다는 걸 믿어야 한다. 믿을 수 있을까? 존재하겠지? 하는군. 현재의 나를 알려면 기억이 필요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었지?”
이를 영화의 내용과 결부시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메모로 상황을 해석하려 하지만 이것들은 어디나 간접적인 것일 뿐이다. 즉 내 마음 밖의 세상이며, 기억도 못하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너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앞서 레너드가 기억의 가치를 무시하고 메모를 중요시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레너드가 세상의 존재를 믿는 방식, 그리고 기억을 가지는 방식으로 택한 것이 바로 자신의 목적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일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심는 것이다. 레너드에게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갈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 즉 세상의 존재를 각인시킬, 혹은 세상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견뎌낼 수 있는 의미가 필요한 것이다.
레너드는 나쁜 놈이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고 죄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또한 자기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도 서슴치 않으며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완전히 떠넘기기도 한다. 자기합리화에 능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데 거침이 없다. 그러나, 과연 레너드가 처해진 상황 하에서 그를 일반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약간의 의문의 여지를 남겨 놓아야만 할 것이다. 그의 전부를 긍정할 수는 없더라도, 그의 전부를 부정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