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12:08 East Of Bucharest, A Fost Sau N-A Fost?, 2006)
감독 : 코르넬리우 코름보이우
혁명의 들뜬 열기 너머 가로등의 온기
영화를 볼 때까지 나는 이 영화가 어느 나라 영화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근 몇 달 동안 영화잡지도 안(못) 보고 영화프로도 안(못) 보고 살았다. 타이틀이 올라가고 클라리넷으로 추정되는 목관악기 연주가 흐르는데 적어도 영어권 국가는 아니다. 아이고, 루마니아라니!
세상에... 지금까지 한국영화를 위주로 영화관람을 해왔고, 기껏해야 미국, 중국, 일본 영화를, 조금 더 신경쓰고 부지런을 떨면 스페인, 독일, 프랑스, 남미 영화를 본 적은 있어도 동유럽 영화는 처음이다. 유럽이란 대륙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서유럽이나 동유럽이나 낯설기는 매한가지건만, 동유럽은 정서적으로도 너무 멀기만 한 곳이다. 요 근래 몇 년 동안은 영화제 때문에 아프리카나 아시아 변방의 영화까지 찾아보게 되었는데도 동유럽 영화에는 관심조차 가져보지 않았다. 어릴 적 기억까지 다 끄집어냈는데도 동유럽에 대한 기억은, 그 중에서도 루마니아에 대한 기억은 체조선수 코마네치밖에 없다. 이상한 일이다. 왜 그렇지?
아무튼 루마니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도통 없다 보니, 이 영화의 한글 제목이 가리키는 '그때'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봐야했다. '그때'란 1989년 12월 루마니아를 장기집권하고 있던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시민의 힘으로 끌어내린 루마니아 시민혁명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빗댄다면 '80년 5월'이나 '87년 6월'과 비견되는 시기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차우셰스쿠는 공산정권의 수괴였고 그의 몰락은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흥분되는 먹잇감이었다. 하여, 차우셰스쿠가 아내와 함께 도망을 가려다 붙잡히고, 또 며칠 뒤 공개처형 당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그런데 왜 난 그 기억이 없는 거지? ㅡㅡ;;)
이 영화는 바로 '그때'로부터 16년이 흐른 현재를 살고 있는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사람들에게 "그때 거기 있었냐?"고 질문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의 기회는 당시 혁명에 참여했다고 호언장담하는 현직교사와 독재자가 물러난 뒤에야 시청 광장에 나왔다는 노인에게 주어진다. 그 지방의 지역방송국 토크쇼를 통해.
생뚱맞은 질문, 혁명
이 영화의 전반부는 토크쇼 진행자 바질과 토크쇼의 땜빵 게스트인 산타클로스 대행 알바 노인 에마노일, 역사교사 티베리우의 일상으로 채워진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루마니아 소도시의 일상은 한겨울의 썰렁함과 칠 벗겨진 아파트의 곤궁함, 그 무채색의 고요를 깨는 동네 꼬마녀석들의 시끄러운 폭죽소리가 전부다.
비록 작은 지역방송국이지만 국장이란 명함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별로 인정하지 않는 듯하지만 스스로 매우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라 믿고 있는 토크쇼의 진행자 바질. 기름기 흐르는 얼굴은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 중에는 그나마 윤택해 보이긴 한다. 그러나 어딘가 삼류 티가 줄줄 흐른다. 방송국의 직원은 다섯손가락 안쪽인 듯하고, 보아하니 개중 유능한 부하직원이랑은 부적절한 관계인 듯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부하직원에게서 "크리스마스엔 휴가 갈 테니 알아서 방송하라"는 어이없는 선포나 듣는 위인이다.
에마노일은 예전엔 뭐 교사쯤 했는지 모르겠는 고상한 외모를 가진 노인네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면 너덜거리는 산타옷을 입고 산타대행 알바를 하는 독거노인이다.
역사교사 티베리우는 한마디로 구제불능 알콜중독자다. 월급의 거의 전부를 술 마시는 데 쓰는 것으로 보이는 이 양반, 월급 받으면 그 동안 술 마시느라 진 빚잔치로 빈털털이가 된다. 거기다 주사도 있는지 거의 유일한 친구(돈 빌려주는)로 보이는 중국인 상인에게 막말을 해서 다음에 돈 빌릴 때 더더욱 궁색하게 만드는 재주까지 지니고 있다.
