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의미한 도발이 불러일으키는 불편함의 부담스러움... <미나>

백혁현200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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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무의미한 도발이 불러일으키는 불편함의 부담스러움... <미나>

 

  작가치고는 재밌는 이름이다, 김사과라니... (하긴 가까운 일본에는 바나나도 있으니까...) 그리고 소설 제목도 흥미롭다, 미나라니... 하지만 실제로 소설을 읽는 동안 몇 차례나 그만 읽을까, 하고 생각했던 걸 보면 소설이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지는 않다. 작가가 주인공들을 도발시키며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어렴풋하게 짐작이 가능하지만, 그러한 짐작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지도 그러한 도발에 수긍하도록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 시(市)의 일부 지역에서 폐쇄적인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 한줌의 중산층의 삶, 이기적이고 무지하며 책임감이 결여된 미성숙한 삶이 이런 식으로 유지되어나가는 동안 그 삶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반복되고 있으며 그것의 죄악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두가 입을 다무는 사이 시의 다른 한편에서는 피해자의 삶이 가해자들의 모든 책임감과 죄악을 등에 지고 서서히 바닥으로 침몰하고 있으며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책임지지 않은 채로 세계는 오늘도 조금씩 전진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나와 수정이라는 두 명의 여고생이다. 그리고 전형적인 인텔리겐차의 집안에서 자랐고, 갑작스러운 로또 당첨으로 집안이 부귀해지는 어부지리를 입었으며, 그러면서도 주류와 비주류를 적당히 조화시킨 문화적인 혜택까지 입고 있는 미나를 바라보며 수정은 형언하기 힘든 감정의 기복을 겪는다.


  “갑자기 수정은 자신이 더 이상 미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이 비밀스러운 이유는 비밀만이 사랑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미나의 비밀을 손에 넣었으니 수정은 이제 더 이상 미나를 사랑할 수 없다...”


  항상 가깝게 지내면서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느끼는 것은 동질감 보다는 오히려 이질감이고 혹은 열등의식인지도 모른다. 나는 미나를 이해할 수 없어 그녀의 행동을 따라 해보기도 하지만 미나의 옛친구가 자살을 하고, 그 사건 이후 미나가 대안 학교로 옮아가면서 미나에 대한 감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리고 나는 미나의 오빠인 민호와 사귀는 것으로 스스로를 다스려보려 애쓴다.


  “... 두 개의 미성숙한 영혼과 육체가 무방비상태로 오후의 옅은 어둠속에 놓여 있을 때 그것은 한봄의 찬란한 햇살보다 눈이 부시고 아름답다. 그들은 젊음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미성숙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뇌는 그 순간에도 언어로 더렵혀지고 있으며 그들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게임, 서로를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언어를 가진 짐승이며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짐승이다...”


  하지만 미나에 대한 수정의 감정은 쉽사리 다스려지지 않고, 고양이 한 마리를 살해하면서 (이 부분에서 굉장히 불쾌했는데, 이처럼 쓸모없고 잔인한 장면을 아무것도 아닌양 길게 풀어헤치는 작가의 도발이 괜한 겉멋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수정은 미나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도같고 부인하는 것도 같은 파열을 겪는다.


  “... 예를 들어서. 친구를 짓밟고 올라서라. 숨이 막혀온다. 이런 건 다 비유잖아? 아무런 힘도 없어. 나는 진짜가 필요했어. 예를 들어서. 나는 니 손을 밟아 으스러뜨렸어.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그리고 이제 나는 알았어. 차이가 없어. 이것 봐. 아무 느낌도 없어. 이렇게 니가 죽었는데도 나는 아무 느낌도 안나. 죽어 있는 너는 살아 있는 너보다 더욱더 안 느껴져. 그리고 그건 아주 잘된 일이다.”


  여고생의 친구 살해라는 실제 사건이 단초가 된 소설은 84년생 어린 작가의 손을 통하여 파격적이고 이따금 사회적인 피와 살을 제공받아 완성되었다. 예기치 못한 결말을 주고는 있지만 신선하지 않다. 읽는 이들의 불편함을 부러 의도하였다면 성공이랄 수 있겠지만 그러한 불편함이 오래 유지되는 것도, 그러한 불편함이 나를 깊숙하게 파고드는 것도 아니다. 주류 문학에서 쉽게 대상으로 삼지 않는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는, 우리들 중산층의 폐쇄적인 심층부를 공략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한 장점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