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큰롤의 대가들

장슬기2008.02.08
조회119
락큰롤의 대가들

락큰롤의 대가들

흑인 음악이었던 리듬앤 블루스에 백인 취향의 컨트와 당시 백인 상류층이 즐기던 틴 팬 엘리의 음악적이고 감각적인 요소들을 취합하여 탄생한 로큰롤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혜성 처럼 나타나기 이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점점 인기가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비록 흑인들이 오버그라운드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라디오를 통해서 경쾌하고 빠른 멜로디는 이미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때 핸섬하고 엘비스가 등장하여 니그로 감성과 창법으로 로큰롤을 불러대니 젊은이들이 어찌 망가져 가지 않았겠는가?

Rock around the clock


먼저 언급해야 할 인물이 백인인 'Bill Haley' 인데 그는 당시 커버곡 이었던 'Rock around the clock' 을 발표하면서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커버곡이란 흑인 노래를 백인들이 가사만 바꿔 다시 부른 노래) 이 노래에 경도된 유명한 뮤지션이 한사람 있는데 락큰롤의 쇠퇴 이후 로큰롤 리바이벌(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슴)을 이끈 천재 뮤지션 '프랑크 자파'였던 것이다.

지금 들으면 별 것 아니지만 자파는 'Rock around the clock'을 듣는 순간 완전히 그것에 매료되어 버릴 정도로 당시 이곡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이 곡을 부른 '빌 헤일리'는 강렬하고 마력적인 그 무엇인가가 부족하였고, 이후 등장할 엘비스의 오프닝을 예고하는 정도의 분위기만 조성하고 사라져 버린다.

Shake Rattle And Roll


빌 헤일리가 부른 'Rock around the clock'의 공전의 히트로 드디어 로큰롤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라디오 속에서만 존재하던 흑인 뮤지션들이 속속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리듬앤 블루스부터 이어져온 흑인 뮤지션들 중에서 유명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Chuck Berry'란 사람이다. 당시 다른 흑인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그 역시 부모가 다니던 교회와 학교에서 어린시절 기타를 배워 로컬 밴드에서 활동하던 척 베리는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다가 1955년 전설적인 블루스 맨중의 한 사람인 '머디 워터스'(업계에서 졸라 유명함)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기에 이른 것이다. 체스 레코드라는 흑인 레코드사를 통해 'Maybellene' 이라는 그의 최초 히트곡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Rock And Roll Music - Chuck Berry

Maybellene - Chuck Berry


첵 베리가 락큰 롤의 역사에 중요하게 인식되는 이유중에 하나는 위에 언급한 데로 로큰롤이 쇠퇴하고 난 이 후에 로큰롤 리바이벌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그의 기타 주법은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이미 당시에 거의 모든 대중음악을 두루 섭렵했던 싱어송 라이터이기도 했다. 그의 유명하고 잘 알려진 무대 제스처가 있는데 'duck-walk'라고 기타 애들립을 할때면 오리처럼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무대를 빙빙 도는 모습니다. 이런 모습은 울나라의 김수철씨가 록 밴드 '작은 거인' 시절 무대에서 가끔 선보이기도하였다.

그는 노래속에서 다양한 얘기를 했는데 남녀의 사랑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에 대한 질타까지 다양한 메시지가 그의 노래 속에 등장한다. 그는 초기 로큰롤 시대를 풍미한 중요한 뮤지션중의 한 사람이다.

또 유명한 로큰롤 뮤지션이 바로 'Little Richard'이다. 리틀 리차드는 짧았지만 엘비스 못지 않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초창기 로큰롤러 중의 한 사람이다. 리차드는 락계의 최초 게이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그의 광기에 사로잡힌 무대 매너(예를 들어 음악에 도취된 나머지 알아들을 수없는 소리로 흥얼 댄다던가 절규하는 듯한 기괴한 창법, 무대에 서서 피아노 발로 친다든가-후에 엘튼존이 흉낸낸다-)는 후에 미국의 걸죽한 뮤지션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Good Golly Miss Molly - Little Richard


소울의 제왕 제임스 브라운과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 천재 기타리스트였던 지미 핸드릭스(잠시 리틀 리차드의 세션으로 활동 했었다)까지 리틀 리차드의 격렬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무대 매너에 모두 매료된 인물들이었다. 그에 관해 잘 알려진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1961년 호주로 공연을 하러 비행기로 이동하던 리틀 리차드는 태평양 한가운 데서 비행기내에 발생한 화재를 만나게 된다.