티베리우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또 어떤가. 루마니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한 시험은 죄다 낙제이고, 그나마 낙제 안 당하고 통과할 수 있는 부분은 뭐냐고 묻는 선생의 질문에 저 멀리 '프랑스혁명'이라고 답한다.
자, 이런 사람들이 토크쇼에 나와 묻고 대답한다. "당신은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다시 말해, 89년 12월 혁명의 시기, 당신은 혁명의 한복판에 있었냐고 묻는다. 토크쇼 진행자 바질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우리 도시에는 과연 혁명이 있었냐고 묻는 것이다.
이 얼마나 생뚱맞은 질문이냔 말이다. 이제 막 성인의 문턱에 서 있는 청소년들은 혁명이라고 하면 머나 먼 프랑스혁명밖에 모르는 시절에, 16년 전 혁명의 기운이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군상들이 모여 앉아 혁명에 대해 묻고 대답하고 있다니 말이다.
혁명이 떠난 자리, 허무개그만 남았다?
이 생뚱맞은 질문을 가지고 토크쇼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게스트들의 증언과 청취자들의 전화제보로 구성된 이 놈의 토크쇼는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도망가기 전(즉 12시 8분 전)에 봉기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역사교사 티베리우와 그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고 증언하는 이웃들의 전화제보로 엉망진창 뒤엉킨다. 차우셰스쿠가 도망가다가 잡히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본 뒤에야 시청 앞 광장으로 나왔다고 일찌감치 고백했던 산타 대행알바 노인 에마노일은 그 논쟁에 낄 여지가 없자,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데도 옆에서 종이배 접기에 여념이 없다. 전화 제보로 그때 거기를 증언하는 제보자들도 하나같이 산만하다. 그들의 기억 속에 89년 12월 혁명의 날은 그저 크리스마스 트리를 준비하던 와중에 스쳐지나간 무의미한 사건일 뿐인 듯하다.
사실, 12시 8분 전에 시청 앞 광장에 나와서 시위한 사람이 있었으면 이 도시에 혁명이 있었던 것이고, 12시 8분 이후에야 시민들이 광장에 나온 거면 이 도시에는 혁명이 없었던 것이라는, 이상한 전제로 토크쇼를 시작한 것 자체가 이미 어이없는 코미디쇼를 예고한 것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토크쇼의 줄거리만 보자면, 혁명이란 허무하고 우스운 기억일 뿐이며 보통사람들은 그와는 전혀 무관하게 구차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아주 냉소적인 웃음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시끄럽게 터지는 폭죽 대신 더딘 구식 가로등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렇게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뻥치지 말라는 전화제보만 계속되는 가운데도 12시 8분 전에 비밀경찰과 싸우고 있었다고 주구장창 고집하는 역사교사 티베리우. 아내와 싸운 뒤 화해하고 싶어서 아내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12시 8분 이후에 광장에 나갔다고 횡설수설 수줍게 고백하는 노친네 에마노일. 12시 8분 전에 시청 앞에서 시위한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로 혁명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유명짜한 고대 현인들의 명언까지 들먹이는 토크쇼 진행자 바질. 혁명보다는 그날 티베리우가 술이나 퍼마신 일이, 자신을 과거에 비밀경찰이라고 모함한 것이, 그 시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러간 일이 더 중요한 듯 산만하게 그날을 증언하는 전화제보자들. 이들 모두가 89년 12월이라는 같은 시간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며, 여전히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에마노일의 말대로 혁명은 한순간 터지는 폭죽같은 것이 아니라, 동네 어귀부터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전염되듯 불이 켜지면서 결국에는 온 동네를 밝히는 가로등과도 같은 것이다. 이 영화에 혁명의 영웅은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들이 루마니아의 89년 12월을 살아간 사람들이라는 것은 변함 없는 진실이다. 그토록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혁명이 지나간 후에도 사실 조금도 나아진 것 없는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루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 역시도 이들이다. 그들이 12시 8분 전에 광장에 나왔는지, 그렇지 않은지와는 상관없이.
혁명이 떠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 이들이 더디게 이어가는 가로등. 그것이 역사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 아닐까?
