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베르베르-"파피용"을 읽고...

박용훈200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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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베르베르-"파피용"을 읽고...


 

면접을 보러 서울가는 길.

책방에 들렸다. '요즘 읽을 만한 소설이 있나요?'

평소 안면이 있던 책방 아주머니가 추천해주신것은 '파피용'이었다.

 

'베르나르베르베르'

고등학교 때에 읽었던 '개미'란 소설로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이 되었고, 그 이후의 작가의 이름을 찾아가며 읽게 된 '개미혁명' 및 '타나토너트' '나무'등을 통해 나름대로의 작가의 향수를 느낄 수가 있었다.

 

프랑스 작가답게 그의 소설은 유연하다. 서양 사람이지만 동양철학을 흠모하고 있으며, 사람의 세계를 떠나 사고하기를 좋아한다. 가끔씩 보여지는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추리력은 천재이지 않을까 싶기도하다...

 

사설을 그만하고...

 

 

파피용이란 소설의

기본적은 골력은 이미 지쳐버릴대로 지쳐버린 지구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찌보면 연인관계 같다고나 할까...(물론 이러한 유추에는 내 개인적인 사정이 배제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들것이다.)

 

-스킵-

 

책의 전반은 과학과 상상이 결합하여 매우 빠른 진행을 보여준다. 작가는 창조자의 시선에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과 생각마져도 들여다보며 새로운 세상으로 향해나가는 그들의 진로를 정해준다.

여기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베르나르베르베르가 기존 소설의 창조적 샘으로 활용하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처럼 기발하면서도 논리적인 그만의 독특한 철학적 사고가 조금은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후반과 결말로 달려가면서 내용 전반적인 그의 사고는 읽을수가 있겠지만... 세세한 것에도 논리적이었던 그가 흘려버리는 필체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솔직히 난 그들이 지구를 탈출하고 1세대 까지의 진행과정에 나타나는 모습들과 작가의 해설이 결코 맘에 들지 않았다. "

 

 

'지구는 더 이상

생존의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작가는 그부분을 확정지어서 말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끊임없는 질병과 전쟁 그리고 정치가들의 독선을 보여준다. 또한 자기 스스로 그부분에 관하여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지구에서의 역사는 전쟁과 질병등이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인간은 이겨내왔다.

결국 지구방송을 금지시키는 것으로 더이상의 회의를 막아버린다.

 

'고통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고통으로 인한 행동의 변화를 소설 초반의

주인공 '엘리자베트'의 변화 한가지 만으로 긍정적인 결말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나에대한 충고의 말또한 이부분에서 따왔으니...

하지만!!!

 

작가는...

행동 변화 자체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여주인공의 변화와 함께 파피용에서의 사람들의 변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고통으로 인해 망가졌던 엘리자베트는 끝없이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 바닥까지 닿으면 다시금 위를 향해 올라올 것이라고 말한다.

좀 더 섞어서 말을 이어가자면 '성선설'의 사고에선 인간은 선한 존재이다. 규범으로 얽매이기 전에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고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성악설'에서 발전한 '법가'와 같이 제약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인간의 본성인 악함으로 인해 서로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작가가 보여줬던 파피용 안에서의 사람들의 모습은 이것을 매우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통은 부정적결말로 나타나 진다.

초기 시작했던 실연에 관한 고통은 살인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러한 사고로 인한 사고에 변화를 일으키는 고통은 폭동으로 다가왔다. 또한 지구로의 귀환을 꿈꾸는 사틴에 의한 폭동은 '카니발'이라는 말도 안되는 향락의 극치로 인해 귀결되어진다.

 

한가지 그 친구에게 묻고 싶다.

"고통으로 인해 이르는 결말이

'카니발'이 될 가능성은 염두해 두지 않는가?"

 

 

'인간들의 본성은 악하다'

 

그들은 지구를 떠나오는 이유로 자신들이 내걸었던 정부와 공권력 그리고 폭력 등등에게 다시금 자신들의 몸을 맏기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사고 속에는 '지구는 미래가 없다, 우리들이 인류의 미래다' 라는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지구에서 인간들이 겪었던 과거의 수난보다 깊은 상처를 겪게 된다.

14만명으로 시작된 인구가 6명으로 그것도 종결에는 1명으로 남는다. 그것이 과연 인류의 바람직한 미래인가.

 

'인류는 통일된 사고를

유지할수가 없는 종족이다.'

 

작가는 통일된 사고의 중요성을 매번 나오는 소설에서 강조를 하면서도 회의적으로 반응한다.

개미들의 일관된 사고를 존중하면서도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개미에 의해 변질자를 잉태하고 인류의 미래라는 거창한 의지를 목표로 시작된 파피용의 인간들이 개미의 사고 체계를 지향하면서도 결국은 퇴락의 길로 걷게 된다.

 

'인간은 개미가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사이의 다툼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를 해 하려 한다는 것을 떠나서 근본적인 성격인것이다.

만약 누군가와의 다툼이 있다면 이걸로 이사람과 나와의 인과관계는 약해졌어, 아니 연관성이 없다고 봐야할지도 몰라...라는 지극히 단순한 사고는 문제가 있다.

 

그것을 대화와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해결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해답이 아닐까.

 

같은 사고의 사람은 없다. 그것이 개미가 아니고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