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슥7:5-6)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계시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위해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 피조물은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지으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 내 삶의 끊임없는 싸움이 아닐 수 없다. 현실은 나의 생각과는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했을까.’ 이러한 의문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된다. 그러므로 나를 지으신 분의 뜻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된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찬송가217장) 2
주님의 뜻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슥7:5-6)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계시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위해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
피조물은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지으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
내 삶의 끊임없는 싸움이 아닐 수 없다.
현실은 나의 생각과는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했을까.’
이러한 의문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된다.
그러므로 나를 지으신 분의 뜻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된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찬송가21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