너무나 절박했던 나머지 그는 살아서 착륙할 수 있도록 신에게 간절히 기도를 한다. 만약 살아난다면 신을 위한 종교 활동에만 메달릴 것을 신에게 간청한 것이다. 신에 가호가 있었는지 그는 살아서 호주에 도착하였고 당시 인기 절정 이었던 그는 얼마 후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그의 화려한 날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후에 가스펠 음악으로 다시 재기를 시도하기 했으나 예전의 인기는 얻을 수 없었다.

또 한사람의 유명한 초기 로큰롤러가 있는데 'Jerry Lee Lewis'란 인물이다. 루이스 역시 리듬앤 블루스가 인기 좋았던 남부 루이지애나 출신의 사람이다. 루이스도 '리틀 리차드' 못지 않게 광기에 사로잡힌 정열적인 무대 연출과 보컬, 피아노 연주로 유명한 뮤지션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 만큼은 리틀 리차드 이상가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연주를 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척 베리 처럼 자작곡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개성있는 음악적 칼라는 다른 로큰롤러에 비해서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Long Tall Sally - Jerry Lee Lewis

Johnny B. Goode - Jerry Lee Lewis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에 영향을 준 인물중에 한 사람 중에 'Bo Diddley'란 인물이 있다. 디들리는 10살때 선물 받은 기타로 그의 음악인생이 시작하게 된다. 그는 존 리 후커(역시 업게에서 졸라 유명함)에게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디들리 역시 로큰롤이 화려하게 시작된 1955년 체스 레코드 사를 통해 데뷔한다. 그는 자신만의 기타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연주되는 악기나 녹음 장비에 대해서 상당히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당시로서는 드물게 체명악기(퍼커션 연주자들이 자주 쓰는 곤봉 비슷하게 생긴 악기)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사운드를 만들어 내기도 한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뮤지션이 'Buddy Holly & Crikets'라는 50년대 척 베리와 더불어 탁월한 음악을 들려주었던 뮤지션과 그룹이다. 작곡과 기타연주를 하며 특이한 보컬 창법(딱꾹질 하는듯 한)으로 다양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인물이 바로 버디 홀리 일 것이다.

버디 홀리가 유명한 것은 락 밴드의 포맷의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 했다는 것이다. 2대의 기타와 베이스,드럼(이후 초창기 락 밴드들은 거의 이런 편성으로 결성된다)의 기준을 확립했으며, 작곡과 편곡등 자급자족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로큰롤 밴드의 선구가 되었다.

백인 취향의 음악을 한 뮤지션으로서는 최초로 흑인 리듬인 리듬앤 블루스의 강한 리듬을 백인 취향의 컨트리와 팝에 적용한 장본인인 것이다. 그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overdubbing(각 연주별 트랙을 별도로 정해 놓고 따로 따로 녹음 하는 것 보컬이 젤 마지막에 녹음 된다. 지금은 암 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녹음 방식 이었다.)이나 double tracking(쉽게 말하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듣는 녹음 테잎의 A면을 듣고 오토리버스로 동일 테잎으로 B면의 다른 곡을 들을 수 있는 것, 즉 필름 한 면에 두 종류의 노래가 녹음 되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과 같은 녹음 스튜디오에서의 2중 녹음 기술을 개척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버디 홀리는 락의 전통속에서 현대 팝송을 창시한 뮤지션중이 한사람으로 높이 평가 된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1955년 비행기가 이륙 직후 충돌하는 불의의 사고로 23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삶을 마감하고 만다. 당시 이 비행기에는 '라 밤바'로 유명했던 22상의 '리치 밸런스'도 함께 동승했었다. 천재 요절 징크스에 걸린 버디 홀리는 그런 이유로 로큰롤계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buddy holly - weezer 버전

rave on


초기의 로큰롤 뮤지션들은 음악적으로 많은 것을 바꾸거나 새롭게 개발하는 등 다양한 활약상을 보였다. 음악적으로도 간단한 코드와 멜로디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악기의 편성 또한 전자 기타 위주로 재편되었으며, 대중적으로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이 만나게 된 시기이도 하다.

결국 이러한 음악적 움직임은 후에 흑인과 백인의 새로운 음악적 분열을 야기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흑인 좀더 니그로다운 음악으로 백인은 좀더 양키나 딕시다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