숱한 이들이 저마다 자신이 혁명의 주연배우라고 떠드는 시절이다. 씁쓸하고 뒤숭숭해진 마음, 이 영화의 가로등 온기가 그 은근한 불빛만큼이나 은근하게 위로한다. 그래서 고마웠다. 키득거리는 가벼운 웃음 뒤에 하나씩 하나씩 더디게 옮아가는 가로등 불빛이.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감독 : 코르넬리우 코름보이우
혁명의 들뜬 열기 너머 가로등의 온기
영화를 볼 때까지 나는 이 영화가 어느 나라 영화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근 몇 달 동안 영화잡지도 안(못) 보고 영화프로도 안(못) 보고 살았다. 타이틀이 올라가고 클라리넷으로 추정되는 목관악기 연주가 흐르는데 적어도 영어권 국가는 아니다. 아이고, 루마니아라니!
세상에... 지금까지 한국영화를 위주로 영화관람을 해왔고, 기껏해야 미국, 중국, 일본 영화를, 조금 더 신경쓰고 부지런을 떨면 스페인, 독일, 프랑스, 남미 영화를 본 적은 있어도 동유럽 영화는 처음이다. 유럽이란 대륙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서유럽이나 동유럽이나 낯설기는 매한가지건만, 동유럽은 정서적으로도 너무 멀기만 한 곳이다. 요 근래 몇 년 동안은 영화제 때문에 아프리카나 아시아 변방의 영화까지 찾아보게 되었는데도 동유럽 영화에는 관심조차 가져보지 않았다. 어릴 적 기억까지 다 끄집어냈는데도 동유럽에 대한 기억은, 그 중에서도 루마니아에 대한 기억은 체조선수 코마네치밖에 없다. 이상한 일이다. 왜 그렇지?
아무튼 루마니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도통 없다 보니, 이 영화의 한글 제목이 가리키는 '그때'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봐야했다. '그때'란 1989년 12월 루마니아를 장기집권하고 있던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시민의 힘으로 끌어내린 루마니아 시민혁명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빗댄다면 '80년 5월'이나 '87년 6월'과 비견되는 시기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차우셰스쿠는 공산정권의 수괴였고 그의 몰락은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흥분되는 먹잇감이었다. 하여, 차우셰스쿠가 아내와 함께 도망을 가려다 붙잡히고, 또 며칠 뒤 공개처형 당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그런데 왜 난 그 기억이 없는 거지? ㅡㅡ;;)
이 영화는 바로 '그때'로부터 16년이 흐른 현재를 살고 있는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사람들에게 "그때 거기 있었냐?"고 질문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의 기회는 당시 혁명에 참여했다고 호언장담하는 현직교사와 독재자가 물러난 뒤에야 시청 광장에 나왔다는 노인에게 주어진다. 그 지방의 지역방송국 토크쇼를 통해.
생뚱맞은 질문, 혁명
이 영화의 전반부는 토크쇼 진행자 바질과 토크쇼의 땜빵 게스트인 산타클로스 대행 알바 노인 에마노일, 역사교사 티베리우의 일상으로 채워진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루마니아 소도시의 일상은 한겨울의 썰렁함과 칠 벗겨진 아파트의 곤궁함, 그 무채색의 고요를 깨는 동네 꼬마녀석들의 시끄러운 폭죽소리가 전부다.
비록 작은 지역방송국이지만 국장이란 명함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별로 인정하지 않는 듯하지만 스스로 매우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라 믿고 있는 토크쇼의 진행자 바질. 기름기 흐르는 얼굴은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 중에는 그나마 윤택해 보이긴 한다. 그러나 어딘가 삼류 티가 줄줄 흐른다. 방송국의 직원은 다섯손가락 안쪽인 듯하고, 보아하니 개중 유능한 부하직원이랑은 부적절한 관계인 듯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부하직원에게서 "크리스마스엔 휴가 갈 테니 알아서 방송하라"는 어이없는 선포나 듣는 위인이다.
에마노일은 예전엔 뭐 교사쯤 했는지 모르겠는 고상한 외모를 가진 노인네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면 너덜거리는 산타옷을 입고 산타대행 알바를 하는 독거노인이다.
역사교사 티베리우는 한마디로 구제불능 알콜중독자다. 월급의 거의 전부를 술 마시는 데 쓰는 것으로 보이는 이 양반, 월급 받으면 그 동안 술 마시느라 진 빚잔치로 빈털털이가 된다. 거기다 주사도 있는지 거의 유일한 친구(돈 빌려주는)로 보이는 중국인 상인에게 막말을 해서 다음에 돈 빌릴 때 더더욱 궁색하게 만드는 재주까지 지니고 있다.
