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은 전직 해군하사관이었고 가구 관련 사업을 하던 아버지 휴 로드햄과 전업주부였던 어머니 도로시 로드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힐러리는 장녀였는데요, 두 남 동생 휴와 토니가 힐러리에 이어서 태어났습니다. 사진 속의 남자 아이는 아마도 휴 같은데요, 가운데 깜찍한 소녀는 당연히 힐러리 클린턴 입니다. 왼쪽은 아버지 휴 로드햄이 되겠구요, 오른쪽은 어머니 도로시 로드햄입니다. 참 단란해 보이죠.
힐러리는 어렸을때부터 아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힐러리를 장남처럼 키웠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좋은 성적표를 받아와도 좀처럼 칭찬을 하지 않고 더 잘하라고 독려하고는 했다는데요, 힐러리는 그래서 자신이 더 강하게 될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휴 로드햄은 골수 공화당원이었다고 합니다. 힐러리가 고등학교 때인가 대학교 때인가 공화당 의원의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힐러리 아버지는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도 딸의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민주당원인 미래의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을 사위로 맞이했으니 말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아버지 로드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오늘날의 힐러리 클린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빌 클린턴이 장인이 세상을 떠난 후 장례식에서 한 헌사를 보면 휴 로드햄이 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빌 클린턴이 공화당원이 많은 지역에서 유세를 하고 있을때, 그때는 아직 결혼하겠노라고 미래의 장인어른에게 말도 하지 않았을 때였다고 합니다.
휴 로드햄이 유세장에 와서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보아하니 공화당원인 것 같은데, 나도 공화당원이오. 민주당 녀석들은 공산주의자들하고 다들 바 없다고 생각지만, 이 녀석은 정말 괜찮은 녀석이오. "
힐러리의 자서전인 " 살아있는 역사"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입장의 차이도 아버지와 딸의 사이를 가로 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아버지
힐러리 클린턴은 전직 해군하사관이었고 가구 관련 사업을 하던 아버지 휴 로드햄과 전업주부였던 어머니 도로시 로드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힐러리는 장녀였는데요, 두 남 동생 휴와 토니가 힐러리에 이어서 태어났습니다. 사진 속의 남자 아이는 아마도 휴 같은데요, 가운데 깜찍한 소녀는 당연히 힐러리 클린턴 입니다. 왼쪽은 아버지 휴 로드햄이 되겠구요, 오른쪽은 어머니 도로시 로드햄입니다. 참 단란해 보이죠.
힐러리는 어렸을때부터 아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힐러리를 장남처럼 키웠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좋은 성적표를 받아와도 좀처럼 칭찬을 하지 않고 더 잘하라고 독려하고는 했다는데요, 힐러리는 그래서 자신이 더 강하게 될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휴 로드햄은 골수 공화당원이었다고 합니다. 힐러리가 고등학교 때인가 대학교 때인가 공화당 의원의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힐러리 아버지는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도 딸의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민주당원인 미래의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을 사위로 맞이했으니 말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아버지 로드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오늘날의 힐러리 클린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빌 클린턴이 장인이 세상을 떠난 후 장례식에서 한 헌사를 보면 휴 로드햄이 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빌 클린턴이 공화당원이 많은 지역에서 유세를 하고 있을때, 그때는 아직 결혼하겠노라고 미래의 장인어른에게 말도 하지 않았을 때였다고 합니다.
휴 로드햄이 유세장에 와서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보아하니 공화당원인 것 같은데, 나도 공화당원이오. 민주당 녀석들은 공산주의자들하고 다들 바 없다고 생각지만, 이 녀석은 정말 괜찮은 녀석이오. "
힐러리의 자서전인 " 살아있는 역사"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입장의 차이도 아버지와 딸의 사이를 가로 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