티베리우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또 어떤가. 루마니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한 시험은 죄다 낙제이고, 그나마 낙제 안 당하고 통과할 수 있는 부분은 뭐냐고 묻는 선생의 질문에 저 멀리 '프랑스혁명'이라고 답한다.
자, 이런 사람들이 토크쇼에 나와 묻고 대답한다. "당신은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다시 말해, 89년 12월 혁명의 시기, 당신은 혁명의 한복판에 있었냐고 묻는다. 토크쇼 진행자 바질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우리 도시에는 과연 혁명이 있었냐고 묻는 것이다.
이 얼마나 생뚱맞은 질문이냔 말이다. 이제 막 성인의 문턱에 서 있는 청소년들은 혁명이라고 하면 머나 먼 프랑스혁명밖에 모르는 시절에, 16년 전 혁명의 기운이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군상들이 모여 앉아 혁명에 대해 묻고 대답하고 있다니 말이다.
혁명이 떠난 자리, 허무개그만 남았다?
이 생뚱맞은 질문을 가지고 토크쇼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게스트들의 증언과 청취자들의 전화제보로 구성된 이 놈의 토크쇼는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도망가기 전(즉 12시 8분 전)에 봉기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역사교사 티베리우와 그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고 증언하는 이웃들의 전화제보로 엉망진창 뒤엉킨다. 차우셰스쿠가 도망가다가 잡히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본 뒤에야 시청 앞 광장으로 나왔다고 일찌감치 고백했던 산타 대행알바 노인 에마노일은 그 논쟁에 낄 여지가 없자,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데도 옆에서 종이배 접기에 여념이 없다. 전화 제보로 그때 거기를 증언하는 제보자들도 하나같이 산만하다. 그들의 기억 속에 89년 12월 혁명의 날은 그저 크리스마스 트리를 준비하던 와중에 스쳐지나간 무의미한 사건일 뿐인 듯하다.
사실, 12시 8분 전에 시청 앞 광장에 나와서 시위한 사람이 있었으면 이 도시에 혁명이 있었던 것이고, 12시 8분 이후에야 시민들이 광장에 나온 거면 이 도시에는 혁명이 없었던 것이라는, 이상한 전제로 토크쇼를 시작한 것 자체가 이미 어이없는 코미디쇼를 예고한 것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토크쇼의 줄거리만 보자면, 혁명이란 허무하고 우스운 기억일 뿐이며 보통사람들은 그와는 전혀 무관하게 구차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아주 냉소적인 웃음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시끄럽게 터지는 폭죽 대신 더딘 구식 가로등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렇게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뻥치지 말라는 전화제보만 계속되는 가운데도 12시 8분 전에 비밀경찰과 싸우고 있었다고 주구장창 고집하는 역사교사 티베리우. 아내와 싸운 뒤 화해하고 싶어서 아내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12시 8분 이후에 광장에 나갔다고 횡설수설 수줍게 고백하는 노친네 에마노일. 12시 8분 전에 시청 앞에서 시위한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로 혁명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유명짜한 고대 현인들의 명언까지 들먹이는 토크쇼 진행자 바질. 혁명보다는 그날 티베리우가 술이나 퍼마신 일이, 자신을 과거에 비밀경찰이라고 모함한 것이, 그 시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러간 일이 더 중요한 듯 산만하게 그날을 증언하는 전화제보자들. 이들 모두가 89년 12월이라는 같은 시간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며, 여전히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에마노일의 말대로 혁명은 한순간 터지는 폭죽같은 것이 아니라, 동네 어귀부터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전염되듯 불이 켜지면서 결국에는 온 동네를 밝히는 가로등과도 같은 것이다. 이 영화에 혁명의 영웅은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들이 루마니아의 89년 12월을 살아간 사람들이라는 것은 변함 없는 진실이다. 그토록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혁명이 지나간 후에도 사실 조금도 나아진 것 없는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루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 역시도 이들이다. 그들이 12시 8분 전에 광장에 나왔는지, 그렇지 않은지와는 상관없이.
혁명이 떠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 이들이 더디게 이어가는 가로등. 그것이 역사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 아닐까?
숱한 이들이 저마다 자신이 혁명의 주연배우라고 떠드는 시절이다. 씁쓸하고 뒤숭숭해진 마음, 이 영화의 가로등 온기가 그 은근한 불빛만큼이나 은근하게 위로한다. 그래서 고마웠다. 키득거리는 가벼운 웃음 뒤에 하나씩 하나씩 더디게 옮아가는 가로등 불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